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新約]강해/메시아 계보 대장정

하나님의 대책 (메시아계보대장정2)

영국신사77 2015. 10. 9. 13:51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베틀레헴의 옛 구유


하나님의 믿음과 언약

창세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처음부터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방인 계열에 더 가까웠고 이방인 귀족 테오필로를 위해 서신 형식의) 루카복음/행전, 두 성경을 쓴 루카(뤀 1:1~4, 행 1:1,2 참조)는 메시아 계보를 하나님까지 잇대어 이 점을 더욱 확실히 밝혀주지요(뤀 3:23~38). 결국 메시아의 궁극적인 선조는 성자님의 아버지 성부님이라는 뜻입니다(뤀 3:38b).

그런데 하나님은 이 족보를 부끄러워 하시지 않습니다(히 11:16 참조).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 아드님을 통해 수많은 아들을 이끌어 내어 그 분의 백성으로 삼기를 열망하셨기 때문입니다(히 2:10. 11:16과 비교 바람). 그래서 하나님의 굳건한 언약에 반응할, 우리 같은 예수님의 형제들, 아브라함의 참 후예가 생기길 믿고 기다리셨던 거죠(롬 8:29, 히 2:5~18 참조)! 바꿔 말하면, 그 점에서 하나님은 마귀의 악착 같은 방해공작과 태클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신실한 언약을 믿어 줄 수많은 인간들이 나타날 줄 굳게 믿으셨지요. 하나님의 아드님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고 풍요로운 삶을 주시기 위함입니다(요서A=요일 3:8 히 2:14b 참조). 

이같은 하나님의 믿음과 신뢰는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신뢰에서도 나타나지만 욥 서에게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욥 1:8). [욥은 아브라함 당대 또는 훨씬 선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창 10:29의 쉠의 아들 '요밥'이 그였다는 설도 있음(연대기A 1:20~23 참조)] 하나님은 싸탄 앞에서 욥에 대한 신뢰와 극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욥 2:3). 비록 욥은 시험으로 다가온 고난과 고통의 극치에서 자아관과 하나님 신뢰의 상당 부분을 잃지만(욥 서 후반부 참조), 하나님은 끝끝내 욥이 승리할 줄 믿으셨습니다.

그런 욥은 성령님의 영감으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안다: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심을! 그리고 마침내 그 분이 땅 위에 서실 것을! (욥 19:25 사역)."

비록 메시아의 직계 선조는 아니지만 욥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음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그럼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하나님은 이 믿음 속에 여러 모로 어린양이 되실 대속주의 길을 준비하십니다. 이것은 우주창조 이전부터 큰 비밀이었고 천사들도 궁금하여 알기 원하던 것입니다(페트로A=벧전 1:12b, 페A 1:10~12, 비교: 엪 3:9~11). 

자..하나님은 창조 때 "우리 형상으로 우리 모습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닷물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가축과 온 땅과 땅 위에 기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자!"고 하십니다(창 1:26 사역).

'우리 형상', '우리 모습'이라니..하나님은 본디 볼 수 없는 분이신데 누구를 가리킴일까요? 바로 그 분의 형상인 성자님이셨죠(히 1:3, 코린토B=고후 4:4 콜로새 1:15 )! 하나님은 바로 당신의 형상/모습대로 지으신 인간을 아끼시고 사랑하시고 구속하기를 원하셨습니다(콜1:20~22).

그러기에 마치 독수리 한 쌍이 새끼의 부화를 위해 최대 9피트(!) 크기의 거대한 둥지를 틀어 보금자리를 마련하듯, 그리고 어린아기의 태어남을 준비하는 엄마아빠처럼 애정을 가득 담아, 모든 창조물 가운데서도 빼낸 듯 황홀하고 아름다운 '요람' 에덴을 특별히 디자인하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고, 첫 사람들에게 가까이 하시고 동산을 거니시며 정답게 대화를 나누셨습니다(창2장, 3:8 참조).

왜 이처럼 애정을 표하신 걸까요? 하나님의 형상, 모습대로-즉 성자님의 '카피'로-지음 받은 창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인간 창조로 절정을 이룬 엿새 동안의 창조를 마치신 뒤 심히 즐거워하시고 흡족해 하셨습니다(창1:31).   

인간은 창조물들 중 동물들처럼(창2:19) 하나님이 손수 흙으로 빚으셨습니다! 그밖의 피조물들은 하나님이 말씀 몇 마디로 지으셨는데, 오직 인간만은..최고의 예술인/조각가가 최선을 다해 조각품을 깎아 만들듯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어 끝 마무리로 숨을 후~ 불어 넣으셨습니다(창 2:7). 그렇게 빚어진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성자님의 모습 대로였습니다! 오 할렐루야~!

