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십자가의 길(Via Dolorosa)

★★ 성묘교회/무덤교회 - 골고다와 예수님 무덤의 진실 (1)-(2)

영국신사77 2008. 12. 13. 13:14

                                

               성묘교회 - 골고다와 예수님 무덤의 진실(1)

 

 

 

 

 

골고다와 예수님 무덤의 진실(1)

성지답사를 하다보면 인접한 장소에 두 개의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쉽게 말하면 원조게임의 일종인 것이다.

그 대표적인 곳이 ‘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장소에 두 개의 기념교회를 세우든, 세 개를 세우든,

나에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기념교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더 많이 제공받는다고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장소가 예루살렘에도 있다.

골고다와 예수님의 무덤이 두 곳이나 된다.

그 중 하나는 오늘날 예루살렘의 구시가지, 북서쪽에 있는 ‘예수님 무덤교회(Holy Sepulchre Church)'이다.

이곳이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무덤으로 믿어 온 장소이다.

 

그러나 이 장소에 도전장을 던진 곳이 있다.

구시가지 북쪽, 다마스커스 문 밖에 위치에 있는 정원 무덤(Garden tomb)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러나 이 사실 만큼은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어떠한 이유로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은 타협이나 양보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루살렘을 답사할 경우,

이 두 장소 가운데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한다.

옳은 것과 잘못된 것들을 구분하고 분별하는 것이

성지답사의 목적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인하고 밝히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고,

고고학자들의 발굴과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을

무덤들이 있는 장소였다고 암시해 준다(마 27:33, 막 15:22).

그리고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고 알려주며(요 19:20),

성문 밖에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히 13:12).

 

사실 유대인의 종교습관을 따르면 성안에서는 사람을 처형할 수도 없었으며,

무덤 또한 성벽으로부터 25m를 벗어나야만 했다.

그러므로 골고다와 예수님의 무덤은

반드시 그 위치가 성밖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골고다와 예수님의 무덤으로 믿어 온 지금의 무덤교회는

오늘날 성 안쪽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주변은 온통 아랍계 크리스천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상점들이 즐비하다. 

한 마디로 우리가 그림에서 보거나 생각하는

산꼭대기에 쓸쓸하게 십자가가 서있는 골고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이것이 무덤교회가 도전장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변한 것은 주변상황이지,

골고다와 무덤의 위치는 아니지 않는가?

 

영국의 고고학자 케덜린 케년(Kathleen Kenyon/1960-1970년)과 룩스(Lux/70년대)는

무덤교회 주변지역을 발굴, 조사했다.

코로보(Corbo)신부는 무덤교회를 보수하려는 목적으로

 1960년부터 20년에 걸쳐 이 교회와 주변을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 지역이 주전 8-7세기 채석장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주전 1세기에 이르러 채석장의 일부가 무덤들로 이용되기도 했고,

무화과나무, 주염나무, 올리브나무들이 재배되는 장소였음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무덤교회는

제2성벽

(이스라엘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정원 문에서 안토니아 성채에 이르는 짧은 성벽/J.W.5.154)에서

120m 바깥쪽에 있었음도 증명됐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무덤교회 주변의 모습은

오늘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으며,

성경의 증언들과도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곳이 골고다와 예수님의 무덤이었다고 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내가 무덤교회를 골고다로 믿는 이유는

여기에 세워진 교회의 전통과 역사 때문이다.

 

초대교부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유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을 통하여,

초기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주후 2세기 로마의 하드리안(Hadrian) 황제의 박해로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갈 때,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역사적 사실과 초기 기독교 전통을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 전수해 주었음을 알 수 있다(Eusebius. Ch. Hist. IV 6).

 

그뿐 만이 아니다.

유세비우스(Eusebius)와 제롬(Jerom)의 기록에 의하면

하드리안(Hadrian)황제는 크리스천이 성스럽게 여기는 장소에 주피터 신전(제롬)을,

골고다에는 사각형의 신전을,

십자가가 세워졌던 반석 위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비너스 상(유세비우스)을,

그리고 무덤이 있던 장소에 주피터의 동상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313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이러한 신전과 동상들은

오히려 그곳이 성지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표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유세비우스와 초기 성지순례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승인한 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골고다에 있던 이방 신전을 철거하고 교회를 세우도록

예루살렘의 마카리우스 감독(Bishop Macarius)에게 명령했으며,

335년 이 교회가 봉헌식을 가졌는데,

이곳에 유세비우스도 참석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곳을 조사했던 고로보 신부는

결과를 책을 통해 발표하면서,

하드리안 황제의 이방 신전 축대의 일부와

처음 세워졌던 교회 벽의 일부가 확인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있는 대부분의 교회가 그랬듯이,

 614년 페르시아 군에 의해 처음 교회의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1009년 카이로 출신 엘 하킴에 의해 교회당은 물론

예수님의 무덤 모두가 거의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만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무덤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조직적인 도전을 받아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통치하는 동안,

이곳에 다시 교회를 세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보수 및 개조되며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

 

오늘날 무덤교회 내부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졌던 골고다와

예수님의 무덤이 포함되어 있다.

과거의 흔적만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그나마 대리석과 각종 종교적 장식물로 인해

그 원형은 보기조차 힘들 정도다.

그래도 난 이곳이 초기 기독교 전통과 역사, 그리고 고고학적 발굴결과를 통해 본 골고다이며,

예수님의 무덤이고, 부활하신 장소라는 믿음에 흔들림이 없다.

  

 

 

              정원무덤 - 골고다와 예수님 무덤의 진실(2)

 

 

 

 

 예루살렘에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진 무덤이 하나 있다.

