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주님 무덤 교회에서 주시는 메세지/사도 다대오의 무덤

영국신사77 2009. 2. 27. 00:44

주님 무덤 교회에서 주시는 메세지

 

 

                       김용규 강도사      2006.04.15

 

 

 

             이란 아르메니아주 머쿠에 있는 사도 다대오의 순교 기념교회(제단 밑에는 사도 다대오의 무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18,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더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드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라 시몬 베드로도 그를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에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따로 개켜 있더라 그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다시 돌아가니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속을 들여다 보니 휜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들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예수께서 마리야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죽기전에 사후 세계를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의 피라미드입니다.이집트에는 200여개의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거대한 피라미드입니다. 기자의 피라미드는 높이가 아파트 40층 높이와 같다고 합니다.정말 엄청난 규모의 무덤입니다.
그 무덤 하나를 만들기 위해 아마 수십년이 걸렸고, 수만명이 동원되어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사람들은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자신들의 무덤의 규모를 통해 자신을 나타낼려고 하여왔고 또한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왕가의 계곡에는 지하에 동굴을 파고 자신의 무덤을 장식하느라고 온갖 힘을 다 쏟았던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무덤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무덤에 머물러 계실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에 계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친히 생명이 되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사망을 이기고 무덤을 깨치고 부활하실 수 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놀라운 소식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그런일은 흔이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가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소식입니다. 한번도 그러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은 놀라운 사건을 이루신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굳게 믿어야 합니다.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의 무덤에 계신지 3일 후인 안식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다가 돌이 무덤에서 옮긴 것을 보고는 달려가 제자들에게 알려준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가 무덤으로 달려가 보았는데 무덤을 보니 세마포는 놓였으나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두 제자는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실히 보았으나 주님이 다시 부활하셨음을 확실히 믿지는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평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그것은 본문 9절에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고 말씀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중 여러 곳에서 자신의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라고 자신의 부활을 암시하셨고, 성전을 정화하신 후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인자가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죽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무덤이 빈 것을 기이히 여겼을 뿐 아직 확실한 부활 신앙을 가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믿고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굳은 신앙에 바로 서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듣고 기억하는데서 생기는 것입니다.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다면 그분이 부활하심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부활하신 주님을 굳게 믿을 때 생명 얻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자가 그 안에 있는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우리를 위해 다시 사신 주님을 굳게 믿고 붙들 때 우리 삶에도 사망 권세를 이기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찾을 수 없어 낙담하여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울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 왜 우느냐라는 뜻입니다. 즉 주님이 부활하여 기쁨이 넘쳐야 하는데 왜 우느냐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어찌하여 무덤에서 그 분을 찾고 있느냐는 반문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24:5에서는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이십니다. 죽어 무덤에 계신 분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산 자가 아니요,죽은자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성인들 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 가장 숭고한 인물로 말하기도 합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가 아닙니다. 살아 계신 분입니다.
그 분은 과거에 계셨던 분이 아니라 오늘 현재도 살아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하고 그의 가르침을 분석합니다.예수님은 단지 연구 대상만 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살아서 모든 신앙인이 매일 만나야 하는 분,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분이십니다.부활의 주님은 우리들의 관념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 활동하시는 분이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는 매일 매일 부활의주님을 만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단순히 우리의 모범만 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살아서 우리를 도와 주시고 그 분을 잘 따라 갈수 있도록 용기를 복돋워주시는 분입니다. 그는 단순히 인생의 모델이 되시는 분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믿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그분을 만나 교제하고 그 능력을 힘입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삶에 능력이 있고, 변화가 있고, 성장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가 맨 처음 한 일은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이처럼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그 즉시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닙니다.
어떤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놀라운 사실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증거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기 때문에 증인이 된 것입니다.
기이히 여기며 집에 돌아갔던 베드로도, 여인들의 말을 허탄한 것으로 여겼던 제자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는 모두가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숨기고 부활한 것으로 거짓 전파하였다고 합니다.어떤 사람이 자기가 만든 거짓말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전파할 말큼 어리석을 수가 있겠습니까?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을 여러분은 본적이 있습니까?
베드로같이 겁이 많아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던 자가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하며 목숨을 내놓을 수가 있을까요?도마와 같이 의심 많던 자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것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은혜받고 구원 받은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도하게 됩니다.
살아계신 주님의 은혜를 목격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날마다 증거하고 자랑하는 성도들이 많이 일어날 때 교회의 등불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 어두움을 몰아내는 역사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부활 하셨다”라고 고백할 뿐 아니라 “부할하신 예수님이 바로 당신의 구주십니다”라는 증언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지금 내가 만나고 ,지금 내가 전하고 있는 그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넘치는 소망이 됩니다.부활의 그 분을 만나고 그분과 함께 함으로써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떠한 고통이 올지라도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두려워할 것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주님을 현재의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은 소망이 있고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어둡고 방황하는 인생이 아니라 빛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산 자가 되신 예수님, 그래서 날마다 우리 삶에 찾아오셔서 능력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그분을 담대히 증거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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