하나님은 그러나 인간의 행복에 조건을 다셨습니다. 조건이 달린 행복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 도처에서 이런 '조건'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신이시므로 반드시 지킬 언약을 내 거십니다(시 105:8, 레비=레위기 26:42, 에제키엘 16:60). 하나님의 이 특성을 우리는 알고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그 첫 언약(히 9:15b)은 선악지식나무와 생명나무-두 나무로 내 걸렸습니다(창 2:9, 16,17). 이것은 인간의 순종/불순종 여부를 '테스트' 하는 잣대이기도 했습니다(신명 8:2, 13:3, 예렘 20:12). 인간의 하나님 사랑, 순종 여부를 가리는 우림/툼밈이라고나 할까요(출 28:30). 하나님은 인간을 몸소 시험하시는 법이 없는데(야코보 1:13) 왜 그랬을까요? (코A 10:13 참조)

첫째로, 하나님은 마냥 기계적인(mechanical) 영광 받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속마음, 자발적 의지를 통한 영광을 바라셨습니다. 천사들을 보면, 거의 자동적/기계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물론 천사들도 자기의지가 있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그 분의 명령과 뜻을 실행합니다. 그러나 인간과 비교할 때 많은 부분에 있어 뚜렷이 제한되고 고정된 특징들이 있지요. 반면 인간처럼 시공간 제약을 받지는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천사들에게서도 온전한 영광을 바라셨습니다만, 한때 최고의 천사를 비롯한 천사들 상당수가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페B=벧후 2:4, 유다 6). 인간적으로 볼 때, 그것은 하나님께 '쓰라린' 한 추억일 수 있습니다.

반역자의 등장

당초 하나님은 천계 어딘가 또 다른 에덴을 지으셨더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창작품인 최고의 케룹 천사 핼렐(루키페르=루시퍼)을 거기 두셨습니다(이사야 14:12 참조). 핼렐이란 이름은 '빛 나르미'(lightbearer) 즉 아침에 가장 찬란한 별(샛별)로 상징되는 개념이지요. 본디 '여명의 아들'(벤 샤카르)이란 개념과 결부됐습니다. 천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 최상의 천사, 황홀할 만큼 빛나고 찬란한 존재여서 수많은 천사들의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천상의 음악인이었습니다(이상: 에제키엘=에스겔 28:12~15 참조).   

그러나 핼렐은 마치 나르키스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한 나머지 스스로 오만해져서 불순한 마음을 품습니다. 그를 지어주신 창조주보다 더 높아지려 한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 품에서 늘 사랑 받는 성자님께 대한 질투심을 불태웠습니다. '빛 나르미'가 '악 나르미'로 변한 순간입니다. 마침내 그 교만의 수위가 한계상황에 이르자 폭발하여, 돌이킬 수 없는 불순종과 도전, 철저한 타락으로 내리닫습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잠 18:12). 
핼렐은 그래서 싸탄(=반역자)으로 돌변했습니다(이사야 14:12~15 참조). 인간과는 달리 천사에겐 회개의 기회가 없습니다. 천사들이 메시아의 인간 구속/구원을 지극히 놀라워 하고 부러워하는 까닭이 그것입니니다. 
 
아무튼 싸탄은 이처럼 천상계 쿠데타 음모를 꾸며, 상당기간 조직적으로 천사들 다수를 꾀어 자기 팀으로 만들어 놓은 뒤(계 12:4) 감히 하나님과 성자님께 도전합니다. [천사들 과반수는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물론 결과는 실패였지만 싸탄은 천사들 상당수를 타락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사건은 천상계를 포함한 온 우주 최초/최대의 도전이었고 음모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과정을 다 알고 계셨지요. 박 대통령처럼 전혀 모르다가 졸지에 당한 변이 아닙니다. 그러자 천계에서는 하나님의 군대장관 미카엘 대천사(=천사장)가 이끄는 하늘 군대가 싸탄 측과 일대 결전 끝에 승리하고 장악하고 싸탄과 그 추종천사들을 축출함으로써 하늘의 평정을 되찾았습니다(계 12:7~9). 

