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8.2. 지난번에 살펴보았듯이 이제 영화를 보면서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 일은 다반사가 되어버렸다. 많은 영화 속에 오페라 아리아를 집어넣고 있으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영화에서 오페라를 듣고 있는 것이다. 이제 오페라하우스에서보다도 영화를 통하여 오페라를 접하는 일이 더욱 많아졌으니, 오페라와 영화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영화 자체를 오페라를 소재로 하여 만든 것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히트한 영화 '귀여운 여인'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거의 그대로 패러디한 것이다. 이 영화 속에는 리처드 기어가 줄리아 로버츠를 비행기에 태우고 오페라하우스에 데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이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이다. 오페라를 보던 로버츠는 극중의 여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펑펑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기어가 그녀의 집으로 찾아올 때 울려 퍼지는 노래가 그 오페라의 가장 감동적인 클라이맥스인 '나를 사랑해 주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 '문 스트럭'에 나오는 두 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와 쉐어는 바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가련한 두 주인공과 다름아니다. 극중에서 낙담한 장애인인 케이지는 오페라 마니아인데 그의 소원은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라 보엠'을 보는 것이다. 이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 내내 '라 보엠'의 아리아들이 극장을 채운다. 또 영화 '리플리'에서 맷 데이먼은 친구의 모든 것을 차지하기 위해 그를 죽일 결심을 한다. 그리고 그가 오페라하우스에 갔을 때 공연되는 것은 차이코프스키 '예프게니 오네긴' 중의 ‘결투 장면’이다. 그것 역시 친구 간의 살해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설원 위에 낭자한 유혈의 오페라 무대는 영화의 극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로베르토 베르니니가 사랑하는 여자를 보러 오페라하우스에 가는데, 거기서 연주되는 것이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 중의 '뱃노래'이다. 또 클라우스 킨스키의 광적인 연기로 유명한 '피츠카랄도'는 오페라광(狂)의 이야기인 만큼 여러 아리아들이 나오지만, 마지막에 오페라단 하나를 다 사서 배 위에서 혼자서 감상하는 감동적인 장면에는 벨리니의 걸작 '청교도' 중의 '그대에서 사랑을'이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시며 흐르게 한다. 또한 '제5원소'의 미래 우주공간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는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광란의 장면'이며, '디바'에서 주인공이 연주하는 것은 카탈라니 '라 왈리' 중의 '나는 멀리 떠나네'다. 그 외에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는 벨리니 '노르마' 중의 '정결한 여신'과 생상 '삼손과 델릴라' 중의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가 깔리면서 잔잔한 분위기의 감동을 더했으며,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는 드보르자크 '루살카'의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가 흐른다. '전망 좋은 방'에는 푸치니 '잔니 스키키'의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가, '나의 왼발'에는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의 '사랑의 산들바람은'이, '스웨프트 어웨이'에는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아리아 '지난날이여 안녕'이 결정적인 대목에서 흐른다. '성난 황소'에서 처음 자막이 나가는 동안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연주되며, '대부'에는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여러 곡들이 요소요소에 나와 마피아의 분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케스트라 박스 | 2008.8.9. |
아무래도 오페라보다는 콘서트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 같다. 남자들이 모두들 제비나 펭귄 같은 검은 옷을 입고 정렬해 앉은 채로 다양한 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은 분명 콘서트의 상징 같은 장면이다.
그런데 오페라를 보러 가면 오케스트라가 있기는 하지만,무대 앞 박스 속에 숨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난생 처음 오페라를 보러간 줄리아 로버츠는 무대를 보더니 대뜸 하는 말이 “밴드도 있네!”다. 즉 그녀는 오페라이니 무대만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 아래에 숨어서 잘 보이지 않는 오케스트라의 존재에 대해서 놀랐던 것이다. 오페라 무대의 특징은 무대 아래에 박스를 만들어서 그 안에 악단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원래 그리스시대 때부터 악단이 앉는 바닥을 오케스트라라고 불렀고, 지금 그것이 악단을 지칭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반원형으로 된 고대 그리스의 야외극장을 상상해보자. 동심원으로 된 많은 객석들이 둘러져 있고, 앞에는 무대가 위치한다. 그 무대 앞에 동심원들 중 가장 작은 원이 있는데 보통 그 자리가 악단이 앉던 자리였다. 그리고 그 위치를 오케스트라라고 불렀다. 그 역사적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유럽의 오페라하우스에 가면 간혹 티켓의 자리를 지칭하는 칸에 ‘오케스트라’라고 적혀 있는 경우를 본다. “아니, 내 돈 내고 가서 내가 직접 오케스트라를 연주해야 하는가?”하고 당황하시는 분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바닥의 자리, 즉 우리로 치면 1층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 ‘오케스트라’에는 관객들이 앉아 있고, 정작 오케스트라는 ‘박스’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야외극장에서는 오픈된 자리에 앉던 오케스트라가 위치했지만, 오페라하우스라는 실내 극장으로 오페라가 들어오면서 앞에 박스를 만들어서 그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 자리를 요즘은 ‘오케스트라 피트’라고들 부른다, 그래서 오페라 공연 때 가수들은 오케스트라보다도 뒤에 서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오페라에서는 가수들보다도 오케스트라가 더 중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아무리 성악이 인기가 높다고 하더라고 오페라 연주의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오케스트라인 것이다. 다음으로 오페라 가수들은 노래할 때 저 오케스트라를 뚫고 노래해야만 한다는 뜻도 된다. 콘서트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뒤에 있고 그 앞 협연자의 자리에 성악가가 위치한다. 이럴 경우 그는 오케스트라를 뒤로 두고 그 음악을 들으면서 관현악 사운드에 자신의 목소리를 실어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오페라에서는 자신의 목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음향 속을 뚫고 나가도록 불러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바그너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후기낭만주의 오페라들 중에서는 100여명이 넘는 대형 오케스트라가 위치할 때도 있어서, 성악가로서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인 동시에 쉽지 않은 대결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관객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바그너가 설립한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같은 곳은 오케스트라의 모습이 관객들의 극중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아예 무대 아래층에 오케스트라가 위치하게 하여, 소리만 들일 뿐 악사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어쩌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같지만, 그래도 오케스트라란 오페라의 근간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팀이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 지휘자는 무슨 일을 하는가? | 2008.8.16. |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비록 보이지 않지만, 대신 불쑥 솟아있어서 잘 보이는 것이 지휘자다. 물론 공연이나 극장에 따라서는 지휘자조차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머리나 어깨 정도만 오케스트라 박스 위로 나와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허리부터 다 나와 있어서 그 뒤에 앉았다가는 무대가 가려질 것 같은 지휘자도 있다. 어찌되었거나 오페라 공연에서 무대 속 즉 드라마 속의 인물이 아닌데도 관객들에게 노출되는 유일한 사람이 지휘자다. 이름 그대로 그는 오페라 공연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지휘자가 튀어나와 있는 경우는 당연히 연주자들이 그를 잘 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사람들 즉 주역가수들, 조역들, 합창단들, 그리고 연기는 하지만 노래는 없는 연기자(엑스트라)들, 또한 무용수들까지 무대 위의 모든 사람들이 지휘자를 바라본다. 그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박스 속에 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까지도 지휘자를 쳐다본다. 그들은 모두 지휘자로부터 지시를 받는다. 그들은 지휘자의 손짓 하나 동작 하나 그리고 표정 하나에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거대한 드라마를 완성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 명의 예술가는 지휘자다. 