이곳은 16세기 터키에 의해서 만들어진 다마스커스(다메섹) 문으로부터

 25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예루살렘 구시가지 북쪽).

아침에 이곳에 들르면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밤사이에 내린 이슬이

답사객들의 지친 몸에 생기와 한줌 평안을 안겨준다.

 

정원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햇볕을 받아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바위무덤과 마주 서게 된다.

이곳과 관계된 사람들은 여기가

예수님이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무덤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곳 이름을 ‘정원무덤(Garden Tomb)’이라고 부른다

(요한복음 19:41절 예수님의 무덤은 동산/정원(Garden)에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정원무덤 한쪽 끝에는

이들이 말하는 골고다 언덕이 있다.

 

이 정원무덤이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무덤이자 골고다로 알려졌던 ‘무덤교회’에 도전장을 던진 곳이다.

지금도 정원무덤에 들르면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을 만나게 된다.

그 만큼 나름대로 성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 있다는 증거이거나,

아니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으로 찾아다니는 순례객일 수도 있다.

 

지금 정원무덤이 있는 장소는 19세기 중엽까지 농작물을 심는 밭이었다.

1867년 한 농부가 이 밭을 위해 물 저장소를 만들려다 우연히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동굴이 유럽사회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874년 당시 예루살렘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칙(Schick)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이 장소가 유럽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그 후 약16년이 지난 후였다.

1883년 영국의 고든(Gordon) 장군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당시 장군은 독실한 신앙인이었으며, 영국의 전쟁 영웅이었다.

 

고든 장군이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아주 희한한 이론을 제기했다.

이 지역의 동굴(현재 정원무덤지역)의 모양과 지형적 이유를 들어,

이곳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9년 뒤인 1892년 칙(Schick)은 이 사실을 기사화하여 다시 유럽에 전하게 되었다.

 

이 후로 유럽의 개신교도는

이 곳이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골고다’라는 주장에 호의를 갖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예루살렘의 구시가지에 있는 무덤교회를 골고다로 여기는 카톨릭 사람들과

끊임없는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1894년 칸터베리 대주교를 주축으로

영국에서는 정원무덤회(Garden Tomb Association)를 구성하고

헌금을 모금하여 이 지역 일대를 구입한 후,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몄다.

 

그 후, 칼 벡콜트(Karl Beckholt)는 1904년 이 무덤을 조사했으며,

1955년 정원 무덤회에서 이곳에 대하여 다시 조사를 했다.

그러나 카톨릭(무덤교회)측과 정원무덤회 사이에서 일어난 예수님 무덤에 대한 진실게임은

날이 갈수록 날카롭게 대립되었다.

 

급기야 1975년, 이스라엘 무덤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의 고고학자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발카이(Barkay)가

‘정원무덤’에 대한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발굴 작업에 착수하여,

1976년 모든 조사를 마쳤다.

 

조사결과,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정원무덤은 주전 8-7세기에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비잔틴 시대에 다시 사용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정원무덤’과 ‘골고다’라고 주장되는 일대에서,

주전 8-7세기 예루살렘과 유대지역에서 발견되는

무덤의 형태와 동일한 모양의 수많은 무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제2성전 시대(예수님 당시)의 무덤은 발견된 바 없으며,

예수님 당시에 이곳은 예루살렘 성 안쪽에 위치에 있었고,

예수님의 무덤은 이 곳에서 훨씬 북쪽, 외곽 지역에서 발견된다.

 

둘째, ‘정원무덤’의 묘실 구조가

주전 8-7세기의 무덤의 형태와 일치한다.

주전 8-7세기 무덤은 입구 쪽의 방과 시체를 놓는 방이 나란히 만들어졌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무덤은

입구 쪽의 방과 일직선상에 시체를 놓는 방을 만들었다.

 

셋째, 돌을 파낼 때 사용한 정 자국이 구약 시대의 그것과 일치한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 사용되었던 정은

일명 머리빗과 같은 정이라 하여 ‘콤부치즐(comb chisel)'이라 불렀다.

이 정을 이용한 무덤들은 마치 빗질한 모양의 정 자국을 남긴다.

 

넷째, 구약시대의 무덤 형태는

시체를 놓는 방의 모양이 입구에서 볼 때 ‘ㄷ'자 형태의 벤치 모양으로 이루어졌으나,

예수님 당시의 무덤은

시신을 올려놓는 곳을 낮게 만들거나 구유와 같은 형태로 만들었다.

 

다섯째, 정원무덤의 벤치에 있는 말발굽 모양의 홈은 구약시대 무덤의 형태와 동일하다.

구약시대 무덤의 벤치에는 시체의 머리를 올려놓을 수 있도록 말발굽 모양의 홈을 만들었다.

 

여섯째, 무덤 천장의 형태를 통해 볼 때

‘정원무덤’의 묘실은 구약시대의 무덤과 일치한다.

예수님 당시 사용된 무덤의 한 형태는 ‘악셀리움’이다.

이 이름은 무덤의 천장이 둥근 아치형태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정원교회 무덤의 천장은 수평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형태는 구약시대 무덤의 천장형태와 일치한다.

 

일곱째, 이 무덤 주변에서

등잔, 접시, 토기인형 등 전형적인 구약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이 주변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 무덤을 재사용하기 위해서(비잔틴시대) 청소할 때, 주변에 버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예수님 무덤과 골고다의 위치를 두고 벌어진 ‘무덤교회’와 ‘정원무덤’ 사이의 진실공방은

정원무덤의 완패로 끝이 났다.

그래도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이곳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출처:Way-Glob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