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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교회―(17) 마산 문창교회] ‘복음 횃불’ 밝혀 애국운동

영국신사77 2009. 4. 28. 22:39
[한국의 역사교회―(17) 마산 문창교회] ‘복음 횃불’ 밝혀 애국운동


1901년 백도명의 전도로 김마리아, 김인모 등 여자 성도 7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 경남 마산지역의 기독교 뿌리가 됐다. 마산시 상남1동 문창교회(김세권 목사)는 여성들이 창립을 주도한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문창교회는 교육과 문화, 계몽운동에 선봉이 됐으며 애국운동의 거점이 됐다. 교회는 유치원을 설립해 어린이 조기 교육에 힘썼고, 야학교를 만들어 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신식 교육기관인 독서숙은 창신중·고와 창신대학으로 발전했다. 여자 교육기관인 의신여학교를 설립해 여성 교육에도 앞장섰다.

3·1운동 당시에는 이상소, 손덕우 장로 등이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초대 목사는 호주 선교사인 손안로(아담슨)였다. 한석진 목사(3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목사 7인 중 한 사람이다.

 

함태영 목사(6대)는 목회자이면서도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했으며 해방 후에는 부통령을 지냈다.

 

나라와 교회를 타락과 멸망의 불구덩이에서 건져내려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8대;1931~36년)의 혼이 담긴 예배당이다.

 

또한 예장 고신 교단을 창설한 한상동 목사(9대), 만주 독립군 출신인 김석찬 목사(14대) 등 기라성과 같은 목회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말씀의 성전, 눈물의 성전, 기도의 성전이었다. 창신학교를 세운 이승규 장로와 그의 아들 시조시인 이은상도 문창교회 출신이다.

◇YS와 손명순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예배당=마산은 민주화의 성지요, 저항의 도시로 불린다. 마산의 저항 정신은 일제의 조선 침탈 과정 속에서도 입증됐다. 당시 조선수산물 유통 3대 시장(원산, 강경, 마산)이 어시장 상권을 지켜냈다. 지독하고 지루한 그 싸움에서 상권을 지키려던 민족자본가와 영세상인들, 그리고 부둣가 하층 노동자 등 마산 민중들은 위기 때마다 똘똘 뭉쳐 투쟁에서 승리했다.

근현대 정치사에서는 3·15 부정선거 항쟁과 부마항쟁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는 강력한 야도(野都)의 정신을 잃지 않았다. 김영삼(YS) 제14대 대통령 가문과는 인연이 깊다. YS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어릴 적부터 믿음의 계단을 쌓은 곳이다. 손 여사의 신앙심은 대통령 선거 운동 때 주일성수를 위해 일요일 유세를 중단시킬 정도였다.

이화여대 재학 중 결혼한 손 여사는 51년 3월6일 문창교회에서 예식을 올렸다. 결혼 전 서울대 철학과 4학년이었던 YS는 '할아버지 위독'이라는 거짓 전보를 받고 급히 마산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맞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세상으로 손 내미는 축복의 통로="우리 문창교회는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 말씀을 위임받아 사람들을 양육해 제자로 세우고, 세상으로 손을 내미는 제자로서 축복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존재한다." 문창교회 목회자들이 대물림하며 강조하는 사명문이다. 교회는 제자와 가정을 세우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문창 바이블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현재 24명의 대원들이 전도폭발훈련을 통해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30년 지기 친구들, 60년 지기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행복한 전도자로 변신하고 있다.

교회와 지역사회를 섬길 장로 6명, 안수집사 10명, 권사 11명이 임직식을 기다리고 있다. 장로들은 매주 주일에 제자훈련, 안수집사와 권사들은 토요일마다 교육을 받고 있다. 6월14일 오후 3시에 임직식이 열린다.

                                                                            마산=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한국의 역사교회―(17) 마산 문창교회] 섬김·양육 목회로 새로운 100년 연다
 
"우리 교회가 있는 지역은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12%입니다. 경남 마산시 전체 평균 비율보다 4%나 높아요.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기 위해선 이들을 돌보지 않을 수 없어요."

올해로 부임 4주년을 맞은 김세권(51·사진) 목사는 교회 주변 지역에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돌보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쓴다.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일단 춥고 배고픈 사람들의 허기를 면하게 하는 것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복지를 통한 목회를 하지 않으면 교회 존립이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을 제대로 받아야 합니다."

김 목사는 서울 구로동교회 출신이다. 당시 김찬호 목사는 해방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서울의 변두리, 철거민들이 모여 사는 구로동에 천막을 치고 교회를 시작했다. 학창시절 김세권은 김 목사의 섬기는 목회에 반해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예수전도단 김영자(예명 김유선) 선교사와의 만남이다. 탤런트 출신의 김 선교사한테서 성령 세례를 경험했다.

교수가 꿈이었던 미국에서 유대주의 공부를 했다. 국내 탈무드 공부 1세대다. 하지만 경제적인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 뒤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42세에 목회자가 됐다. 목회 모델은 두 영적 스승으로 삼았다. 철두철미한 전도와 복음 전파가 그의 사명이다.

김 목사는 개인적으로 셀과 소그룹 성경 공부에 관심이 많았지만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교회의 맥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강력한 전도폭발 훈련과 제자 훈련을 시킨다. 문창교회의 새신자 정착률은 70%다. 새신자 성경 공부와 새가족부의 헌신의 결과다. 당회원들도 제자 훈련은 필수다. 새가족부의 도우미들은 새신자들에게 8주간 의무적으로 섬기게 한다. 또한 구역과 선교회, 새가족부를 통해 선물도 세 번 받게 해 감동을 준다.

김 목사는 연합사업에도 적극적이다. 마산과 창원 지역의 미래 목회자 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 500명 이상 교인들의 12개 교회 40, 50대 초반 목회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산은 여전히 불교세가 강합니다. 이단도 많지요. 해안 지역이라서 무속신앙도 활개를 칩니다. 이곳에서 목회하는 것이 의미 있습니다. 도전의식이 생깁니다. 1%라도 지역 복음화율을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윤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