가수가 아무리 대스타이고 연출가가 아무리 천재라고 하여도, 오페라가 악보라는 지시물을 해석하면서 따라가는 음악 공연의 하나이기도 한 만큼 지휘자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오페라 무대 뒤에는 관객이 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가 모니터를 보면서 일하는데, 그 모니터에는 지휘자의 모습이 내내 비친다. 즉 무대 뒤에서 소리만 내는 합창단도 모니터를 보면서 노래한다. 물론 합창지휘자라는 분이 따로 있지만 그도 전체 음악의 흐름을 거슬러 합창단을 이끌 수는 없으므로, 그의 눈도 모니터 속의 지휘자에게 가 있다. 과거 모니터가 없었던 시절에는 보조지휘자가 무대 뒤에서 세트 틈으로 지휘자를 쳐다보면서, 무대 뒤의 합창단이나 무용단을 지휘하곤 하였다. 오페라 공연에서 오케스트라와 무대 위의 가수들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는 사람은 지휘자뿐이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장악하면서 동시에 무대 위의 가수들에게 노래의 시작이나 포인트 등을 지시해 준다. 공연 중에 무대 위에 서보면 객석의 관객들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로 지휘자의 모습이 보인다. 지휘자는 중앙 보면대 위의 불빛으로 인해 모습이 두드러진다. 또한 지휘자가 잘 보이게 하기 위하여 지휘자 뒤의 벽에는 식탁보와 같은 하얀 보자기를 걸어 놓는다. 어둠 속에서도 흰 천 덕분에 지휘자의 모습이 두드러져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그만큼 수많은 배우들과 연주자들이 일사불란한 공연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휘자가 잘 보여야 하는 것이 오페라이다. 요즘의 현대식 극장에서는 지휘자의 모습이 나오는 컬러 모니터들이 요소요소에 설치되어 있다. 덕분에 가수들은 굳이 지휘자를 보기 위해 중앙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고도, 여러 각도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휘자가 개성 있고 뛰어난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악보와 작곡가, 배경 등에 대해 여느 클래식 음악이나 다름없이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오페라의 경우는 여기에 덧붙여서 원작, 역사, 대본까지도 깊이 공부해야하는 것이 오페라 지휘자다. 오페라 공연의 모든 음악적 성패의 궁극적인 책임은 지휘자에게 있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또 한명의 창조자, 연출가 | 2008.8.23. 오페라에서 지휘자 다음으로 중요한 스태프는 연출가이다. 연출가는 흔히 생각하듯이 영화나 연극의 연출가, 즉 감독과 거의 같은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그는 전체적인 연기의 구성을 짜고 출연자들의 동선을 만들고 연기를 일일이 지시한다. 모든 출연자들의 동작과 표정은 다 연출가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연출가는 오페라를 어떻게 해석할지 궁리하고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오페라 속에서 어떻게 표현할지를 연구하여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하자면 오페라에서 음악적인 것(이것은 지휘자의 영역이다)을 제외한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연출가의 책임 아래에 있는 것이다. 현대 오페라 연출에서 연출가에게 중요한 것의 하나가 무대 미술이다. 특히 현대의 오페라하우스에서는 들려주는 요소(음악)에 못지않게 보여주는 요소(미술)를 중시하여 연출가들은 점점 더 미술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오페라에서의 미술이란 요소는 다만 무대 미술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대도구, 소도구에 의상, 분장, 조명 등 모든 시각적인 것들을 망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디자이너를 따로 두는 경우도 있지만, 적지 않은 연출가들이 무대 미술이나 의상 또는 조명 등을 직접 감독하기도 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들 중에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적지 않다. 이탈리아의 명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는 조각을 전공하였으며, 프랑스의 명연출가 장 피에르 포넬은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다. 오페라의 미술이 2차원적, 즉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무대 위의 3차원 공간을 채우는 입체적인 작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건축이나 조각가가 유리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 귄터 슈나이더 짐센은 원래 조명 디자이너였으며, 로버트 카슨은 안무가였고, 피에르 루이지 피치는 의상을 전공했던 사람이다. 이렇듯 오페라 연출은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점은 오페라 연출이라는 고유한 분야가 오래전부터 정착된 것은 아니라는 예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원래 연극 연출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오페라에 투신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독일의 발터 펠젠슈타인을 시작으로 괴츠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에버딩, 하리 쿠퍼 등이 모두 독일 근대 연극 연출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유명 오페라 연출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오페라를 어떤 상황으로 세팅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즉 데이비드 파운트니는 '루살카'를 현대의 정신병동에서 일어나는 일로 만들었고, 로버스 카슨은 '일 트로바토레'를 정유공장의 노사갈등으로 묘사하였으며, 피터 셀라스가 '돈 조반니'를 뉴욕의 재벌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로 만들었으며, 페터 콘비취니는 '로엔그린'을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로 재구성한 것 등이다. 이렇게 오페라 연출에서 원작의 세팅과는 달리 때와 장소를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로 자주 만드는 것은, 오페라 속의 이야기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더 깊은 인상과 높은 감흥을 노리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연출가가 악보나 가사를 손대는 일은 원칙적으로 없다. 즉 악보와 가사에는 전혀 손대지 않으며, 나머지 부분만이 연출가의 영역인 것이다. 그러므로 평범한 연출가의 공연이라면 연출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비범한 연출가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서 충격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오페라 연출이기도 하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의 창조자, 무대미술 | 2008.8.30. |
| | | | | | 조지 거쉰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의 무대장치 | |
여러분은 오페라를 본다고 말하는가, 아니면 듣는다고 말하는가? 오페라는 물론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는 것이지만, 분명 본다고 얘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TV나 영화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장르지만, 흔히 TV나 영화를 본다고 말하지 듣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개중에는 화면은 쳐다보지도 않거나 아예 끄고 오디오만 듣는다면 그럴 때는 당연히 듣는다고 해야겠지만, 이런 것은 분명 특별한 경우일 것이다. 오페라 역시 CD나 LP 또는 라디오를 통해서 듣기만 하는 경우라면 굳이 오페라를 듣는다고 하겠지만, 실제로 오페라하우스에 가서 공연에 참석할 때는 본다는 말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오페라 공연에서는 음악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보는 영역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우리는 오페라의 듣는 측면만을 너무나 강조하면서 얘기하게 된다. 당연히 오페라라는 장르에서는 듣는 분야 다시 말하자면 음악이 가장 비중이 큰 분야임은 부정할 수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음악이 오페라에서 전부는 아니지만, 최소한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분야 다시 말하자면 눈으로 보는 분야도 오페라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점인 것이다. 아마도 음악을 가장 사랑한 사람의 한명이며 인생을 음악에 헌신했던 대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오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종종 오페라에서 눈을 감고 듣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오페라에서 눈을 뜨고 감상하지 않는가?”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가 오페라의 비주얼적인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인데, 이것은 이미 40여년 전에 나온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 다시 말하자면 21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카라얀이 강조했던 오페라에서의 보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세계 오페라하우스에서는 듣는 것과 보는 것의 균형을 무척이나 중요시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대미술가의 위치는 오페라에서 점점 더 중요하다. 연출가가 시각적인 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만, 아름답거나 의미 있고 상징적인 무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바로 무대미술가 또는 무대디자이너(stage designer)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그들은 대부분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로서, 오페라하우스의 무대를 자신들의 캔버스처럼 이용하여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 역사적으로 마르크 샤갈이나 앙리 마티스 같은 대화가들도 오페라 무대미술의 의뢰를 즐겁게 받아들였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오페라에서 무대 미술을 감상하는 것도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현대의 유명한 화가들 중에서 오페라를 멋지게 장식한 사람들은 매우 많다. 