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희가극은 비가극의 막간에서 기원 | 2008.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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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 | |
희가극은 비가극의 막간에 탄생했다. 오페라가 귀족적인 예술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 오페라를 본 많은 분들이 자신이 본 오페라는 해피엔딩이며 비극도 아니고 웃겼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 오페라에는 희가극이라는 장르가 따로 있는 것이다. 희가극(喜歌劇)을 ‘오페라 부파(opera buffa)’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이 코너에서 거론해 온 오페라들―이미 설명했듯이―은 모두 ‘비가극’들이다. 즉 그냥 ‘오페라’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비가극(悲歌劇)을 지칭하는 것이요, 희가극만을 특별히 오페라 부파라고 따로 부른다.
오페라에서는 여자 주인공들이 모두 희생되어 목숨을 잃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것은 비가극을 두고 한 말이었다. 희가극과 비교해서 비가극을 부를 때만 가끔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라는 말을 쓸 뿐이다. 오페라 세리아는 비가극이라기보다는 ‘정가극(正歌劇)’이라는 번역이 더 좋다. 즉 광의의 오페라는 오페라 전체를 말하지만, 협의의 오페라는 비가극을 부르는 말인 것이다.
희가극은 웃기는 것이라기보다는 ‘해피엔딩의 오페라’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비극이 아닌 모든 오페라’는 희가극이라고 말해도 좋다. 즉 여주인공이 희생되지도 않고, 남자와 여자는 몇 차례의 반전 끝에 마지막에는 결국 행복하게 결합된다. 그래서 즐겁다. 물론 중간에 웃기는 애드리브나 개그가 있기도 하고 즐거운 노래와 명랑한 춤도 있어, 보는 이들을 미소 짓거나 가끔은 껄껄 웃게 만든다.
그렇다면 비극밖에 없던 오페라 판에 어떻게 희가극이 시작되었을까? 희가극과 비가극이 함께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희가극은 원래의 오페라인 비가극의 부산물(副産物)이었다. 심각한 비극 오페라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항상 막간의 휴식이 있었다. 그리고 휴식시간은 상당히 길었다. 그 때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여흥을 제공하기 위해 막간극(幕間劇)으로 만들어졌던 것이 희가극의 유래이다. 진지한 본공연과는 대조적으로, 기분 전환을 위해 짧고 가벼운 촌극을 막간에 공연했던 것이다. 마치 과거 우리나라 극장이나 디너쇼에서, 노래나 신파극 사이에 짧은 만담이나 콩트를 보여준 것과 비슷하다. 이 막간극을 ‘인터메조(intermezzo)’라고 불렀는데, 원래 인터메조란 말은 축구로 치면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중간 휴식을 일컫는 말이다.
이 막간극이 서서히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 때에도 오페라 공연 중에는 실컷 졸다가 재미있는 인터메조에서 더 흥이 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공연 사이의 심심풀이에 불과했던 것이 점차 발전하였고, 결국엔 이것만 독립되어서 공연되었으니 이것이 오페라 부파인 것이다. 요즘에 인터메조는 오페라의 막과 막 사이의 관현악곡을 일컫는 ‘간주곡(間奏曲)’이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오페라 부파는 주로 귀족들에 대한 풍자로 그 생명력을 유지했다. 마치 우리의 마당놀이처럼 그들의 위선과 부도덕, 속물근성 등을 비꼬았다. 가끔은 귀족들이 참기 힘들 정도의 위험한 수위로 비꼰 것도 있으니, 오페라 부파야말로 공연예술 중에서, 또한 클래식 음악 중에서 가장 반귀족(反貴族)적인 분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희가극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많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희가극은 정형화된 형식이 있다 | 2008.5.3. |
이탈리아의 희가극인 ‘오페라 부파(opera buffa)’는 비가극과는 내용에서 다를 뿐 아니라, 그 구조나 진행방식에 있어서도 몇 가지의 규칙이 있다. 오페라 부파는 한두 사람의 배역에 의존하기보다는 다수의 가수들이 비슷한 비중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앙상블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오페라를 ‘앙상블 오페라’라고 한다.
