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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낙 신전

영국신사77 2010. 8. 10. 14:58

카르낙신전

 

 카르낙 신전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심사관들이 찾아와서 살펴보았는데, 그때는 이미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세계문화유산 1호로 지정한 뒤여서 1호가 아닌 2호로 지정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카르낙

 

카르낙 신전 입구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카르낙신전 입구 람세스2세 입상

 

카르낙신전 입구 람세스2세 입상

 

석상의 아래 부분에는 왕비 네페르타리가 조각되어 있다. 

 

아문신전 스핑크스


20개씩 나열된 양 머리 스핑크스. 대부분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카르낙 신전은 테베의 지역 신이었던 아몬신에게 바친 신전이다. 아몬신은 종종 양머리를 가진  신으로 묘사 되는 신이다

 

아문 신전 입구 스핑크스상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아문신전 

 

아문신전 대 열주 홀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스핑크스 거리를 지나면 넓은 광장이 나온다. 한복판에 커다란 원기둥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람세스3세가 아문신에게 바친 신전이 있다.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 카르낙 신전의 하일라이트인 대열주(大列柱)홀로 연결된다. 제19대 왕조 세티1세와 람세스2세가 세운 가로 102m, 세로 53m의 직사각형 홀은 134개 열주가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특히 중앙부에 있는 12개 대열주는 높이 23m, 둘레 10.6m 크기로 이집트 상형문자와 파피루스 꽃, 아문신을 숭배하는 왕의 치적들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대 열주 홀  

 

신전 기둥 열주, 134개

 

이 돌기둥들은 높이가 23m와 15m, 두 종류의 큰 기둥들로 세워져 있었는데 그 수가 무려 134개이다. 기둥의 굵기도 대단해서 성인 몇 명이 손을 마주잡고 빙 둘러서서 재어볼 만큼 매우 굵은 것이다. 그래서 이 공간을 대열주실이라고도 부른다

 

기둥사이의 신상  (출처- http://www.ohmynews.com/오마이뉴스 이승철 기자, 2007.2. 다마스커스가는길

 

람세스 3세가 아문신에게 바친 신전 내부에 있는 오시리스의 석상들. 거대한 규모다

 

카르낙 아문신전

 

카르낙 아문신전

 

카르낙 아문신전

 

무트 여신전    출처 카페 > 이집트 상형문자를 배우는 사.. / leegh29

 

무트 여신전

 

무트 여신전

 

무트 여신전

 

무트 여신전

 

무트 여신전

 

무트 여신전

 

무트 여신전

 

콘수신전

 

콘수 신전

 

람세스3세신전

 

람세스3세신전

 

람세스3세신전

 

람세스3세신전

 

람세스3세신전 부조

 

람세스3세신전 오시리스상

 

람세스3세 신전

 

카르낙

 

카르낙

 

카르낙

 

카르낙

 

성스러운 호수

 

이 호수는 본래 지성소 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제사장들이 종교의식을 행하기 전에 정갈하게 목욕을 하던 곳이어서 '성스러운 호수'라고 불리던 곳이다. 

 

카르낙 신전에 있는 딱정벌레 신상. 이집트인들은 풍뎅이를 숭배했다.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신성시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일종의 신이어서 주변을 돌며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이루어준다는 전설이 있다 (오마이뉴스 이승철 기자)

 

딱정벌레 신상 

 

오벨리스크

 

카르낙신전 오벨리스크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대열주홀을 지나면 2개의 오벨리스크를 볼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많은 신을 믿고 섬겨 왔다. 그 중에서도 이들이 가장 굳게 믿고 숭배한 신은 태양신 라(Ra)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기원전 3000년 경부터 그리스어로 ‘작은 쇠꼬챙이’라는 의미를 가진 오벨리스크를 태양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섬겼다. 오벨리스크의 기원은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의 제12왕조 세누세르트 1세가 세운 벤벤석으로 보인다. 당시 사람들은 태양광선처럼 길쭉한 오벨리스크 형태의 뾰족한 돌 벤벤석에 태양신이 구현했다고 믿었다. 이때부터 이집트 사람들은 라를 섬기기 위해 사각형 단면에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로 마무리된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의 사면에는 라에 대한 찬가와 당시 왕을 칭송하는 내용이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로 새겨졌다. 당시에 거대한 첨탑을 세우기 위해 동원한 노동력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을 것이다.

 

카르낙신전, 부러진 오벨리스크 조각이다.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오벨리스크, 하쳅수트 여왕

 

람세스2세 미니 석상

 

도려낸 흔적이 있는 벽화

 

아마도 하셉슈트 여왕의 사후 그녀에게 핍박받으며 22년을 보낸던 그녀의 양아들 투트모스 3세에 의해 지워진 것일 것이다. 개인적인 원한도 있었게지만, 종교를 바탕에 둔 정치적 대립등의 복합적인 결과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http://blog.naver.com/friedlip/100034805713)

 

카르투쉬.  Hieroglyphs , 이집트 상형문자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상징, 표의, 표음 세가지 문자가 혼합된 문자. 