화가 데이비트 호크니가 ‘마술피리’나 ‘테레지아스의 유방’ 등의 명 무대를 남겼으며, 시드니 놀런의 ‘삼손과 델릴라’도 유명하다. 최근에 리처드 허드슨의 ‘삼손과 델릴라’, 카렐 아펠의 ‘마술피리’, 로니 토렌의 ‘탄호이저’ 등은 디자인만으로도 충격적인 아름다움을 주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연출과 디자인의 경계는 모호하고 콘셉트가 함께 가기 때문에 어떤 연출가들이 직접 디자인을 하기도 한다. 즉 유명한 프랑코 제피렐리, 장 피에르 포넬 같은 연출가들은 디자인도 자신이 직접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연출가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경우는 디자이너가 함께 쌍을 이루어 작업한다. 연출가와 디자이너가 함께 작업하는 명콤비로는 하리 쿠퍼와 에리히 본더 콤비나 로버트 카슨과 마이클 레바인의 콤비 등이 유명하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의 숨은 공로자 프롬프터 | 2008.9.6. 오페라 공연에 가보자. 무대를 유심히 보면 무대 앞쪽 가운데에 위로 약간 올라와서 무대를 가리고 있는 부분이 있다. 보통 네모진 것으로 작은 경우는 작은 책상 하나가 올려져 있는 크기이며, 좀 클 때는 긴 테이블 하나 정도의 크기이다. 그것은 주로 어두운 색으로 되어 있어서, 객석에서는 왜 무대 가운데에 그런 것이 있는지 의아해 하기도 한다. 이것은 ‘프롬프터 박스’로서, 그 안에는 ‘프롬프터(prompter)’라고 부르는 사람이 들어 있다. 그리고 박스는 객석에서 볼 때는 막혀 있는 상자 같지만, 가수들을 향하여 뒤쪽으로는 열려 있어서 프롬프터와 출연자들은 서로 볼 수가 있다. 프롬프터는 오페라 전체를 그린 악보, 즉 총보(總譜)나 아니면 성악 파트가 적힌 악보를 가지고 그 박스 안에 들어간다. 원래 프롬프터가 하는 일은 가사를 읽어주는 일이었다. 사실 오페라가 길다 보니 출연자들이 중간에 가사를 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프롬프터가 출연자들 귀에 들릴 정도의 음성으로 가사를 읽어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황당해 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사실인 것을 어떡하랴. 프롬프터의 존재는 오페라를 우습게 보거나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공박을 받는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로 오페라를 폄하할 것만은 아닌 것이 프롬프터는 원래 연극에서 나온 것이다. 즉 연극 공연에서도 과거에는 대사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며, 그것을 오페라에서 수입한 것이다. 하지만 프롬프터가 가사를 모두 읽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주로 각 소절의 첫 부분만을 읽어준다. 그러면 성악가는 이후의 가사가 생각나서 뒷부분을 수월하게 노래하는 것이다. 사실 오페라에는 비슷비슷한 대목이나 멜로디가 적지 않다. 여러 노래들이 흡사한 경우가 많은데, 그 때마다 다른 가사들을 다 외우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고 다른 작품의 가사와 헷갈리는 수도 적지 않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안전장치로서 프롬프터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프롬프터가 단순히 가사를 읽어주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출연자의 연기가 연출가가 지시했던 것과 다르면 지적해주고, 그들의 위치나 자세도 교정해주며, 다음 동작의 시작을 알려준다. 그는 마치 축구의 주장처럼 그라운드 안에서 야전(野戰) 사령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연출이나 연기가 오페라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에 프롬프터가 있는 자체를 싫어하는 연출가가 많아졌다. 그들은 가수들이 일류 연극배우들처럼 완벽한 연기를 몸에 익혀서 나가기를 원하지, 프롬프터에게 의존하면서 어색한 연기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세계적으로 프롬프터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루치아노 파바로티같이 가사 외우기에 게으른 가수들이나 너무 공연이 많아서 헷갈릴 우려가 높은 가수들은 프롬프터를 강력히 원하기도 한다. 또한 무대에 가까운 앞자리에 앉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프롬프터가 가사를 읽는 소리가 다 들리는 경우도 있어서 감상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일부 DVD에서조차 프롬프터 목소리가 들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 또한 베로나의 아레나 야외극장 같은 대형 극장에서는 큰 박스 속에 프롬프터가 2, 3인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렇듯 오페라에서 프롬프터란 중요하면서도 없으면 더 좋을 묘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프롬프터가 되기를 목표로 하고 공부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지휘자나 연출가 지망생들이다. 하지만 오페라하우스에서 프롬프터 박스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상상 이상으로 중요한 의상 | 2008.9.20.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음악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페라를 볼 때는 눈을 감고 보는 것이 아닌 것인 만큼,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도 듣는 것 이상으로 오페라 감상의 감동에 무척 큰 부분을 차지한다. 즉 연출의 중요성이나 오페라 무대 디자인의 비중에 대해서는 이미 얘기한 바 있다. 특히 오페라 디자인은 주로 무대 세트 즉 대도구를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다음으로는 소품들 중 소도구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오페라의 시각적 요소 중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바로 의상(衣裳)이다. 오페라에서 의상이라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공연의 감동에 중요한 요소다. 만일 오페라의 세트는 잘 차려져 있는데, 의상이 없다면 관객들의 극중 몰입이 가능할 것인가? 아마 어려울 것이다. 아니 상상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반면 만일 무대 위에 세트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가수들이 의상을 제대로 갖추어 입고 연기를 한다면 관객들은 스토리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즉 의상은 상당히 결정적인 요소인 것이며, 요즘 오페라 공연에서는 세계적으로 점점 더 의상이 중요시되고 있다. 여기에 몇 가지의 예를 들 수 있다. 지금 세계적인 무대 디자인 추세의 하나는 무대 세트를 마치 젠(Zen) 스타일처럼 무척 간결하게 처리하고 대신 의상은 아주 화려하고 세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관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무대 전체보다는 연기하는 두어 사람의 주인공에게 집중되어, 드라마에서 몰입이 더욱 용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연출을 하면 더불어서 엄청난 세트에 들어갈 뻔했던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도 있다. 또 일본 도쿄의 산토리 홀에서 열리는 ‘홀 오페라(hall opera)’ 시리즈처럼 아예 오페라 공연을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콘서트홀에서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때에 무대에 세트는 전혀 없이 한가운데에는 보통 콘서트 때처럼 오케스트라가 위치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앞에 성악가들이 의상과 분장 등만을 제대로 갖추고 나와서 오페라를 공연한다. 이 경우 관객들은 의상과 분장만으로도 상당 정도 극 중으로 빠져들게 되고, 그것은 다년간 이루어진 홀 오페라 공연의 성공으로 입증되었다. 이렇듯이 오페라에서는 상상 이상으로 의상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뛰어난 수많은 의상 디자이너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의상들은 무척이나 섬세하고 또한 아름다워서 또 하나의 예술 분야를 형성하고 있다. 의상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이나 재단, 재봉 등 의상 자체의 제작에 대한 노하우는 물론이고, 역사와 시대를 정확하게 재현하게 위해서 복식사(服飾史), 풍속사, 종교사 등을 연구해야 하고, 극장학, 심리학, 색채학 등을 꿰뚫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여 때로는 시대적 고증에 철저한 의상이 또 때로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의상이 탄생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오페라 의상’이라는 또 하나의 전문적인 창작 분야가 탄생하였다.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오페라 연출가들은 그들과 호흡이 잘 맞는 일류 의상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는 안나 아니라는 할머니와 오랫동안 명콤비를 이루어 왔고, 연출가 로버트 카슨은 마이클 레바인과 연출가 하리 쿠퍼는 라인하르트 하인리히와 많은 오페라를 만들어 왔다. 또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인 프랑스의 크리스찬 라크로와나 일본의 하나에 모리 같은 이들도 오페라에 참여하여 멋진 의상을 선보인바 있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악단의 '자리'였다 | 2008.9.27. 오페라 공연을 보기 위해 오페라하우스에 가서 자리에 앉는다. 아직 막은 올라가지 않았으니, 무대 위에는 커튼만이 드리워져 있다. 그때 관객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대 아래에 있는 커다란 구멍 같은 장소다. 그 속에 악단의 단원들이 앉아 있는 것을 누구나 보았을 것이다. 그것을 ‘오케스트라’라고 부르는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위치해 있는 큰 구멍 같은 장소를 ‘오케스트라 피트’라고 부른다. 하지만 원래 오케스트라라는 것은 악단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오케스트라가 들어 있는 그 장소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가 주로 가는 음악당, 특히 오페라하우스의 구조는 그 자체가 과거 그리스나 로마시대 고대 극장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과거 그리스 시대 야외극장의 모습을 아마 사진이나 광고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산중턱의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에 무대가 있고 그 주위를 반원형(半圓形)으로 된 객석이 스탠드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객석들은 동심원(同心圓)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그 많은 동심원들의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원형(圓形)의 바닥에는 악단이 앉는다. 