반면 지금까지 거론되었던 많은 비가극들, 예를 들면 '라 트라비아타' '노르마' '나비부인' 같은 것처럼, 한 사람의 여자주인공 즉 프리마돈나의 비중이 아주 높고 그녀의 존재가 공연의 성패를 좌우하는 작품을 ‘프리마돈나 오페라’라고 한다. 즉 비가극 다시 말하자면 ‘오페라 세리아’들은 프리마돈나 오페라가 많고, 희가극, 다시 말하자면 ‘오페라 부파’들은 대부분이 앙상블 오페라인 것이다.
그리고 오페라 부파들은 구성에서 하나의 정형이 있다. 즉 18세기의 오페라 부파는 통상 6명의 주역(때로 8명까지도 가능하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두 커플 정도의 남녀와 그들을 조정하는 역할들로 구성된다. 즉 두 커플만이 사랑을 한다. 마치 우리의 '춘향전'과 흡사하다. 이도령과 춘향의 커플이 있고 옆에 또 다른 커플인 방자와 향단의 커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커플의 사랑을 도와주거나 혹은 방해하는 두어명의 남녀가 또 있다. 즉 변사또와 월매 같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춘향전'처럼 6인의 주역들이 형성된다.
이런 스타일은 나폴리의 유명한 오페라 대본가인 메타스타시오가 확립하였다. 그래서 이런 스타일의 고전적인 오페라 부파를 특히 ‘메타스타시오 오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인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다.
이 오페라 부파를 보면 먼저 두쌍의 남녀 커플이 나온다. 즉 피오르딜리지(소프라노)와 굴리엘모(바리톤) 커플과 도라벨라(메조소프라노)와 페란도(테너) 커플이다. 이 두쌍의 웃기는 갈등에 두명의 주변인물들이 추가되는데, 그들은 하녀 데스피나(소프라노)와 옆집에 사는 철학자 돈 알폰소이다. 이렇게 단 6명이 기가 막힌 코미디를 펼치니, 이런 것이 전형적인 메타스타시오 오페라다.
이런 형태는 발전되어 나중에 푸치니의 '라 보엠' 같은 근대작품에서도 그 흔적이 보인다. 즉 여러 사람이 나오는 오페라이지만, 미미(소프라노)와 로돌포(테너) 커플과 마르첼로(바리톤)와 무제타(소프라노) 커플이 중심을 이룬다. 그 주변에 그들의 친구들이 나오지만, 그들은 다만 두쌍의 사랑 이야기에 들러리를 설 뿐 더 이상의 연애사건을 만들지는 않는 것이다. 이렇게 두쌍의 사랑이 동시에 진행되는 메타스타시오 스타일의 영향은 우리나라의 TV 드라마 같은 데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특히 '코지 판 투테'의 돈 알폰소와 같이 극의 진행을 주도하고 설명하는 소위 내레이터 같은 역할의 남자가 등장하는데, 이 역할은 대부분 베이스가 맡는다. 이들은 보통 베이스와는 달리 특별히 어려운 기교들을 구사하고 코미디언을 능가하는 웃기는 연기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특히 이런 베이스들은 ‘바소 부포(basso buffo)’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바소 부포의 역할들로는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의 둘카마라,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의 바르톨로, 로시니의 '신데렐라(라 체네렌톨라)'의 돈 마니피코 등이 있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희가극은 전문 가수가 따로 있다 | 200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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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가극, 즉 오페라 부파(opera buffa)에 나오는 베이스 가수들은 특별히 바소 부포(basso buffo)라고 부른다고 전편에서 말하였다. 바소 부포들은 오페라에서도 상당히 어렵고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들은 아주 빠른 트릴과 패시지 등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보통 희극 배우들 뺨치는 연기력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보통 오페라의 베이스들이라고 누구나 바소 부포를 잘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따로 높은 수준의 훈련을 받는다. 대표적인 곳이 이탈리아 중동부에 있는 해안도시 페사로다. 페사로에는 유명한 로시니 음악원이라는 음악학교가 있는데, 이곳은 주로 오페라 부파를 위한 전문 가수들을 훈련시키기로 유명하다.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는 페사로에서 태어난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이다. 그는 당대에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사가 될 정도로 크게 성공했던 인물이다. 그는 비가극과 희가극의 양 분야에서 모두 많은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했던 것은 그의 희가극, 즉 오페라 부파들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로시니의 희가극들로는 '세빌리야의 이발사'를 비롯하여 '라 체네렌톨라(신데렐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이탈리아의 터키인' '랭스 여행' 등이 있다.
