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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번역·자막 맡은 한유미·에르베 페조디에 부부

영국신사77 2016. 4. 18. 23:45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번역·자막 맡은 한유미·에르베 페조디에 부부

유럽 최고 판소리 전도사… “번역·자막이 성패 좌우해요”

입력 2016-04-17 21:04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번역·자막 맡은 한유미·에르베 페조디에 부부 기사의 사진
지난 15일(현지시간) 파리 테아트르 드라빌 극장 앞에서 만난 한유미(왼쪽)-에르베 페조디에 부부. 이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된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번역과 자막을 맡았다.

지난 14일(현지시간)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프랑스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파리 테아트르 드라빌(파리 시립극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공연의 성공에는 한국 창극의 첫 소개, 작품의 완성도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자막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파리에서 한국어 강사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는 한유미(47)-에르베 페조디에(59) 박사 부부가 만든 자막은 이 작품의 해학과 성적 은유를 제대로 전달했다. 덕분에 판소리 특유의 발성법과 낯선 한자 단어 때문에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한국 관객보다 프랑스 관객이 더 먼저 그리고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15일 파리에서 이들 부부를 만났다. 한 박사는 “자막은 대사를 100% 넣으면 관객이 전부 읽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대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80% 정도로 내용을 압축해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작품의 코믹하고 에로틱한 부분을 맛깔스럽게 번역할 수 있었던 데는 배우 겸 극작가 출신인 남편의 역할이 컸다”고 밝혔다.  

이 부부는 유럽 최고의 판소리 전도사다. 흔히 판소리가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결정적인 계기로 2002년 파리가을축제의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 공연을 꼽는다.

이후 판소리 다섯 바탕은 이듬해 미국 뉴욕 링컨센터와 영국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에도 초청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파리가을축제 공연 당시 판소리 다섯 바탕의 번역 및 자막 담당자가 한유미-페조디에 부부였다. 이 프랑스어 자막이 워낙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영어로 번역해 영국과 미국 공연에도 사용했다.

부부는 2007년부터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판소리 워크숍을 열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13년부터 파리에서 유러피언 아마추어 판소리 콘테스트 등의 프로그램으로 이뤄진 ‘K-Vox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페조디에 박사는 판소리에서 이야기꾼 역할을 하는 ‘아니리 광대’가 되어 판소리 문법에 맞춰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도 연다. 그는 “한국 판소리는 음악성과 문학성이 매우 뛰어나다. 어디에도 없는 고유하고 독특한 장르”라면서 “최근 프랑스에서는 판소리가 많이 알려졌고 직접 배우려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에 창극을 보면서 판소리에 대해서 더 관심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1996년 판소리를 처음 들은 이후 한국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그는 친구인 파리가을축제 음악감독 조세핀 마르코비치에게 판소리를 초청하도록 꾸준히 권유한 주역이기도 하다. 판소리에 깊이 천착한 이 부부는 각각 판소리와 한국 샤머니즘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 박사는 “판소리가 해외에서 공연됐을 때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것은 번역의 잘못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판소리를 제대로 접하기만 하면 누구나 그 매력에 빠진다”며 “번역이나 자막이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기획 단계부터 면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파리=글·사진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