그 악단이 앉는 원형의 자리를 원래 ‘오케스트라’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스 비극들도 일종의 음악극 형태였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극이 진행될 때에 오케스트라에 앉은 악단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였다. 그리고 시대가 점점 발전함에 따라서 동심원의 객석들은 위로 일어서는 형태가 되어서, 요즘 유럽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볼 수 있는 발코니가 둘러싼 스타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앉던 자리가 지금 오페라하우스의 1층 바닥이 된 셈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유럽에서는 1층 바닥의 좋은 자리를 ‘오케스트라’석이라고 표현하는 극장이 있다. 그러면서 악단은 객석과의 사이에 점점 낮은 벽을 치게 되고, 나아가서 오케스트라 피트라는 자신들만의 박스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높이는 극장에 따라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상반신이 객석에서 다 보이는 경우도 있고, 그들이 아주 아래로 내려가서 지휘자의 머리 정도 외에는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요즘 대부분의 오페라하우스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바닥이 큰엘리베이터처럼 위아래로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의 성격에 따라서 또는 지휘자가 그날 음악을 추구하는 효과에 따라서 오케스트라 피트의 바닥 높이는 올라오기도 하고 깊게 내려 갈 수도 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열리는 독일의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의 경우는 오케스트라가 거의 지하 2, 3층 정도의 깊은 곳에 자리하게 하고 있으며 객석에서는 희미한 불빛 정도만이 새어나올 뿐이다. 이것은 오페라를 감상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움직이는 모습이나 그들이 악보를 보기 위해서 사용하는 보면대 위의 작은 불빛 같은 것들이 관객들이 극중으로 몰입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이 극장을 계획한 작곡가 바그너는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무대 아래에 있는 오케스트라는 전혀 보이지 않고, 관객들은 마치 TV의 화면만을 보듯이 무대에 빨려들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 극장의 경우는 오케스트라가 저 밑에 위치하여, 거기서 올라오는 관현악의 사운드가 무척이나 장중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원조는 오페라 | 2008.10.4. |
우리나라 클래식 공연에서 큰 인기를 차지하며 클래식 공연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것이 오케스트라 콘서트이다. 클래식에는 독창이나 독주도 있고 실내악이나 합창 등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점은 여러 악기가 어우러진 오케스트라가 가장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도 많아서 오케스트라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다.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뉴욕 필하모닉 등의 이름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오케스트라는 좋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심지어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대단히 애호하면서도 오페라를 좋아하거나 오페라를 연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리감 내지는 폄하를 나타내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많은 오케스트라들이 사실은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반주하는 오케스트라들인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우리나라에도 몇 번이나 방문하여 인기를 누렸던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다. 그런데 이 악단이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또 다른 형태란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빈 국립 오페라극장은 과거 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이 지휘봉을 잡았던, 중부 유럽을 대표하는 전통과 권위 있는 오페라하우스다. 그런데 이 극장에서 오페라 연주를 하던 오케스트라가 “오페라가 없을 때 우리들도 무대 위로 올라가서 콘서트를 해보자”라는 취지로 그들만의 연주회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빈 필하모닉의 시작이다. 즉 그들이 오페라를 연주할 때는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라고 불리고, 콘서트를 할 때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것이다. 물론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더 많아서 그들 중 일부만이 빈 필하모닉 연주 때 참여하고 그 이름을 붙일 수 있기는 하지만, 뿌리는 같은 것이며 빈 필하모닉의 시작은 오페라하우스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얼마 전에 내한한 이탈리아의 정상급 악단인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빈과 마찬가지로 원래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가 그들도 체계적인 심포니 콘서트를 하고 싶어서, 다른 법인을 만들어서 오페라가 아닌 콘서트에서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렇듯이 우리가 아는 많은 오케스트라들이 오페라하우스의 오케스트라 박스가 그들의 원산지이다. 오케스트라들이 지금처럼 발전하고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오페라하우스에서의 그들의 훈련과 경험 그리고 흥행에 의한 재정적 자립의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오케스트라는 역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오페라에서 분리될 수 없다. 유럽의 유명 오케스트라들 중에서 오페라하우스와는 처음부터 무관하게 설립되어 발전한 경우는 도리어 예외적인 발생으로 그리 많지 않다. 이런 경우는 베를린 필하모닉이나 런던 심포니 또는 런던 필하모닉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오케스트라들도 발전하면서 도리어 오페라 극장이나 페스티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오페라 연주를 즐겨하는 형국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빈 심포니가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매년 오페라에 참여하고 있으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라이프치히 오페라에서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는 네덜란드 오페라에서 오페라 연주를 자주 하고 있는 것이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하우스는 시스템이다 | 2008.10.11. 오페라하우스라면 많은 사람들이 건물을 떠올릴 것이지만, 흔히 말하는 오페라하우스는 단순히 건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오페라라는 것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 안에 오페라 제작을 위한 인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분이 오페라하우스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그가 다만 건물을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을 한 것이다. 오페라하우스라는 것은 오페라를 제작해서 올릴 수 있는 시설과 기술적인 시스템은 물론이고 인적인 시스템을 늘 가동하고 있는 기관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오페라하우스라는 건물이 서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건물은 더 이상 뉴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최근 지방자치제가 발달하면서 각 단체별로 경쟁하듯이 공연장들을 만들고 있다. 대도시의 경우 거의 한 구청 단위마다 현대식 시설의 공연장을 갖추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런 건물들이 대부분 시설의 어느 수준에 있는 것도 사실인즉 대단한 일이다. 그 많은 극장들이 사실 공연을 위한 시설적인 측면이나 극장의 환경적인 측면에서 유럽의 지방 오페라하우스들보다도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종종 “우리나라 공연장이나 오페라하우스의 시설이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인지?”라고 물어온다. 우리나라의 시설은 세계 정상의 수준이다. 물론 외국에도 새로 지어서 무척 뛰어난 공연장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유럽 오페라하우스들은 오래되고 낡은 건물에서 공연을 만들어 올리고 있다. 극장이 유명한 것은 그 속의 공연이 뛰어나기 때문이지 시설이 좋아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몇몇 극장들에 가보면 낙후된 시설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건물이 좋아서 하버드고 시설이 뛰어나서 서울대학교가 아닌 것과 같다. 뛰어난 극장은 외형보다 그 인적인 인프라를 탄탄하게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오케스트라, 합창단, 그리고 무용단이다. 이 세 가지의 공연단을 자체적으로 상시 가지고 있는 것이 진정한 오페라하우스다. 게다가 무대시설팀, 장치팀, 의상실, 분장팀, 소품제작팀 그리고 기획팀과 홍보팀 등등을 다 자체적으로 운용하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인적인 시스템이 어우러져서 오페라가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런 것을 비로소 오페라하우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오케스트라다. 