그런데 로시니의 오페라 부파에는 특별히 어렵고 다양한 기교를 요구하는 역할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소 부포의 역할들이다. 즉 그의 '세빌리야의 이발사'의 돈 바질리오, '라 체네렌톨라'의 돈 마니피코,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무스타파, '이탈리아의 터키인'의 태수 셀림 등이 그런 역할들이다. 그런 바소 부포는 특별한 기교와 연기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로시니 음악원에서는 이런 바소 부포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자기 고향의 자랑스러운 음악가인 로시니의 이름을 붙인 로시니 음악원에서는 이런 가수들을 배출하고, 페사로에서 매년 여름에 벌어지는 로시니 페스티벌에서는 그들이 세계의 오페라 팬들과 비평가 앞에서 선을 보이게 된다. 로시니 페스티벌은 오직 로시니의 오페라들만을 공연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므로 이곳은 오페라 부파의 공연과 가수들의 배출에 특별히 권위가 있다. 이렇게 오직 오페라 부파만을 부르는 전문적인 바소 부포들로는 과거에 파올로 몬타르솔로, 세스토 브루스칸티니, 엔초 다라 등의 대가들이 있었으며, 최근 현역으로는 시모네 알라이모나 알렉산드로 코르벨리 등이 유명하다.
또한 오페라 부파, 특히 로시니 오페라의 특징 중의 하나는 여자 주인공에 소프라노가 아닌 메조소프라노 역이 많다는 것이다. 즉 로시니 오페라 부파들은 처음부터 메조소프라노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들이 많다. '세빌리야의 이발사' '라 체네렌톨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등이 모두 그러하다. 메조소프라노들 중에서도 희극의 역할들을 전문적으로 부르는 가수들이 있었으니, 유명한 메조소프라노인 체칠리아 바르톨리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한동안은 희가극을 부르는 가수들과 비가극을 부르는 가수들이 아예 나뉘어 있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게 희가극은 비가극과는 별로도 다른 극장, 다른 가수들에 의해 또 다른 세계를 만들면서 발전해 왔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목소리 종류에 따라 역할 나뉜다 | 2008.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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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죽어가는 딸을 끌어안고 "저주구나"라며 울부짖는 리골레토. | |
우리는 성악가들을 목소리에 따라서 나눈다. 이것은 오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페라의 경우에는 목소리에 따라 각기 맡는 역할도 다르고 성격도 달라지기 때문에, 목소리의 종류를 잘 알고 있는 것이 감상하기에 좋다.
흔히 우리들은 여자의 목소리는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그리고 알토로 나눈다. 남자의 경우는 역시 테너, 바리톤, 그리고 베이스로 나눈다. 아마 이런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오페라에서도 6성부로 설명한다.
이렇게 목소리에 따라 나누는 것을 성부(聲部)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성부는 왜 필요한가? 먼저 여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여자주인공 즉 프리마 돈나는 소프라노(soprano)가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면 그녀의 주변 인물 즉 그녀의 친구나 라이벌은 메조소프라노(mezzo-soprano)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의 뚜렷한 대비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같은 경우에는 두 명의 자매가 나오는데, 이럴 경우 언니인 피오르딜리지는 소프라노가 부르고, 동생인 도라벨라는 메조소프라노가 부른다. 이렇게 해야 두 자매가 2중창을 부를 때, 멋진 화음이 가능한 것이다.
반면 알토(alto)란 성부는 간혹 콘트랄토(contralto)라고도 불리는데, 결국은 같은 말이다. 사실 알토는 보통 오페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게다가 설혹 알토 성부의 배역이 있다손 하더라도, 요즘은 주로 메조소프라노가 이 성부를 맡는 경우가 많다. 오페라계에서 알토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서, 그들의 영역은 대부분 메조소프라노에게 빼앗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토는 주로 노파, 점쟁이, 무녀, 이런 역할들이 많다.
남자는 어떠한가?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주인공은 대부분 테너(tenor)가 맡는다. 사랑에 빠지는 남자는 분명 테너에게 어울린다. 테너들은 소프라노와 커플이 되어서 아름다운 사랑의 2중창들을 남발한다.
반면 바리톤(baritone)은 테너의 라이벌로 나오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는 소프라노를 사이에 두고 테너와 일대격전을 벌인다.
