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숨결’을 찾아서 <上> 예루살렘 겟세마네 동산
[중앙일보] 2008년09월25일
‘아버지 뜻대로 …’ 예수 마지막 기도 울리는 듯
성경에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바위 기도 기록
이스라엘 예루살렘 올리브산의 만국교회 안에는 2000년 전에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했다는 바위가 놓여 있다. 20일 제단 앞에 울타리가 쳐진 바위 앞에서 외국인 방문객들이 미사를 보고 있다. | |
2000년 전의 이스라엘은 어떤 곳이었을까. 예수가 나서, 자라고, ‘사랑’을 말하고, 끝내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둔 땅.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땅. 거기에는 어떤 바람이 불고, 어떤 나무가 자라고, 또 어떻게 생긴 달이 떠오를까. 지금도 남아있는 예수의 유적에는 과연 ‘예수의 숨결’이 흐르고 있을까. 그래서 이스라엘 성지순례(여의도 순복음교회 주관)에 참여했다. 그리고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길, 광야와 골고다 언덕, 갈릴리 호수 등을 걸었다. 거기서 예수의 발자국과 숨결을 더듬었다.
만국교회 건물 벽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하소서”라고 기도하던 예수의 모습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 |
19일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텔아비브 공항에 내려 예루살렘으로 갔다. 주위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쨍한 햇볕, 거친 광야, 해발 800m가 넘는 높은 고지와 낮은 계곡의 골짜기, 메마른 땅, 그 속에서 자라는 올리브(감람) 나무들. 그건 여지없는 성경 속의 풍경이었다.
도착한 날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차창 밖에는 검정 모자에 검정 옷, 귀밑 머리를 길게 기른 정통파 유대교인들이 아들을 데리고 통곡의 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이 놀라웠다. “이스라엘 유대인 중 유대교를 믿는 사람은 3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종교가 없습니다. 다만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유대교의 관습과 절기 속에서 생활하고 있을 뿐이죠.” 날이 저물었다.
이튿날 새벽 4시 30분, 옥외 스피커를 통해 애잔(무슬림들이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 차례 절을 할 때 울리는 기도문)이 울렸다. 해뜨기 전,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어나 성지를 향해 절을 하는 시간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예루살렘 시내 곳곳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하루에도 수차례씩 애잔이 울렸다.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역사와 흔적이 뒤섞인 땅. 그곳이 예루살렘이었다.
그 속에서 ‘예수의 자취’를 찾았다. 아침 일찍 예루살렘 동편의 올리브산(해발 810m, 한국어 성경에선 ‘감람산’이라고도 표기함)으로 갔다. 예부터 올리브산은 올리브밭과 공동묘지가 있었던 장소다. 지금도 오래된 묘지로 가득했다. 그곳에 ‘올리브 기름을 짜는 곳’이란 뜻의 겟세마네 동산이 있었다.
예루살렘은 일교차가 크다. 낮에는 더워도 밤에는 기온이 10℃ 이상 뚝 떨어진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을 찾았을 때도 그런 계절이었다. 차가운 밤, 예수는 여기서 기도를 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예견하면서 말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있으라.” 그리고 두세 명의 제자만 데리고 앞으로 갔다. 예수는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를 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하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예수의 얼굴에선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졌다. 그러나 제자들은 한 시간도 깨어있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지금도 그곳에는 예수가 엎드려 기도를 했다는 바위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일명 ‘만국교회’(혹은 겟세마네 동산 교회)다.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각 국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이 미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제단 바로 앞에는 널찍한 바위가 있었다. 바로 예수가 기도를 했다는 바위였다. 그 앞에 섰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당시 예수의 기도는 처절했다. 성경에는 예수가 ‘고뇌에 쌓여 더욱 간절히 기도’했고,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누가복음 22장44절)고 기록돼 있다. 거기에 ‘나의 뜻’과 ‘하나님(하느님)의 뜻’ 사이에 선 예수의 ‘고뇌와 절규’가 담겨 있었다.