에덴의 배약

하나님은 창조물에게 배신 당한 이 쓰라린(?) 추억을 바탕으로 자기 형상/모습대로 지으신 인간에게선 핼렐에게서 기대할 수 없던 충성과 사랑, 믿음과 온전한 영광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 맨 한 가운데 또렷이 언약의 두 '팻말'을 두신 것입니다.

에덴 중심부에 우뚝 선 생명나무와 선악지식나무, 두 나무들은 바로 하나님의 다음과 같은 심경을 전달하는 메시지였습니다: 
"나는 내 형상과 모습대로 내가 손수 지은 너의 충성을 원한다. 네가 자발적으로 창조주인 나에게 순종하여 기꺼운 영광을 돌리길 바란다. 나는 네가 (핼렐처럼) 날 배신하고 선악지식 열매를 따 먹지 말고, 생명나무 열매를 먼저 먹고 영생하길 바란다. 부디 나의 언약을 배신하지 말고 지켜다오."

하나님은 그러나 아담/하와가, 성자님에 이어 이젠 에덴의 두 인간을 질투하기 시작한 싸탄의 유혹을 받아 슬프게도 당신을 배신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즉 최초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핼렐을 선택할 것을 예지하신 것입니다. 이 점이 하나님을 더 없이 슬프게 했습니다. [어찌 내 형상 내 모습대로 빚은 사람까지도 나를..?!]

아담의 타락 과정을 보면, 맨처음부터 타락하진 않습니다(창 2:9~25 참조). 동산 중앙의 생명나무와 선악지식나무가 빤히 바라다 보였지만 왠지 두려웠는지, 두 나무에 모두 근접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하나님이 데려오신 온갖 새들,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느라 한동안 바빴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피조물답게 슬기롭게 동물들에게 모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동물이 각기 암/수 짝이 있는데 정작 사람인 아담은 홀로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돕는 배필인 제2 인간 창조 작업에 들어 가십니다(창 2:20b~22). 이것을 멀리서 물끄러미 관망하며 흑심과 독심을 품은 존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부하들과 함께 하늘에서 쫓겨난 싸탄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짙고 깊은 사랑의 뒷그늘에 숨어 질투심을 활활 불태우던 그는 급기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 하려고 작심하고 작전 상 동산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기로운 뱀으로 화신합니다(창 3:1). 뱀은 당초 여인이 바라보기에 처음부터 끔찍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정답고 싹싹하고 친근해 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겉모습만 그랬습니다. 

그리고는 현재까지 꿋꿋이 언약을 지켜 온 아담은 제쳐놓고 바로 그 짝인 여성을 통해 유혹의 갈퀴를 뻗쳐 간 것입니다(창 3:1~6 참조). 여성 특유의 예민한 감각과 약점을 십분 악용한 것입니다. 하와는 남편 아담으로부터 동산 중앙의 두 나무의 언약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아담만큼 그렇게 실감이 안 갔는지도 모릅니다. 뱀의 유혹을 받자 호기심에서 두 나무들 중 선악지식의 열매 근처로 다가 갑니다. 결국 스스로=자의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합니다. 그리고는..여태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했던 남편까지도!   

하지만 하나님은 슬픔과 좌절, 낙담의 신은 아니십니다. 이미 이럴 때를 대비해 마음에 미리 준비하고 각오하신 바가 있었습니다. 천계와 우주 역사상 가장 드높고 원대한, 거룩한 비밀 플랜이었습니다(엪 3:9~11)! 그것은 바로 하나님 당신이 친히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죽으시어 인간을 구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 예표로서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 거의 직후에 이렇게 예언하십니다: 
    "..여인의 후예(메시아!)가 너(뱀/싸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며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창3:15).

이 예언은 먼 훗날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성자님을 통해 성취됩니다. 싸탄에게 유혹 받아 먼저 배신한 바로 그 여인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플랜은 참으로 '신묘막측'(시 139:14 한글개역) 자체입니다! 

최초의 죽음-에덴의 양
 
그리고는 선/악을 구분할 줄 알게 되어 벌거벗은 수치를 부끄러워 하는 두 최초 인간들이 다 말라 부스러져 가는 무화과 나뭇잎을 달랑 허리에 두른 모습이 안쓰러워 동물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십니다(창 3:21). 하나님의 이 따스한 애정을 보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이 행동은 단지 애정만이 아니라 구속계획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를 엿보여 줍니다.  

