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교육의 산실인 서울 정동의 배재학당 건물이 역사박물관으로 개조돼 지난달 24일 문을 열었다. 박물관 전시품은 한국 근현대사를 읽을 수 있는 생생한 자료들이다. 박물관이 들어선 건물은 1916년 서양 고전 양식으로 지어졌다. 1984년 배재중·고가 서울시 고덕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교실로 쓰였다. 서울시 기념물 16호로 지정됐으며 한동안 일반 사무실로 임대되기도 했다.
구한말 만민공동회 활동을 하다 투옥된 이승만은 1899년, 미국인 선교사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에게 영어로 쓴 편지를 보냈다. 아펜젤러는 이승만의 편지를 자신의 일기에 일일이 옮겨 적었다. 이 일기도 전시품 중 하나다.
26일 서울 정동에 위치한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배재학당의 역사와 졸업생들의 업적이 전시된 명예의 전당을 둘러보고 있다. 아래 사진은 박물관에 걸려 있는 당시 학생들 모습. 최승식 기자,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
배재학당은 신식학교답게 세계사·지리·생화학·음악·미술·연극 등 당시로선 희귀했던 과목을 다양하게 가르쳤다. 이런 점을 높이 산 고종황제는 1886년 유용한 인재를 기르는 곳이라는 뜻의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고종은 당시 명필이던 정학교에게 글씨를 쓰게 하고 현판을 학교에 내려 주었다. 이 현판은 현재 박물관 1층 상설전시실에 걸려 있다.
박물관에는 당시 음악 교육에 쓰인 피아노도 전시돼 있다. 피아노에 붙어 있는 설명문에는 “아펜젤러가 한국에 올 때 가져온 피아노로 1864년 독일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소개돼 있다. 이 피아노는 배재학당 강당에서 이용됐으며 배재 출신의 피아니스트 한동일·백건우가 학창 시절 이 피아노로 음악을 공부했다.
박물관 전시 자료에 따르면 배재학당은 정구반(1900년)·축구반(1902년)·야구반(1911년)·육상반(1920년)을 잇따라 만들며 한국 스포츠 발전에도 기여했다.
배재학당은 이승만 외에도 한글학자 주시경, 청산리전투의 주인공인 지청천, 소설가 나도향, 시인 김소월 등 한국 근대사의 주인공들을 배출했다. 김소월이 재학 중 지은 ‘졉동’‘달밤’‘깁고깁은 언약’ 같은 시가 실린 교지(‘배재2호’·1923년)도 그의 첫 시집인 『진달래꽃』(1925년 출간)과 함께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배재학당은 다양한 신분의 학생을 받아서 당시로서는 화제를 모았다. 박물관에 걸려 있는 당시 사진에는 상민으로 보이는 댕기머리의 어린이와 삿갓을 쓴 청년이 함께 서 있다. 김종헌(배재대 건축학부 교수) 박물관장은 “개교 초기에 양반 신분의 학생들은 평소 습관대로 시종들을 데리고 다녔고, 아펜젤러는 ‘하인 없이 학교 다니는 게 공부의 시작’이라고 이들을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김 관장은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한국의 근대사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성시윤·최선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