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계시록의 해석방향(계 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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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3) 계시록의 해석 방향 본문 말씀 / 요한계시록 1 : 1 - 3 |
서론 : 요한계시록이라 말할 때 사람들은 계시란 말에
아, 요한계시록은 함부로 읽을 것도 배울 것도 아니구나 하고
무척 경계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계시란 낱말의 오해에서 나온 일입니다.
계시란 말은
어떤 비밀을,
새로운 계시를 받아 새롭게 알아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숨겨 있었던 종말의 모든 비밀을
그대로 들추어 낸 상태를 말합니다.
1. 계시란 의미
그런데 요는 종말의 비밀은 참으로 놀랍고도 어마어마한 비밀입니다.
이 비밀은 요한이 계시를 받기 이전에는 완전히 감춰져 있었습니다.
7인으로 철저하게 봉해져 있었기 때문에,
하늘위에나 하늘 아래에나 이 책을 펴거나 보고나 할 존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밀을 모두 숨김없이 들어내어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요
주 재림의 소망 중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종말의 비밀을 열어놓은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인봉된 책 곧 닫혀진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봉되어 감추어져 있는 모든 비밀을 풀어놓은 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비밀이 오직 요한계시록에만 열어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모르면
종말의 비밀에 대해 어느 곳에 가도 알 수 없으며
누구에게 가도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런데 요는 이 책이 사람들에 의해 지금 인봉당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이 비밀을 가르칠 책임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있는데도
하나님의 종들이 꿀 먹은 벙어리모양
이 예언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읽어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의 전달 체계를 알아보겠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누구에게 보이시려고?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종들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그 종들에게 주셨지만
이 책을 받을 대상은 그들이 목양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1:11절 말씀을 보세요.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고 하셨습니다.
또 22:16절을 보십시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란 대상은 주의 종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은 교회들을 위해 주신 이 메시지를 부지런히 교회에,
다시 말하면 주님의 신부로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을 성도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책을 인봉하고
이 안에 들어 있는 재림의 메시지를 사장(死藏)시켜
그리스도의 신부들로 신랑의 재림의 소망을 무참히 짓밟고
세속 생활에 물들게 하는 주의 종들을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시겠다’
고 경종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치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2:10).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는 일에 우리가 제일 먼저 명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은 그 해석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사실입니다.
해석이 다양하다는 말은 해석의 방향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주석을 찾아보거나 강해 집을 읽어볼 때,
똑같은 계시로 나온 성경 구절을 가지고
어떻게 그처럼 다양하고 제각기 특색 있는 해석을 내리고 있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그러니 주의 종들이 과연 어떤 주석을 취하며
어떤 강해를 참고로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이 책을 아주 덮어두고 펴보지도 않는 종들이 수두룩합니다.
물론 계시에 눈이 어두운 종들은
처음엔 신학자들이 써 놓은 주석이나 강해 집을 읽을 필요도 있겠지만
그런 자세를 가지고서는 올바른 전달자로서 사명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은 누구보다 먼저 주 재림의 소망을 가져야 하며
그 소망을 가지고 목회를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 재림의 소망 중에
이 요한계시록을 많이 읽고 스스로 연구해야 합니다.
그 자세에 대해 계 10:8-10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나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고 말씀해 줍니다.
주님께 작은 책인 요한계시록을 깨닫기를 위해
책을 달라고 하는 간절한 기도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책을 받아 먹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런 종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입에는 꿀같이 달지만 배에는 쓴 맛이 나는 것입니다.
주 재림의 소망에 부풀게 되고
첫째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꿈을 갖게 될 때,
입에는 꿀같이 단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명을 이루려 할 때,
음녀의 핍박을 받게 되고
짐승의 박해를 받으며
끝내는 순교의 제물이 될 것을 각오해야 하니
배에는 쓴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사역의 사명으로 소명을 받은 주의 종들의 자세입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순교적 사명을 가지고
이사야처럼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주소서’하고 간구할 때,
11절에 있는 말씀처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고 하는 명령을 받고 두 증인의 사명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2. 요한계시록 해석의 세 가지 방향
요한계시록은 해석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첫 단추를 잘 끼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대개 신학적으로 세 가지로 그 해석의 방향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가 ‘영적 해석 방법’이고,
다음에 ‘과거적 해석 방법’이며,
세 번째로 ‘미래적 해석 방법’이 그것입니다.
영적 해석 방법
영적 해석 방법(靈的解釋方法)이란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내용을 실제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견지에서 보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건들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그 사건 자체의 해석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교훈을 주는 일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때로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유적으로,
또 어떤 때는 우화적(寓話的)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해석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실제로 일어날 사건에 대해
미리 예언해 주신 내용들이기 때문에,
신앙적인 교훈쯤으로 알고 그런 방법으로 해석하려 한다면
대단히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게 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서 종말에 대한 아무런 사건도 찾아내지 못하며
주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의 신앙적인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과거적 해석 방법
다음에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종말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성취된 사건으로 단정해 버리는 신학적 견해가 있는데,
이런 해석 방법을 과거적 해석(過去的解釋)이라고 말합니다.
이 같은 해석에서 과거란
로마의 역대 황제들에 의하여
기독교가 핍박을 가장 심하게 받았든 1세기경을 전후한 시대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로마의 역대 황제들이 기독교를 핍박하고 말할 수 없는 박해를 가한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네로부터 콘스탄티 황제에 이르기까지
10명의 황제에 의해 당한 교회의 박해는 가히 기독교의 암흑기였습니다.
지금 로마시 지하에는 미로와 같은 수 백키로의 동굴이 파져 있습니다.
카타콤이라고 하는 이 지하 굴은
그 당시 교회의 핍박을 피해서 지하에 숨어 하나님을 섬긴 역사적 살아 있는 유물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그 로마황제의 교회 박해를 이겨내고 승리케 하시려고 계시해 주신 것으로,
그 당시 이미 이 계시가 성취된 사건이라는 주장이며 해석입니다.
미래적 해석 방법
그리고 세 번째로 미래적 해석 방법 이 있습니다.
미래적 해석 방법이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모든 계시를
인류의 종말에 역사적 무대 위에서 성취 될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견해를 말합니다.
이 같은 해석은 보수적 신학자들이 즐겨 취하고 있는 해석인데,
이런 해석은 해석의 방향은 올바르지만
이 견해에도 같은 사건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해석 방법이 있기 때문에
어느 방법의 미래적 해석이 올바른가에 대해
바른 해답을 얻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밝혀 주신 하나님의 계시에 어두운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개봉된 요한계시록을 다시 인봉하여
성도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이 계시에 눈이 어두운 선지자들에게 경종했습니다(사 29:10-12).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결론 : 마땅히 주 재림의 메시지를 양 무리들에게 가르쳐야 할 하나님의 종들이
‘나는 무식하니 모르겠노라’고 핑계해도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의 반열에 서서
주의 재림에 소망을 가지고
그 날을 위해 준비하는 주님의 신부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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