예수가 말한 ‘나의 뜻’이란 뭘까. 그건 닥쳐오는 ‘죽음’을 피하는 것이다. 불안하고 두려운 죽음을 비켜가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뜻’과 ‘신의 뜻’은 같을 수가 없다. ‘나의 뜻’은 육신을 가진 사람의 뜻이고, 두려움을 아는 인간의 뜻이다. 다시 말해 그건 ‘자아의 뜻’이자, ‘에고의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는 ‘나의 뜻’을 붙들지 않았다. 그것을 관철하지 않았다. 오히려 접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다.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다소 어두운 교회 안, 겟세마네 바위 앞에 빙 둘러앉은 외국인 방문객들은 그 구절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그리고 그걸 묵상했다.
그건 ‘열쇠’이기도 했다. 나의 뜻이 무너지는 순간, 늘 아버지(하나님)의 뜻이 드러났다. 자식을 바치려던 아브라함도 그랬고,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도 그랬고, 날 선 권위와 지식을 무너뜨린 사도 바울도 그랬다. 예수 역시 그 ‘열쇠’를 던지고 있었다.
교회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 뜰에 2000년 묵었다는 올리브 나무 여덟 그루가 서 있었다. 굵다란 밑동에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이 역력했다. 그 나무들은 보았을까. 바위에 기댄 예수의 절규와 기도, 그리고 유다와 함께 온 성전 경비경에 의한 예수님 체포 순간을 보았을까. 그때는 나무도 함께 울었을까.
만국교회 바로 건너편에 높다란 예루살렘 성전의 성벽이 보였다. 예수는 그곳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십자가를 짊어졌다. 2000년이 흘렀지만 올리브산에는 여전히 예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두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마가복음 13장37절)
올리브산을 내려오는 내내 자신에게 물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과연 깨어 있는가’ ‘지금 여기서 우리는 정말 깨어 있는가.’묻고, 묻고, 또 물었다. 그 물음 속에 예수가 손수 건네시는 ‘열쇠’가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글·사진=백성호 기자
도착한 날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차창 밖에는 검정 모자에 검정 옷, 귀밑 머리를 길게 기른 정통파 유대교인들이 아들을 데리고 통곡의 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이 놀라웠다. “이스라엘 유대인 중 유대교를 믿는 사람은 3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종교가 없습니다. 다만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유대교의 관습과 절기 속에서 생활하고 있을 뿐이죠.” 날이 저물었다.
이튿날 새벽 4시 30분, 옥외 스피커를 통해 애잔(무슬림들이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 차례 절을 할 때 울리는 기도문)이 울렸다. 해뜨기 전,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어나 성지를 향해 절을 하는 시간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예루살렘 시내 곳곳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하루에도 수차례씩 애잔이 울렸다.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역사와 흔적이 뒤섞인 땅. 그곳이 예루살렘이었다.
그 속에서 ‘예수의 자취’를 찾았다. 아침 일찍 예루살렘 동편의 올리브산(해발 810m, 한국어 성경에선 ‘감람산’이라고도 표기함)으로 갔다. 예부터 올리브산은 올리브밭과 공동묘지가 있었던 장소다. 지금도 오래된 묘지로 가득했다. 그곳에 ‘올리브 기름을 짜는 곳’이란 뜻의 겟세마네 동산이 있었다.
예루살렘은 일교차가 크다. 낮에는 더워도 밤에는 기온이 10℃ 이상 뚝 떨어진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을 찾았을 때도 그런 계절이었다. 차가운 밤, 예수는 여기서 기도를 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예견하면서 말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있으라.” 그리고 두세 명의 제자만 데리고 앞으로 갔다. 예수는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를 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하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예수의 얼굴에선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졌다. 그러나 제자들은 한 시간도 깨어있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지금도 그곳에는 예수가 엎드려 기도를 했다는 바위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일명 ‘만국교회’(혹은 겟세마네 동산 교회)다.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각 국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이 미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제단 바로 앞에는 널찍한 바위가 있었다. 바로 예수가 기도를 했다는 바위였다. 그 앞에 섰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당시 예수의 기도는 처절했다. 성경에는 예수가 ‘고뇌에 쌓여 더욱 간절히 기도’했고,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누가복음 22장44절)고 기록돼 있다. 거기에 ‘나의 뜻’과 ‘하나님(하느님)의 뜻’ 사이에 선 예수의 ‘고뇌와 절규’가 담겨 있었다.
