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의 무덤
베다니의 동굴 집 내부
나사로의 부활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등장합니다. 야고보에 관한 상세한 기록도 없고, 더구나 그는 한 마디 발언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나사로가 중요한 인물로 느껴지는 것은 죽었던 그가 생명의 주 예수에 의해 부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요 11:1~2).
그 누이들은 요단강 건너편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에 계신 예수에게 사람을 보내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하며 어서 오시라고 청하였습니다.
이들 남매가 살고 있는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동쪽 감람산 건너편 약 6km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베다니에서 예수가 계시는 요단강 건너편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시던 땅까지는 걸어서 이틀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나사로의 누이들이 보낸 사람이 예수께 왔을 때는 나사로가 이미 죽은 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 11:4).
주 예수는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셨습니다. 주 그리스도는 때로 우리의 간구하는 바에 대해 일부러 늦게 응답하신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또한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예수께서 이틀 뒤 제자들에게 베다니로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은 의아해 하며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제서야 예수께서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예수와 제자들이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나사로는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를 맞이하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하고 원망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하고 대답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6).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때 마리아가 예수를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며 울었습니다. 거기 함께 있던 사람들도 울었습니다. 예수께서도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만일 "나사로가 부활하리라는 것을 아시는 예수께서 왜 눈물을 흘리셨는가"하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떠받드는 나머지 예수를 피도 눈물도 없고 슬픔과 고통도 모르는 존재, 사람으로서의 감정이 제거된 초인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사랑하는 나사로의 죽음을 두고 흘리신 예수의 눈물은 죽음이라는 슬픔에 부닥친 예수의 깊은 동정의 눈물이며 공감의 눈물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35). 이 구절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다.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가지고서는 결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 없습니다.
주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신 것은 형식적인 조문객으로서가 아니라 죽음과 한 판 겨루려는 투사로서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잔악한 죽음과 맞서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인 사망"(고전 15:16)과 싸워 이기시기 위해서 가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은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하였고, 어떤 이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나사로의 무덤에 가십니다. 예수께서 비통히 여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는 인간의 신앙까지 힘이 없게 만들고, 인간을 절망과 슬픔의 밑바닥에 던져 버리는 죽음의 권세에 대해 비통히 여기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자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39절).
"돌을 옮겨 놓으라." 그리스도께서 무덤 앞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물며 "부활이요 생명이신"(25절) 예수께서 생명과 죽음을 경계짓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면 그것은 나사로에게 크나큰 비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원수이며 가장 큰 슬픔인 죽음을 두번씩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때문에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와 계시기 때문에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경우 예수께서 지적하시는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죽음은 결코 모든 것의 끝이 아니며 최후가 아닙니다. 때문에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침내 무덤을 막았던 돌은 옮겨졌습니다. 모든 사람의 경우 육체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은 결코 최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보임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신 것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1~42).
무덤의 돌문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나누는 두 세계 사이의 문입니다. 그 문은 강철 같이 무겁고, 무덤은 이를테면 인생의 종착역인 것입니다. 이제 그 무덤의 돌문이 옮겨졌습니다. 예수께서 무덤 안에 죽어서 누워 있는 자를 향해 소리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43절). 이 말씀은 헬라어 원어로 "밖으로 나오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캄캄한 죽음의 세계인 무덤 속에서 광명한 생명의 세계인 밖으로 나오라는 뜻인 것입니다.
나흘 동안 무덤에 죽은 시체로 누워 있으며 썩은 냄새가 나던 나사로는 예수의 명령에 따라 부활하여, "수족을 베로 동인 채, 얼굴은 수건에 싸인 채"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
예수와 나사로의 참다운 만남은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 이전의 예수와 나사로의 관계에 관해서는 복음서에 한 마디의 기록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사로의 부활 사건 이후에 베다니에서 예수를 위한 축하 잔치가 열렸습니다. 이 때 나사로 부활 사건에 관한 여러 가지 반응이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 "마르다는 일을 하고"(요 12:2). 마르다는 예수를 대접할 음식을 차리는 일, 곧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으로써 주 예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둘째,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3절).
셋째,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5절). 예수의 제자인 가룟 유다는 위선의 탈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2절). 그는 끝까지 아무 말이 없는 부활의 증인 노릇을 하였습니다.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11절). 이러한 구원의 역사 현장인 베다니의 나사로의 무덤을 성지 순례시 일정에 제외되는 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시간이 가능하다면 베다니의 나사로 무덤을 답사하여 구원사역의 현장에서 부활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 성지순례의 목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령천 교회 김용규 선교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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