 

 하쳅수트 여왕의 가족석상 부조

 

카르낙 신전 벽 부조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카르낙 신전 벽 부조

 

카르낙 신전 부조

 

부조

 

부조

 

(사진원문 출처- http://oi.uchicago.edu/OI/IS/SANDERS/PHOTOS/EGYPT/KARNAK)

 

 

룩소 카르낙 신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오래동안 지어진, 가장 큰 신을 위한 신전이다. BC2000- BC330년 1700년 동안 이집트 주신 아몬-라 신을 위하여 당시 모든 파라오는 이 신전에 정성을 다 하였다. 신전의 입구에는 람세스2세가 만든 양머리 ( 아툼)의 스핑크스 42개 상이 있다. 예전에는 스핑크스상이 카르낙 대신전까지 2열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룩소의  첫 탑문을 마주서면 람세스의 좌상이 거대한 오벨리스크와 함께 있다. 원래는 이곳에는 람세스의 입상과 좌상이 모두 6개가 있었지만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고작 2개이다. 람세스 동상과 더불어 탑문을 지키는 오벨리스크 역시 2개였지만 이집트의 마지막 왕조였던 무하마드 알리 왕조의 무하마드 알리 왕이 1883년 프랑스의 필립 루이 황제에게 오벨리스크 하나를 선물해 지금 현재는 프랑스 파리의 중심지인 콩코드 광장에 하나가 서 있다.  BC370년 경 만들어진 제 1 탑문(넥타네보1세 건립), 탑문의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오픈 코트, 이동식 스핑크스, 신전을 건축 할 때 사용한 흑 벽돌 더미, 람세스3세 오시리스 신전, 제 2탑문 안쪽의 134개의 열주기둥 홀( 세티1세 + 람세스2세 건축 함), 투트모스 1세 그리고 합셉수트 여왕 의 29.50m 의 오벨리스크,알렉산더 이복 동생인 필립이 만든 지성소, 투트모스3세의 쥬빌리 홀, 신성한 호수, 스카라비 상 등이 있고, 신전 안에 아몬-라신의 부인인 MUT 여신의 신전과 달(MOON)의 신 콘슈의 신전이 같이 포함되어 있다. 아몬 무트 콘슈는 룩소의 홀리 페밀리(holy family)라 부른다. 카르낙 신전의 걸작은 134개의 열주 홀( 하이포스타일 홀)이 압권이다. 24m 파피루스가 핀 모양의 본 기둥 12개와 19m높이의 파피루스가 피지않는 모습의 기둥 122개 기둥이 빽빽하게 서 있다. 각 기둥에는 람세스2세가 아몬 민 & 아몬 라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조각이 되어있고, 각 기둥에는 화려한 채색이 남아있다. 카르낙 신전은 거대한 면적에 세워져 있는 신전인데 1.8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에 너비도 800미터에 이를 정도인데다 10개가 넘는 신전이 안에 있다. 특히 이 신전이 유명한 이유는 람세스 2세뿐만 아니라 중왕국 시대와 신왕국 시대의 역대 파라오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존에 세워진 신전에 다시 다른 신전을 이어 붙이는 식의 건축을 진행한 까닭에 규모 자체도 커지고 신전 안의 구조도 대단히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런 카르낙 대신전 역시 시작은 스핑크스 거리로부터. 하지만 이곳의 스핑크스는 양의 머리를 하고 있다.  제 1탑문을 지나면 이 지방 최고의 신이었던 아문 신을 위한 아문 대신전이 나온다. 좌우로는 아문의 아내와 아들이었던 무트 여신과 콘수 신을 위한 사당이 나오고 그 다음은 최대 23미터부터 15미터에 이르는 높이에 지름이 3미터에 이르는 기둥들이 134개나 늘어 선 대열주실이 있다.  이어 람세스 3세의 거상이 나타나고, 람세스 3세 신전(제 20왕조), 대 히포스타일 홀(제 19왕조), 투스모스 3세의 주빌레 신전(축제의 홀)등이 계속해서 웅장한 모습으로 이어진다. 투토몬스 3세 신전은 탑문과 신전이 있다, 투토몬스 3세의 어머니이자 이집트가 손꼽는 3대 여걸 파라오 중의 하나였던 하트세프수트 여왕이 지었다는 오벨리스크 등이 나오고 신전의 최고 핵심인 지성소가 나온다. 그 뒤로는 넓게 자리를 잡고 있는 중앙 코트. 그리고 이곳을 하트세프수트와 그의 아들이 빙 둘러 세운 벽이 나온다. 이 벽 한쪽에는 하트세프수트 여왕의 치세에 대한 내용이 다른 한편에는 그의 아들이었던 투트몬스 3세가 남긴 글이 있다