그러던 바리톤이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의 목소리가 되었다. 그것은 모두 이탈리아의 가장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인 베르디 때문이다. 그건 오페라의 사랑이라는 것은 모두 남녀의 수평적인 사랑이었다. 여기에 베르디가 아버지라는 존재를 만들어 넣었다. 그 아버지는 남자의 아버지도 있으나 여자의 아버지인 경우기 대부분이다. 아버지들은 남녀의 사랑에 간섭을 하는데, 대부분 훼방을 놓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악역도 많다. 베르디의 '리골레토' '나부코' '아이다' '시몬 보카네그라' 등에 나오는 바리톤들은 아버지, 그것도 모두들 프리마 돈나 즉 소프라노들의 아버지인 것이다.
베르디 이후로는 바리톤의 그늘에 가렸지만, 그 이전까지는 원래 베이스(basso)가 더 중요한 배역이었다. 즉 남성 성부를 둘로 나눌 때는 무조건 테너와 베이스였다. 그런 만큼 지금 바리톤이 누리는 이상의 영광과 혜택을 과거에는 베이스가 누렸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베이스에서 파생되어 바리톤이라는 목소리가 자리 잡게 되었다. 베이스는 역시 자신 고유의 역할들을 맡는다. 즉 왕, 승려, 목사, 가정교사… 이런 역할들이 베이스의 단골 메뉴였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의 꽃 소프라노 | 2008.5.24. |
오페라의 여자주인공을 프리마돈나(prima donna)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미 얘기하였다. 바로 그녀들이 오페라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 말했던 목소리의 성부(聲部)에 따른다면, 프리마돈나들은 대부분 소프라노다. 그러니 (물론 예외도 있지만) 오페라의 주인공은 소프라노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프라노는 여성의 대표적인 성부이면서 가장 흔한 성부이기도 하다. 주변에 성악을 공부하거나 전공하는 여성이 있으면 물어보라. 아마 90퍼센트 이상이 소프라노이고, 드물게 메조소프라노가 있으며, 진짜 알토는 클래식 팬이라도 평생 만나는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양적으로도 많은 소프라노이니, 다만 소프라노라고 말하는 것은 그녀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야구선수라고 하면 투수인지 포수인지조차 모르는 것과 같다. 야구에도 투수가 있고 전문적인 타자가 있으며 수비수도 다양한 포지션이 나뉘어져 있지 않은가? 그런 것처럼 소프라노의 세계도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고, 각 포지션마다 각자의 역할과 나름대로의 매력이 각각 있는 것이다. 크게 소프라노는 세 분야로 나뉜다. 먼저 ‘레제로(leggiero) 소프라노’다. 이것은 소프라노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소리를 가진 사람들로서, 마치 솜털이 떠다니듯이 가벼운 음성으로 노래한다. 가볍기 때문에 빠르고 날카로우며 기민한 기교의 구사가 쉬운 장점이 있다. 조수미, 신영옥 같은 분들이 이 영역에 해당하고, 세계적으로는 조안 서덜랜드, 에디타 그루베로바, 나탈리 드세이 등이 대표적인 소프라노들이다. 이 영역이 맡는 대표적인 배역은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루치아, <리골레토>의 질다 등이다. 다음으로는 ‘리릭(lyric) 소프라노’다. 서정적인 소프라노란 뜻인데, 보다 우아하고 품격 있는 빠른 기교보다는 길게 이어지는 가락을 부르기에 적합하다. 홍혜경, 레나타 테발디, 미렐라 프레니 등이 대표적인 가수들이다.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부인, <라 보엠>의 미미, <오텔로>의 데스데모나 등이 이 영역의 여가수들이 잘 부르는 배역이다. 소프라노 중에서 가장 무거운 음성의 질감을 가진 것이 ‘드라마틱(dramatic) 소프라노’다. 그녀들은 가장 강렬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격정적이거나 압도적이고 극적인 표현을 잘 할 수 있다. 레온타인 프라이스, 에바 마르톤 등이 대표적인 드라마틱 소프라노들이다. <아이다>의 아이다, <나비부인>의 초초상, <일 트로바토레>의 레오노라 등이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유명한 배역들이며, 바그너의 오페라들 중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드라마틱 소프라노에게 적합하다. 더 들어가면 리릭 소프라노의 경우는 다시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가벼운 순서대로 리릭 레제로, 리릭, 그리고 스핀토(spinto)로 나눌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레제로, 리릭 레제로, 리릭, 스핀토, 드라마틱의 다섯 단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리릭 레제로는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스핀토는 <토스카>의 토스카 같은 배역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배역에 따른 분류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니, 리릭 소프라노가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배역을 불러도, 그 스타일은 달라지지만 문제가 될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다섯 영역을 마음대로 다 부를 수 있는 사람도 드물게 있었으니, 마리아 칼라스 같은 사람이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메조소프라노의 역할 | 2008.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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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오페라 '아이다'의 한 장면. | |
지난번에는 오페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소프라노의 역할, 특히 주인공으로서의 소프라노의 여러 가지 종류와 면모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소프라노보다 좀 더 낮은 목소리인 메조소프라노는 오페라에서 주인공은 못하고 늘 조역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메조소프라노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원칙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에서 한 사람의 좋은 메조소프라노가 나타나면 그들은 일단 “좋은 암네리스나 아주체나가 생겼군”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메조소프라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대표적인 배역이 바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의 암네리스나, 아니면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중의 아주체나 역이라는 뜻도 되는 것이다.
