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자료실]/♣北部(갈릴리) 이스라엘

성 지 순 례

영국신사77 2009. 3. 2. 22:36
                   성  지   순  례
 
가버나움(갈릴리) | 성지순례

 
가버나움 전경


갈릴리 호수를 배경으로 회당 잔해 , 주거구역, 베드로의 집을 덮고 있는 새 교회 등이

보인다.



가버나움 회당 유적

 


 회당 안터

 


회당 표지석

 


가버나움 회당 옆에 세워진 새 교회, 베드로의 집 터위이다

 


가버나움 새 교회 내부

 

가버나움에는 예수님 당시 세관이 있었고, 로마군대가 주둔하였으며, 나사렛에서 배척받은

예수가 전도의 중심지로 삼았던 곳이다.이곳에서 예수님은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며, 12 제자를

정하셨고 많은 설교를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언대로 6세기에 성읍이 몰락하여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가이사랴 빌립보 
2005.05.05


 


가이사라 빌립보 해변

 


헤롯 궁전

 


가이사라 빌립보 북쪽

 


가이사라 빌립보 유적지

 


 


가이사라 빌립보

 

가이사랴 빌립보


이스라엘의 최북단이자 요단강의 주요 원류중 하나 근처인 헤르몬산(중앙) 기슭에 위치해있는 가이사랴 빌립보는 요단 계곡의 상부 북쪽 끝을 감싸고 있다.이것은 아마 수11:17, 삿 3:3, 대상 5:23의 바알 갓이나 바알 헤르몬 일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신 판의 이름을 따라 이것을 Paneas라고 불렀다.(‘Banias'는 아랍어로 잘못 굳어진 것이다). BC 198년에 안티오쿠스 3세는 Paneas에서 그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가 팔레스타인을 통치할 수 있게 해준 큰 승리를 거둔다. Paneas의 이름은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헤롯대왕에 의해 가이샤랴로 바뀌었고 (눅 2:1)헤롯의 아들인 빌립에 의해 가이사랴 빌립보로 바뀌었다. 마태와 마가가 여기에서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록하였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 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3-16)

가이사랴는 600년이 넘도록 로마-비잔틴의 지방도시였다. 고대 로마 경기장의 외형도는 AD 2세기경에 만들어졌는데 1500피트로 측정된 그 길이는 오늘날 헤로디안의 동쪽 바나나필드에서 여전히 볼 수 있다. 로마 행정관의 비문은, 본디오 빌라도, 가이사랴의 발굴 현장에서 발견되어졌다. 고고학자들은 또한 공공건물, 극장, 원형경기장, 고대 로마 경기장두 개의 수로, 가로수가 있는 거리, 은신처, 미트라의 신전, 가이사에게 헌신적이었던 성전, 그리고 광대한 오물처리 시스템 등을 발견해왔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위와 같은 것들은 바다의 파도로 인해서 말끔히 사라졌다고 한다.


 

갈멜산 | 성지순례
2005.05.05



갈멜산


엘리야 수도원(가운데 건물)에서는 이스르엘 골짜기의 서쪽이 내려다 보인다.(좌측 위) 이곳은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싸움을 했던 곳으로 “여호와의 불이 내려 제물을 태워 주소서.”라고 외쳤던 장소이기도 하다. (왕상18:38-39) 아모스 선지자가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산의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라고 한 선언은 의미심장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갈멜은 매우 비옥한 곳으로 마를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곳이기 때문이다. 엘리사가 요단강 옆에서 선지자 엘리야로부터 겉옷을 받고 혼자가 된 후 정식 성직임무를 시작인 곳이기도 하다.(왕하2:25)

 


갈멜산 엘리야 기념교회

 


갈멜산 교회 내부

 


갈멜산 엘리야 상

 


< 엘리야 상

 


갈멜산 경당 제단 조각

 


갈멜산 엘리야 동굴

 

갈멜산 서쪽 끝(지금의 수도원)에 있으며 이곳에서 엘리야가 엘리사와 함께 거주했다고 한다

 


엘리야

 

해발 482 m의 이 산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머리산' (Holy Headland)이라 불리었다. BC 4 세기의 헬라인들은 이 산을 '거룩한 제우스의 산'이라 불렀으며, AD 1 세기 로마의 베스파시안 장군은 이곳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하하였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 (Tacitus)는 이 산을 가리켜 "동상도 신전도 없이 오직 제단과 예배만 있는 산이 있는 곳" 이라 하였다. 갈멜산은 이스라엘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인 하이파 (Haifa) 시가 위치하고 있는 지중해 하이파만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즈르엘 골짜기를 따라 남동쪽으로 길게 뻗은 약 25 Km 가량의 산맥으로, 종교적 의미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산으로 BC 860년 아합왕때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종교적 중심지였다. 850명이나 되는 사제들에 의해 이방의 종교는 꽃을 피우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의 예언자 엘리야는 이들과 맞대결을 통하여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가름 하였다 (왕상 18:1 ~ 40) 예루살렘 성전이 가장 번창하였던 예수 당시의 제사장 숫자가 약 480명 정도였음에 비교한다면 기원전 9세기의 바알 종교가 이스라엘 내에서 얼마나 극성을 부렸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새로운 종교 질서를 세웠으며, 종교적 위기로부터 구출하였다. 영국의 신학자 로울리 (H.H. Rowley)는 "모세 없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종교가 태어나지 못하였더라면, 엘리야 없이 그 종교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의 신앙이 풍전등화처럼 꺼져가고 있을 때, 등잔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돋아 불꽃을 다시 일으킨 자가 바로 엘리야였던 것이다. 갈멜산 꼭대기에는 1868년에 세워진 '므흐라카' (Muchlaka, 불의제단)라 불리우는 카르멜 수도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은 본래 십자군의 성채가 있었던 곳으로 수도원 옥상에 서면 지중해 쪽 (서쪽) 뿐 아니라, (왕상 18:43 ~ 44), 이즈르엘 평원 (북동쪽), 사마리아 산지 (남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왕상 18:40, 22:39), 입구의 벽면에 있는 갈멜산 사건의 부조는 눈여겨 관찰해 볼 만하다. 교회 뜰에 세워진 칼을 들고 서 있는 엘리야의 석상은 보는 이들에게 신앙을 재무장 하도록 요청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