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2008.3.1. 매일신문
오페라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말 대신에 노래로 하는 연극"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흔히 본다. 중학생 시절의 음악시간 이후 아무 생각 없이 믿어왔던 이 말이 어쩌면 오페라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방해하고 있는 대표적인 말일지도 모른다.
만일 오페라가 노래로 하는 연극이라면, 오페라의 노래를 모두 가사로 바꾸면 연극이 되고, 연극의 대사에 곡만 붙이면 오페라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대답은 “노!”다. 오페라는 결코 노래로 하는 연극이 아니다. 오페라에는 오페라만이 가지는 규칙과 스타일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오페라를 어렵게 여기거나 왠지 멀게 느끼는 분들도 조금씩 오페라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지난 400년 동안 명맥이 유지되어 온 오페라라는 장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오페라란 멀게만 느껴졌던 장르의 진짜 정체와 그 매력의 근원을 하나씩 찾아가 본다.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오페라는 여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모든 오페라는 여인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었던 단 한번의 사랑에서 버림받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여기서 비극적 결말이란 단순한 실연(失戀)이 아니라, 그 여인으로 하여금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그런 상태, 즉 여주인공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한 여인이 혼신을 다하여 사랑하다가 처절하게 버림받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 이것이 전형적인 오페라의 내용인 것이다. 물론 모든 오페라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18~19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정가극(正歌劇)(비극적인 제재로 된 오페라)들은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오페라의 여자 주인공을 오페라에서는 ‘프리마 돈나(prima donna)’라고 부른다. 무대에서의 첫 번째 여자라는 말인데, 남자를 일컫는 ‘프리모 우오모’란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프리마 돈나가 남성을 사랑할 때, 상대역인 연인은 또한 거의 테너이다. 대부분의 경우 테너들이 무지나 오해, 질투, 바람기, 좁은 아량 등으로 인해 여주인공을 버리고, 오페라의 대단원은 프리마 돈나의 장렬한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다. 순결한 여성에게 접근하여 연애를 하자고 열심히 꾀어 놓고서는, 나중에 그녀를 버려서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남자를 오페라에서는 테너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니 궁극적으로 오페라의 드라마는 “그녀가 죽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과 그녀가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에 대해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스토리”인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부분의 유명 오페라 여주인공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예를 들면 ‘라 트라비아타’ ‘나비부인’ ‘토스카’ ‘라 보엠’ ‘투란도트’ ‘마농 레스코’ ‘노르마’ ‘루치아’ ‘안나 볼레나’ ‘페도라’ 등이 그러하다. 여기 열거된 오페라의 제목들조차도 모두 희생되는 프리마 돈나들의 이름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녀들을 지칭하는 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결론은 결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오페라의 매력은 스토리텔링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과정과 감정을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하는가에 오페라의 진가가 있다.
박종호 (오페라 평론가, 정신과 전문의,
저서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 <불멸의 오페라> 1, 2,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 2 등)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는 죽음의 미학이다"
2008.3.8.
지난주에는 “오페라는 여자들의 이야기다”라는 말을 했다. 여자의 이야기라는 것도 여자가 사랑을 하는 스토리이며, 여자는 사랑에 실패하고 죽는 것으로 끝난다고 말한 바 있다. 정말 프리마돈나들은 다 죽는 것일까? 물론 예외란 있는 것이니 전부 죽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많은 오페라에서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맺는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페라란 원래 비극(悲劇)이다. 비가극(悲歌劇)은 정가극(正歌劇)이라고도 하며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라고 부르는데, 굳이 비가극이라고 하지 않아도 오페라란 단어 안에는 이미 비극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희가극(喜歌劇)일 경우에는 특별히 ‘오페라 부파(opera buffa)’라고 부르는데, 이 경우는 모두 해피엔드다.
어찌되었건 오페라는 비극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비극의 결말은 예로부터 죽음이었으니, 그리스 비극의 시대부터 다르지 않다. 특히 나보다도 더 훌륭한 인물들, 즉 신(神)이나 영웅이나 성녀나 미녀들이 죽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이 결말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비극이야말로 인간의 심성(心性)을 정화(淨化)시킨다”는 말은 비극의 기능을 갈파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2천300년 전에 했던 말이다.