'아이다'에 나오는 암네리스는 프리마돈나인 아이다가 사랑하는 테너를 사랑하는 여인으로서, 아이다의 연적(戀敵)인 셈이다. 전통적인 이탈리아 비가극 즉 오페라 세리아에서 메조소프라노가 가장 많이 맡는 역할은 이렇듯이 소프라노의 라이벌이다.
'아이다'의 암네리스를 필두로 하여 베르디의 '돈 카를로'의 에볼리, '나부코'의 페네나, 벨리니의 '노르마'의 아달지사,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의 조반나,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엘리자베타, '로베르토 데브뢰'의 사라,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의 라우라,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의 공작부인 등 유명한 메조소프라노 역들은 소프라노의 라이벌인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소프라노는 주인공이며 메조소프라노는 소프라노의 연적을 맡는다.
그 다음의 배역들은 차라리 연적보다도 더욱 비중이 떨어지는 역할들이다. 즉 그들은 대부분 주인공의 어머니나 친구, 노인, 점쟁이, 집시 같은 역들이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메조소프라노가 프리마돈나인데, 이런 것은 이탈리아 비가극에서는 무척 드문 경우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에서 메조소프라노로 태어나면 영영 주인공은 꿈꿀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녀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경우는 두 길이 있는데, 하나는 이탈리아의 희가극 즉 오페라 부파의 여주인공을 맡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아니라 프랑스 오페라를 부르는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 특히 로시니의 희가극들에서는 메조소프라노가 여주인공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로시니의 '세빌리야의 이발사'의 로지나, '라 체네렌톨라(신데렐라)'의 안젤리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이사벨라 등은 모두 메조소프라노다. 로시니는 특별히 메조소프라노를 좋아하였던 것이다.
그 외에 프랑스 오페라의 경우에는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메조소프라노들이 프리마돈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은 프랑스 오페라의 특징의 하나인데, 프랑스 관객들의 취향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메조소프라노 여주인공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들이 프랑스 오페라의 특징을 규정하는 데 한몫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프랑스 오페라인 비제의 '카르멘'같은 경우가 메조소프라노를 주인공으로 하는 대표적인 프랑스 작품이다. 이 경우 소프라노인 미카엘라 역이 도리어 카르멘의 라이벌로 나오게 된다. 그 외에도 토마의 '미뇽', 생상스의 '삼손과 델릴라', 마스네의 '베르테르' 등에서 모두 메조소프라노가 프리마돈나이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테너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 2008.6.7.
이번에는 남자 가수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여성가수의 대표가 소프라노라면, 당연히 남자 중에서는 테너가 가장 돋보이는 존재다.
일단 테너는 소프라노의 상대역이라고 보면 된다. 오페라 이야기의 대부분이 사랑의 이야기 즉 연애담이다. 그런 만큼 여주인공인 소프라노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테너가 맡는다. 즉 테너는 소프라노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다.