오케스트라야말로 오페라하우스가 운용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모든 스케줄은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며 오케스트라가 인적인 측면에서 극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또한 구미 대부분의 오페라하우스들에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극장의 음악감독을 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이어서 합창단이 있어야 하며 무용단이 있으면 당연히 좋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제는 몇몇 곳에 오페라하우스라고 이름을 붙인 건물들이 서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을 비롯하여 자체 오케스트라를 보유한 오페라하우스는 하나도 없다. 이런 경우는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사실상의 깡통 오페라하우스다. 합창단이나 무용단 같은 것도 물론 없다. 자체적인 행정팀이나 기획팀은 있지만, 분장 및 의상팀은 상주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공연에서 오케스트라, 합창단, 무용단을 비롯한 전체의 팀을 외부에서 데려와야 한다. 그러니 예산이 더 소요됨은 물론이고, 이 비용은 고스란히 티켓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합창단 | 2008.10.18. 지난번에 오페라하우스는 건물보다는 오페라를 만드는 인적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 바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오케스트라, 무용단, 그리고 합창단 등이라고도 강조하였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오페라하우스의 근간이며 오페라 제작에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합창단에 대해 살펴본다. 유럽의 유수한 오페라하우스들은 자체 합창단을 두고 있다. 그들은 보통 남성과 여성이 거의 같은 수로 구성되며, 작은 곳은 남·여 10·10명 정도에서부터 많으면 30·30명까지 두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의 오페라하우스들은 그들이 흔히 공연하는 작품의 규모에 맞추어서 보통 20·20명 정도가 평균이다. 그들은 당연히 여성은 소프라노에서 알토까지 남성은 테너에서 베이스까지의 혼성 8부 정도가 가능한 시스템이 가동된다. 만일 특별히 규모가 큰 악곡이 있어서 더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다면, 일시적으로 외부에서 충원하거나 다른 합창단의 도움을 받게 된다. 노래를 잘 부르면 솔리스트를 하고 합창단은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 때로는 합창단원으로 몇 년을 노래하다가 잘부르면 그때 솔리스트로 발탁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까지도 보았다. 과거에 그런 사례들이 있기야 했겠지만 요즘 오페라하우스의 시스템으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즉 합창단원은 처음부터 평생 동안 그 오페라 극장에서 합창단원으로 일하기 위한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이 요즘의 일이다. 물론 선발 과정은 엄격한 오디션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음대에서 전공한 사람들 중에서도 실력을 갖추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즉 솔리스트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서의 합창단원이 아니라 평생 동안 그 극장을 위해서 헌신할 예술가를 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원자들도 꼭 솔리스트들보다도 노래를 못해서만이 아니라, 안정된 직장을 위해서 솔리스트의 길을 단념하고 합창단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자면 일단 정단원이 되면 평생 동안 그는 안정된 직장에서 편안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부부 성악가가 모두 합창단원이 된다면 유럽에서는 상당히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특별히 실력이나 목소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정년까지 직장이 보장되는데, 대부분 정년은 65세 정도다. 솔리스트들은 인기와 명예를 얻고 운이 좋으면 더 많은 부를 모으기도 하겠지만, 평생 비행기를 타야하고 호텔과 호텔을 전전하는 힘든 생활을 해야 한다. 오늘은 이 도시 내일은 저 극장을 돌아다니는 오페라 스타들의 생활은 과거의 유랑극단 단원을 연상시킬 정도다. 그들은 가정의 유지는 물론이고 자녀 교육 등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한 늘 도전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해야 한다. 반면 합창단원이 되면 평생 그 도시에서 존경받는 시민으로서 생활할 수 있으며, 가정생활과 자녀교육 등에도 안정된 환경이 확보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실력 있는 성악가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합창단의 길을 택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합창단원들의 연륜이 쌓여 그 오페라하우스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합창단원들이 너무나 젊은 학생이거나 아니면 갓 졸업한 단원들 일색이어서, 공연의 노련함이나 연주의 깊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좋은 오페라는 결코 한두 명의 유명 솔리스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무용단은 오페라하우스의 주요 부분 | 2008.10.25. 지난번에는 오페라하우스의 합창단에 대해서 얘기하였다. 그런데 합창단만큼이나 오페라하우스에 있어야 하는 중요한 또 다른 팀이 바로 무용단이다. 근현대 오페라에서는 무용이 없는 경우도 많아졌지만, 원래 오페라에는 꼭 무용이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래서 오페라를 공연하기 위해서는 무용단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외국에서는 무용단이라고 하지 않고 전통적으로 발레단이라고 부르는데, 다만 ‘발레(ballet)’라고 표현하여도 ‘발레단’을 뜻하는 것이다. 오페라가 처음 발전하던 1600년경 초에 이미 유럽에서는 발레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이미 발레가 모든 무용을 대표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오페라의 무용은 당연히 발레와 동의어였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무용 역시 현대무용이 등장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이 거듭 되었고 여러 가지 형태의 무용들이 오페라에 등장하게 되었다. 즉 우리나라 창작 오페라의 경우는 한국 무용이 들어가는 것이 거의 당연한 일이 되었으며, 유럽의 오페라에서도 각 나라의 민속 무용, 현대 무용, 심지어는 아크로바트와 서커스까지도 등장한다. 각 나라의 전통적인 무용을 오페라에 삽입하는 일들도 많다. 푸치니의 <투란도트>에서 중국의 전통 무용을, <나비부인>에서 일본의 전통 무용을 넣는 정도는 이제는 특별한 일도 아닌 것이 되었다. 심지어 베르디의 <아이다>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여인> 같은 오페라에 일본 무용을 넣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속의 무용은 전통적으로 발레라고 부르는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이며, 오페라의 무용단 역시 발레단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발레단들 중에 볼쇼이 발레단이나 로열 발레단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원래 볼쇼이 발레단이나 로열 발레단이 별도로 독립되어 있는 단체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독립된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은 애당초에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 공연 중의 발레를 공연하기 위한 한 파트였던 것이다. 즉 볼쇼이 발레단은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의 발레팀을 말하는 것이고, 로열 발레단이라는 것은 런던 코벤트 가든에 있는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발레팀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 발레팀이 유명해지고 그들이 따로 공연을 자주 가지게 되면서 별도의 이름으로도 불리게 된 것이지만, 원래는 모두 오페라하우스 안에 소속된 팀들인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나 몬테카를로 발레단 등도 같은 이름의 오페라하우스 속의 단체들이다. 이렇듯이 많은 오페라 작품 속에는 작곡을 할 때부터 발레 장면이 삽입되게 된다. 그 부분에서는 발레팀들이 나와서 뛰어난 기량과 예술성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의 <개선 장면> 중의 발레 장면이나 비제의 <카르멘> 중의 <집시의 노래> 중에 나오는 발레 장면 등은 대표적인 오페라의 발레장면들이다. 그 외에도 바그너의 <탄호이저> 중의 <바카날레(바커스의 향연)>,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 중의 <시간의 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의 <집시의 춤>, 구노의 <파우스트> 중의 <발푸르기스의 밤> 등이 오페라 속의 명 발레 장면들이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분장, 오페라 속 또 하나의 예술 2008.11.01. 오페라 공연을 위해서는 아주 많은 분야의 협조가 필요하며 그 하나하나는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공연의 성공을 위해서 결정적인 것의 하나가 분장이라는 분야다. 오페라에서 분장은 관객들이 극중으로 몰입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분장을 하며 가수들이 직접 얼굴을 만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전문가들을 분장사라고 부른다. 오페라 프로그램이나 공연의 DVD 등을 보면 가수나 지휘자 등의 연주가나 연주 단체 그리고 그 다음으로 스태프들의 이름이 활자로 나열된다. 즉 연출가를 필두로 무대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조명 디자이너 그리고 안무가 등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이름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 분장사이다. 그런 만큼 분장사는 그야말로 이름도 없이 무대 뒤에서 묵묵히 공연을 위해서 애쓰는 사람인 것이다. 