즉 오페라는 우리보다 더 훌륭하고 더 능력있고 더 예쁘고 더 순수한 사람들, 특히 그런 여성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절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다. 즉 오페라는 죽음의 미학(美學)이다. 그런 점에서 오페라는 프리마 돈나들을 죽이기 위한 이야기, 그녀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그려가는 드라마인 것이다.
그래서 많은 오페라에서 여주인공들은 죽는다. 무대 위에서 그녀들이 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 죽는 방법 또한 다양하고 극적이다. 그 중에서도 그녀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즉 많은 프리마 돈나들이 안타깝게도 자살을 택한다.
'라 조콘다' '나비부인' '투란도트'류 등이 자신의 가슴에 스스로 칼을 꽂아 운명을 결정지으며, '리골레토'의 질다도 살인자의 칼에 몸을 던진다. 약으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다. '루이자 밀러' '일 트로바토레' '페도라' '수녀 안젤리카' '아프리카의 여자'의 주인공들은 독약을 마신다. '토스카' '라 왈리' '사포'에서는 절벽에서 몸을 날리며, '노르마'는 불 속에 뛰어든다. '아이다' '안드레아 세니에' '폴리우토'에서는 사형을 당하는 연인과 함께 죽음의 길을 따르기도 한다. 다른 이의 칼에 맞아 인생을 마감하는 여인들로는 '운명의 힘' '오텔로' '군도(群盜)' '팔리아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외투' '카르멘' 등이며, '안나 볼레나'와 '마리아 스투아르다'에서는 단두형(斷頭刑)을 당한다. 또한 미쳐서 죽는 여인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루크레지아 보르자' '햄릿' 등이다. '라 트라비아타'와 '라 보엠'은 결핵으로 죽는데, 이처럼 병으로 죽는 경우는 오페라에서는 도리어 예외적인 경우이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는 생일이 있다"
2008.3.15.
“오페라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예술 장르들은 그 탄생이 지극히 자연 발생적인 것이었으니, 그 기원을 안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즉 우리는 음악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최초의 그림이 무엇인지, 대체 누가 최초의 무용가인지 등등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오페라는 아주 드물게도 그 생일을 알고 있는 몇 되는 않는 예술 장르의 하나다다. 즉 어느 날 사람들이 모여서 “자, 오페라라는 것을 만들어 보자”라고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에 이탈리아의 도시 피렌체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당시는 르네상스 시대의 절정기로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자본 축적과 문화적 수준을 구가하던 도시 국가 피렌체의 전성기이기도 하였다. 피렌체의 베르니오 후작을 중심으로 주로 귀족들과 예술 애호가들로 이루어진 그의 주변 인물들은 당시의 르네상스 정신이 그러하듯이 고대로마와 고대 그리스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고대 로마의 도자기 술병 조각 하나를 발견하거나 고대 그리스의 새로운 문서 하나를 해독하는 것을 최고의 도락(道樂)으로 여겼다. 그들은 비록 아마추어들이었지만 문학, 역사, 지리, 고어(古語), 미술, 음악 등에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문화의 새로운 재현을 목표로 하였고 그것을 위해 모임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모임을 자신들이 모이던 궁전의 큰 방의 이름을 따서 ‘카메라타(camerata)’라고 불렀다. 라틴어로 '방' 또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그리스 문화 중에서도 연극, 특히 그리스 비극(悲劇)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들을 단지 모여서 읽고 연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실제로 무대에 올리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리스 고대극들은 원래 '코러스(chorus)' 즉 합창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였다. 하지만 전해지는 악보(樂譜) 없이 다만 가사(歌詞)만으로 코러스를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으므로, 그들 스스로 작곡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전문적인 작곡가나 시인, 작가들이 관여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그들은 코러스 뿐 아니라 독백 같은 부분들도 단순한 연극이 아닌 음정을 붙여서 부르는 것이 효과적이고 또한 더욱 극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카메라타는 실험적으로 그리스 비극을 직접 만들어보았는데, 이것은 원래 그리스 비극이 아니라 좀 다른 형태가 되었다. 이렇게 돌연변이처럼 나온 것이 바로 오페라다. 시인 오타비오 리누치니에게 고대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리스 비극을 각색하게 하고, 음악가 야코포 페리가 작곡을 하였다. 이래서 역사상 최초의 오페라 '다프네'가 1597년 공연되게 되었다. ‘다프네’의 내용은 대지의 여신이 자신의 딸 다프네가 잘 생긴 아폴로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딸을 월계수로 변신시킨 이야기이다. 하지만 오페라가 갑자기 등장하였다지만,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 당시의 시, 연극, 가면극, 민속극 등과 성가, 마드리갈, 오라토리오, 음유시인의 노래 등 모든 공연예술 요소들의 총화였던 것이다. 하지만 '다프네'의 악보는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다. 대신 1600년에 만들어진 '에우리디체'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다. 박종호 오페라 평론가 | ||||
