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新約]강해/메시아 계보 대장정

단명한 왕 아하시야(메시아계보 대장정42)

영국신사77 2015. 10. 9. 22:35



옆 그림: 멀리서 전마차를 몰아 오는 예후 일행을 망대에서 바라봄 



바탕본문: 왕들B(왕하) 8:23-29; 연대기B(역대하) 22:1-9


유다 왕 예호람이 죽고 나자, 그 막내아들 아하시야(일명:여호아하즈)가 

예루샬렘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등극했습니다. 

나이 22세였습니다1.

대체로 장남이 잇는 왕위를 막내 왕자가 물려 받게 된 사연은 

지난 회에서 다뤘습니다.


아하시야의 즉위를 원했고 도운 사람들은 예루샬렘 시민들이었습니다. 

아하야는 그러나 불과 단1년 밖에 다스리지 못합니다. 

유다 사상 가장 단명한 왕이었지요. 

그럴 만한 까닭이 하고 많습니다. 

비록 단명 왕이긴 하나 성경은 그에 관하여 비교적 자세히 다루게 된 것은 

후대에 교훈을 주기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아하야는 아버지 여호람 왕의 죄악 탓에 

모든 왕자들이 깡그리 죽고 남은 하나 뿐인 맨 막내아들인데..

그렇다면 뭔가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 예호샤팥 왕 시대와는 달리 예호람에게 큰 불행이 닥친 이유는 

하나님이 특별히 이 왕가를 미워하셔서가 아니라 

바로 예호샤팥의 생각 없는 남/북 친교 전선과 

예호람의 큰 죄 때문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간의 상황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라도 하나님이 그 많은 왕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을 남겨 두셔서 대를 잇게 하신 데 대해 

일말의 고마움을 갖고 보답하는 마음이 당연히 있어야 했을 터입니다. 

죄악에 대한 뉘우치는 마음으로 왕위에 임했어야 할 것입니다.

불행히도..아하야에게선 조금도 깨닫거나 겸허한 구석이 엿뵈질 않습니다. 

더욱이 아합-이세벨의 딸로 한없이 사악하기만 한 아달랴에게서 태어난 그는 속에 이렇다 할 선을 담거나 품기도 어려운 상황이지요.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 역시 아하브 집안의 길들로 걸어갔다. 

그 어머니가 고문이 되어 악행을 하게 한 탓이었다. 

그는 아하브 가문처럼 주/야웨님 눈 앞에서 악을 행했다. 

그의 아버지의 죽음 후 그들이 그의 조언자들이 되어, 

결국 패망을 불렀다. 그는 그들의 조언을 따라.."


여기서 자문/조언자/조언 등은 모두 같은 어원의 동사 

'야아쯔'(조언하다/권하다/상담하다/자문에 응하다/꾀다)에서 왔습니다. 

즉 어머니 아탈리아를 비롯한 아합 집안이 

아하야를 빙 둘러 싸다시피 유다 왕가의 모든 정책과 향방을 좌우한 셈이지요.

외가-어머니 집안이 거의 섭정하다시피 한 셈이고 

아하야는 그들의 꼭두각시와도 같았습니다. 
 
하나님으로선 그냥 두고 보실 수 없는 꼴이었고 정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통치기를 딱 1년으로 매듭지으십니다!

우리는 아하야에게서 

할아버지 예호샤팥 왕대로부터 지난 몇 십 년간 지속돼 온 

고질적인 병폐가 아직도 그치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그토록 싫어 하셨고 대언자들을 통해 경계하셨던 

북 이스라엘, 그것도 가장 사악한 아하브 집안과의 친교이지요.


되풀이 된 대 아람 동맹전

아하야 역시도 과거 할아버지 예호샤팥 때처럼, 

외삼촌인 이스라엘의 예호람(요람) 왕과 함께 

동맹군을 이끌고 라뫁 길레아드에서 아람과 전쟁을 치릅니다! 