물론 소프라노를 좋아하는 사람이 테너만이 아닐 수도 있다. 두 사람이 한 소프라노를 좋아할 때, 그들은 보통 테너와 바리톤으로 나뉜다. 그럴 경우에 두 사람이 모두 소프라노를 사랑하지만, 소프라노가 좋아하는 쪽이 테너가 된다. 즉 테너만이 소프라노의 사랑을 받는다. 자연히 바리톤은 테너의 라이벌, 즉 연적이 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벨리니의 '청교도'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한 가끔은 세 남자가 한 여자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 세 남자는 테너, 바리톤, 그리고 베이스 순서로 배치된다. 베르디의 '에르나니'가 이런 구도다. 이때도 소프라노가 마음으로 선택한 남자가 테너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테너는 남성의 음성 중에서 가장 높은 성부로서, 자연스러운 소리라기보다는 거의 훈련에 의해서 터득된, 일상으로서는 예외적인 고음을 내는 전문가들이다. 이런 테너 역시 소프라노처럼 몇 가지의 형태로 나뉜다.
가장 가벼운 소리는 ‘레제로(leggiero) 테너’라 불린다. 가볍고 가는 음성이 특징으로서, 모차르트나 로시니 오페라의 남자 주역들은 대부분 이 목소리가 적합한 역할들이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의 오타비오, '코지 판 투테'의 페란도, 로시니의 '세빌리야의 이발사'의 알마비바, '신데렐라'의 라미로 등이다. 그 외에도 도니체티의 '람메르무르의 루치아'나 '사랑의 묘약',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 등의 남자 주인공들이 이 음성이 적합하다. 역사적으로 루이지 알바, 페루치오 탈리아비니, 프리츠 분덜리히 등이 이런 소리였다.
다음으로 ‘리릭(lyric) 테너’가 있다. 레제로보다 무거운 소리로서 서정적이고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하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가면무도회'의 리카르도 등이 대표적이다. 호세 카레라스나 카를로 베르곤치, 주세페 디 스테파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테너 중에서 가장 무거운 소리는 ‘드라마틱(dramatic) 테너’라고 부른다. 베르디의 '오텔로'의 오텔로, '아이다'의 라다메스, 그리고 '일 트로바토레'의 만리코 등이 대표적인 역할들이다. 마리오 델 모나코나 프랑코 코렐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들은 대부분 주인공이 강력한 음성을 가진 드라마틱 테너들이 부르는데, 바그너 오페라의 드라마틱 테너들을 특히 “영웅적인 테너”라는 뜻의 ‘헬덴(Helden) 테너’라는 말로 부른다. 볼프강 빈트가센이나 페터 호프만 등은 전설적인 헬덴 테너들이었다.
리릭 테너를 더욱 분류하면 다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리릭 레제로, 리릭, 그리고 스핀토(spinto) 등이다. 리릭 레제로는 푸치니의 '라 보엠' 중의 로돌포 같은 역인데,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대표적인 경우다. 스핀토는 푸치니의 '나비부인'의 핑커톤 등인데, 리처드 터커가 대표적인 스핀토 테너였다.
그러니 테너는 결국 다섯 분류로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소프라노의 분류와 거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베르디가 부각시킨 바리톤 | 2008.6.14 |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리톤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테너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지만, 적지 않은 분들이 바리톤의 중후하고 육중한 음성에 매료된다.
하지만 오페라에서 바리톤은 그렇게 좋은 역할을 맡는 성부(聲部)가 되지 못한다. 로맨틱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못한 인격들이 대부분이다. 바리톤은 일단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토마의 오페라 '햄릿'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햄릿이 바리톤이라는 것은 오페라의 세계에서는 무척이나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바리톤은 원래 테너와 소프라노가 사랑을 하는 가운데 끼어들어서, 테너의 라이벌 즉 연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테너와 함께 같은 여성을 사랑하지만 그 여성은 테너를 사랑함으로써 바리톤은 사랑의 실패자가 된다. 하지만 그러므로 그들은 테너나 소프라노에게 복수를 하는 악역이 되는 경우가 많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의 루나, '가면무도회'의 레나토, '에르나니'의 카를로, 벨리니의 '청교도'의 리카르도,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의 벨코레 등이 이런 경우다.
바리톤이 테너의 연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역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주로 테너의 친구이거나 부하 또는 측근들이다. '오텔로'의 이아고, '운명의 힘'의 카를로, '돈 카를로'의 로드리고 등이 그들이다. 악역을 맡는 바리톤은 무척이나 악하고 프리마돈나인 소프라노의 죽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원래 바리톤은 오페라에서 크게 각광을 받는 배역은 아니었다. 애당초 남성 성부는 테너와 베이스의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며, 베이스에서 분파(分派)된 바리톤은 비교적 나중에 중시되었다.
