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만든 사람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③
'만약 여러분이
기도보다 더 큰 즐거움을 발견한다면,
성경보다 더 좋아하는 책을 발견한다면,
교회보다 더 좋은 장소를 발견한다면,
주님이 베풀어주신 식탁보다 더 좋은 식탁을 발견한다면,
예수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천국보다 더 좋은 희망을 발견한다면
여러분은 신앙에 경보를 울려야 합니다.'
- 워너메이커의 글 중에서-
필라델피아 변두리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서 초등학교 2년이 학력의 전부이지만, 워너메이커는 교회학교에서 신앙훈련을 받으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랐습니다. 백화점 재벌이 된 이후에도 교사로 헌신했으며, 모든 영광과 찬사를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투자는 자신이 10살 때 2달러 75센트를 주고 산 빨간 가죽 성경책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그 성경책을 얻기 위해 1년 반동안 벽돌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13살 때 낡은 교회의 마당 입구를 벽돌로 포장하는 일을 스스로 시작합니다. 작은 소년의 헌신은 교인들의 각성으로 이어져 새로운 교회를 신축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때 맺어진 담임목사 존 챔버스와의 인연은 평생 이어져, 챔버스 목사는 그의 영적인 후원자이자 지도자인 '멘토'가 됩니다. 주일학교에서 꿈을 키운 워너메이커는 청년시절 주일학교의 부흥을 이끕니다. 허름한 건물 귀퉁이에서 시작한 주일학교는 훗날 학생4천명의 대규모 주일학교로 성장합니다.
워너메이커는 의류점 점원으로 일하던 19살 때부터 YMCA(기독교 청년회)와 인연을 맺은 이래 청년 부흥운동을 주도했습니다. YMCA대표로서 활동하며, 3백개 이상의 종교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21살에 베다니 주일 학교를 설립한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주일학교를 섬겼습니다. 1958년 27명으로 시작한 주일학교는 1892년 3천명을 넘어섰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주일학교 어린이 숫자는 형제교회를 포함해 만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는 백화점 회장이 돼서도 베다니 교회의 어려운 가정을 심장하고 위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평신도 사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심방은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는 수천명의 주일학교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외웠다고 합니다.
1858년 월세 5달러로 시작한 베다니 교회는 1874년 5천명을 수용하는 자체 건물을 짓게됐고, 1902년 워너메이커의 땅을 기증받아 세계적 규모의 교회를 짓게 됩니다. 워너메이커는 교회를 세우는데 자신의 재물을 아낌없이 헌금했습니다. 베다니 교회 이외에도 형제교회와 다른 교회 건물을 짓는데도 재정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설교가 D.L.무디는 워너메이커의 평생 동역자이자 친구였습니다.)
워너메이커가 주일을 지키는 열정은 유명했습니다. 체신부 장관이 돼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도 주일 성수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장관직을 수락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워싱턴과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4년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베다니 교회를 섬겼습니다. 장관은 부업, 주일학교가 주업인 셈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사업이 바빠도 매 주일 아침 9시 반부터 밤 9시 반까지 12시간 이상을 교회에서 봉사했습니다. 사업 초창기부터 주일날에는 모든 점포의 문을 닫게 했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전 사원에게 알림>
1. 주일에는 아무리 바쁜일이 있어도 절대 출근하지 마세요.
2. 주일에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경을 배우세요.
3. 교회에 적어도 1년에 5달러 이상은 헌금하세요.
4. 주일에 댄스홀이나 유흥업소에 가려면 회사에 그 이유서를 제출하세요
-백화점 게시판에 써붙인 글-
매출 증대를 위해 주일에도 문을 열자는 직원들의 제의가 있을 때마다 그는 하나님의 날을 세상 제물과 바꾸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유난히 많은 한국 사회 같았으면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과거 '주일은 쉽니다'라는 모 기업체 광고가 제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특정 종교를 암시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워너메이커는 교회와 주일학교, YMCA와 자선 사업 등 하나님의 일을 기쁘게 감당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도우면서도 자신의 사업을 크게 성공시킬 수 있음을 그의 평생의 삶을 통해 입증'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는 성경이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워너메이커 만큼은 아니지만, 워너메이커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의 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며칠전 한 기도회에서 참존 화장품 김광석 회장의 간증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약국을 운영하며 피부병 치료약 조제로 돈과 명성을 얻었던 그는 실정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것을 계기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성공의 정점에서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하는 극적인 체험 덕분에 그는 탐욕에서 벗어나 돈을 값어치 있게 쓰는 법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와 전도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거액을 기부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배신하고 돈을 빼돌린 사람들을 무조건 용서하고 더나아가 재정적으로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는 새사람이 돼서 목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하나님의 일에 가치 있게 쓰는 것이 그의 삶의 목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좋은 일에 쓰는 돈은 우물과 같다고 했던가요. 김 회장은 하나님의 일에 돈을 쓰면 쓸수록 사업이 번창했다고 간증했습니다. 탈법과 편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돈을 모으는 데에만 혈안이 된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가치 있는 곳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는 자신이 부와 명성을 성취한 것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 덕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자신을 사용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비자금과 정ㆍ경ㆍ언 유착, 탈세와 편법ㆍ불법 상속, 재산 은닉과 노동탄압, 하청업체 핍박 등 기업인들이 손가락질 받는 일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은 그런 행태가 기업인 모두의 모습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모습으로, 모범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는 것은 성경적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영적으로 투쟁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워너메이커처럼 재물은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라는 청지기 정신으로 기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반재벌 정서도 노사분규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도 크고 작은 '워너메이커'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들을 발굴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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