2008.3.22 |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도 오페라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데, 실상 그들은 오페라를 듣는 것이 아니라, 아리아를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리아만 듣는 것을 오페라를 감상한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아리아’라고 하는 노래는 우리들에게 ‘오페라’ 자체보다도 더 친숙하게 많이 알려져 있는 셈이다. 사실 오페라 하면 많은 이들이 먼저 아리아를 떠올린다. 아리아란 ‘오페라 중 독창으로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라든지 ‘여자의 마음’ 또는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등의 노래다. 요즘은 오페라 공연을 통하지 않더라도 영화나 텔레비전 등의 영향으로 아리아의 제목과 멜로디가 우리 귀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런 아리아를 익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아리아가 나오는 오페라를 아는 것과는 다르다. 사실 아리아의 내용은 오페라 전체의 내용과는 무관하거나 크게 다른 것도 많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든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의 경우 해당 오페라는 당연히 슬픈 비극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 테너 아리아가 나오는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순진하고 착한 젊은 농부를 둘러싼 경쾌하고 즐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그린 희가극(오페라 부파)이다. 게다가 이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슬퍼서 남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이 아니라 “그녀의 눈에 남몰래 눈물이 흐르는 것을 숨어서 보니 이제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음에 틀림없다”라고 말하는 행복한 내용이다. 또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소프라노 아리아는 제목으로만 판단한다면 아마도 효심이 극진한 처녀가 부친을 생각하면서 부르는, 마치 아버지의 생일날 축하곡쯤으로 적합한 노래인 양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TV 광고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이 아리아는 “사랑하는 아버지, 만일 계속 그이와의 결혼을 막으신다면 저는 강물에 뛰어들어 죽고 말 것이에요”라는 협박성 내용이다. 게다가 이 곡이 나오는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라는 오페라는 인간 군상들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그린 오페라인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아리아는 사실 오페라 줄거리와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러니 아리아의 내용은 전체 스토리 진행과는 무관한 것이니, 아리아를 안다고 해서 오페라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리아는 오페라의 전부가 아니다.
한편 주인공이 아리아를 부르는 동안에는 오페라의 극적 진행은 잠시 멈추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리아는 연극에서의 ‘독백’과 다름없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무대 위의 출연자들은 독창자의 아리아를 듣지 못하고 오로지 관객들만 들을 수 있게끔 설정된 것도 많다. 앞서 말한 ‘남몰래 흐르는 눈물’뿐 아니라 베르디의 ‘리골레토’에 나오는 ‘여자의 마음’이나, 푸치니의 ‘투란도트’에 나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같은 것들이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무대 위에서 드라마가 한창 진행되다가 주인공이 감정을 분출시킬 수밖에 없는 절정의 시점에서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아리아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아는 아름답다. 하지만 아리아는 오페라 전체의 내용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박종호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는 이야기를 보러가는 것이 아니다
2008.3.29.
오페라가 공연되는 한 공연장에서 아는 분을 만났다.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로서 오페라와 예술의 후원으로도 유명하신 분이었다. 아는 분이어서 인사를 드렸다. 그 때 비서로 보이는 한 직원이 프로그램을 사가지고 와서 그 분에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분은 프로그램을 읽지 않으신다. 다 알아서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부로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줄거리라도 좀 읽어 보시죠”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그 분 왈 “아니, 결말을 미리 알면 공연이 재미가 없잖소!”
오페라는 결말이 궁금해서 다시 말하자면 스토리를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다. 오페라는 ‘스토리텔링’의 장르가 아니라는 뜻이다. 오페라에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신 많은 분들에게서 “오페라는 이야기가 너무 신파야” 내지는 “오페라의 스토리는 뻔해”라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맞는 말이다. 오페라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이 연재에서 이미 얘기했듯이 오페라는 대부분이 연애물이고, 한 여자가 사랑을 하고 이별하고 죽는 이야기가 대종을 이룬다. 그런데 왜 오페라를 보러 가는가?
