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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반도 대운하-일본의 대륙 침략 무기

영국신사77 2009. 10. 13. 13:51

 

아이비스 에너지 전략 연구소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상황에서,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대운하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정부는 '대운하' 대신 '4대강 정비'를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운하의 명분과 추진 의사를 계속적으로 주장하며 그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시민사회에서는 4대강사업이 대운하 사업의 전단계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대운하에 관하여 경제적 타당성과 효과에 대한 의문, 그리고 국민여론의 반대라는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추진하려고 하는데, 한번쯤은 다른 각도에서 그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본 연구소는 대운하의 '군사전략적 이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동북아 군사 지정학적 관점에서 현 정부의 대운하 계획을 재검토해보려고 한다. 

 

 

1.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지중해'로서의 황해(서해)

   

 

보통 '지중해'라고 하면,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터키) 대륙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가리키는데 쓰인다.

그러나, 고유명사나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지중해를 '땅(地) 가운데(中)에 있는 바다(海)'라는 더 일반적인 의미로 이해한다면, 지중해는 세계 도처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동·서·남해와 동중국해로 연결된 바다도 아시아대륙과 일본 열도로 둘러싸인 지중해의 일종이 될 수 있다.(소위 '동북아 지중해').
문제는 지중해의 특성상, 이런 지역은 여러 나라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활발한 교류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해상교역권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도 잦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갈등이 극단으로 발전하면 전쟁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 때 유럽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것이 로마였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경우, 장보고를 예로 들 수 있다.

현재 동북아 지중해를 둘러싸고 격돌하고 있는 국가들은 일본·중국·러시아,미국 등 강국들이다. 

이 때문에 동북아 지중해는 유럽 지중해보다 갈등의 잠재력이 더 높다고 할 수도 있다. 

실제 이 지역을 둘러싼 갈등은 과거 100여년 사이에 여러차례 폭발했다.

    

우선, 과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주 전장 무대가 황해(서해)지역이었다.

1894년에서 1895년 사이에 벌어졌던 청일전쟁 상황을 나타낸 다음 자료 그림을 살펴보길 바란다. 

 

 

 

 

 

 

                                                                                     청일전쟁도

 

 

 

이 자료 그림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청일전쟁은 기본적으로 황해(서해)를 둘러싼 해전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황해(서해)를 이용하여 중국 본토를 공략했다. 

당시 청나라는 이홍장의 주도하에 북양해군을 구성했는데, 북양해군은 당시 최고의 규모를 자랑했던 전함 2척(배수량 7,300톤 급)을 독일에서 구입하였고, 이외 다른 부속 전함 50여척을 거느렸다.

문제는 북양해군의 함포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여, 외국으로부터 청나라의 북양해군에 없던 최신 속사포 155문을 구입하여 함대를 무장시켰고, 이 덕분에 북양해군을 궤멸시키기에 이른다.

러일전쟁의 경우도 주 무대는 황해였다.

러일전쟁 상황을 알려주는 다음의 그림자료를 살펴봐도, 역시 일본군은 황해를 이용해 한반도 북부와 중국 요령성 지역의 러시아군을 공격했음을 알 수 있다. 

(쓰시마 인근에서 벌어진 러시아 발트함대와 일본 해군과의 해전은 이러한 큰 그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러일전쟁도

 

 

 

한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역사적으로 일본 등 강력한 해군에 기반한 세력이 대륙을 공격할 경우, 한반도 서해안, 특히 인천 일대는 동북아시아 지정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미 인천은 지난 19세기 제물포 개항(1883)을 전후로 전개된 한국의 정치적 사건들에서 가장 첨예한 지역이었다. 

인천은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운양호사건(1875)등, 제국주의 세력이 가장 먼저 침략을 단행한 곳이었으며,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의 경우에도 모두 인천과 관련돼있다.

 

앞서 언급한 청일 전쟁의 경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1894년 5월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청·일 양국은 조선에서 자신의 세력을 확대할 중요한 기회라고 판단했다.

청의 경우, 북양대신 리훙장(李鴻章)이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군함 2척을 인천에 파견했으며, 이어서 육군 병력 2천400명을 출동시켜 한반도 서해안의 아산에 상륙시켰다. 

청 군함이 인천에 도착하자 이에 질세라 일본 정부도 거류민 보호라는 명목으로 군함 2척을 파견했다.

그러나 일본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직후인 5월부터 이미 조선에 대한 무력침략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인천 전역은 일본군의 병영이 되다시피 했는데, 일본군은 이곳을 대륙을 향한 상륙거점이자 물자보급기지로서 활용했다.

인천항에 보내진 물자가 너무 많아지자, 일본군은 월미도 동북단의 1만 평 대지에 불법적으로 새로운 창고를 설치하기도 했다.

