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0 0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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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빌딩에 가려 있지만 신문로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고 따스한 온기가 흐른다. 생수를 받거나 볼일을 보려는 노숙인들도 스스럼없이 문턱을 넘나든다. 연세대 설립자인 헐버트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가 성경책과 함께 가지고 들어왔다는 둥근 느티나무는 벌써 가지치기를 끝내고 월동 준비에 들어갔다. 하늘 높이 치켜든 가지는 어머니가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닮았다. 이수영(62) 담임목사는 최근 탈장 수술을 받고 자택에서 회복 중이라 만날 수 없었다. 대신 '새문안교회 100년사'를 쓴 윤경로(61·새문안교회 장로) 한성대 총장이 강의하듯 교회사를 설명했다. ◇조선 최초의 고아원생 '번개비' 김규식 박사=1885년 4월5일 미국의 북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입국한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알렌 선교사가 원장으로 있던 광혜원에서 일하며 조선의 청년들에게 과학 등을 가르쳤다. 어느덧 조선에 도착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언더우드 자택 앞에 조선의 한 구걸하는 아이가 찾아왔다. 외모는 남루했지만 아이의 눈엔 총기가 있었다. 이 아이가 조선의 첫 고아원 겸 예수학당(경신학당)의 학생이 됐다.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고 해서 언더우드는 그를 '번개비'라고 불렀다. 그가 훗날 안창호 선생과 함께 민족운동가로 명성을 날린 김규식 박사다. 윤 총장은 "6·25 전쟁이 터졌지만 김 박사는 새문안교회를 지키다 북한으로 끌려가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새문안교회 찾은 일본인 목회자 어머니=1887년 9월27일 화요일 밤. 정동 언더우드 집엔 한국 기독교인이 세운 최초의 교회당인 소래(松川)교회 창립자인 서상륜과 권서 등 14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다. 교인들이 늘어나자 한 동네에 감리교회와 장로교회라는 이름으로 두 개 있는 것이 한국인들에게 좋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언더우드는 경희궁 근처로 예배당을 옮겼다. 윤 총장은 "새문안교회는 한국의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면서 "민중의 벗으로 등장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느 종교단체보다 강한 민족교회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윤 총장이 교회의 약사를 설명하는 도중 일본인 관광객 3∼4명이 역사관을 찾았다. 자신의 아들도 일본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고 소개한 구마쓰에(83) 할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한국의 기독교가 번성하고 교인들이 열심이라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면서 "죽기 전에 한번 한국 교회를 와보는 게 소원이었다. 이제 그 소원을 이뤘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언더우드가 한국에 올 때 25세의 청년이었으며, 그는 청년들이 변해야 나라가 변한다고 생각해 YMCA 운동에 관여하고 교육운동에도 정열을 바쳤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천국만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두웠던 시대에 새로운 시대정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면서, "그 중에서도 새문안교회는 해방 전에 항일 독립운동을, 해방 후엔 통일운동을, 독재시대엔 민주화 운동의 단초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선교 2세기 제2의 새문안으로 도약=8일 오후. 주일 예배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 이 목사와 전화 연결이 됐다. 이 목사는 교회 안팎에서 정치적인 설교로 새문안교회 이미지가 왜곡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런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좌편향적인 사람들의 시각이다. 대다수 성도들은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면서 "중요한 것은 세상적인 잣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선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교회가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방어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새문안교회는 역사성을 지닌 교회로 사회와 민족을 위한 에큐메니컬 정신을 지켜나가는 입장을 견지해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기본이 돼야 하는데 요즘은 이 정신을 강조하면 폐쇄적이고 독선적이며 포용력이 부족하다고 비판을 한다"며 "그럴 때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다원화 사회라고 해서 이 같은 논리에 교회가 휘둘리거나 엉거주춤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나눔과 섬김의 대상에서 북한동포를 떨쳐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동포를 위해 교회는 내년부터 전체 예산의 1%를 북한돕기기금으로 적립해나갈 방침이라고 했다. 사회봉사 활동으로 '1교인 1봉사직 갖기' 운동도 더욱 활발하게 펼 작정이라고도 했다. 이 목사는 앞으로 8년 후면 은퇴한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은 교회를 새로 짓는 문제다. 그는 "이미 신문로 일대의 빌딩들이 초고층으로 재개발을 한 상태인데 유독 새문안교회만 아직도 100여년 전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며 "제2의 새문안교회를 완공하고 물러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교회 부지도 넓혀야 한다. 공사 기간 중 교회 시설과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위해 오래전부터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 목사는 은퇴할 때까지 건강한 교회, 건강한 교인을 길러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9일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강대상에 오르자 성도들은 뜨거운 박수로 맞았다. 이 목사는 "다윗이 사울과 달리 성공한 왕이 된 비결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랐기 때문"이라면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주의 종이 되겠다"는 말씀을 선포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
[한국의 역사교회―(2) 새문안교회] 새문안교회의 기둥 서상륜·서경조 가문 |
권서-목사로 교회 창립 주역… 아들·손자·증손자 대이어 성서보급·목회 "우리나라 최초 권서인(매서인)인 증조부처럼 저도 성서보급 사역을 23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서원석(61·대한성서공회 홍보진흥본부장) 장로는 새문안교회에서 4대째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증조부는 서상륜(사진 왼쪽). 영국성서공회 북중국지부 소속 권서로서 존 로스 선교사를 도와 1882년 중국 선양에서 최초의 우리말 쪽복음서가 나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상륜은 이 쪽복음을 들고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전도하면서 선교사 입국 전에 이미 70명 이상의 세례신청자를 확보했다. 안동교회 연동교회 남대문교회 외에도 김포와 파주의 여러 교회들이 그의 손길을 통해 탄생했다. 동생 서경조(오른쪽) 목사와 함께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새문안교회 창립 당시엔 교인 14명 중 13명을 자신이 전도한 세례교인으로 채워 실제적인 새문안교회 창립의 주역을 맡았다. 서경조 목사는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국내 최초의 7인 목사 중 한 사람이다. 황해도 장연, 옹진지역의 전도목사로 사역을 하던 그는 1910년 노회의 결정에 따라 새문안교회 최초의 한인 목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지역간·선교사간 갈등으로 물러나기까지 건전한 상식과 철저한 봉사정신, 신령한 신앙과 인내심의 본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 목사의 아들 서병호 장로는 언더우드로부터 최초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21년엔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에서 활약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란지 부산에서 기독청년연맹(YMCA) 재건에 헌신했다. 맹인협회, 농아협회 이사장은 물론 새문안교회가 세운 경신학교 교사, 교장,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평생 장애인 복지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서원석 장로는 서병호 장로의 손자다. 경실련 창립의 주역인 서경석 목사는 서원석 장로의 친동생이다. 원래 농장을 경영했던 서 장로는 선조들의 삶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교인들의 요청으로 85년부터 지금까지 대한성서공회에 몸담고 있다. 증조부의 뒤를 이어 제3세계 성서보급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서 장로의 증조부는 원래 서경조 목사다. 하지만 큰형인 서상륜이 아들이 없자 차남 서병호 장로를 호적에 올리면서 지금까지 서원석 장로 집안은 족보상으로는 서상륜, 혈통으로는 서경조 목사의 증손이 됐다. 현재 서병호 장로의 네 손자 중 일찍 세상을 떠난 서만석과 서울조선족교회를 담임하는 서경석 목사를 제외한 원석, 창석 형제와 이들의 자녀들은 새문안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의 다음대를 이어가고 있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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