 

람세스 2세


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집트왕으로써 정복자이며 모세가 유태인들을 이끌고 홍해를 가르고 갈때 괴롭혔던 인물이다. 라메세스(Ramesses) 2세라고도 한다. 아버지 세티 1세 이후의 팔레스타인 정복을 계속하였으며, 치세 5년경에는 카데시에서 히타이트왕 무와타리시와 크게 싸웠으나 결전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후 16년이라는 긴 세월을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으로 시달리다가 BC 1258년 두 나라 사이에 화약이 성립되어 이집트는 시리아를 포기하고 말았다.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279~1213(1212) 신왕국 19왕조 3번째 왕이다. 람세스 2세는 자기 아버지 곁에서 부관과 지명후계자의  자격을 갖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왕이 되기 위한 고도의 훈련을 쌓게 했으며, 그가 왕의 특권 과 명예를 누리도록 했다. 람세스 2세는 청년기가 시작되자 아버지가 하렘에서 간택해준 두 명의 왕후를 받아 들였다. 그들이 바로 이시노프레와 왕의 사랑을 받았던 우아한 네파르타리로서, 그녀들이 낳은 자녀들은 정통 후계자가 되었다. 테베의 귀족 출신으로 보이는 "위대한 왕비. 두 땅의 여주인" 네파르타리- 메렌무트는 람세스 2세 옆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람세스 2세는 우아한 네파르타리의 모습을 묘사하게 하는데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의 섬세한 모습은 그가 세운 온갖 기념물에 새겨져 있다. 네파르타리는 50대에 죽었는데, 람세스 2세는 그녀에게 왕비의 무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주었다. 그는 히타이트족의 공주 두 명과도 정략적인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는 네 명의 딸들과도 결혼했다. 그 중 하나는 이시노프레의 딸로서, 벤 타나트라는 아시아풍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많은 자녀(대장에 기재된 50명이하의 아들과 50 정도의 딸)를 작위를 받은 부유한 관리로 임명했다. 많은수의 왕자는 람세스 2세의 추정 상속자가 되었으나 , 그들은 대개가 람세스 2세가 세상을 뜨기 전에 먼저 죽었다. 열세 번째 아들 메렌프타가 람세스 2세가 죽고 왕위를 계승했고, 람세스 2세의 아 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아들은 "왕자 고고학자" 라고 불리는 이시노프레가 낳은 케 무아세이다. 케무아세는 멤피스에 거주하면서 프타 신의 대사제로서 람세스 2세의 특별한 경 애와 보살핌을 받았다. 제20왕조의 왕들은 그를 모범으로 삼았다. 왕은 대표적인 오리엔트적 전제군주로, 자신의 조상(彫像)을 각지에 남기어 자신을 과시하였다. 적어도 아들 52명을 포함 100명이 넘는 자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5호고분은 이 왕의 가족묘로 추정되고 있다

 

람세스3세 무덤


현재 공개중인 계곡의 무덤 중 가장 긴 무덤이기도 하다. BC1182년 경 신왕국 제20왕조의 무덤으로 조상의 왕 이었던 람세스2세를 가장 많이 닮고져 하였던 왕이다. 람세스 3세 신전의 벽화 그림은 전쟁의 역사를 그렸는데, 대부분 람세스2세 전쟁 그림을 본따 그렸고, 그의 무덤도 람세스2세 무덤과 비슷한 길이와 크기 로 만들었다. 입구에는 진실과 평등의 여신 Maat 가 독수리 날개를 펴고 파피루스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람세스4세 태양신과 만나는 모습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전실의 창고가 10개가 있는데, 각 방에는 그림이 남아있다. 부엌 그림과 나일강에 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물과 포도주를 보관한 항아리 모습, 상아를 쌓아둔 그림, 카페트 그림, 하프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등이 창고 안에 그려져 있다. 무덤이 직선으로 만들어 가다가 지하에 다른 무덤의 공간을 만나면서 무덤은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다시 직선으로 나아간다. 이시스 여신이 오시리스 신을 독수리 날개로 보호하는 모습에 람세스3세가 향유를 바치는 그림이 있다. 함정을 통과하면 판결의 방이 있고, 그곳에서 오시리스로부터 람세스3세 편결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이후는 무덤이 파괴되어 들어갈 수는 없지만, 아주 깊숙한 곳에 현실이 있었다. 람세스3세 석관은 프랑스 르부르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