오페라는 이야기를 보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이야기는 대부분 다 아는 이야기들이다. 즉 오페라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 아는 이야기를 어떻게 곡으로 썼으며, 어떻게 노래하고 어떻게 연기하는지를 즐기러 가는 것이 오페라인 것이다.
그래서 오페라의 이야기는 일부러 이미 사람들이 잘 아는 이야기를 택한다. 그리하여 오페라의 소재는 주로 신화, 전설, 문학, 역사 등에서 선택되는 것이다.
우리가 판소리 '춘향전' 공연을 보러 갈 때를 생각해보자. 춘향이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판소리 들으러 가려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는 부인에게 남편이 “그 이야기 가르쳐 줄까? 뻔하다구. 나중에 남자가 암행어사 되어서 돌아온다고!”라고 말한다고 하여도, 그 부인이 판소리에 가지 않는 것은 아닌 것이다. 다 아는 '춘향전'이지만, 이번에 나오는 명창이 어떻게 노래하고 표현하는지 음악이나 연기를 들으러 가는 것이다.
오페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더욱 유리할 수도 있다. 이미 이야기를 알기 때문에, 가사 전달이나 스토리텔링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음악적 표현에 더 주력할 수 있는 것이다. 잘 알려진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 같은 이야기는 무려 40여편이나 오페라로 만들어져 있다. 유명한 문학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것도 오페라가 10여편이나 있으며, '베르테르' '햄릿' '오텔로' '예프게니 오네긴' '파우스트' 같은 유명한 문학들은 오페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렇게 오페라는 음악을 듣는 것이다. 대신 줄거리가 단순한 데에 반하여 가사들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오페라의 시어(詩語)들은 대단히 아름다운 운문(韻文)들로서 그 문학적 표현들은 무척 감동적인 것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다 공연 때마다 달라지는 드라마투르기, 연기, 무대 미술, 의상, 분장, 조명, 무용 등을 감상하며, 음악적으로도 오늘은 어떤 가수가 어떻게 노래하는지, 지휘자,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도 모두 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에도 성경 이야기 있다
2008.4.5.
오페라는 원래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려 한 것이라고 이미 얘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기존의 잘 알려진 신화, 전설, 역사, 문학 등을 소재로 삼는다는 것도 말하였다. 유럽 문화의 기저에 깔려 있는 사상에는 그리스, 로마의 인본 정신과 더불어 기독교 사상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만큼 오페라에도 당연히 성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페라에는 의외로 성서를 소재로 한 작품이 적다. 특히 오페라가 발달하던 시절에 함께 발전한 것이 오라토리오나 칸타타와 같은 합창 장르들이다. 오라토리오나 칸타타 등의 타 장르와 비교한다면, 성서를 소재로 한 오페라의 수가 현저히 적다는 것은 더욱 뚜렷해진다. 즉, 오라토리오나 칸타타에서는 성서가 소재로는 물론이고 바로 텍스트로 사용된 예도 아주 많지만, 오페라 중에서 성서를 내용으로 삼은 것은 몇몇 작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오페라는 처음부터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는데, 그리스는 우리가 알듯이 다신교 사회였다. 그러므로 그리스 비극에는 여러 신들이 등장하며 그들은 마치 우리 인간들처럼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 당연히 그들이 사랑을 하고 질투하고 싸움도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사람들의 이야기란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는 유일신의 종교로서, 다신교적인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모두 부정하는 종교다. 첫째 그런 이유로 교황청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자주 나오는 오페라를 멀리했다. 둘째로는 오페라의 세속적인 내용이 교황청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마 교황청은 지난 4백년 동안 오페라가 세속적이라는 이유로 오페라의 융성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보였고, 의식적으로 오페라에 등을 돌려왔다. 대신 교황청은 오라토리오나 칸타타 같은 기독교 사상이 많이 담겨 있는 장르를 좋아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교황님은 오페라를 싫어하셨다. 그런 만큼 오페라하우스들도 교황청을 멀리하였고, 오페라의 성격은 더욱더 비종교적으로 흘렀던 것이다. 그리하여 교황이 있는 로마는 주요 음악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에 있어서만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지는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에 오페라를 대표하는 도시들은, 로마가 아니라 밀라노나 나폴리, 베네치아, 볼로냐, 피렌체 등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성서를 소재로 한 오페라들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생상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를 들 수 있다. 히브리의 젊은 지도자와 그가 사랑한 여인의 이야기는 생상 외에도 라모의 오페라로 남아 있다. 더욱 유명한 소재는 ‘출애굽기’인데, 그것은 로시니의 대작 <모세>로 남겨져 있다. 또한 근대작곡가 쇤베르크도 같은 소재를 <모세와 아론>이라는 오페라로 남겼다. 그 외에도 바빌론의 왕 나부코도노조로의 일화를 다룬 것이 베르디의 <나부코>이며,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이야기는 구노에 의해 <사바의 여왕>이라는 오페라로 탄생했다. 그 외에도 헤롯왕과 왕비의 이야기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와 마스네의 <에로디아드>로 남아있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중창은 오페라 진행의 핵심
2008.4.12.