아하브-예호샤팥 동맹군의 대 아람전과 다를 바 없지요.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그러나 이 전쟁 도중 라마에서 이스라엘 왕 예호람이 

과거 자기 아버지 아하브처럼 부상을 당합니다. 

그래서 상처를 치료하려고 별궁이 있던 이스르엘로 일시 피신하지요.

옆그림: 아람 왕 하자엘 또는 그가 섬긴 신('우레의 신' 하다드)으로 추정돼 온 상아 부조


여기서 잠시..
당시 아람나라의 왕은 하자엘이었습니다. 하자엘은 하나님이 본래 엘리야를 통해 직접 기름 붓게 하신 왕이었습니다(왕들A 19:15-17). 그러나 성경은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언제 다메쉨에 가서 하자엘에게 기름 부었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엘리샤가 아람의 수도 다메쉨에 와서 당시 병든 벤하다드 왕 대신에 그 신복 하자엘이 왕이 될 것을 예언합니다. 또한 당초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기름 붓게 하신 이스라엘의 새 왕 예후도 훗날 엘리샤의 대언자 생도가 대신 기름 붓게 됩니다(왕들B 1-13). 즉 하자엘도, 예후도 각각 왕을 모반하고 대신 왕이 될 기회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아람의 선왕(先王) 벤하다드2를 하자엘로 갈아치신 것일까요? 
 
벤하다드는 과거 하나님께 괘씸 죄를 저지른 적이 있습니다. 

그는 본래 엘리샤의 명성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람 국방장관이자 나환자였던 나아만이 

이스라엘에 와서 엘리샤의 지시로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잠근 뒤 병을 완치 받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뒤 아람은 이스라엘을 넘보고 쳐 들어 옵니다. 

경계선에다 수시로 복병을 두기도 했으나 

그 때마다 엘리샤가 자국 왕 예호람에게 귀띔해 줌으로써 실패하자, 

눈엣가시 같은 엘리샤부터 해치우자는 발상으로 

엘리샤가 사는 도탄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기에 이릅니다3.

그러나 하나님이 천군천사의 불병거 부대를 보내셔서 도탄을 보호하시고 

쳐 들어 왔던 아람 군대는 모두 일시 맹인이 되어 

포로로 사마리아로 잡혀 가지요. 

거기서 엘리샤의 지시대로 이스라엘이 되레 음식을 제공하고 

관용을 베풀어 전원 본국으로 돌려 보냅니다4.

그렇다면 아람이 고마워 해야 할 게 아닌가요? 

그런데 벤하다드 왕은 오히려 또 다시 아람의 전 국군을 총동원해 

이스라엘 수도 슈므론(사마리아)을 포위해 버렸고 

그 바람에 슈므론 시민들은 며칠을 계속 굶으면서 

급기야 자식까지 삶아 먹거나 

문둥이가 아람군 진지를 찾아가 모두 도주해 버린 진실을 발견하는 등 

전대미문의 기막힌 일들이 벌어졌습니다5.  
그 와중에서 하나님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적으로 슈므론을 살리셨고, 

아람 군대는 몽땅 본국으로 후퇴한 데다 

아람 왕 벤하다드는 병이 들지요.


어느 날 하나님의 사람 엘리샤가 다메쉨을 찾아 왔다는 소식에 

벤하다드는 반가워 국방장관 하자엘을 심부름꾼으로 삼아 

거창한 예물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자신의 병이 낫겠냐고 묻습니다. 

하자엘이 엘리샤에게 바치러 갖고 간 예물은 다메쉨의 모든 명산물로 

낙타 40마리 분이나 됐습니다! 

엘리샤의 국제적 명성과 그에 대한 아람나라의 존경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심지어 벤하다드는 자신을 "님(엘리샤)의 아들"로까지 낮춰 칭합니다. 

병이 낫기 위해 잘 보이려는 심산에서지요. 

