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 신전 전경
룩소르 신전은 카르낙 신전에 살고 있는 아몬신이 오페트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하는 축제의 장소였다. 고대 테베 시절 오페트 축제는 매년 증수기인 제2월에 11일 동안 열렸다. 이 축제 때 아몬신과 그의 처 밤의 여신 무트, 그리고 그의 아들인 콘수 신은 카르낙 대신전으로부터 룩소르 신전을 방문했다. 이 기간이 바로 일반 백성들이 신전 깊숙이 살고 있는 아몬신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카르낙 대신전 안에 머물던 아몬신과 가족들의 신상은 왕궁악단의 연주 속에 사제들에 의하여 나일강 위에 대기하고 있던 파라오의 배로 옮겨지는 것으로 축제가 시작된다. 파라오가 배에 오르면 성스러운 배는 출항하여 나일강을 남하 룩소르 신전 쪽으로 향한다. 강변에서는 축제를 구경하려는 군중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지금은 룩소르 시에 거주하는 시민의 수가 10만 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테베시절 당시의 인구는 100만 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파라오와 아몬신 일가가 탄 배가 룩소르에 도착하면 성스러운 신상들은 신관들에 의해 룩소르 신전으로 옮겨진다. 아몬신상들이 신전 안에서 왕과 사제들의 제의를 받는 동안, 밖에서는 민중들이 노래와 춤으로 밤을 지새운다. 축제가 끝나는
11일 후에 파라오는 아몬신을 모시러 룩소르 신전에 다시 온다. 파라오의 배는 아몬신을 모시고 카르낙신전으로 향한다. 이때는 파라오가 성장한 군대를 이끌고 강변을 행군하며 아몬신의 배를 호위한다. 아몬신을 카르낙 신전에 다시 안치하는 것으로 11일 동안 계속된 오페트 축제는 막을 내리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 테베시절의 룩소르에서는 많은 제전이 있었다고 전한다. 오페트 축제도 그 제전들 중의 하나로서 이 룩소르 신전이 제전을 치르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셈이다.
(출처- http://www.ohmynews.com/) 오마이뉴스 이승철 기자, 2007.2. 다마스커스가는길
룩소 신전 입구
람세스2세 신전, 신전의 정문격인 대탑문
정면의 두 신상은 람세스2세의 신상이다. 본래는 4개였으나 2개는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그 옆에 세워있는 오벨리스크는 태양신 아몬을 숭배했던 당시의 파라오들이 자신들을 내세우기 위해 기념비로 세워놓은 것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본래 람세스2세가 세운 것으로 양쪽에 한 개씩 두 개가 세워져 있었으나, 그 중의 한 개는 없어지고 한 개만 남아 있다. 북쪽의 것은 프랑스가 가져다가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세워 놓았다.
신전 입구 대탑문 람세스2세 상
야경(출처-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91548)
룩소 신전
카르낙 신전과 연결된 스핑크스 길
거리가 2km로 아몬 신전인 카르낙 신전과 이 룩소르 신전을 연결하는 대로였지만, 지금은 그 일부만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스핑크스
룩소 신전
룩소르 신전은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했고, 그 후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증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나일강을 따라 북쪽으로부터 대탑문, 람세스 2세의 큰 안마당이 자리잡고 있다. 이어서 제2탑문, 아멘호테프 3세의 굵은 기둥들이 쭉쭉 도열한 것 같은 열주랑과 안 마당, 그리고 역시 기둥들이 빽빽하게 자리잡은 다주실 내진으로 이어져 있다.