분장사는 당연히 분장을 위한 모든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분장을 잘하거나 솜씨가 좋다고 하여 훌륭한 오페라 분장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 누구 못지않게 작품에 대해서 많은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한다. 즉 그 오페라가 어떤 시대의 것이며 어떤 나라의 것인지는 물론이고, 문화적 환경을 알고 있어야만 제대로 된 분장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 자체의 공부나 배경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그 시대의 사회사, 문화사 그리고 풍속사에 대해서도 식견이 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생상의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를 공연한다면 무려 3천년 전, 정확히 기원전 1150년경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방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었으며 여인들은 어떤 화장을 하고 있었는지 게다가 여염집 여인과 무희들은 화장이 어떻게 달랐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델릴라로 나오는 여주인공은 펠리시테인으로서 그들이 과연 동양계인지 아니면 블랙아프리카계인지 아니면 인도유러피언인지도 알아야 한다.(요즘 델릴라는 검은 피부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그런 자료를 얻는다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장사는 그 시대의 얼굴을 재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베르디의 <아이다> 같은 작품이라면 ‘파라오의 시대’이므로 이집트의 고대사를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푸치니의 <투란도트>라면 ‘전설의 시대’로 명시되어 있으므로, 중국 고대사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력의 범위도 시험받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마이어베어의 <아프리카의 여인>은 마다가스카르, 비제의 <진주조개잡이>는 스리랑카, 베르디의 <운명의 힘>은 잉카인들의 얼굴을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같은 작품은 프롤로그와 1막 사이에 무려 25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모든 출연진들의 분장을 그에 맞게 변환시켜야 한다. 푸치니의 <나비부인>에서는 1막과 2막 사이에 3년의 세월이 있을 뿐 아니라, 2막에서는 기다림의 수심으로 지친 여인을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분장사는 연출가가 어떤 설정을 하는지,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가 어떤 콘셉트로 무대를 꾸미는지도 알고 그들과 면밀한 협력이 있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조명 디자이너와 협조하여 어떤 조명하에서 얼굴이 어떻게 보이게 되는지도 미리 예측하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공연 내내 나가고 들어오는 가수와 출연자들의 얼굴을 체크하여야 하고 막간마다 분장을 다시 바꾸는 등 쉬지도 못하며 정작 공연을 볼 수도 없는 것이 분장사이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2008.11.15.
오페라의 막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오페라는 단막 오페라부터 5막으로 된 그랜드 오페라까지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 중에서 간혹 '막(幕)'이 아니라 '부(部)'라는 이름을 붙인 오페라도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작곡가가 악보상에 붙인 대로 따르는 것이므로, 막(act)과 부(part)의 의미상의 차이를 둘 필요는 없다. 혹시 부를 막이라고 부른다고 하여도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막 대신에 부를 붙인 경우에는 부에 부제(副題)를 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베르디의 <나부코>나 <일 트로바토레> 같은 것들이 막 대신에 부라고 붙여진 경우다. 모두 부제를 달고 있는데, <나부코>는 제1부 ‘예루살렘’, 제1부 ‘배신자’, 제3부 ‘예언’, 제4부 ‘우상파괴’, 이런 식으로 내용을 대변하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일 트로바토레> 역시 제1부 ‘결투’, 제2부 ‘집시’, 제3부 ‘집시의 아들’, 제4부 ‘처형’이라는 부제가 붙여져 있다. 간혹 막도 부도 아니고 붙여진 또 다른 이름으로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볼 수 있다. ‘프롤로그(prologue)’는 이탈리아 말로는 프롤로고(prologo)라고 하는데, 서막(序幕)이라는 우리나라의 번역처럼 막 앞에 붙어 있는 경우다. 오페라의 유명한 프롤로그는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다. 이 오페라는 단막(單幕) 오페라로 통칭 불리지만, 사실은 본막(本幕) 앞에 프롤로그라는 간단한 막이 붙어 있다. 막이 아직 올라가기 전에 무대에 커튼이 내려진 채로 오페라 출연자 중의 한 사람인 토니오라는 인물이 커튼 사이로 나온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 “여러분, 지금부터 막이 올라갈 것입니다. 이 극에서는 광대들이 나와서 여러분들을 즐겁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여러분들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들도 심장이 있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들입니다. 광대의 두꺼운 화장 뒤에 숨어 있는 그들의 진짜 애환과 슬픔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유명한 <프롤로그의 노래>이다. 그리고 막이 올라가는 것이다. 이런 것은 막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므로 프롤로그라고 부르게 된다. 반면 제대로 된 막인데도 제1막이라고 붙이지 않고 프롤로그라고 명명한 경우도 있다.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나 <아틸라> 같은 오페라에서는 첫 막에 프롤로그라고 이름 붙였다. 그것은 내용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아틸라>는 훈 족(族)과 로마 군대 사이의 전투를 그린 것인데, 프롤로그에서는 아틸라가 지휘하는 훈 족의 군대가 북부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이탈리아 군사들을 포로로 잡는 등의 장면이 나온다. 즉 실제 훈 족의 지도자 아틸라와 로마 군대의 사령관인 에치우스가 이 오페라의 핵심이 되는 전투를 벌이기 전의 배경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1막 대신에 프롤로그라고 붙인 것이다. <시몬 보카네그라>의 경우는 보다 명확하다. 제노바의 총독 시몬 보카네그라의 비극을 다룬 이 작품에서 처음의 프롤로그는 드라마가 시작되기 25년 전의 이야기, 즉 보카네그라가 총독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래서 25년 후의 뒷이야기와 구별하기 위해 프롤로그라고 명명한 것이다.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는 세 개의 옴니버스 식 이야기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프롤로그로 펼쳐지며 이어 3개의 러브스토리가 각각 1,2,3막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치 결론처럼 에필로그가 붙으니, 이렇게 '에필로그(epilogue)'가 위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탈리아 어로는 ‘에필로고(epilogo)’라고 부른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장이 바뀔 때는 막이 내려오지 않는다 | 2008.11.22. 오페라에서는 막(幕) 다음으로는 장(場)이라는 구분이 나온다. 장은 막 안에서 각 장면을 분할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국어시간에 배운 것을 떠올려보자. 막의 구분은 이름 그대로 막, 즉 커튼이 내려오고, 장의 구분은 암전(暗轉)으로 한다고 배웠을 것이다. 옳은 말이다. 굳이암전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지만, 최소한 장이 바뀔 때는 막이 내려와서는 안 된다. 즉 커튼이 내려오면 막이 바뀌는 것이며, 커튼이 내려오지 않으면 막이 아니라 장이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오페라 공연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간혹 우리나라 오페라 공연에서 장과 장이 바뀔 때 무대 변환이 어렵다는 이유로 막을 내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것은 원작 오페라의 정신과 작곡가나 대본가가 의도한 의미를 심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무대 변환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막을 내려서는 안 된다. 왜 그럴까? 무대 변환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장 전환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장의 구분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장면 변환이 어려워 보인다고 하더라도 연출가는 결코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면 안 된다. 대신에 그것을 자신의 아이디어와 솜씨를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자주 막이 내려오면 관객들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막이 내려온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객석의 불이 켜지고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므로 막을 내려놓고 관객들을 좌석에 그냥 앉혀 놓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다. 일단 막을 내렸으면 객석의 불을 켜고 관객들이 자유롭게 로비로 나갈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만일 원작에는 막으로 구분이 되어 있어도 어떤 이유에서 끊지 않고 이어서 공연을 계속하고 싶다면, 이 경우에도 막을 내릴 것이 아니라 장 변환의 수준에서 장면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암전한 상태에서 변환시켜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장면 변환은 극의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작곡가들 중에는 장이 바뀔 때 ‘장면변환음악’이라는 것을 삽입하여 연주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장면이 변환되는 것을 일부러 관객들에게 노출시키면서, 그 동안에 장면변환을 위해 작곡된 음악이 연주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대부분이 관현악곡으로서 마치 간주곡(間奏曲)과 흡사한 형태로 여겨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에는 요소요소에 장면변환 음악을 넣어서 장의 변환이 멋지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획해 놓고 있다. 