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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광주 양림교회, 오웬기념각, 우월순 선교사 생가

영국신사77 2008. 7. 31. 14:31
                [사진] 광주 양림교회, 오웬기념각, 우월순 선교사 생가

                                                                                    by:멋진가지 http://cafe.daum.net/hphp7/22ip/50

광주 양림교회         (출처- http://www.yangrim.or.kr)

 

1904년 12월 21일 벨과 오웬 가족이 광주 선교부로 이사하다.

1904년 12월 25일 오전 11시 크리스마스 축하예배에 광주 시민 200여명이 참석하였고  방안에 40여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다.

    이 날이 양림교회의 최초의 예배였다.  벨 목사는 양림교회의 설립자이며 동시에 제1대 당회장이다. 

1905년 03월 예배참석 인원이 20명에서 200명 사이였고 4명이 세례 신청(특별반에서 공부)하다.

1905년 10월 스트레퍼 여선교사는 주일 오전 여자 성경공부반 가르쳤다. 

1905년 10월 주일 아침 예배에 250명 참석하였다.(평균 50명 출석) 35명이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표명하다.

1905년 11월 20일 놀란도 역시 광주의 양림리 교회 근처로 와서 벨 목사의 임시주택을 진료소로 개조하여 첫 진료를 시작하였는데

    광주의 의료구원의 산실인 광주기독병원의 시작이 되었다.

1907년 01월 예배당을 확장하고 2월 신앙사경회 개최하였고(W. F. Swallen이 주 강사로 설교하다). 4월 성례식 개최하였다.

    (세례교인 5명. 이 가운데 여자가 2명이다) 놀란 의사가 선교사 직을 사임하고 평안도 운산 금광회사 부속 병원으로 옮기고

    10월 프레스톤 목사부부는 목포로 옮겨가고 11월 그라함(Ella I. Graham) 독신 여 선교사가  도착하였다(여성과 아동 선교가

    시작하다) 교인은 약 60명정도

1908년 01월 집사 김윤수, 최흥종의 집사 임직식을 거행하였을 것으로 본다. 그해 3월 광주 남학교 시작되는데 평균 20명  출석하

    였고 양림리교회에서 남학교 심상과를 지원한다 의사 선교사 윌슨(Dr. Robert M. Wilson)이 부임하여  의료선교를 재개하고

    주일학교를 재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는데 주중에 교사반을 운영하였다.

1908년 09월 교인의 숫자가 125명이다

1908년 04월 광주 여학교 시작하였는데 평균 17명 출석하였으며 이것이 수피아 여학교이다. 세례교인 4명, 학습교인 18명에 대해

    성례전을 실시하였으며 곽(우영) 전도사를 선출하여 인근에서 전도사역에 전념토록  지원하기로 하였고 양림리교회 교우가

    곽 전도사의 급여를 담당하였다.

호남선교의 초기역사를 간직한 양림교회


광주에 처음 교회가 세워진 역사는 1904년 12월25일 벨(Eugene Bell.한국명 배유지)선교사의 자택에서 40여명이 모여 성탄절 예배를 드린 것에서 출발을 하고 있다. 이처럼 광주에서는 다른 곳과 다르게 학교나 병원보다 교회가 먼저 세워진 것이 특징이다. 양림교회(광주시 남구 양림동 92 전화 062-672-1101)에 들어서면 오래 된 교회임을 바로 알수가 있으며, 정원이 잘 관리되어 있고 교회의 곳곳에 교회의 역사자료를 게시하고 있어 역사의 의미를 오늘에 잘 전달하는 교회이다. 양림교회는 1926년 9월26일 건축된 붉은색 벽돌 건물을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으며,이웃에 1914년에  오웬의료선교사를 기념하여 세운 흰색의 2층 건물인 오웬 기념각과 더불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양림교회는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벨의 사택에서 시작한 광주교회는 교인수가 늘어나자 1906년 6월경에 북문안의 사창(司倉)창고자리에 교회를 옮겨 북문안 교회라고 불렀다. 그런데 3.1만세운동에 이 교회가 중심이 되자 일본정부가 교회터를 빼앗자 1919년 10월에 남문밖 금정동에 교회를 옮기니 남문밖교회,남문교회,금정교회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고 금정교회는 4-5백명의 교인들이 모이자 비좁아서 양림동에 사는 교인들이 금정교회 당회장인 김창국목사를 모시고 300여명이 광주천을 넘어 양림동의 오웬기념각에서 1924년부터 예배를 드림으로 양림교회가 시작 되었고, 1926년에 현재의 교회당을 지었다. 배유지 선교사가 광주에 최초로 세운 교회는 세월이 가면서 이전을 하고 이름이 바뀌게 되지만 양림교회는 그 역사의 뿌리를 지켜오면서 광주의 모교회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귀한 교회이다. 그리고 양림교회 부근에는 호남신학대학과 선교묘지동산,광주기독병원 그리고 수피아여학교등 개신교 초기의 기독교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한 번에 돌아 볼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둘러보고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감사하며 소중히 여기 사람과 교회는 그 복을 자자손손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찾아가기 : 광주역앞-시청방향 정류장에서 2번버스를 타고- 기독병원앞에서 하차.

 

제1대 배유지(벨) 목사와 두 아들        (출처- http://www.yangrim.or.kr)

 

제1대 배유지 목사 아이들과 한국아이들

 

1905년 양림동 모습

 

1905년 벨(배유지 목사) 목사 사택

 

1910년 북문안 양림교회

 

1919년 남문밖 예배당

 

 1936년 양림교회교

 

주일학교 

 

1936년 주일학교

 

                         양림교회 역대 담임목사들(출처- http://www.yangrim.or.kr)

 

광주양림교회 (출처- http://cafe.naver.com/ma77/사진·김용두 기자)

 

                            광주양림교회(출처- http://blog.daum.net/hywkim9)


 

                                       오웬기념각


 광주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 안에 있는 오웬기념각은, 유진 벨 선교사와 함께 전라남도 최초 선교사였던 클레먼트 C.오웬(한국명 오기원)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을 기념하기 위해 1914년에 세운 2층 건물이다.

 

 회색 벽돌로 지은 이 건물은 객석에서 설교단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1층 바닥과 2층 발코니를 모서리의 설교단을 향해 경사지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주로 교회로 사용되었으며, 당시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열려 문화운동을 파급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는 광주광역시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주=글·오정선 기자/사진·김용두 기자)

 

                                                    우월순 선교사 생가


 1946년 1월 한국에 도착한 우월순(R.M.wilson.1908∼1926)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술로 전한 인물이다. 광주기독병원 2대 원장이었던 그는 1925년 나환자 치료를 위한 전문 진료소를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애양원이 탄생하게 됐다.

 

 사진 속 건물은 우월순 선교사가 광주에 거할 당시 사용한 사택으로, 광주에 있는 현존 양식 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은 1989년 기념물로 지정돼 광주광역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광주 호남신학대학교 내에 있는 우월순 생가는 최근 KBS 방송 드라마 촬영지로 사용 중이다.  

 

                                                                          (광주=글·오정선 기자/사진·김용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