청과 협상이 결렬되자 이미 군사행동을 결심하고 있던 일본은 경복궁에 난입해 조선 조정을 장악했고, 같은 날 일본군 연합함대는 아산만에서 청국군함에 포격을 가해 제원호(濟遠號) 등을 침몰시켰다. (풍도 해전)

이후 일본군은 아산과 성환지역에서 청군을 연이어 격파했고 계속 이어지는 평양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두었으며 전쟁을 만주로 확대했다.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서해안, 특히, 인천지역을 장악하는게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준 첫번째 사례였던 셈이다.

나아가서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한 중국 내 교두보 확보를 위해서도 서해의 제해권 장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점은 러일전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러일전쟁의 경우,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인천항에는 정황 판단과 공사관 호위를 위해 러시아 군함 바리야크호(Variak), 코레츠(Koryeth)호가 입항 있었다.

일본 군함은 1904년 2월 8일 오후 제물포(현 인천)에 입항해 병력을 상륙시켰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일본측으로부터 국교단절 통고를 받은 러시아는 중국 뤼순(여순)에서 인천항의 러시아 군함에 국교단절과 개전사실을 통고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국제법의 원칙을 무시하고 조선의 기간 전신망인 경의전선과 경인전선을 전쟁 전부터 불법적으로 장악, 이 전신선을 차단해 정보의 전달을 막았다.

인천항의 두 러시아 군함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전투태세 역시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2월 9일, 일본함대사령관의 최후통첩을 받은 러시아 군함의 두 함장은 결국 교전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인천의 소월미도 부근에 정박 중이던 두 러시아 군함은 일본함대가 대기 중인 팔미도로 항진, 전투가 전개됐다.

그러나 약 40분간의 포격후에 러시아 군함들은 큰 손상을 입고 패주해 다시 소월미도 부근으로 후퇴해야만 했다.

이윽고 일본군함에 포위되자 일본군에게 함선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러시아군은 항복을 거부한 채, 자국 함선을 자폭시켰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을 필두로 한 유엔군이 전황을 역전시킨 곳도 바로 한반도 서해안, 인천이었다.

 

 

 

2. 현재의 황해 제해권과 중-일 갈등

 

 

 

 

 

                                   

                                  중국 해군의 최대 영향권-물론 일본의 제해권은 이보다 훨씬 더 넓다 점에 유의.

 

 

 

 

그렇다면 21세기 동북아 지중해의 제해권은 어떨까?

미국을 제외한다면, 현재 동북아지중해의 해양 패권 국가는 누가 뭐래도 일본이다.

일본은 2010년 한국이 이루고자 하는 해군력의 네 배가 넘는 전력을 이미 현 시점에서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더구나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다.

그러나, 달라진 점도 있는데, 과거처럼 황해권이 더이상 '무주공산'이 아니란 점이다. 

최근 중국은 해군력 강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적어도 황해에 대한 중국측의 제해권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심지어 중국은 연안 적극 방어에서 원양대군으로 발전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 본토로 수송되는 석유 등의 에너지 수송로의 안전을 확보하려하는 목적이 내포되어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연구소 <보이지 않는 중국-미국 군사경쟁: 수단대통령 체포에서 남중국해 대치까지>참조:  http://blog.daum.net/sibad/58 )

황해를 둘러싼 전시상태가 발생하면 중국은 단순히 중국쪽 해안의 소극적 방어에만 머물지 않고, 한반도 인근에까지 적극적 차단을 추진하려 계획하고 있다.

그래야만 타국 함대의 중국 북부 본토 진입을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 지역의 제해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지난 시절 값비싼 댓가를 치루면서 배웠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한국전쟁 당시 황해에서 중국측이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은 중국 해군이 너무나 미약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타국의 군함들이 제 집 드나들 듯 황해를 들락거리며 중국의 수도를 위협했고, 만주 지역으로 침공해와 중국을 양분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주목할 점은 몇 년전 벌어진 중국과 러시아간 대규모 군사훈련이다.

지난 2005년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중국과 러시아 양국이 최초이자 육․해․공․해병대까지 참여하는 사상 최대의 합동 군사훈련을 산동반도와 서해상에서 실시했었다.

‘평화의 사명 2005’ 라고 이름붙여진 이번 훈련의 규모는 중국측 8000명, 러시아측 1800명이었으며, 최첨단 무기까지 동원돼 실전을 방불하는 강도 높은 훈련이었다.

이 훈련의 경비는 전액을 중국측이 부담하였는데, 훈련은 3단계로 작전계획, 방력의 연합(운송, 통신, 지휘),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 주도하의 상륙작전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상륙작전의 경우, 일각에서는 대만 무력 충돌의 경우를 상정한 것이라고 하는 평가도 있지만, 이 훈련이 인천을 마주한 황해상의 산동반도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을 유념해야한다. 