룩소 박물관
람세스 2세 신전
람세스 2세는 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집트왕으로써 정복자이며 모세가 유태인들을 이끌고 홍해를 가르고 갈때 괴롭혔던 인물이다. 라메세스(Ramesses) 2세라고도 한다. 아버지 세티 1세 이후의 팔레스타인 정복을 계속하였으며, 치세 5년경에는 카데시에서 히타이트왕 무와타리시와 크게 싸웠으나 결전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후 16년이라는 긴 세월을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으로 시달리다가 BC 1258년 두 나라 사이에 화약이 성립되어 이집트는 시리아를 포기하고 말았다.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279~1213(1212) 신왕국 19왕조 3번째 왕이다. 람세스 2세는 자기 아버지 곁에서 부관과 지명후계자의 자격을 갖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왕이 되기 위한 고도의 훈련을 쌓게 했으며, 그가 왕의 특권 과 명예를 누리도록 했다. 람세스 2세는 청년기가 시작되자 아버지가 하렘에서 간택해준 두 명의 왕후를 받아 들였다. 그들이 바로 이시노프레와 왕의 사랑을 받았던 우아한 네파르타리로서, 그녀들이 낳은 자녀들은 정통 후계자가 되었다. 테베의 귀족 출신으로 보이는 "위대한 왕비. 두 땅의 여주인" 네파르타리- 메렌무트는 람세스 2세 옆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람세스 2세는 우아한 네파르타리의 모습을 묘사하게 하는데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의 섬세한 모습은 그가 세운 온갖 기념물에 새겨져 있다. 네파르타리는 50대에 죽었는데, 람세스 2세는 그녀에게 왕비의 무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주었다. 그는 히타이트족의 공주 두 명과도 정략적인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는 네 명의 딸들과도 결혼했다. 그 중 하나는 이시노프레의 딸로서, 벤 타나트라는 아시아풍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많은 자녀(대장에 기재된 50명이하의 아들과 50 정도의 딸)를 작위를 받은 부유한 관리로 임명했다. 많은 수의 왕자는 람세스 2세의 추정 상속자가 되었으나 , 그들은 대개가 람세스 2세가 세상을 뜨기 전에 먼저 죽었다.
열세 번째 아들 메렌프타가 람세스 2세가 죽고 왕위를 계승했고, 람세스 2세의 아 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아들은 "왕자 고고학자" 라고 불리는 이시노프레가 낳은 케 무아세이다. 케무아세는 멤피스에 거주하면서 프타 신의 대사제로서 람세스 2세의 특별한 경 애와 보살핌을 받았다. 제20왕조의 왕들은 그를 모범으로 삼았다.
왕은 대표적인 오리엔트적 전제군주로, 자신의 조상(彫像)을 각지에 남기어 자신을 과시하였다. 적어도 아들 52명을 포함 100명이 넘는 자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5호고분은 이 왕의 가족묘로 추정되고 있다
람세스2세 신전
람세스2세 신전
람세스2세 신전
람세스2세 신전
람세스 2세 신전
람세스2세 좌상
람세스2세 좌상
람세스2세 신전과 아멘호텝3세 신전
아멘호텝3세 신전 높이 16m, 14개의 열주랑, 주전 1390년
아멘호텝3세 신전 열주랑, 주전 1390년
룩소, 아멘호텝3세와 그의 아내
룩소
부조
부조
크리스찬의 흔적인 남아있는 부조, 그리스도상
신전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작은 방들이 나타난다. 이 방들은 후기 정복자들에 의하여 기독교도들의 예배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또 이슬람교도들의 예배장소로 사용된 방들이라고 한다. 신전의 일부는 지금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조
부조
부조
부조(사진원문 출처 - http://oi.uchicago.edu/OI/IS/SANDERS/PHOTOS/EGYPT/LUXOR)
룩소신전 안에 있는 이슬람 초기 왕조때 지어진 작은 이슬람 사원(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오래동안 지어진, 가장 큰 신을 위한 신전이다. BC 2000- BC 330년 1700년 동안 이집트 주신 아몬-라 신을 위하여 당시 모든 파라오는 이 신전에 정성을 다 하였다.