그러나 엘리샤는 하자엘에게 벤하다드의 병이 완쾌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하자엘에게 별도로 왕이 이내 죽을 것을 시사합니다.

엘리샤는 하자엘에게 이 사실을 귀띔하면서 

하자엘이 당황하기까지 그를 쏘아 보다가 눈물을 흘립니다. 

하자엘이 의아스러워 까닭을 묻자, 

엘리샤는 장차 그가 아람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범해 

여러 성을 전멸시키다시피 할 것을 예언합니다. 

하자엘이 놀라면서 "님의 개와도 같은 종이 무엇인데 

감히 이런 큰 일을 하겠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주/야웨님께서 그대가 아람의 왕이 될 것을 내게 알려 주셨다"고 밝힙니다. 


    하자엘과 엘리샤6


과연 하자엘은 그 길로 벤하다드 왕의 완치를 알린 이튿날, 

물에 적신 이불을 왕의 얼굴에 덮어 질식사 시킨 뒤 대신 왕이 됩니다. 

역적이 되어 암살한 거죠. 
그리고 하자엘 왕이 얼마 후 다시 라뫁 길레아드에 쳐들어 온 것도 

엘리샤의 예언에 입각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후 장군의 북국 쿠데타

예후는 북국 이스라엘의 예호람 왕 치세 당시 국군 총사령관이었습니다. 

아람 군대와 대치 중이던 라뫁길레아드 진지를 지키고 있었지요. 
님쉬의 손자, 예호샤팥의 아들인 예후는 

활쏘기와 전마차(=병거) 몰기 등에 탁월한 전사이기도 했습니다7

그런데 무엇보다도 정의감이 투철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우상교가 팽배한 이스라엘이라 

그의 야웨 신앙엔 한도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예호람 왕이 아람 군에게 부상 당해 

이즈레엘에서 치유/요양을 하고 있는 동안 

라뫁길레아드 진지에 머물던 예후는 

다른 장군들과 함께 나무 그늘 같은 데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때 엘리샤가 보낸 대언자 학교 생도가 방문하여 

"장군,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예후는 "어느 장군 말이냐?"고 묻습니다. 

"장군, 바로 님이십니다."라고 답하자 

에후는 속으로 궁금해 하면서도 그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에 들어가자 대언자 생도는 스승 엘리샤가 시킨 대로 예후에게 왕직 기름을 붓고 예후가 아하브의 집안을 모반하고 왕이 되어 

과거 예제벨이 무자비하게 죽여 흘린 하나님의 대언자들과 

종들의 피를 모두 되갚고 예제벨 왕후를 비롯한 

아하브 집안 사람들을 전멸시키게 될 것이란 예언을 전달하자마자 

문을 열고 뺑소니를 쳤습니다. 

엘리샤가 시킨 대로였지요.   

대언자 생도를 비웃으면서도 사연을 궁금해 하는 다른 장군들에게 

예후는 마지 못해 예언 내용을 알려 주자, 

그들은 급히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예후의 발 아래 깔고 나팔을 크게 불어 

예후가 새 왕이 됨을 알립니다. 

군주에 대한 당대 예전의 하나였지요.

쿠데타의 주인공이 된 예후는 행여 실수가 없게 

라뫁 길레아드 진지 주위에다 비상 함구령을 내린 뒤 

예언대로 실행하려고 이젠 신하가 된 동료 장군들을 거느리고 

전마차를 몰아 예호람이 휴양 중인 이즈레엘로 향합니다. 

그의 맘 속은 주/야웨님의 모든 예언대로 이행할 의롭고 굳은 결심이 섰습니다.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망대 위에서 발견한 이즈레엘의 한 보초병이 

예호람 왕에게 보고하자, 왕은 기마병을 메신저로 보내어 

'샬롬'(평화)인지8 여부를 물으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나 급히 말을 달려 온 메신저에게 예후는 

"자네랑 평화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대꾸하고 

"내 뒤를 따르라!"고 하자 대뜸 겁을 먹은 메신저가 예후 일행에게 합세합니다.     

