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제3의 물결로 유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최근 저서 ‘불황을 넘어서’의 출판 소식은
그의 유명세를 떠나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경제의 불황의 시점에
매우 반가운 소식이자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전부터 불황과 경제위기에 대한 글은 수 없이 많았으나
본 ‘불황을 넘어서’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앨빈 토플러의 해박함과 방대한 자료수집 외에,
2009년 현재와 미래를 인식하는 탁월한 식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글의 서두에서 현재 경제위기의 원인을 크게 다섯 가지로 정의했다.
첫 번째는 현재 경제 시스템의 낙후다.
산업화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제 시스템을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대로 가동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점의 제기였다.
두 번째로는 그의 이전 저서 ‘제3의 물결’의 핵심사항인 정보화 시대에 따른
지식 이동속도의 극대화를 통한 역할 증대를 꼽았다.
세 번째는 지식의 중요성에 대한 확장 개념으로써 정보이동의 가속화와 탈동시화를 언급했다.
이는 정부의 경제 시스템을 한참 뛰어넘은 민간 부문의 정보 순환 속도에 대한 것으로써
이를 탈동시화(de-synchoronization)라는 생소한 언어로 정의한 것이다.
네 번째는 복잡한 금융당국의 체계와, 회계사, 신용평가사의 관계와 더불어
비합리적인 금융상품을 통틀어 복잡성이라 정의한 내용이다.
현재 복잡성의 사이에서 경기부양과 인플레이션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의 상황을 그대로 표현한 부분이기에
더욱 금융 부실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마지막은 국경의 소멸이라 정의한 부분인데,
아주 간단한 과정으로 인터넷을 사용한 해외쇼핑이 이루어지는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쉽게 납득이 가는 부분이었다.
‘불황을 넘어서’에서 그는 위의 다섯 가지 경제위기의 원인을 도박판이 된 세계경제(1장), 에너지 자원과 공포심(2장),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경제관념(3장)이란 주제로 구체화했다. 그리고 불황의 가상 시나리오를 표현한 슈퍼 인플레이션 시나리오(4장), 일반적 불황 시나리오(5장), 경제 대재앙(6장)을 통해 우리가 불황의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하지 못할 경우에 발생할 불황에 끔찍한 실제 모습을 예상했다. 글은 마무리로 제목 그대로 불황을 넘을 수 있는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7장)과 변화를 위한 전략(8장)을 제시하며 끝을 맺는다.
도박판이 된 세계경제 상황은 우리나라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근로소득과 일확천금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부에 대한 무조건 추구, 그리고 부의 재분배에 형평성 문제를 느끼는 경제 구성원은 파업, 도산, 물가 폭등, 자원 부족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느낀다. 그리고 공포심은 건전하지 못한 부의 축적과 부적절한 소비, 투자와 맞물려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 또 다른 공황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 전문가들도 당연히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고 중앙은행의 설립, 금융관리기구의 설치 등의 안전장치를 두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나, 위에서 언급한 국경의 소멸, 즉 다국적 기업의 출현과 유로 달러, 초고속 통신 환경은 현재의 안전장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경제 시스템 전체의 낙후로 이어져 불황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게 된다. 우리도 작년 연말에 세계적인 실물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지속적인 중앙은행의 금리인하를 단행했으나 실제 시장 금리는 위기감과 공포심으로 오히려 고공행진을 했던 기억이 있으니 정말 공감이 가는 적절한 핵심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너지 자원과 공포심에 대한 그의 글 중 ‘순수 에너지(net energy)'에 대한 언급은
지금까지 가져왔던 화석연료의 수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충분했다.
에너지 자원 자체의 고갈도 문제지만
그 자원을 채취하는 에너지원의 증가 역시 고려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효 기간이 지나버린 경제관념에 대한 글은
글 앞머리에 정의했던 현대 경제 시스템의 낙후에 대한 확장 개념이다.
이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헤이즐 핸더슨이 언급한 ‘사회적 거래비용(social transaction cost)’의 증가와 화폐의 이동속도 향상이 가져온 인플레이션에 관한 것인데,
이를 모두 전통적인 경제모델로 대처할 수 없는 경제 현상으로 보고
사회적 관점에서의 경제학 접근을 강조했다.
토플러는 1923년에 전쟁 직후 독일에 발생한 슈퍼 인플레이션의 발생배경을 설명하며 자원의 대부분을 쥐고 있는 아랍 산유국이 실물이 아닌 화폐, 증권을 소유하고 있는 점을 들어, 현재에 이와 같은 형태의 상황의 재현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일반적인 불황 시나리오와 경제 대재앙에서는 현재에 닥칠 수 있는 불황의 유형과 실례를 들며 각 국가별, 기업, 고용인, 피고용인의 다양한 입장에서 제시했다.
단순히 한 국가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닌
글로벌 차원의 대규모 경제상황, 즉 인플레이션, 불황, 일시적인 폭등락, 경기침체, 스태그플레이션 등의 현상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을
그는 미래학자 해롤드 스트러들러의 말을 빌어 ‘에코스패즘(eco-spasm)’이라 명명했다.
결국 에코스패즘의 위기 상황에서 아랍, 인도네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등의 산유국의 영향은 점점 증대되고 있으며 앞으로 미국 주요 기업들의 경영권이 일부 이들에게 넘어갈 수 있음을 예상했다. 국가 간의 통합과 빠른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균형은 유지하기 더 힘들어지며, 결국 한정된 자원 문제와 맞물려 에코스패즘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미래를 암울하게 볼 필요가 없음을 토플러는 강조한다.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인 청정에너지의 개발이라든지 새로운 에너지원의 발견은 인류 전체가 직면한 자원고갈에 대한 훌륭한 해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주범인 자원고갈의 해결만 가지고 모든 에코스패즘의 위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에 대한 두 가지 큰 통합적 해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경제학만으로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흘러간 과거를 다시 복원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글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변화를 위한 전략은 그의 두 가지 통합적 해법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이 있다. 단기적인 효율성과 생산성에만 집중하면서 발생한 사회, 생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국적 기업의 규제와 통합 국제기구의 설립은 당장의 경제적 이득이 미래의 심각한 경제적 손실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줄인다. 이미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무용지물이 된 과거의 경제안전장치들을 보완하기 위한 식량, 자원의 비축 시스템을 선진국과 후진국이 함께 만족할 수 있는 방법도 제안했다.
현재 우리에게도 큰 사회문제인 고용정책에 있어
그는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다.
제조, 건축업 등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무한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을 강조한 부분은
우리 정부도 꼭 염두해 두었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정보 이동의 가속화를 이용한 더 많은 국민의 정책 참여 및 지방 분권화를 제안했지만 각종 님비주의와 지역 이기주의를 격고 있는 우리에게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지나친 이상적 접근으로만 보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마지막 제언대로 장기적인 계획수립과 선제적인 대응과 더불어 현재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해묵은 비민주적인 정치시스템의 민주화, 첨단기술의 인간미 부여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토플러와 함께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은 정말 멋진 경험이었으며 불황을 넘기 위한 거시적인 시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