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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찾아서 44-성전 두루마리 …‘구약오경’에 필적하는 6번재 토라

영국신사77 2008. 8. 20. 15:17

   

성지를 찾아서 44-성전 두루마리 …‘구약오경’에 필적하는 여섯번재 토라
                                                                                                       [국민일보 2001-04-02 10:40]

 

 

 
                          다윗의 성전 설계도

  출애굽 이후 광야를 유랑하던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큰 소원은 야훼를 모신 성전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목민들은 임시 이동 성소인 성막에 만족해야 했다. 나중에 예루살렘을 점령한 다윗은 그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의 설계도를 넘겨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이 모든 것은 야훼의 손으로 기록된 것으로서 (그가) 나에게 건축양식의 공사들을 가르쳐준 것이다’(대상 28:19). 대부분의 구약 학자들은 역대기의 편집은 비슷한 내용의 열왕기보다 시대적으로 늦기 때문에 왕상 6장의 성전 설계도가 역대기의 다윗에게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지난 1956년 최초로 발견되고 1967년 해독된 성전 두루마리를 통해 성전에 관한 설계도가 이미 율법서의 형태로 보전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논쟁이 야기됐다.

                                사무엘의 왕 규범집

  외적의 침입에 시달렸던 이스라엘 민족이 왕[王政]을 요구했을 때, 예언자 사무엘은 사울을 제비 뽑아 왕으로 세우면서, 왕이 지켜야 할 의무와 경영에 관한 제반 규정을 책으로 기록했다(삼상 10:25). 이러한 전통은 이미 광야시대부터 비롯된 것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사람은 규정들을 책으로 기록하여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신 17:18-19).
 
  과연 이스라엘 왕이 지켜야 할 규범집은 어떤 책인가.새로 발견된 성전 두루마리에 왕의 의무규정들이 상세히 나타나기 때문에, 이 두루마리 해석자들은 이스라엘의 왕 규범집이 별도로 보전되었다고 주장한다.

  성전 두루마리의 존재는 이미 서기 11세기에 기록된 사무엘서의 주석서인 미드라쉬 사무엘을 통해 밝혀졌다. 이 주석서에 의하면, 야훼가 성전 두루마리를 모세에게 전해줬고, 이것이 나중에 다윗을 통해 솔로몬에게 전달됐다는 것이다.

  모두 66개의 단(column)으로 이뤄진 두루마리의 전체 길이는 8.1m로, 당시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긴 이사야서 두루마리보다 1.5m나 더 길다. 두루마리 가죽의 두께는 0.1㎚ 정도로 지금까지 발견된 사해사본의 두루마리 중에서 가장 얇은 것이었다. 글씨체로 미뤄 성전 두루마리 자체는 서기 1세기 초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좀더 오래된 다른 조각들을 통해 이 율법서는 원래 서기전 150년경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성전 두루마리를 입수하고 내용을 해석했던 야딘은 쿰란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엣세네 파의 ‘의로운 교사’가 기록했으며, 이 공동체의 대표적인 율법서로 인정된 문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 괴팅겐대의 스테그만 교수는 야딘과는 달리 이 두루마리는 엣세네 파와 상관없는 율법들의 모음집이며, 서기전 5세기 에스라에 의해 오경이 편집될 때 제외됐던 부분들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성전 두루마리의 문체가 다른 여러 점의 엣세네 문서들과 다른 점에 착안한 것이다. 또한 그는 성전 두루마리를 기록한 사람들은, 오경과 마찬가지로 이 문서가 같은 권위를 갖길 바라는 목적에서 기록하고 편집했다고 주장한다.

                                 성전 두루마리

  비록 누가 기록했느냐는 의견차가 있지만, 야딘이나 스테그만이 함께 인정하는 율법서의 권위를 지닌 성전 두루마리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여섯 번째 토라인가.
 
  토라는 유대교에서는 절대적 권위를 지닌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과 달리 구약성서만을 경전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구약을 토라,예언서,성문서 등 3부분으로 나누어 차등을 두고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일점 일획도 변경될 수 없는 야훼의 명령은 오직 오경에만 해당되고, 예언서나 성문서는 어느 정도 후대의 해석이 가감될 수 있다는 융통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주 안식일 아침 유대교 회당에서 진행되는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는 오경을 읽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 예언서를 읽고 해설하는 순서를 갖는다. 오경에는 모두 613가지 율법이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한 해의 날수와 같은 365개는 무엇을 시행하라는 긍정적인 명령이고, 나머지 248개는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이다. 과연 성전 두루마리가 구약성서의 오경에 필적하는 여섯 번째 토라인가,아니면 단순히 쿰란 공동체의 주인공들인 엣세네 파가 자체적으로 기록한 율법서인가.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오경의 최종 편집 연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새로운 성전 설계도

  성전 두루마리의 내용 중 절반은 새로운 성전에 대한 자세한 설계도이며, 이밖에도 이스라엘 왕들의 임무와 권리를 다루는 부분, 우상숭배와 제의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가장 기본적인 성전의 개념은, 성전을 중심으로 모두 세 개의 정방형 구역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가장 안쪽의 구역에 성전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곳에는 사방으로 모두 4개의 성문이 있다. 중간 구역과 바깥 구역에는 한 변에 3개씩 모두 12개의 성문이 있다. 성전 자체는 길이가 42m에 폭이 21m로, 솔로몬의 것보다 무려 4배나 큰 규모로 나타난다.

                       전쟁 중에 입수된 성전 두루마리

  성전 두루마리 구입 과정은 1960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 해 8월1일 야딘은 미국의 버지니아 주에 살고 있는 한 목회자로부터, 요르단 상인이 갖고 있는 사해사본을 중계하고 싶다는 편지를 받았다. 두루마리의 값은 무려 100만달러에 달했다. 1961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간 야딘은 이 사람을 만나 13만달러에 합의하고 1만달러를 선금으로 지불했지만, 도중에 가격이 20만달러로 뛰어 흥정이 지연됐다. 그나마 1962년 5월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아예 끊겨버렸고, 선금 1만달러를 지불했던 야딘은 이스라엘 국보가 타인의 손에 넘어가는 줄로 여기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성전 두루마리는 결정적인 기회에 이스라엘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다. 1967년 6월 7일전쟁 발발 사흘만에 이스라엘 군대는 요르단이 통치하던 동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점령했다. 다음날 야딘은 총리로 하여금 이 두루마리 입수를 촉구했고, 이 보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동예루살렘의 골동품 상점으로 정보장교를 파견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스라엘 무장군인들 앞에서 골동품 상인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베들레헴에 있는 자신의 집 바닥에 파묻어 놓았던 구두상자 속의 두루마리를 건네줬다. 이미 습기로 인해 윗 부분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그날 밤 야딘은 무려 7년을 기다린 끝에 성전 두루마리를 접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이스라엘 정부는 골동품 상인에게 보상금으로 10만5000달러를 지불했다. 당시로서 매우 큰 액수의 이 대가는 두루마리를 갖고 있는 다른 골동품 상인들을 유혹하기 위한 본보기였다.
 
 

/김 성 교수 협성대·성서고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