그런 바리톤이 오페라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베르디의 공로였다. 베르디는 바리톤을 무척 좋아하였는데, 바리톤이라는 멋진 음성을 아버지를 표현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때까지 오페라 속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단순히 수평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었으며, 아니면 거기에 한 명의 연적이 끼어들어 삼각관계가 되는 정도였다. 그런 구도에 아버지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서 사랑은 세대 간의 수직적인 갈등과 입체적인 형태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때 베르디는 늘 아버지를 바리톤으로 설정하여 그 멋지고 듬직한 음성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노래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돋보이는 베르디의 작품들은 '아이다'의 아모나스로,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의 몽펠리에 등이다.
그러던 베르디의 아버지는 단순히 테너의 뒤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것을 뛰어넘어서, 점점 오페라의 전면에 대두되게 되었다. 심지어 오페라의 제목조차 아예 아버지의 이름을 붙인 것들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베르디에 이르러서 바리톤은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바리톤이 타이틀 롤이 되는 경우는 '리골레토'를 위시하여, '나부코', '시몬 보카네그라', '루이자 밀러' 등이다. 베르디의 '맥베드'같은 작품은 바리톤은 비록 아버지 역은 아니지만, 역시 당당히 오페라의 타이틀 롤이 된 경우이다.
베르디 이후로는 다시 바리톤의 위상이 떨어지게 되었으니, 베르디 이후의 오페라에서 명 바리톤 아리아는 몇 곡도 되지 않는다. 이렇듯 바리톤이라는 성부는 베르디라는 한 명의 작곡가에게 큰 신세를 졌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사라져 버린 목소리 알토 | 2008.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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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오페라 '가면무도회'의 한 장면. | |
이제 여성 성부의 마지막인 알토를 살펴본다. 다 알고 있듯이 여성의 세 성부 가운데에서 가장 낮은 소리를 ‘알토(alto)’라고 하며 종종 ‘콘트랄토(contralto)’라고도 하는데,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알토라면 학교에서 아주 많이 들어본 말일 것이다. 흔히 교내 합창대회 같은 것을 할 때, 가장 낮은 성부는 알토가 된다. 사실 아름다운 멜로디를 맡아서 부르는 제1소프라노나 제2소프라노 등에 비해서 정말 재미도 없고 단순한 백코러스나 넣는 집단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즉 알토는 마치 음성이 낮아서 알토를 맡은 것도 아니고, 대신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거나 변성기(여학생도 가능한 이야기다)에 걸려 있거나 음악에 소질이 없는 학생들이 알토를 맡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그들은 노래할 때 왠지 주눅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실제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알토는 맡아본 사람들은 이제 정말 알토는 지겹고 아름답고 맑은 소프라노의 연주를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학창시절에는 천덕꾸러기였던 알토라는 성부가 오페라하우스로 오면 무척이나 멋지고 귀한 소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사실 여성의 목소리를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로 나누지만, 실제 성악가들 중에서 알토의 숫자는 상상 외로 적다.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바로크 시대에는 알토가 꽤 있었으며, 활약도 높았지만, 이제 현대로 오면서 알토는 그 활동반경마저도 줄어드는 실정이다. 게다가 알토를 위하여 작곡된 배역조차도 요즘은 메조소프라노가 부르는 것이 상례화 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오페라의 초창기인 바로크 시대에 알토의 활약은 사뭇 대단하였다. 많은 남자 역할들이 알토를 위하여 작곡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카스트라토(castrato)’라고 하는 남자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카스트라토의 성부는 한 마디로 ‘남자 알토”라고 보면 된다. 즉 여성의 성부가 남성보다 높으므로, 테너보다 높은 소리가 알토가 된다. 그래서 그 알토 배역들은 원래 남자 카스트라토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더불어 여성 알토들도 남자로 분장을 하고 많이 불렀다. 이른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알토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였다. 헨델의 <세르세>의 세르세, <리날도>의 리날도, <줄리오 체사레>의 체사레, 카발리의 <라 칼리스토>의 사티리노, 비발디의 <광란의 오를란도>의 오를란도 등이 모두 알토의 배역들이다. 