예호람 왕이 두 번째 기마병을 보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지요.
파수병이 누워 있는 왕에게 다시 보고합니다. 

    "둘째 메신저도 가서 만났지만 다시 그들과 합세한 모양입니다! 

전마차를 모는 품이 님쉬의 손자 예후처럼 미친 듯이 몰아댑니다!" 

그러자 왕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급히 말을 전마차에다 메우게 한 뒤 

아하지야의 전마차와 함께 나란히 예후를 맞으러 나아갑니다. 


나봍의 포도밭에서 죽은 예호람

그런데 양쪽이 만난 장소가 하필이면 나봍의 포도밭 부근이었습니다. 

예언대로 이뤄지는 장면이지요9

이즈레엘10은 탐스럽고 맛 좋은 포도 명산지의 하나로 

이곳에서 가장 크고 실한 포도밭을 운영하던 나봍은 

평소 그곳을 탐내던 아하브/예제벨 부부의 사주를 받은 

이즈레엘 시 고위급 인사들의 음모로 피살되고 포도밭도 뺏겼습니다

    이즈레엘 평원


이 악행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아하브 집안에 대한 미래의 저주를 내리신 바 있습니다11.      

예호람이 석연치 않은 예후 일행의 모습을 보고 묻습니다.

     "예후 장군. 샬롬이오?"

예후는 의분에 차서 왕에게 대답합니다.

     "무슨 평화 말이오..

      당신의 어미 이세벨의 음행(우상숭배)과 마술이 온통 가득한데도?"

그제서야 역모의 낌새를 알아 챈 왕은 

두 손에 쥔 말고삐를 홱 채어 돌려 냅다 도망하면서 소리칩니다.

     "반역이라오, 아하시야!"

순간 예후는 재빨리 화살 하나를 꺼내 활에 물리곤 힘껏 당겨 

예호람의 두 팔 사이를 겨냥해 날립니다. 

"슉~!" 하고 날아간 화살이 예호람의 심장을 명중시켜 관통하자 

왕은 전마차 안에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아합 왕가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기도 하지요.  

예후는 이제 자신의 사령관인 비드카르에게 

왕의 시신을 정리하라고 명합니다.

     "그 시신을 갖다가 이즈레엘 사람 나봍의 (포도)밭에 던져 넣게. 

자네도 기억하다시피 자네랑 나랑 함께 전마차로 

왕의 아비 아하브의 뒤를 따를 때 하나님이 이렇게 예언하셨지: 
     '참으로 내가 어제 나봍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봤다. 

주/야웨의 말이다: 바로 이 땅뙈기에서 내가 네게 갚아 줄 것이다!' 

그러니 주/야웨님의 말씀 그대로 그의 시신을 이 땅에 버리게나."


이 말씀은 당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따라서 예후가 엘리야의 예언을 옮긴 것일 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후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예언 성취의 중요성을 잘 이해했다고 느낄 수 있지요.    
 
한편 이 틈을 타 유다 왕 아하지야는 

부랴부랴 전마차를 전속력으로 몰아 

벹하깐(동산의 정자)으로 향하는 길로 도망을 치고 있었습니다. 

예후는 뒤쫓으면서 소리를 쳤습니다. 
     "그 역시 전마차에 탄 채로 죽여라!"

아하지야를 추적한 예후의 부하들은 

이블레암 부근인 구르 비탈길에서 아하지야를 붙쫓아 

그를 쳐서 중상을 입힙니다. 

그러고도 아하지야 왕은 근처 메기또까지 도주해 거기서 숨졌지요. 

아하지야의 신복들은 왕의 시신이 전마차에 실린 채 예루샬렘으로 돌아가 

다빋 성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호람의 통치기는 12년, 아하지야는 고작 1년으로 끝났습니다. 

