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聖地 · 선교사/1.國內 성지순례歷史교회文化탐방

◇ 청주 양관 ◇-한국기독교회사

영국신사77 2013. 6. 15. 12:35

 

◇ 청주 양관 ◇



* 충북 청주 일신여고 교내에는 양관이 있다.

양관은 1900년대 초 청주와 충북 지역 복음화를 위해 파송된 외국인 선교사들이

사택, 교회학교, 병원 등의 용도로 쓰기 위해 지은 서양식 건물로

현재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양관은 총 6개동이 있으며,

일신여고 교내에 4개동, 학교 밖 근접지역에 2개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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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탑동 제1호 양관(소열도 기념관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133-1호

 

이 건물은 1921년 청주에 와서

18년동안 활동한 소열도(T. S. Soltau) 목사가 거주하였던 건물이다.

그는 선교와 교육활동에 헌신봉사하다가

1937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강제 출국 당하였다.

 

 * 일신학원의 설립과 운영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선교사들이 사들였던 건물 부지를 일부 매각하였는데,

이 건물도 매각되어 현재 유일하게 개인 소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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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탑동 제2호 양관

(부례선 목사 기념 성경학교)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1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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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관의 건물 6동 가운데 가장 늦은 1932년 완성된 건물이다.

부례선(Jason G. Purdy: 1897-1926) 목사는 충북 남부지역의 선교와 농촌 봉사를 하던 중

1926년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순직하였다.

기독교인들과 미국의 친지, 교우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이 건물을 건립하였다.

그는 1897년 3월 미국 오하이오주 살디니아에서 태어났으며

텐마빌리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신학을 이수하고

1923년 8월 부인과 함께 고향을 떠나 청주 선교부에 부임했다.

 

 

* 부임한지 얼마 안된 같은 9월 14일 가족에게 편지한 토막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방안에서 아주 편안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막 책을 읽고 에밀리는 집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나는 시골교회 2개처를 이틀동안에 순방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함께 머물고 있는 소열도 목사와 나는 50개의 교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내외는 점심을 마치고 시내 구경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따라 다닙니다.

신기한 듯이 우리를 쳐다봅니다.

거리에는 발가벗은 아이들, 우마차, 머리 위에 짐을 이고 다니는 여인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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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은 지하 1층과 다락을 포함하여 3층이며, 평면이 T자 모양의 건물로 지붕은 함석을 입혔다. 건물 왼쪽에는 준공된 해를 알리는 1932가 새겨져 있다. 현재 이 건물은 현재 대한예수교 장로회 충북노회에서 청주성서신학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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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탑동 제3호 양관(민노아 기념관)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133-3호

  

* 이 양관은 1911년 지은 건물로 지하 1층, 지상2층이다.

붉은 벽돌로 짓고, 지붕은 전통 한옥과 같이 다각형의 모양에 기와를 덮고 있다.

 

* 이 건물은 청주에서 초기부터 활동하며 양관을 신축하는데 헌신한

충북 최초의 선교 지도자 민노아(F. S. Miller:1866-1937) 선교사가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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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탑동 제4호 양관(포사이드 기념관)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133-4호

 

 * 이 건물은 1906년에 양관 가운데 처음으로 완성되었다.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었으며, 유리 창문을 아치식으로 치장하였으나,

지붕은 전통적인 기와 지붕으로 하였다.

처마 장식과 주추도 한옥과 흡사하여

한국 전통 건물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이다.

 

 * 건물 앞에는 이 건물의 첫 주인인 민노아 목사의 묘비가 있다.

이 집은 주로 독신 선교사나 초임 선교사들이 거처하였다.

이 양관은 옛 순교자들이 갇혔던 형무소에서 가져온 화강석을 초석으로 하여 지은

뜻 깊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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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노아 부례선 선교사 기념비

 

 * 프레드릭 S. 밀러(민노아) 선교사는

186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출생하여,

피츠버그대학과 유니언 신학교를 졸업한 후 1892년 11월 15일 부인과 함께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 1893년 서울에서 예수교학당(경신학교) 책임자가 되어 교명을 민노아 학당으로 고치고

자신의 교육 방침대로 발전시켰다.

안창호선생을 길러내는 등 기독교 교육에 힘썼다.

1895년 연동교회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청주지역에서 44년간 선교활동을 하였다.

1902년에는 장로회·감리회의 연합찬송가 제정을 위한

‘통합공의회 찬송가위원회’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05년에는 찬송가 307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를 작곡하였다.

이밖에도 94, 294, 379, 516장 등이 현재 찬송가에 실려 있다.

 

  1911년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 경기·충청 노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894년 밀러는 현재의 양화진 묘역 주변에

언더우드 선교사, 에비슨 선교사 등과 공동으로 별장용지를 구입하여

각기 방갈로를 짓고 여름철에는 이곳에서 지낸 일이 있어 양화진과는 관계가 깊은 인물이다.

첫 부인 안나 밀러가 별세한 후

F. S. 밀러는 1904년 제3대 정동여학당장 도티와 재혼하였으며,

1931년 도티와 사별한 뒤 딘과 다시 재혼하였다.

그는 충북지역에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하던 중

1936년 은퇴하여, 개인적인 선교여행을 하였으며,

1937년 별세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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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탑동 제5호 양관(노두의 기념관)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13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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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일신여고 2학년 교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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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양관 5호

 

* 1911년 지어진 이 건물은 본래 성경학교로 사용하고자 지은 것으로 미국 켄터키 주 위치타(Wichita)에 살던 매클링(J. S. McClung) 부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두 아들을 기념하기 위해 8백불을 희사하여 지었다.

  * 이 건물은 소민병원(蘇民病院: Duncan Memorial Hospital)에 근무하던 의사와 간호사 등 선교부의 가족들이 사택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노의사라고 불리던 소민병원 원장 노두의(D. S. Lowe)의사가 1937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반대하여 선교사들이 모두 강제 출국 당할 때까지 살았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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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양관 5호 - 매클렁기념성경학원 건물

 

1910년 미국 켄터기주 우치타에 살던 매클링 부부가

해외선교를 꿈꾸다 죽은 두 아들을 기념하여 보낸 8백 달러를 기반으로 지었다.

그러나 이 건물은 1910년대 급격하게 늘어난 선교사들의 살림집으로 사용되는 바람에

학교 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 건물에 주로 소민병원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독신 여선교사들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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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탑동 제6호 양관(소민병원)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133-6호

 

 * 이 건물은 1912년에 완성된 청주 최초의 근대적 면모를 갖춘 병원이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붉은 벽돌집으로,

선교사들은 던컨 기념병원이라 불렀으나,

청주 시민들은 소민병원(蘇民病院)이라 불렀다.

 

* 이 병원은 진료실과 수술실을 갖추고 병상 20개를 가진 청주 최초의 현대식 병원으로,

주로 어려운 처지의 환자들을 진료하였다.

1917년 소민병원의 진료소가 제일교회 옆에 마련되자

이 건물은 주로 입원실로 사용되었다.

 

 


* 주소: 충북 청주시 상당구 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