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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1세 롱기마누스

영국신사77 2010. 4. 26. 13:14

        아르타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1세[Artaxerxes I]롱기마누스

 

                                                       

  ?~BC 425 엘람 왕국 수사.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BC 465~425 재위, 40년간).

  별명은 그리스어로 마크로케이르('긴 손')였고, 라틴어로는 롱기마누스였다.

 

  그는 크세르크세스 1세와 아메스트리스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지만, 크세르크세스 1세를 죽인 근위대장 아르타바누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몇 개월 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아르타바누스와 육박전을 벌여 그를 죽였다.

 

  그의 통치 기간은 대체로 평화로웠지만, 몇 차례의 반란이 있었다.

 

  첫번째는 그의 동생인 박트리아 사트라프(총독)의 반란이었다. 더욱 위험했던 것은 이나로스의 주도로 일어난 이집트의 반란이었다. 그는 아테네의 도움을 받았다. 시리아 사트라프인 메가비주스는 오랜 싸움(BC 460~454, 6년간) 끝에, 이집트에서 아케메네스 왕조의 지배를 회복했다.

 

  재위 17년째인 BC 448년에, 아케메네스 왕조와 아테네 사이의 전쟁은 끝났고, 그는 사모스와 펠로폰네소스 간의 전쟁에서 중립을 지켜, 유대인에 대하여 관용정책을 폈다.

 

  즉,  아닥사스다 왕은 재위 20년 째인 BC 445년[느혜미야 1:1, 2:1] 왕의 술관원이었던 느혜미야를 유다 땅 총독으로 임명[느혜미야 5:14]하고,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하여 왕의 허락을 얻은 느혜미야 총독은 주변의 여러 방해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52일만에 예루살렘 성의 중건을 완공하였다[느혜미야 6:15].

 

 그가 세운 페르세폴리스의 명문에는, 아버지의 공식 알현실을 완공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무덤은 낙시에루스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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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Artaxerxes I, ?~BC 425]

 

 

 고대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왕조의 왕(재위 BC 465∼BC 425).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이다. 부왕을 암살한 아르타바누스에 의하여 제위에 올랐으나, 얼마 후 그를 죽이고, 이집트박트리아 등의 난을 평정하였다.

 

 BC 448년에는 칼리아스화약을 성립시켜 아테네와의 화평에 힘썼다.

  헤로도토스데모크리토스가 당시의 제국을 여행하여 그 지식을 그리스인에게 전하고, 또한 그리스 미술의 양식을 동방으로 전하기도 하여, 동서 문화교류로 왕의 치세는 고대 페르시아제국 융성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시기였다.

 

 그러나 재위 17년째인 BC 448년 키프로스섬 앞바다에서 키몬이 거느리는 아테네 해군에 패하여 트라키아 등지에서 세력을 상실하여, 그 이후에 고대 페르시아제국은 서서히 쇠퇴하였다.

 

 특히 그는 오른팔이 왼팔보다 길어 '롱기마누스(긴 팔)'라는 별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