다른 곳도 아니고 중국의 입장에서는 '내해'라고 여길 수도 있는 황해상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는 것은, 중국이 황해를 둘러싼 무력 충돌에서 더이상 소극적 방어에서 머물지 않고 반격까지 하겠다는 의지로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황해상에서 미군과 중국간의 대치가 벌어졌는데, 이전과 다르게 중국측의 태도가 굉장히 완강했는데, 이것도 앞서 언급한 중국측의 의지와 연관지어 이해해야한다.       
심지어 중국 잠수함 한 척이 일본 남부와 대만 사이에서 훈련 중인 미국 해군 함대의 대잠 경계망을 뚫고 함대 중심에 자리 잡은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 근처까지 접근하는 일이 발생하여 미국을 경악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중국 해군 기지 분포-다른 두 곳의 기지와 달리 칭다오에 위치한 북해함대 규모나 장비가 헐씬 집중되어있다는 점 주목

 

 

 

 

이러한 상황은 동북아 패권을 목표로 하는 일본에게 있어 유사시 대륙진출의 가능성 제약이라는 점에서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황해가 과거처럼 더이상 무주공산도 아닐 뿐더러, 이제는 중국측이 적극적으로 황해를 방어하려고 하기 때문에, 막상 전시상태가 되면 황해는 일본 해군의 입장에서도 진입하기 매우 위험한 지역이 되기 때문이다. 

수송선단들은 물론 일본 군함들의 안전도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차피 항공기 공격은 제한적 효과외에는 거둘 수 없고, 중국 연안을 집중 타격하고 병력을 상륙시키려면, 어떤 식으로든 군함들이 중국측의 해상 공격을 피하면서 한반도 서해안에 포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이 점은 좀 더 큰 맥락에서도 조망할 수도 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 해군기지는 세 곳으로 나뉘어있다. 

산동반도의 칭다오에 있는 북해함대, 상하이에 주둔 중인 동해함대, 하이난 섬 인근의 남해 함대가 그것이다.

황해에서 제해권을 둘러싼 무력충돌이 발생한다면, 북해함대가 동원될 것이다.

(동해함대는 대만문제에 개입한다.)

대양해군으로 발돋음하면서 에너지 수송로를 보장하기위해 해군의 작전 범위를 점차 넓히려 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만약 수도인 베이징에 가까운 황해 일대에 일본의 우수한 해상 전력들이 집중되어 이것은 커다란 위협이다. 

만약 서해 제해권이 위협당하면, 동해함대도 대만 사태에만 집중하기 어렵고, 연이어 남해 함대의 운신에도 제약을 가할 것이다. 

적군이 기지를 떠나 원정을 가려할 때, 적군 기지 근처에 잠복하여 공격을 계획하는 효과와 같은 것이다.   

 

 

3. 동북아 군사적 지정학적 관점에서 본 한반도 대운하 계획

 

 

운하는 경제적 목적 말고도 군사적 이용을 목적으로 건설된 경우도 많다. 

수에즈 운하도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 수탈에 중요한 군사적 도구가 되었으며, 파나마 운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국은 하와이를 합병하고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필리핀과 괌을 획득하면서 미국 동부 해안에서 중앙아메리카 지협을 횡단하여 태평양으로 나가기 위한 항로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독일의 킬 운하의 경우도 덴마크를 돌아 가야하는 독일 해군의 편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캐나다 오타와 시가지 남동쪽에 위치한 리도 운하도 애초 1832년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최초 플로리다 반도 관통 계획도 1567년, 스페인 국왕 필립 2세가 인근 해역에 자주 출몰하는 해적과, 허리케인을 포함한 각종 기상 악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수로를 원했기에 제안한 것이다. 

한반도의 운하 논의도 현정부의 운하가 처음은 아니었다.

우석훈씨가 지은 <직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에 따르면, 사실 지난 10년동안 한국에서 진행된 모든 운하에 대한 계획과 상상은 1960-70년대 김일성 전 주석의 아이디어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

즉, 반도국가인 대한민국은 북방 국경선이 휴전선으로 막혀있어 사실상 섬나라가 된 상황이며, 북한도 비록 대륙과 이어졌지만 분단으로 인해 새로운 지정학적 문제를 안게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서해안과 동해안이 끊긴 구조가 되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 해군은 서해안과 동해안에 따로 해군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는데, 북한 입장에서는 동서를 관통하는 수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김일성 전 주석이 이런 수로에 집착했다고 한다.

이처럼 북한의 운하 논의도 애초부터 군사적 필요에서 출발했는데, 한국의 운하 논의는 순전히 경제적인 동기에서만 출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다음의 대운하 계획도를 보다시피 대운하의 종착역은 역사적으로 대륙 진출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인천 근방이다. (경인운하 포함)

나머지 부차적인 종착지인 군산과 목포도 전부 중국 동해안을 바라보고 있다.