동물 가죽옷을 마련하기 위해선 에덴에 있는 한 짐승을 죽이셔야 했습니다. 죄의 결과인 수치를 가리기 위해 최초로 피를 뿌리는 희생이 따랐던 것입니다(히 9:22 참조). 그 동물은 바로 양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성자님을 상징합니다(요복 1:29, 이 53:7). 하나님은 이 양을 죽이면서 바로 수 천 년 뒤 당신께서 몸소 자신이 죄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릴 것을 미리 마음 속으로 그리신 것입니다-할.렐.루.야.(이 대목에서 도저히 눈물을 금할 수가 없군요~, 네.)

아벨의 희생양 예물 
 
훗날 아빠/엄마로부터 바로 이 에덴의 슬픈 이야기를 들은 아담의 둘째 아들 아벨은 첫 새끼양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창4:4)! 즉 아벨은 믿음으로 앞으로 오실 어린양 메시아의 죽음이 아니면 죄를 씻고 수치를 가릴 길이 없음을 인식했던 것입니다(히브리서 11:4).

하나님은 아벨에게서 최초로 당신의 언약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본연의 작품-믿음을 보셨습니다. 아담/하와의 배신과는 극적으로 대조/상반되는 이 둘째 아들의 모습에 하나님은 그지없이 흡족해 하십니다. 아벨은, 아담/하와가 첫 아들 카인의 죄악된 모습에 충격을 받아 회개하는 맘으로 양육한 결과입니다. 아벨 대신 태어난 셑도 그랬습니다(창 4:25). 
   
그러자 싸탄은 하나님께 사랑 받는 인간 아벨을 그지 없이 질투하여 카인을 시켜 쳐 죽이게 합니다(창4:1~9 참조)! 인류사상 최초의 순교자인 아벨의 이 모습은 바로 싸탄이 미래의 메시아로 오실 성자님을 질투하여 쳐 죽이려는 모습의 그림자라 할 수 있습니다(마 23:35).

셑과 쉠

하나님은 아벨 대신 그 못지 않게 착한 아들 셑을 아담에게 주셨고(창 4:25~5:4) 이 셑에게서 하나님과 무려 300년을 동행하며 산 에놐(창 5:21~24), 그리고 그 후손인 의인 노아(창5:29~32, 6:8~10) 등이 줄이어 태어납니다. 에놐과 노아는 둘 다 인류를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한 대언자들입니다(유다 14,15, 히 11:7 참조). 이를 테면 최초의 복음 전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들에게서 더욱 더 싸탄의 공작 결과를 발견하시는 하나님은 싸탄의 걷잡을 수 없는 인간 나락화 작업을 일단 중지, 총정리 하시려고 온 땅을 물로 싹쓸이해 버리십니다(창 6:5~7:24 참조). 하지만 두 번 다시 이런 물심판이 없으리라고 무지개로 언약하십니다(창8:21, 9:11~17). 무지개는 두 번째 하나님의 큰 언약입니다.  
   
홍수 전 노아에게서 아브라함의 먼 조상인 쉠이 태어납니다. 노아는 아들 쉠을 이렇게 축복/예언합니다. [족장(partriarchs)들의 축복 내용은 모두 성령님의 예언이었습니다.]

   "송축 받으시리-주님(야웨), 곧 쉠의 하나님!..하나님은 야펱을 증대시켜 쉠의 장막에서 살게 하시고.." (창 9:26,27)

이 말씀은 바로 노아의 세 아들 중 쉠의 계보에서 장차 메시아가 나실 것이고(뤀 3:36), 야펱의 후손들이 쉠족 후예를 통해 복음으로 크게 융성할 것을 내다 본 예보입니다. 실제로 야펱의 후예인 소아시아/지중해/유럽 백인들이 수 천 년 뒤 그런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창 10:2~5). 

믿음과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

하나님은 홍수 후 아브람(훗날의 아브라함)에게서 또 다시 순종의 사람, 언약의 사람을 기대하시고 택하셨고..하나님의 이 믿음은 아브람의 믿음과 반응, 그리고 외아들 이짜크로 이어진 후대를 통해 대 성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 족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살아가게 됩니다(이 49:7). 그러나 참 선민은 메시아로 오실 성자님을 믿음으로 미리 내다봤거나 믿는 사람들에 국한됩니다(히 11:13 참조). 즉 "선민은 아무나 되나?"가 되겠습니다(행전 13:44~52 참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매우 기뻐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역시 조건이 붙습니다. 하나님은 그 옛날 아담에게 그러셨듯,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충성을 북돋우는 여러가지 언약을 거듭거듭거듭 되뇌며 장차 아브라함 후예로 메시아가 올 것을 약속하십니다(창 12:2,3, 15:1~8, 17:1~14, 18:18,19 참조). 즉 아브라함 속에 계속 믿음을 일구십니다.