즉 4부작 '니벨룽의 반지'의 제1부에 해당하는 '라인의 황금'은 하나의 막으로 이루어진 단막(單幕) 오페라이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네 곳의 다른 장소가 이어 나오게 되어 있다. 그것도 완전히 다른 장소로서 무대를 다 바꾸어야 가능한 장소들이다. 즉 제1장은 강물속이며, 제2장은 지상(地上)이고, 제3장은 지하(地下)세계이며, 제4장은 다시 지상이다. 이렇게 물속과 땅위와 땅속이 번갈아가며 나오게 된다. 아무리 잘해도 빨리 변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바그너는 장과 장 사이에 장면변환 음악을 넣어서, 그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무대를 바꿀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그런 만큼 장과 장 사이에서는 장면변환을 노출시키는 것도 하나의 공연이며 예술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장면변환 음악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바그너의 '파르지팔'일 것이며 '로엔그린'에도 그런 형태의 음악이 나온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의 시작은 '서곡' | 2008.11.29. 오페라 공연을 보면 막이 오르기 전에 보통 오케스트라만 곡 하나를 연주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지휘자는 열정적으로 지휘를 하고 오케스트라는 멋들어진 연주를 한다. 하지만 이때는 막이 올라가지 않고, 그 곡이 끝나면 비로소 막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막이 올라가기 전에 연주되는 관현악곡을 서곡(序曲)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오페라에는 서곡이 있다. 물론 없는 경우도 있고, 서곡이라기보다는 다만 ‘서주(序奏)’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정도의 몇 소절의 짧은 음악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오페라의 드라마시작 전에는 서곡이라는 관현악곡이 연주된다. 모차르트 이전의 바로크 시대 오페라에서는 서곡이 그 오페라의 가장 중요한 관현악이었다. 게다가 많은 경우에 서곡은 그 오페라의 유일한 관현악곡이기도 하였다. 즉 초기 오페라들은 주로 아리아와 레치타티보가 교대로 반복되는 형태가 있었으며, 중간에 드물게 합창이나 중창 같은 것이 간혹 들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오페라 중간에 관현악곡이 연주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고, 서곡은 보통 그 오페라의 유일한 관현악곡이었다. 흔히 서곡은 ‘오버추어(overture)’라고 부르지만, 옛날에는 ‘신포니아(sinfonia)’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신포니아라는 뜻은 오페라에서 연주되는 관현악곡이라는 뜻인데, 주로 시작 전에 연주되는 단 하나의 곡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곡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프랑스나 영국등에서는 신포니아란 이탈리아식 말보다는 보다는 '심포니(symphony)'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심포니는 나중에 독립된 관현악곡 즉 ‘교향곡(交響曲)’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향곡이라고 부르는 심포니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그것도 오페라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서곡이라는 말로는 여전히 오버추어를 많이 사용하지만, 베르디의 오페라 중에서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 서곡이나 '운명의 힘' 서곡 같은 곡들은 신포니아란 이름을 붙이고 있다. 서곡은 그 오페라를 상징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의미상으로도 중요하고, 형식적으로도 오페라에서 가장 비중 있는 곡의 하나다. 특히 작곡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관현악곡을 만드는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곡이며 첫 인상을 좌우하는 곡이기 때문에 서곡을 작곡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곤 하였다. 또한 서곡은 그 오페라의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서곡은 그 오페라 중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주제나 동기들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서곡은 오페라에서 가장 멋진 곡이 되는 경우가 많고, 더불어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독립되어 따로 연주되는 경우도 흔하다. 베르디의 위의 두 서곡은 무척 유명하며, 그의 작품 중에서는 '나부코'나 '루이자 밀러' 등의 서곡이 잘 알려져 있다. 그 외에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 서곡이 아주 유명하고, 벨리니의 '노르마' 서곡,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나 '윌리엄 텔' 서곡도 잘 알려져 있다. 독일 쪽에서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나 '돈 조반니' 서곡, 베버의 '마탄의 사수' 서곡, 바그너의 '리엔치'나 '탄호이저' 서곡 등도 명곡이다. 베토벤의 경우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오페라 '피델리오'의 서곡에 신경을 많이 써서, 네 가지나 되는 서곡을 남기기도 하였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전주곡은 막의 내용을 미리 알려준다 | 2008.12.6. 오페라가 시작하기 전에는 관현악곡이 연주되는데, 그것이 서곡이라고 이미 얘기했었다. 하지만 어떤 곡에는 ‘서곡(序曲)’이 아니라 ‘전주곡(前奏曲)’이라는 곡으로 시작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즉 비제의 '카르멘' 같은 오페라에서는 막이 올라가기 전에 서곡이 아닌 전주곡이 연주되는 것이다. '카르멘'의 제1막 전주곡은 매우 널리 알려진 곡이다. 얼핏 보면 서곡과 전주곡이 비슷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서곡은 오페라 전체를 수식하는 곡이지만, 전주곡은 다음에 나오는 하나의 막만을 수식하는 것이다. 즉 서곡은 오페라 전체의 서곡이 되는 것이며, 전주곡은 막을 대변하는 것이다. 전주곡은 ‘프렐류드(prelude)’라고도 하며 독일에서는 ‘포르슈필(Vorspiel)’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서곡은 오페라 전체를 상징하지만, 전주곡은 다음 막의 내용이나 음악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 오페라에서 서곡은 단 하나일 뿐이지만, 전주곡은 막의 수만큼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즉 전주곡은 각 막 앞에 붙어서 제1막 전주곡, 제2막 전주곡…. 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는다. 하지만 모든 막에 다 전주곡이 붙는 것은 아니고, 각 막에 전주곡이 있을 수도 있고 없어도 그만이다. 그리고 오페라의 처음에 시작하는 서곡이 있을 때는 제1막 전주곡은 없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서곡과 제1막 전주곡은 공존하지 않는다. 원래 오페라에서는 오랫동안 서곡이 그 시작을 장식하였다. 그러다가 전주곡이 보편화된 것은 바그너에 들어서였다. 즉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각 막의 내용을 보다 강렬하고 확실히 전달하며 각 막의 분위기를 미리 잡아주기 위한 장치의 하나로서 전주곡을 보편화시켰다. 바그너의 오페라 중에서 '탄호이저'는 길고 멋진 서곡으로 아주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다음 오페라 작품인 '로엔그린'에서는 서곡을 없애버렸다. 대신에 그는 '로엔그린'에서 전주곡을 만들어 넣었다. 즉 전3막으로 이루어진 '로엔그린'에는 각 막의 앞에 각각 전주곡이 붙어 있는 것이다. 제1막 전주곡은 장대하면서도 아름답고 몽환적이다. 이 곡은 소녀의 환상적인 꿈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광경이 나오는 제1막의 내용을 미리 예고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 제2막의 전주곡은 무척 어두운 분위기의 곡으로서, 제2막에 나오는 음모와 불안의 그림자가 표현된다. 마지막 제3막의 전주곡은 깊은 인상의 다이내믹한 곡이다. 폭발할 것같이 시작되는 장대하고 웅장한 사운드는 이 오페라의 감동적인 결말과 피날레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듯 전주곡은 각 막의 내용과 음악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며, 각 막을 미리 예견 내지는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이 '로엔그린'의 전주곡의 성공으로 바그너는 이후에 나타나는 자신의 악극들, 즉 '트리스탄과 이졸데'나 '니벨룽의 반지' 등의 작품들에서 막마다 전주곡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 즉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서 서곡의 시대는 끝나고, '로엔그린'부터 전주곡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바그너의 전주곡의 활용은 베르디도 받아들여서 그의 유명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제1막 전주곡과 제3막 전주곡이 아주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 제1막 전주곡은 프리마돈나의 사랑을 제3막 전주곡에서는 그녀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의 또다른 보석, 간주곡 | 2008.12.13. 오페라에서는 지금까지 소개했던 ‘서곡’이나 ‘전주곡’ 외에 ‘간주곡(間奏曲)’이라는 것도 볼 수 있다. 서곡이 오페라의 시작 전에 연주되는 관현악곡이며 전주곡은 각 막 앞에 붙는 것이라면, 간주곡은 이름 그대로 중간에 들어가는 것이다. 간주곡은 외국 음악용어로 ‘인터메조(intermezzo)’라고 부른다. 인터메조라는 말은 원래 막간(幕間)이라는 뜻으로서, 음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막과 막 사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메조(mezzo)라는 말은 이탈리아 말로서 절반(折半)이라는 뜻인데, 인터메조란 절반과 절반 사이의 한가운데를 일컫는 말이다. 즉 마치 축구에서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하프타임과 같은 의미다. 