애초 대운하 계획에는 중국 진출 기지로서의 무역적 가치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이 단순히 무역적 측면에만 한정될 것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대운하 계획도

 

 

 

그리고, 지도를 보다시피 대운하의 출발지점은 부산 근방이고 이 지역은 한국과 일본 정부하의 협의 결과에 따라선 일본 해군 진입이 가능한 곳이다. 

따라서 황해 지역, 혹은 북한이나 중국을 둘러싼 무력 충돌 사태 발생 시, 일본 해군은 대운하를 이용하면, 중국 해군의 공격 위험성이 높은 한반도 서해안을 돌지 않고도 손쉽게 중국과 북한의 바로 턱밑에 도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전의 러일전쟁 당시에 일본은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쓰시마 섬을 둘로 나누는 공사를 했다.) 

만약 중국측(혹은 북한)이 대운하를 통한 군함 운항을 저지하려면 필연적으로 한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감수해야한다.

서해안 공해상, 설사 한국 영해에서 운항중인 일본군함이나 수송선단을 중국이 공격하더라도 당장은 한국과의 무력 충돌을 야기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엄연히 한국의 영토안에 존재하는 대운하를 공격한다는 것은 바로 한국과의 개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이나 미국과의 충돌시 최대한 한국을 중립화시켜야할 중국의 입장에선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설사 중국측이 한국 정부와의 충돌을 감수하고라도 대운하의 일본군함의 이동을 저지하려한다쳐도 당장은 군용기나 미사일을 동원한 공격외에는 방법이 없는데, 이것도 사실 그리 간단한 방법이 아니다.  

잠수함을 서해안 출구를 통해 운하내에 투입시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대운하의 군사적 전용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중국에 대항할 대리자로서 일본에게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 상황과 함께 현 한국 정부가 전임 정부와 달리 상대적으로 중국과는 거리를 두면서 일본과 밀착하는 방향으로 외교정책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 할 것이다.

(현 한국 정부는 이전 군사정권시절과도 달리 근현대사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는 역사 수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한반도 대운하와 나란히 추진되거나 계획되고 있는 것도 아울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한국 정부와의 공식적인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일본과 한반도 남단을 연결하는 한일 해저터널을 뚫고 있다.

한일 해저터널의 경우, 일본측의 공식적 설명과 달리 전시상태가 발생했을 경우에 각종 군수물자와 병력을 이동시키는데 활용될 여지가 많은데, 현 한국정부의 공식적 입장이 없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또한, 현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명목으로 북한에 대한 해상봉쇄도 할 수 있는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 참여를 선언했다. 

명목상 북한을 겨냥한 이 구상의 적용을 위해서는 한국만이 아니라 이 구상에 매우 적극적인 일본 해군의 황해상 동원이 필수적이다.

(또한,일본의 모 정치인이 제주도를 사버리자고 제안했던 것도 제주도가 지니는 중국과의 해상패권상의 요충지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한일 해저터널과 PSI, 한반도 대운하 각각은 동북아, 좁게는 한반도와 황해상의 무력 충돌 발생시 상호 보완효과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즉, 이 세가지를 연결해보면, 대규모 병력과 물자는 한일 해저터널과 한반도 육상 교통수단을 이용하되, 일본 군함이나 수송선은 안전한 대운하를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용기는 이에 비해 이동이 훨씬 쉽다) 

여기서 운하를 통한 이동 속도 문제는 전체적인 군사전략상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 해군측의 공격을 받지 않고 일본 해군이 한반도 서해안에 교두보를 확보하면서 일본 본토와 왕래할 수 있다면, 시간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인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남해를 도는 경우와도 비교해 볼 때 그 이동 시간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현 정부의 대운하 계획이 동북아시아 지정학을 고려한 군사적 이용 가능성을 아예 배제했다고 보기 힘들 것 같다.

물론, 야기될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이런 류의 사업은 흔히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목적으로 포장된다는 점에서 확증은 없다. 

다만, 현 정부의 대운하 계획에 덧붙여진 다양한 건설 명분과 이유들이 연이어 설득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현 정부가 대운하 계획을 강행하는 이유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찾아보는 것도 무익하지는 않을 것같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대운하의 군사적 이용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제2의 청일전쟁'에서 한반도가 대리 전장터가 되는 결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로 지난 2007년 중국이 산동반도에 건설 계획을 발표한 라이자오(萊膠) 대운하 루트를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칭다오는 중국 북해함대가 위치한 곳인데, 이 루트를 이용하면 산동반도를 돌지 않고도 수도인 발해만의 북경 인근까지 바로 이동가능하다. 

중국측의 이 계획이 발표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지난  2005년 10월 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경부운하계획을 발표한 뒤다.   

관련기사: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view.html?cateid=1046&newsid=20070604090513664&p=segye

     

 

출처 : 아이비스 에너지 전략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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