예수가 말한 ‘나의 뜻’이란 뭘까. 그건 닥쳐오는 ‘죽음’을 피하는 것이다. 불안하고 두려운 죽음을 비켜가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뜻’과 ‘신의 뜻’은 같을 수가 없다. ‘나의 뜻’은 육신을 가진 사람의 뜻이고, 두려움을 아는 인간의 뜻이다. 다시 말해 그건 ‘자아의 뜻’이자, ‘에고의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는 ‘나의 뜻’을 붙들지 않았다. 그것을 관철하지 않았다. 오히려 접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다.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다소 어두운 교회 안, 겟세마네 바위 앞에 빙 둘러앉은 외국인 방문객들은 그 구절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그리고 그걸 묵상했다.
그건 ‘열쇠’이기도 했다. 나의 뜻이 무너지는 순간, 늘 아버지(하나님)의 뜻이 드러났다. 자식을 바치려던 아브라함도 그랬고,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도 그랬고, 날 선 권위와 지식을 무너뜨린 사도 바울도 그랬다. 예수 역시 그 ‘열쇠’를 던지고 있었다.
교회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 뜰에 2000년 묵었다는 올리브 나무 여덟 그루가 서 있었다. 굵다란 밑동에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이 역력했다. 그 나무들은 보았을까. 바위에 기댄 예수의 절규와 기도, 그리고 유다와 함께 온 성전 경비경에 의한 예수님 체포 순간을 보았을까. 그때는 나무도 함께 울었을까.
만국교회 바로 건너편에 높다란 예루살렘 성전의 성벽이 보였다. 예수는 그곳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십자가를 짊어졌다. 2000년이 흘렀지만 올리브산에는 여전히 예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두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마가복음 13장37절)
올리브산을 내려오는 내내 자신에게 물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과연 깨어 있는가’ ‘지금 여기서 우리는 정말 깨어 있는가.’묻고, 묻고, 또 물었다. 그 물음 속에 예수가 손수 건네시는 ‘열쇠’가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글·사진=백성호 기자
“성지서 기도하며 살다가 성지서 묻히고 싶어 자원” [중앙일보]
예루살렘 성묘교회 김상원 신부
[중앙일보] 2008년09월25일
20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성묘교회(The Church of Holy Sepulchre)를 찾았다. 그곳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고, 묻히고, 부활한 장소다. 거기서 한국인 신부를 만났다. 바로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의 김상원(데오필로·42·사진) 신부였다. 2년 전에 이곳에 왔다는 그는 “여기서 기도하며 살다가 여기서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성지(聖地)’의 의미를 물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나.
“이 성지는 그리스도인의 심장이다.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다. 그래서 사제 서품을 받고 자원했다. 지금의 성묘교회는 1149년에 복구된 십자군 당시의 모습이다.”
-교회 안에는 누가 사나.
“이탈리아, 가나, 미국, 인도, 브라질, 폴란드 등 세계 각국에서 온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만 10명이다. 이외에도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 이집트 콥틱 교회, 시리아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등 6개 종파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공동 관리라면 어떤 식인가.
“예수님 무덤의 경우 각 종파별로 시간을 나눠서 미사를 거행한다. 그러나 촛불을 켜거나 청소를 하는 건 별개다. 그건 역사 속에서 권리를 가진 3개 종파(프란치스코 수도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만 할 수 있다. 일종의 권리행사다. 밖에선 청소가 귀찮은 일일 수 있지만 여기선 큰 영광이다. 다른 종파에선 청소하는 일을 무척 부러워한다.”
