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聖地 · 선교사/◆양화진묘원· 선교사

언더우드 양화진 묘비

영국신사77 2009. 9. 13. 11:31

                                                                     언더우드 선교사 가족 묘

 

                                                                            언더우드 선교사 묘-2

 

 

                                                                            언더우드 선교사 묘-4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 홀튼 의료선교사의 묘비. 언더우드 선교사 가족 묘의 제일 중앙 앞쪽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언더우드 선교사의 묘비로 착각하기 쉬우며, 또한 대부분의 다른 인터넷 · 서적 사진 자료에도  언더우드 선교사의 묘비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언더우드 선교사에 관한 소개는 이 묘비 뒷면에 있다.

 묘비 제일 아랫쪽에 '원두우 목사 미국에서 이곳에 이장하다 1999.5.20.'이란  글귀가 보인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 홀튼 의료선교사의 묘비의 뒷면에 있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묘비.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 홀튼

 묘비의 뒷면에 그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묘가 1999년에 가서야  미국에서 이곳 양화진으로 이장되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1916년 언더우드가 미국에서 소천하자 당연히 그의 자녀들이 한국 땅에 그의 묘를 이장할려고 하였으나,  그의 부인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 의료선교사였던 릴리아스 홀튼이 나서서 이장하는 비용으로 가난한 한국에  학교를 세우는 것이 더 고인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반대의견을 냄으로써, 그 비용으로 한국에 유치원이 세워졌던 것이다.                 

                          묘비 맨 아래  1999년 5월 20일에 이곳으로 이장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 릴리아스 홀튼 의료선교사의 묘비 뒷면의 맨 아랫쪽.  

                          묘비 맨 아래  1999년 5월 20일에 언더우드 선교사를 이곳으로 이장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좌측은 언더우드의 부인 홀튼 의료선교사 묘비의 뒷면이고, 우측은 언더우드 2세 원한경의 부인 에델 V. 와그너(Ethel Van Wagoner 한국명 : 태요한)의 묘비이다. 와그너 부인은 연희대 교수로 재직시, 서울에서 1949년 3월 17일 공산당 청년들의 총에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