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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구암교회

영국신사77 2009. 6. 3. 23:15

                             [군산]구암교회

 

  미국 남장로교는 1894년 3월 전킨(전위렴), 드루(유대모)와 어학선생인 장인택의 전도활동으로 군산선교의 열매를 얻어가고 있었다. 전킨 목사의 사랑채에서 시작된 예배와 교육은 후에 군산영명학교(현 제일고교)와 군산멜볼딘 여학교(현 영광여중고)로 발전하였다.

 또한 간호 선교사인 케슬러(계순라)와 드루를 대신해서 와 있던 다니엘이 병원선교사업을 진행하여 구암예수병원으로 발전하게 된다.
 
 1904년 오인묵장로가 구암교회 예배당을 지었으며, 1919년에는 ㄱ자형 교회를 봉헌하게 되었다.

 군산의 3.1운동은 구암교회와 군산영명학교를 필두로 시작된 것이다. 3월 6일 거사하려던 것이 사전에 발각되어 박연세 목사등이 잡혀가자, 학생들은 미리 준비해둔 3천 5백장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꺼내들고 시위에 들어갔다. 놀란 일경들이 공포탄을 쏘아가면서 위협을 가했지만 학생들은 더 열심히 만세를 불렀다. "우리도 같이 잡아가거라. 또 총을 쏘아서 우리를 죽여라" 위축된 일경들은 주동자 교사만 잡아서 황급히 달아나 버렸다.

 바로 옆의 구암예수 병원 직원들도 시위에 합세하였고 군산경찰서로 행진할 때는 군산교회 교인들과 군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 시민까지 합세하여 군산 시내가 온통 만세소리로 뒤덮였다.

 

  문용기 집사는 군산 영명학교 교사로서 주동자로 순국하였다. 이승만 박사가 친필 휘호를 추서하여 현재 익산 구시장 안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군산선교 (구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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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암교회   구 예배당

 

 

 
▲ 군산 구암교회 새 교회당 ⓒ뉴스앤조이 변하삼

 

  미 남장로회 선교사인 레이놀즈(W.D.Reynolds)와 드루(A.D.Drew)의 도착과 함께 선교활동이 시작되게 되었고, 1899년 5월 개항과 함께 근대적인 항구로서의 발달이 시작되었다.

 

 군산은 서울에서 인천을 거쳐 해상 교통이 가능한 지역이어서 선교 거점의 입지 조건이 좋았고, 이에 남 장로교회 선교부가 설치되었다. 1896년에 군산의 첫 교회가 시작되었고 전킨(W.M.Junkin)의사의 진료소도 개설되었다.

 

 처음에 군산항 부두 근처에 자리잡았던 선교부는 일본인들의 대거 이주와 함께 인근 구암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개복동교회, 구암교회 등의 성장과 함께 군산병원의 발전, 1902년 설립된 영명학교, 멜볼딘 여학교의 교육 산업은 이 지역의 대표적 근대 교육기관의 성장이었다.

 

 장로교 중심 지역으로, 타 개신교회의 선교와 발전은 해방 후에 이루어졌다.

 

 서해안 낙후된 지역에 110년전 복음을 심게된 복음의 모태인 교회입니다 .

 군산 지역에 교육, 의료, 선교뿐만 아니고, 산업을 일으키는 시금석이된 교회입니다.

 

 

 

                                                                                                      출처:http://blog.daum.net/hywkim9/10610629[꿈과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