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가 탄생한 ‘지중해의 보석’… 터키·그리스의‘500년 원한’에 두 동강
우리나라가 지구상 ‘단 하나 남은’ 분단국이 아니라는, 약간의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키프로스(Cyprus) 덕택이다. 2차 대전 후 동서냉전 시대에 미국이 가장 곤혹스러워했던 것은, 둘 다 미국의 맹방이었지만 견원지간인 터키와 그리스를 달래는 일이었다.
터키와 그리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은 15세기로 거슬러 오른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위세를 떨치며 그리스를 점령한 이후, 400여년간 십자가는 초승달과 별에 의해 깔아뭉개져 신음했다. 19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무너지고 20세기로 접어들자, 발칸전쟁과 1차 세계대전이라는 어수선한 기회를 틈타, 그리스는 터키를 침공 복수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미국이 주도한 국제적 중재로 맞잡고 뒤엉켰던 두 앙숙은 겨우 떨어졌지만, 분을 못 삭여 싸움터를 옮긴 곳이 키프로스다. 중동 앞바다, 지중해 깊숙한 곳, 경기도보다 훨씬 작은, 고구마를 눕혀놓은 것 같은 섬 키프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비너스가 탄생한 섬이다.
서구 문명의 효시 그리스가 지중해를 제패하던 BC 9세기경부터, 그리스인은 키프로스로 이주했다. 그러나 15세기 오스만 투르크가 그리스를 지배하며, 터키인이 이 섬으로 몰려 들어와 정복자 행세를 하게 되었다.
끝없는 분쟁 끝에 그리스계와 터키계는 남북으로 갈라서고, 가운데는 철조망이 겹겹이 쳐졌다.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몇 차례나 키프로스를 방문하고 EU도 이 나라 분쟁 종식과 통일을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모두가 무위로 돌아간 것은 백그라운드에 터키와 그리스의 이해가 엇갈려 있기 때문이다. 명분에서는 터키계 키프로스가 밀린다.
인구 100여만 중 그리스계 남키프로스가 80만, 터키계 북키프로스가 20만이며, 영토는 남키프로스가 63%, 북키프로스가 37%를 차지하고 있다.
북키프로스는 튼튼한 큰 집이 뒤에서 버티고 있다. 키프로스섬은 그리스로부터 700㎞ 떨어져 있지만, 터키로부터는 60㎞밖에 안 된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외에, 인구와 군사력에서도 터키가 그리스에 비해 일방적 강세인 데다, 지금 터키계 북키프로스엔 3만명의 터키군이 주둔해있다.
외교적으로는 그리스계 키프로스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남북이 각각 독립을 선포, 그리스계 남키프로스는 유엔으로부터 국가 승인도 얻고 유엔에 가입도 했지만, 터키계 북키프로스는 국가 승인을 받은 나라가 친정인 터키뿐이다.
동서로 횡단한 휴전선의 완충지역인 지뢰밭 DMZ를 가운데 두고 양쪽 군사분계선이 평행을 이루는 구조는, DMZ 폭이 좁을 뿐 우리 휴전선과 흡사하다. 이 나라 수도 니코시아도 남북으로 갈라져, 여전히 남·북 니코시아는 각각 남·북 두 나라의 수도다. 854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이 DMZ를 지키고 있다. 2002년, 우리나라의 황진하 장군이 키프로스 유엔평화유지군 총사령관으로 부임, 2년간 복무한 바 있다.
키프로스=글·사진 조주청 여행칼럼니스트·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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