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씨시는 이탈리아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도시다. 그것은 바로 여기서 프란치스꼬 성인이 태어났고 또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꼬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변자로 나서게 됨은 물론이고 자기 형제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생활의 가난을 구현할 것을 요구했으며, 그는 돈을 쓰레기로 간주했다. 이런 프란치스꼬를 따르는 사람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여 여러 분원을 마련했으며 여성으로서 청빈, 보속으로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 제2회 '글라라회'를 세웠고, 또한 세상에 살면서 그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위해 '프란치스꼬 제3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태양의 노래' '평화의 기도'로 유명한 성 프란치스꼬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지닌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발견하여 예찬한 안목도 놀랍지만, 대자연을 통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는 길을 찾아낸 것은 참으로 경탄 할 만한 발견임에 틀림없다.
※ 성프란치스코 성인(Francesco; 1181년(82년?)-1226년)

어느 날 프란치스코가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그 곳의 십자가 상으로부터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라는 말이 들려와 그는 그때부터 회개하기 시작 하였고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성당 보수비를 마련하였다. 화가 난 그의 아버지는 소송을 하게 되어 그는 재판장 앞에 서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며 입고 있던 의복과 소지품 일체를 아버지에게 돌려준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이 후 홀로 청빈을 모토로 오로지 주님 말씀에만 관심을 쏟고 살았다.
프란치스코의 이러한 생활에 감화를 받은 제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12명이 되자 그는 교황에게 수도원 인가를 청원하여 「작은 형제회」라는 이름의 수도원으로 인가를 받았다. 그를 따르는 형제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여 분원을 마련하게 되었고, 여성으로서 청빈, 보속으로 그를 따르는 여제자들을 위하여 제2회 글라라회를, 또한 세속에 그 분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위해 프란치스코 제 3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자주 고요한 곳을 찾아 기도하였고 엄격한 고행과 끊임없는 묵상을 하곤 하였다. 1224년 그가 라베르나 산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예수께로부터 주의 상처와 같은 오상을 받게 되어 그 후 2년간 예수님의 고통을 체험하며 죽을 무렵까지 설교를 계속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한 가난 속에서 주님의 뜻에 알맞은 생활을 하였다.
■ 성프란치스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Francesco)

이 성당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와 유품인 떨어진 옷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현재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의 본원이다.
■ 포르치운꼴라와 천사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Santa Maria deglia Angeli Porziuncola)

1569-1630년에 갈레아초 알레시의 설계로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 건축이다. 익랑과 성가대석은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1832년에 세웠으며, 정면은 1925-28년에 만들었다.
※ 성녀 글라라(Clare: 1194-1253년)

프란치스코의 첫 여제자가 된 글라라는 아씨시 근교의 낡은 집에서 글라라회를 창설하여 침묵, 청빈, 단식을 통한 기도생활을 했다. 수녀원을 이끌어 가는 데는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하느님의 안배하심으로 궁핍할 때 기적도 일어났다.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이 된 후고리노가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일인데 추기경이 글라라에게 강복하기를 청하므로 겸손한 그는 곧 십자가를 그으며 식탁을 강복하자 돌연 그 위에 있는 빵마다 십자가의 표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글라라는 ‘빛’이라는 뜻이다.
그의 성덕의 빛은 지금도 찬란하며 주의 길을 따라 천국으로 향하는 자들의 앞길을 비추어 준다. 글라라 성녀가 수도하고 선종하신 성 다미아노 지하 성당에는 실물 유해가 있고 그녀의 머리, 수도복, 유품 등이 전시 되어 있다.
■ 성 글라라 성당 (Basilica di S. Clare)

수녀 성녀 글라라 사후 4년인 1257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으며, 그 3년 후에 글라라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프란치스꼬 성인에게 말씀하신 독특한 모습의 십자고상, 프란치스꼬와 글라라 두분 성인이 입던 옷, 그리고 글라라 성녀의 시신이라 할 것이다. 대리석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성녀 글라라의 무덤이 있는데, 창살 사이로 보이는 글라라 성녀의 얼굴은 새까맣게 화석이 되어 있다. 70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 성다미아노 성당 (San Damiano)
현재는 글라라 관상 수도회가 자리하고 있으며, 회개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가서, 쓰러져가는 내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말씀하신 다미아노의 십자가가 유명하다. 십자가의 원본은 성녀 글라라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 (Santa Maria degli Angel)

■ 산토 다미아노 성당
프란치스코가 처음으로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곳이며 성 글라라가 숨을 거둔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라센인의 격퇴, 빵의 기적, 크리스마스의 환상 등 여러 기적의 무대로 아씨시에서도 귀중한 순례 성당이다.
몇 년전의 지진으로 인해 현재는 보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