지난번에는 아리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는데, 이번에는 중창에 대해 알아보자. 오페라에서 한 사람의 가수를 위해 만든 노래가 아리아라면, 중창이란 알다시피 두 사람 이상의 출연자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다. 아리아가 불리는 동안에는 오페라의 진행이 중단된다고 전에 말했었는데, 중창은 이와는 대조적이다. 즉 중창은 아리아와 반대로 극의 진행상 매우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 혼자서 객석을 향하여 독백하는 아리아와 달리 중창은 여럿이서 노래하는 것인 만큼 배역 상호간의 의사전달이 중요하다. 이점부터 아리아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그리고 중창이 불리는 동안 극의 진행은 더욱 발전, 전개되는 것이 보통이다. 즉 아리아가 불릴 때 스토리의 진행이 멈추고 주인공의 감정 호소가 절정에 이르는데 반해, 중창을 통해 극은 더욱 유연하게 흐르면서 출연자 상호간의 유대 협조 담합 흥정 음모 대결 등이 적나라하게 제시된다. 즉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극적인 매력은 중창 속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아는 멜로디를 즐기면서 느긋하게 들어도, 중창만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듣는 것이 드라마의 중요한 줄기를 놓치지 않는 길인 것이다. 물론 유명한 아리아의 선율에 비해 중창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중창도 귀에 익숙해지다 보면, 두 가지 이상의 선율이 멋지게 교차되면서, 아리아 이상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오페라에서는 중창들 중에도 2중창이 가장 흔하다. 2중창이야말로 두 사람의 감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경우가 많아 극적으로도 뛰어나며, 음악도 아름다운 곡이 많다.
흔한 예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는 두 남녀가 처음 만나 축배를 드는 화려한 2중창으로 내용은 더욱 흥미롭다. 알프레도는 사랑의 미덕을 찬양하며 순정을 전하지만, 비올레타는 “사랑은 부질없는 것, 사랑 같은 소릴랑은 말고 술이나 마시며 즐깁시다”라고 노래를 받는다. 음악은 같지만 둘의 가사는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푸치니의 <나비 부인>에서는 첫날밤에 두 사람이 <사랑의 이중창>을 부른다. 미군 장교 핑커톤은 어린 게이샤 초초상을 아내로 맞이했지만 백년해로할 생각은 애당초 없다. 핑커톤이 “조그마한 너를 안으니 꼭 나비 같구나”라고 말하자 초초상은 “미국인들은 나비를 잡아 핀을 찔러 박제를 만든다지요”하면서 자신의 비운을 예견한다. 밤하늘에 퍼지는 말할 수 없이 낭만적인 멜로디이지만 실제 내용에는 이렇듯 암시적이고 복선을 가진 중요한 열쇠들이 숨어 있다.
이렇게 중창에서는 두 감정이 교류되는 경우가 많지만, 서로 상대방의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채 노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두 사람의 멜로디와 화음은 멋지게 조화되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달라서 각자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동상이몽형 중창’이야말로 객석에서 볼 때는 오페라가 주는 매력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의 레오노라와 루나 백작의 2중창이 좋은 예다. 레오노라는 연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백작에게 주기로 하지만, 이미 독약을 마신 상태이다. 레오노라는 죽음으로써 백작에게 복수하는 자신의 분노에 찬 심정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모르는 백작은 독약이 퍼지고 있는 레오노라를 껴안은 채, 그녀와 같은 멜로디로 오늘 밤 그녀를 안을 수 있게 된 남자의 희열을 노래하는 것이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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