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선교사 · 신앙偉人/♣ 호남 지역의 선교사

미 남장로교의 7人선교사들과 호남지역 선교

영국신사77 2009. 6. 8. 12:26

                                               미국 남장로교의 선교사들

 

                                 테이트 목사 남매,리니 데이비스, 레이놀즈 부부 및 전킨 부부

 

  레이놀즈(W. D. Reynolds)와 전킨(W. H. Junkin)은 언더우드가 잠시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왔을 때, 남장로교에서 조선 선교에 관해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도전을 받고 조선을 향해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러나 교단에서는 그들을 파송할 재정이 없어서 거절했고, 그들은 매일 오후 3시에 모여 기도하면서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한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언더우드 목사를 연사로 대도시 교회를 찾아다니며 강연으로 호소하고, 여러 교회 신문에다 조선 선교에 관한 글을 계속 발표했다.

 

 드디어 뉴욕에 살고 있던 언더우드의 형인 존 T. 언더우드가,  선교 사업 비용으로 2만 5천 달러의 거금을 헌금했다. 

 

  그러자 남장로교의 외지선교위원회에서도 더 이상 침묵만 하고 있을 수가 없어, 조선선교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1892년 조선개척 선교사 7명을 임명했다. 테이트 목사와 그의 누이동생 Mattie S. Tate, Lynnie Davis(리니 데이비스), 레이놀즈 부부 그리고 전킨 부부였다.

 

 

  그중에서 그날 조선을 향해 흘러가는 기선의 갑판에 나란히 앉아 있던 벙커 선교사 부부는, 양화진에 부부 합장하여 묻혀있다.

 

  “날이 새고 흑암이 물러갈 때까지” 라는 간략한 묘비와 함께 …….

 

 

 

                                  리니 데이비스 선교사와 그의 어머니

 

    리니 데이비스 미국 선교사는 조선에 도착한 지 9일 만에, 홀어머니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러나 눈물의 기도로 어머니를 전송했을 뿐, 그 어머니를 위하여 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찍 남편이 돌아가심으로, 과부로서 리니를 데리고 어려운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리니도 처음엔 멕시코 선교사로 작정하고 있었지만, 거긴 별로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고 해서 리니가 조선 선교를 택하게 된 것이다.

 

  리니가 미국을 떠나게 될 때 모친이 위독한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지체하지 말고 가거라. 그 길이 네가 갈 길인데, 한시도 지체치 말아라."

 

  떠밀다시피 하며 보낸 어머니 …….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