그것도 기껏 23살에.  


아하브 왕가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은 물론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회에는 다름 아닌 지상 최악의 요녀 이세벨의 죽음과 

그 집안 나머지의 멸절을 다루렵니다. 

 

  1. 연대B엔 '42세'로 기재돼 있다. 따라서 많은 번역판들이 서로 다르게 옮겨져 있음. 이 차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1. 사본 필사자의 실수였다는 설, 2. 아하지야의 통치를 친척인 북국 아하브 왕가의 전체 길이에 포함시켜 취급했다는 설(Lightfoot). 그러나 2.는 상당히 무리한 설정이다. 본 필자는 1에다 더 무게를 둔다. 그런 예가 또 있기 때문. 예: 시22:16b (필자의 글 '시 22:16 뒤틀지 마라' 참조) 최초 원본이 아닌 마쏘라 사본에 절대적 권위를 둔다는 것은 사본 필사자들에게도 원 기자와 동일한 성령님의 영감이 내려졌다는 주장이 된다. 그러나 예수 크리스토의 메시아이심을 부정한 마쏘라 사본 필사자들은 훨씬 후대 사람들이었다!)였다. '42세' 기록은 연대B 21:5(왕들B 8:17)과도 모순이다. 아하지야의 부왕 예호람은 32세에 왕이 되어 8년간 다스리고 40세 때 죽었기 때문.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 차가 불과 2년이라면 말이 안된다. 따라서 22세가 옳다. [본문으로]
  2. 벤하다드란, 히브리어로 '하다드의 아들'이란 뜻. 하다드는 아람의 주신의 이름. 아람어로는 벤 대신 '바르'를 써서 '바르하다드'다. 바르하다드는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대에 걸쳐 반복해서 써 온 왕들의 이름이었다. 하자엘은 신하로서 역적이 되어 바르하다드를 암살하고 왕위에 오른다. [본문으로]
  3. 이하, 왕들B 6:8-23 참조 [본문으로]
  4. 북한이 이런 관용을 좀 배웠으면. 물론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본문으로]
  5. 왕들B 6:24-20 참조 [본문으로]
  6. 엘리샤는 대머리로 추정된다. 여담이지만 비록 아이들이라도 대머리를 혐오하거나 경멸하는 것은 저주의 대상일 수 있었다(왕들B 2:23,24). 아이들에게 바른 언행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대머리'라는 용어 자체도 문제다. 요즘처럼 용어 순화가 필요한 때, '빛나머리'로 하면 어떨까? [본문으로]
  7. 하나님의 예언과 왕들, 연대기 기자는 예후의 지족보다 집안을 밝히고 있는 점이 명문가이든지 유력가였던 듯 하다. '님쉬'(구출되다)와 '예호샤팥'(주/야웨님은 심판자)이라는 이름은 퍽 예언적이다. 의인들은 북 이스라엘이 아하브 집안으로부터 구출되길 오래 갈망해 왔다. [본문으로]
  8. 이 말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예호람) 왕의 평안/무사 여부가 지금 너와는 무관하다는 얘기, 또는 왕에게 붙어 있는 한 네겐 평화가 없다는 암시라고 볼 수 있다. 메신저가 금방 예후의 뒤를 따른 것은 이 때문이다. 즉 기세등등한 예후 일행의 모습을 보자 왕에게 보고하러 말머리를 돌리다간 죽을 줄을 알아차렸다. [본문으로]
  9. 왕들A 21:1-16 참조. [본문으로]
  10. "하나님이 심으셨다"는 뜻. 예로부터 풍요롭고 기름진 땅. 한때 '에스드론 평야'로 불리기도 했다. 메기또 고원에 가깝다. [본문으로]
  11. 당시 아하브는 잠시나마 뉘우쳤기에 그의 생시가 아닌 그의 사후 아들 대에 결과가 나타남 왕들A 21:27-2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