그리고 조건을 내 거십니다. 네 외아들 이짜크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고 행동으로 고백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창 22:1,2). 사람들 특히 '안티'들은 이 점에서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잔인한 독재의 신", "인간 불고기를 즐기는 식인신"..뭐, 이런 식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지요!

하나님은 사람의 가장 귀한 것보다 더 귀한 분이심을 인간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판관들=사사기 2:22). 인간 자신의 즐거움보다 생명나무보다 그 분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시고 만물을 갖다 안겨 주신 창조주이신 하나님 당신과 그 언약을 더 중시하는지, 인간의 자발적인 사랑과 충성/믿음을 다시 확인하시려는 것입니다(히 11:17).

  "네 모든 것보다, 네 주변의 모든 사람들보다 날 더 사랑하냐?" 

이 말씀..기억납니까? 바로 훗날 성자님이 페트로에게 던지신 그 물음입니다(요복 21:15)! 바로 그 물음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던지신 것입니다. "하나 뿐인 네 아들까지라도 내게 바칠 수 있냐?"

에덴 동산의 두 나무에 이어 두 번 째로 보여주신, 인간을 향한 중요한 테스트입니다. 주님의 이 충격적인 물음은 그 분 속에 품으신, 더 충격적인 숨은 진리를 드러냅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네가 네 외아들까지도 아끼지 않듯 나도 내 외아들을 인간을 위해 주겠다"-바로 이 뜻입니다, 여러분! 오, 영원히 야웨 하나님께 영광~! 

바로 그 징표로서 하나님은 대신할 제물로 아브라함 뒤에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숫양을 미리 마련해 두셨다가 아브라함에게 보이십니다.(창 22:13). 이 숫양이 바로 오실 메시아를 상징한다는 것은 두 말 할 나위 없습니다! 더구나 나뭇가지에 뿔이 걸린 모습은 메시아가 가시관을 쓰신 모습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어린양을 준비하실 것을 아브라함은 이미 예언했고 그 믿음대로 된 것입니다(22:8). 앞서 준비하시는 '야웨 이레'(22:14)께서는 메시아 즉 인류의 구원을 위한 어린양을 예비해 두신 것입니다. 나무가지에 걸린 숫양이 바로 어린양의 그림자/예표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역사의 순간순간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음의 사람들에게 시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싸탄은 다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끼어 들어 몇 가지 방해 공작을 꾸밉니다. 에덴에서 하와에게 그랬듯 아브라함의 여인에게도 교란 작전을 폅니다.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의 탄생 계보를 더럽히고 어지럽혀 놓으려는 간계입니다. 전술한 바 있거니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미쯔라임(아이귑트=애굽) 파라오의 왕비나 게라르/펠레쉩 왕 아비멜렠의 왕비가 될 뻔한 사건들입니다(창 12:10~20, 20장 참조).

놀랍게도 싸탄은 훗날 아브라함의 아들 이짜크와 아내 레베카를 통해서도 똑 같은 방법으로 수작을 벌입니다(창 26:1~12). 마치 아버지의 전례를 대물림이라도 하듯 이짜크는 일시적으로 싸탄의 교란에 말려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거 사라를 구해 내셨듯 레베카도 아슬아슬하게 구해 주십니다(필자는 레베카의 이 사건을 에사후/야콥 출생 전의 일로 해석합니다. 분명히 싸탄의 메시아 계보 뒤집기 작전의 일환이기 때문).

이 모든 위기는 모두 싸탄에게 일시 속은 아브라함과 이짜크의 두려움과 유혹에 빠짐, 거짓말로 비롯됩니다(해당 본문들 참조). 즉 카나안에 머물러 있다가는 가뭄의 피해를 보겠다는 두려움, 미쯔라임으로 내려가고픈 유혹, 딴 남자들이 아내를 탐내어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거짓말 등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두려움과 거짓말이라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짜크가 아버지 아브라함을 마치 카피한 듯 똑 같은 타잎의 실수를 한 것을 보면, '부전자전'이란 명속담이 생각납니다.]

싸탄은 비록 슬기롭고 꾀가 많다곤 하나 주로 간악하고도 상투적인 수법을 씁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리도 자주 속아줍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이처럼 아브라함과 이짜크의 실수와 범죄에도 불구, 그 아내들을 보호하신 것은 물론 그들을 돌보고 사랑하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메시아의 계보를 보존, 지탱하시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