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태인들만큼 험난한 역사를 견디어 내고 살아남은 민족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아브라함시대에서부터 생각해봐도 지금까지 어림잡아 4,000년의 역사를 지녔다. 그러나 그 가운데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기간은 불과 4분의 1일이 채 되지 않는다. 3,000년 이상 노예로, 포로로, 그리고 강대국의 속국으로 또는 나라 잃은 민족으로 압제와 박해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민족이다. 그러니 유태인의 민족사는 고난의 역사요, 박해 속에서 살아남는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고난과 박해의 흔적들은 대부분 파괴되고 불에 타 흙속에 뭍이거나,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히틀러에게 600만 명의 유태인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예루살렘에는 이 고난의 사료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죽음과 고난을 추모하는 곳이 있다. 그곳이 예루살렘에 위치한 ‘야드바셈’이다.
야드 바쉠은 '육백만 학살추모관'이라고 부르는데, ‘야드바셈‘이란 히브리어로 ‘기억하다’, 또는 ‘기념하다’를 의미하는 야드와 ‘이름’을 의미하는 셈의 합성어로 “영원한 기념”이란 뜻이다. 야드 바쉠이라는 이름은,“내 성안에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사56:5)”에서 나온 말이다.
이곳을 처음 둘러보는 동안 나의 머리는 질문들로 복잡했다. 이들은 왜 이 부끄러울 수 있는 고난의 역사를 이처럼 철저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가?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되는 이름들은 이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들의 신은 왜 이 민족에게 이처럼 험난한 고통을 허락했으며 고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향한 이들의 신앙은 무엇이었는가? 난 이곳을 찾을 때마다 이와 같은 의문들을 품고 정문을 들어섰다.
정문을 통과하면 오른쪽 산기슭에 6개의 촛대로 만들어진 메노라(등대)가 보인다. 6백만 명의 유태인 희생자를 상징하는 메노라이다. 이들의 역사를 통해보면 메노라는 언제, 어디서든지 유태인의 상징이었다. 그러니 한줌 불꽃처럼 사라진 6백만 명의 유태인을 기념하는 이곳 입구에서 메노라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메노라를 지나 산기슭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유태인으로 태어났기에 죽어야만 했던 백오십만 명의 어린이들을 위한 기념관을 만난다. 기념관 입구와 주변에는 녹슨 철근과 무참하게 깨어져버린 돌들이 지키고 있다. 저것이 바로 피지도 못하고 죽어간 어린이들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기념관으로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기면 다섯 개의 촛불이 유리에 반사되어 마치 수많은 별들이 떠도는 우주 공간을 만들어 낸다. 별이 되어 우주를 떠다니는 어린 영혼들을 상징한다. 어둠속에서 어린 아이의 이름, 나이, 죽은 장소가 들려온다.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묵묵히 서있는 유태인들의 모습에서 한없는 슬픔과 고뇌를 만나게 되는 곳이다.

어린이 기념관을 빠져나와 걷노라면 우리는 이곳저곳에 세워진 조각상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유태인이 아니면서도 게토의 유태인 어린이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포로수용소로 끌려갔던 코르작을 기념하는 조각상을 만난다. 이들은 우리가 지나는 길 가에 코르작의 조각상을 세워놓고 그 이름을 기념하고 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숙연해 진다. 말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이곳저곳에서 만나는 조각상들과 침묵의 대화가 오간 탓일 것이다.

역사관으로 가는 길 양 옆에는 기념식수가 심겨져 있다.
나무들 하나마다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유태인들을 구하기 위해 인간애를 발휘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있다.
유태인들은 이들을 참된 의인으로 기억하고 기념한다. 그래서 이 길을 ‘의인의 길’이라고 부른다.
역사관에 들어서면 학대받는 유태인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하여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하는 모습까지 시대별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히틀러의 정책에 캐톨릭 신부들이 손을 들어 지지하는 모습이 사진 속에 너무나 뚜렷하다.
황색별을 단 사람들, 거리에서 죽어있는 사람들, 전염병으로 떼죽음을 당한 시체들, 형장으로 끌려가는 유태인 행렬, 총살당하는 사람들, 가스실로 끌려가는 사람들이다.
전범들을 이스라엘 법정에서 재판하는 장면,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버린 사람들, 죽은 사람들이 남겨놓은 수북하게 싸인 안경테와 신발 더미가 보였다. 참으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이처럼 비참한 역사를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보이며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의 물음에 해답을 찾기에 바빴다. 나는 나의 발을 멈추게 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게토에서 목숨을 담보로 안식일을 지키며 할례를 행하는 모습, 이스라엘 법정에서 전범들을 재판하는 모습, 그리고 역사관 끝에서 만났던 성서 두루마리와 길가에 세워진 의인들의 명패였다.
성경두루마리는
그들의 고백이며 간증이었던 것이다.
박해와 고난의 한 가운데에서
성경은 그들의 힘이 되었고,
삶의 목표였으며,
그들의 소망이었으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는
고백인 것이다.
그들이 이 모든 것들을 드러내 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들이 이 모든 상처를 기억함에도 용서할 수 있는 여유를 나는 전범들에 대한 철저한 심판과 의로운 사람들에 대한 감사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전범자들의 잘못에 대하여 철저하게 심판했고, 최고 전범자였던 아이크만에 대해서는 실정법을 초월해 사형을 언도했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닐지라도 자신들을 돕고, 위험을 함께했던 사람들을 의인으로 부르고 기억한다.
그 결과, 숨기기보다는 드러내 놓으며, 보복하기 보다는 용서하며, 아프지만 기억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교훈의 현장으로 삼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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