-와서 보니 예수가 돌아가신 장소와 동굴 무덤의 거리(15∼20m)가 무척 가깝다. 왜 그런가.
“당시 골고다 언덕은 공동묘지였다. 거기서 사형이 집행됐다. 게다가 골고다 언덕은 넓은 장소가 아니었다. 야트막한 능선이었다. 그러니 새삼스럽진 않다.”
-예루살렘에는 여러 종교가 있다. 여기도 여러 종파가 있다. 싸우진 않나.
“사제복을 입고 길거리를 다닌다. 그럼 일부 정통파 유대교 아주머니는 저를 보고 돌아서며 땅바닥에 침을 뱉기도 한다. 저는 스스로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속에서 얼마나 유대인을 박해했으면 저럴까’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종교편향 문제’로 시끄러웠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고, 구원되길 원한다.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뺨 때리는 사람에게 맞았고, 힘 있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스도인이 힘으로 뭘 하려고 한다면 위험하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너무 힘주고 있다는 거다.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
김 신부는 “내일부터 휴가”라고 말했다. 그는 2007년 9월부터 이스라엘 전체를 관통하는 도보 순례를 하고 있다. 쉬는 날마다 이어서 순례를 한다고 했다. “사마리아 지방이 팔레스타인 지역이라 치안 확보가 안돼요. 그래서 그 지역은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가셨던 길인데, 참 아쉬워요. 누구나 예수님 여정을 밟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예루살렘 글·사진=백성호 기자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나.
“이 성지는 그리스도인의 심장이다.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다. 그래서 사제 서품을 받고 자원했다. 지금의 성묘교회는 1149년에 복구된 십자군 당시의 모습이다.”
-교회 안에는 누가 사나.
“이탈리아, 가나, 미국, 인도, 브라질, 폴란드 등 세계 각국에서 온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만 10명이다. 이외에도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 이집트 콥틱 교회, 시리아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등 6개 종파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공동 관리라면 어떤 식인가.
“예수님 무덤의 경우 각 종파별로 시간을 나눠서 미사를 거행한다. 그러나 촛불을 켜거나 청소를 하는 건 별개다. 그건 역사 속에서 권리를 가진 3개 종파(프란치스코 수도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만 할 수 있다. 일종의 권리행사다. 밖에선 청소가 귀찮은 일일 수 있지만 여기선 큰 영광이다. 다른 종파에선 청소하는 일을 무척 부러워한다.”
-와서 보니 예수가 돌아가신 장소와 동굴 무덤의 거리(15∼20m)가 무척 가깝다. 왜 그런가.
“당시 골고다 언덕은 공동묘지였다. 거기서 사형이 집행됐다. 게다가 골고다 언덕은 넓은 장소가 아니었다. 야트막한 능선이었다. 그러니 새삼스럽진 않다.”
-예루살렘에는 여러 종교가 있다. 여기도 여러 종파가 있다. 싸우진 않나.
“사제복을 입고 길거리를 다닌다. 그럼 일부 정통파 유대교 아주머니는 저를 보고 돌아서며 땅바닥에 침을 뱉기도 한다. 저는 스스로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속에서 얼마나 유대인을 박해했으면 저럴까’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종교편향 문제’로 시끄러웠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고, 구원되길 원한다.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뺨 때리는 사람에게 맞았고, 힘 있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스도인이 힘으로 뭘 하려고 한다면 위험하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너무 힘주고 있다는 거다.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
김 신부는 “내일부터 휴가”라고 말했다. 그는 2007년 9월부터 이스라엘 전체를 관통하는 도보 순례를 하고 있다. 쉬는 날마다 이어서 순례를 한다고 했다. “사마리아 지방이 팔레스타인 지역이라 치안 확보가 안돼요. 그래서 그 지역은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가셨던 길인데, 참 아쉬워요. 누구나 예수님 여정을 밟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예루살렘 글·사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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