신전의 입구에는 람세스2세가 만든 양머리( 아툼)의 스핑크스 42개 상이 있다. 예전에는 스핑크스상이 카르낙 대신전까지 2열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룩소의 첫 탑문을 마주서면 람세스의 좌상이 거대한 오벨리스크와 함께 있다. 원래는 이곳에는 람세스의 입상과 좌상이 모두 6개가 있었지만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고작 2개이다.
람세스 동상과 더불어 탑문을 지키는 오벨리스크 역시 2개였지만 이집트의 마지막 왕조였던 무하마드 알리 왕조의 무하마드 알리 왕이 1883년 프랑스의 필립 루이 황제에게 오벨리스크 하나를 선물해 지금 현재는 프랑스 파리의 중심지인 콩코드 광장에 하나가 서 있다.
BC 370년 경 만들어진 제 1 탑문(넥타네보1세 건립), 탑문의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오픈 코트, 이동식 스핑크스, 신전을 건축 할 때 사용한 흑 벽돌 더미, 람세스3세 오시리스 신전, 제 2탑문 안쪽의 134개의 열주 기둥 홀( 세티1세 + 람세스2세 건축 함), 투트모스 1세 그리고 합셉수트 여왕의 29.50m 의 오벨리스크, 알렉산더 이복 동생인 필립이 만든 지성소, 투트모스3세의 쥬빌리 홀, 신성한 호수, 스카라비 상 등이 있고, 신전 안에 아몬-라신의 부인인 MUT 여신의 신전과 달(MOON)의 신 콘슈의 신전이 같이 포함되어 있다. 아몬 무트 콘슈는 룩소의 홀리 페밀리(holy family)라 부른다.
카르낙 신전의 걸작은 134개의 열주 홀( 하이포스타일 홀)이 압권이다. 24m 파피루스가 핀 모양의 본 기둥 12개와 19m높이의 파피루스가 피지않는 모습의 기둥 122개 기둥이 빽빽하게 서 있다. 각 기둥에는 람세스2세가 아몬 민 & 아몬 라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조각이 되어 있고, 각 기둥에는 화려한 채색이 남아있다.
카르낙 신전은 거대한 면적에 세워져 있는 신전인데, 1.8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에 너비도 800미터에 이를 정도인데다 10개가 넘는 신전이 안에 있다. 특히 이 신전이 유명한 이유는 람세스 2세뿐만 아니라 중왕국 시대와 신왕국 시대의 역대 파라오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존에 세워진 신전에 다시 다른 신전을 이어 붙이는 식의 건축을 진행한 까닭에 규모, 자체도 커지고 신전 안의 구조도 대단히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런 카르낙 대신전 역시 시작은 스핑크스 거리로부터. 하지만 이곳의 스핑크스는 양의 머리를 하고 있다.
제 1탑문을 지나면 이 지방 최고의 신이었던 아문 신을 위한 아문 대신전이 나온다. 좌우로는 아문의 아내와 아들이었던 무트 여신과 콘수 신을 위한 사당이 나오고, 그 다음은 최대 23미터부터 15미터에 이르는 높이에 지름이 3미터에 이르는 기둥들이 134개나 늘어 선 대열주실이 있다. 이어 람세스 3세의 거상이 나타나고, 람세스 3세 신전(제 20왕조), 대 히포스타일 홀(제 19왕조), 투스모스 3세의 주빌레 신전(축제의 홀)등이 계속해서 웅장한 모습으로 이어진다.
투토몬스 3세 신전은 탑문과 신전이 있다, 투토몬스 3세의 어머니이자 이집트가 손꼽는 3대 여걸 파라오 중의 하나였던 하트세프수트 여왕이 지었다는 오벨리스크 등이 나오고, 신전의 최고 핵심인 지성소가 나온다.
그 뒤로는 넓게 자리를 잡고 있는 중앙 코트. 그리고 이곳을 하트세프수트와 그의 아들이 빙 둘러 세운 벽이 나온다. 이 벽 한쪽에는 하트세프수트 여왕의 치세에 대한 내용이 다른 한편에는 그의 아들이었던 투트몬스 3세가 남긴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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