영어로는 인터미션(intermission)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터메조란 그 사이에 올라가는 곡이라는 뜻도 되는 것인데, 흔히 그리 길지 않은 관현악곡이 연주된다. 그러나 간주곡은 서곡이나 전주곡과는 달리 꼭 막과 막 사이 또는 장과 장 사이 중 어디에 들어가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즉 비교적 자유로운 곳에 위치하는 것이 간주곡으로서, 막과 막 사이에도 들어가지만 막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기도 한다. 이것은 오직 작곡가가 드라마의 극적인 효과를 더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서곡은 소나타 형식을 가지기도 하는 등 형식적인 면이 보다 강하지만, 간주곡은 형식에서 보다 자유롭기도 하다. 만일 간주곡이 막과 막 사이에 들어갈 경우에는 다음 막의 전주곡과 혼동되기도 쉽다. 하지만 그것은 작곡가가 어떻게 이름을 붙이는가의 차이다. 즉 예를 들어서 제2막 간주곡이나 제3막 전주곡이나 위치만 보아서는 같은 것이지만, 작곡가가 붙인 이름에 따라서 부르게 된다. 만일 작곡가가 제2막의 효과를 배가시키려고 하거나 제2막과 제3막 사이 내용의 이행(移行)에 중심을 둔다면 제2막 간주곡이라고 부를 것이고, 다음에 나올 제3막의 내용을 미리 알리거나 상징한다면 제3막 전주곡이라고 붙이게 될 것이다. 간주곡은 보통 다음에 나올 드라마의 극적인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해 있는 것으로서, 극중 클라이맥스의 바로 앞에 잘 나온다. 보통의 오페라에서는 전곡을 통틀어서 단 하나의 간주곡만을 만들어 넣는 것이 상례다. 그렇게 했을 경우에 극적인 효과도 더 크고 그 곡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역대로 많은 작곡가들이 간주곡을 쓸 때는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간주곡들 중에는 명곡들이 많다. 그런 결과로 간주곡들은 오페라와 상관없이 독립되어서도 콘서트에서 많이 연주되고 있으며, 오페라 자체는 거의 공연되지 않는 곡이라도 간주곡만은 여전히 명곡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지휘자들도 간주곡들만을 모아서 녹음하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남긴 '간주곡집'(인터메지)이라는 음반은 아주 유명하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그리고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 간주곡이 흔히 오페라의 3대 간주곡이라 불린다. 물론 '3대'라는 식의 말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 세 곡의 인기는 대단히 높고 다들 무척 잘 만들어졌고 또한 아름답지 그지없는 명곡 중의 명곡이다. 이 간주곡들은 대부분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걸쳐서 나온 것으로 이 시기에 간주곡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였다. 그 외에도 볼프페라리의 <성모의 보석>, 슈미트의 <노트르담>, 조르다노의 <페도라> 등의 간주곡도 유명하다. 바그너가 <파르지팔> 등에 쓴 이른바 ‘장면전환음악’도 일종의 간주곡이라고 할 수 있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행진곡도 오페라의 중요한 음악이다 | 2008.12.20. 지금까지 살려보았듯이 오페라 속에는 서곡이나 전주곡 또는 간주곡들처럼 관현악곡들이 적지 않게 삽입되어 있다. 그러니 오페라를 다만 성악곡들의 향연이라고만 보는 것은 옳은 것만은 아니다. 오페라에 나오는 관현악곡들 중에서 많은 수가 독립된 관현악곡으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명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오페라가 아닌 일반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도 오페라 속의 관현악곡들이 많이 연주되고 있다. 그런 콘서트들 중에서는 다만 오페라 갈라 콘서트 같은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진지한 콘서트도 많고, 베를린 필하모니 같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에서도 오페라 속의 음악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오페라 관현악들은 주로 서곡, 전주곡, 간주곡, 장면변환 음악 또는 발레 음악이나 오페라 속의 정경을 그린 곡들이 많지만, 그 중에 행진곡이라는 분야도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한다. 오페라에는 좋은 행진곡들이 많다. 행진곡이라면 주로 어떤 음악이 떠오르는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침 조회나 운동회 같은 행사를 할 때면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행진곡들, 시골 아주머니들도 어깨를 들썩이는 그 곡들은 사실 유명한 명곡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행진곡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해병대 군악대장 출신인 존 필립 수자(1854~1932)의 곡들이 많다. 하지만 그 중에는 오페라에서 나오는 곡들도 적지 않게 있기도 하다. 오페라는 그 내용상 행진곡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전쟁이나 종교적인 행사 또는 결혼이나 장례 등이 많이 나오게 되고 또한 스펙터클한 장면이 많이 연출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때마다 작곡가들은 행진곡을 많이 작곡하여 삽입하였다. 그러므로 그 후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유사한 상황에서 오페라 속의 행진곡들을 발췌하여 연주하거나 사용하였던 것이다. 즉 오페라는 행진곡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오페라의 행진곡들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결혼행진곡'일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 어느 곳인가의 결혼식장에서 신혼부부를 위해서 울려 퍼지고 있을 그 곡은 '로엔그린' 속의 결혼식을 위한 곡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피아노나 실내악 합주 등으로 연주되지만 원래는 합창곡으로서, 그 가사가 대단히 감동적이다. 그 외에도 바그너의 '탄호이저'에 나오는 '입당(入堂)행진곡' 역시 행사의 입장용 음악으로서는 최고의 히트작이다. 바그너의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 중의 '신들의 황혼'에 나오는 '장송행진곡' 역시 방송 등에서 많이 나오는 명곡으로, 내용 중 최고의 영웅인 지그프리트가 쓰러진 후에 그의 시신을 운구할 때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베르디의 '아이다'의 화려하고 웅장한 개선장면에 나오는 '개선행진곡' 역시 무척 단순하고 인상적이어서 잘 알려져 있다. 벨리니의 '노르마'에서도 '입장행진곡'이 있어서 극중의 긴장감을 고취시키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오페라들 속에는 앞의 곡들처럼 굳이 제목이 붙어있지 않더라도, 극중의 인물들이나 군중들이 등장하거나 퇴장하는 장면 또는 이동하는 대목에서 많은 행진곡들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아리아 이상 인기 끌기도 하는 합창곡 | 2008.12.27. 이전에 이미 오페라하우스의 합창단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 그렇다면 오페라에서는 많은 합창곡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실제로 오페라에서는 합창의 비중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오페라가 원래 고대 그리스 비극을 모델로 한 것인 만큼 그리스 비극을 살펴보자. 그리스 비극에서도 이미 ‘코로스(choros)’라는 현재의 합창단과 유사한 형태가 있었다. 그들은 주역 배우들의 상황을 설명하는 내레이터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고 배우들의 감정 표현을 돕기도 하였다. 지금 합창단을 ‘코러스(chorus)’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것은 소포클레스가 형태를 확정지은 것으로, 각 비극의 공연에는 15명으로 구성된 코로스가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코로스는 각기 7명으로 된 두 팀에 한 명의 코로스장(長)으로 구성되었다. 1600년 경 피렌체에서 처음 오페라가 시작될 때에는 합창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지 않았으며, 합창이 없는 오페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몬테베르디가 중심이었던 만토바 시대를 거치면서 몬테베르디에 의해서 지금과 같은 합창단이 확립되었다. 당시에는 오페라가 시작되면 신포니아라고 부르던 서곡이 먼저 연주되고 그 뒤를 이어서 아리아와 레치타티보가 교대로 배치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점점 합창과 중창이 비중이 늘어나게 되고, 상대적으로 단순한 독창곡 즉 아리아의 비중은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낭만주의 오페라 시대에 이르러 합창은 그 역할이 매우 높아졌다. 단순히 합창 부분에서 합창을 하는 것만을 벗어나서 합창단의 역할과 비중은 크게 증대되었다. 예를 들어서 벨리니의 <청교도> 같은 오페라에서는 주역들이 아리아를 부를 때면 거의 모든 아리아에서 합창단들이 그 배경으로 참여한다. 즉 과거 개념에서의 단순하고 진정한 독창곡인 아리아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또한 베르디의 <리골레토> 같은 작품에서는 합창단은 합창은 물론이고 무대 뒤에서 여러 가지 음향효과도 내도록 작곡되어 있다. 즉 바람소리나 빗소리까지도 합창단의 몫으로 지시되어 있다. 이렇게 합창단은 오페라에서는 아주 중요한 파트로 자리 잡았다. 오페라 중에서 유명한 합창곡들이 아주 많다. 그러므로 합창곡들은 오페라뿐만 아니라 콘서트 등에서 단독으로도 널리 연주되고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의 <노예들의 합창>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날개를 달고>같은 곡은 아마 오페라의 합창곡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의 하나일 것이다. <일 트로바토레> 중의 <병사들의 합창>, <에르나니> 중의 <음모의 합창>,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의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구노의 <파우스트> 중의 <병사들의 합창>, 베버의 <마탄의 사수> 중의 <사냥꾼의 합창> 등도 유명한 합창곡들이다. 오페라에서는 합창의 형태도 다양하여 베르디의 <리골레토>에서는 여성은 배제된 상태에서 오직 남성 합창만이 사용되고 있고, 푸치니의 <수녀 안젤리카>에서는 반대로 여성 합창만이 나온다. 극중의 효과를 위해서 어린이 합창단도 자주 등장하는데, 비제의 <카르멘> 같은 작품에서는 오직 어린이 합창만이 단독으로 노래하는 부분이 있는 등 어린이 합창의 비중이 높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