그 후로 로시니의 <탄크레디>의 탄크레디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의 노포크 등에 나타나다가, 낭만시대로 들어오면서 점차 사라져버렸다. 베르디는 27개의 오페라를 작곡하였지만, 그 중에서 알토를 위한 주요 배역(단역은 제외하고)은 단 두 개가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바로 <가면무도회>의 울리카 역과 <루이자 밀러>의 페데리카 역이다. 그러니 이제 알토는 역사 속의 성부로 점점 사라져간 것이 되었다. 음악사적으로 뛰어난 알토들이 몇몇 있었는데, 영국의 캐서린 페리어, 미국의 마리안 앤더슨 등이 역사에 남을 만한 여성 알토들이다. 특히 앤더슨은 역사상 흑인으로서 최초로 오페라 무대에 등장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남자의 가장 슬픈 소리, 카스트라토 | 2008.6.28. |
여자의 목소리는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로 나누고 남자의 경우는 테너, 바리톤, 베이스로 나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알토와 테너의 둘 중에서는 어느 쪽의 음성이 더 높을까? 정답은 “알토가 더 높다”이다. 적지 않은 분들이 “그래도 남자의 가장 높은 소리라면 여자의 낮은 소리보다는 높을 것이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여자는 무조건 남자보다도 높다. 즉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의 목소리를 높이대로 여섯 가지로 나눈다면, 순서는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그리고 베이스가 되는 것이다. 남녀가 함께 애국가 등을 부를 경우에, 같은 악보를 사용하지만 남자는 여자보다 한 옥타브나 낮게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노래방 기계에도 아예 ‘남녀를 구분하는 버튼’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는 영원히 여자보다 낮은 소리를 내어야만 하는가? 오늘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예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성부에 해당하는 높은 음성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역사적으로 그들을 ‘카스트라토(castrato)’라고 불렀다.
르네상스 시대 즉 17세기부터 유럽 가톨릭에서는 여성들이 교회나 수도원에서 성가(聖歌)를 부르는 것이 금기시된 적이 있었다. 신성한 미사는 오직 남성들만의 것이었다. 그렇지만 성가를 위한 합창단을 조직할 때 고음부가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저음부는 남성이 부르지만 고음부는 소년들을 이용하였다. 잘 알듯이 변성기 이전의 소년의 음성은 소프라노와 같이 아주 높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년들을 사용하여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의 성부를 유지해갔던 것이다.
가끔은 무척 뛰어난 ‘보이 소프라노(boy soprano)’들도 있었는데, 문제는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나 짧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잘 훈련이 되어 좀 쓸 만하면 어느 날 변성이 되어서 나타나곤 하니 합창단 측으로서도 난감하였을 것이다. 이런 여러 이유로 뛰어난 미성의 보이 소프라노들을 중심으로 거세(去勢)를 하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즉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것을 미리 막아서, 그들의아름다운 미성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 이들을 거세(castration)한다는 말을 따라서, ‘거세한 남자가수’라는 뜻의 ‘카스트라토’란 명칭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 상상하면 끔찍한 일이지만, 그렇게 비참한 것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카스트라토가 생겨난 즈음에 유럽에는 오페라가 탄생하여, 초기 오페라에 카스트라토가 많이 기용되었다. 바로크 오페라에서는 많은 주역들이 당시에 유행하던 카스트라토를 위하여 만들어졌고, 더불어 카스트라토들은 오페라하우스의 스타가 되었다. 영화로도 알려져 있는 파리넬리 같은 오페라 스타들이 이때에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부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인기인들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부모들이 아예 아들들을 거세시켜서 극장으로 데리고 오곤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식을 통해 집안도 일으키고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길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명 카스트라토들로는 파리넬리를 위시하여 카파넬리, 니콜리니, 세네시노 그리고 카에타노 과다니 등이 있다. 그들의 고음은 남자 성인(成人)의 튼튼하고 넓은 흉곽에 실려서, 여성 소프라노와는 또 다른 묘한 뉘앙스와 애수 어린 빛깔을 띠는 묘미가 있었다고 한다. 역사상 최후의 카스트라토라고 불리는 알레산드로 모레스키(1858~1922)의 음성은 녹음으로도 남아 있어, 카스트라토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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