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선교사 · 신앙偉人/韓國기독교 역사와 교회사

★★★ 한국기독교 역사 1~6 <100주년>

영국신사77 2008. 6. 5. 00:07
                                   한국기독교 역사

 

                                                                     

 

 

                                                       

 

 

                                      1. 초기 선교활동

                                  
 알렌은 1884년 12월에 갑신정변(우정국사건)이 일어 나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비롯하여 많은 고관들을 치료하여 줌으로써 고종황제의 신임을 얻어, 1885년 2월에 한국 최초의 서양의술의 병원인 광혜원(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을 설립하고 그 책임자가 되었다. (광혜원은 후에 제중원으로 개칭하였다.)

          < 알렌이 세운 최초의 병원 광혜원 >

< 최초의 현대식 병원 세브란스 병원 >


  감리교의 최초의 의료선교사 스크랜톤은 처음에 알렌과 함께 제중원에서 일하다가, 1885년 9월에 정동제일병원을 세우고 의료선교에 임하였다.

 

  1887년 감리교의 여자의료선교사인 메타 하워드(Meta Haward)는 정동의 이화학당 구내에 부인병원을 설립하였는데, 명성황후는 병원의 이름을 보구여관이라고 지어주었다.

 


< 감리교 최초의 의료선교사 스크랜톤 >

  그 후 감리교와 장로교는 서울, 인천, 평양, 원산, 공주, 부산, 대구, 신천, 재령, 청주, 강계, 전주, 광주, 해주, 안동, 군산, 목포, 개성, 춘천, 진주, 성진, 함흥 등에 병원을 세우고 의료사업과 동시에 선교사업을 하였다.

  세브란스병원은 1904년 9월에 남대문에 현대식병원을 신축하고 의학교와 간호학교를 설립하여 1908년에는 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들이 한국최초의 의사들이다.

          < 감리교 최초의 여자병원 보구여관 >

< 세브란스 의과대학 제1회 졸업생(1908) >

 

 

 

교육을 통한 선교의 목적으로 1884년 8월에 감리교 선교사 아펜셀러는 2명의 학생을 데리고 학교를 시작하여 다음해인 1885년 6월에 감리교 선교부의 공인을 얻고 고종황제로부터 '배제학당'이란 이름을 하사 받았다. 또한 감리교 여선교사 스크랜톤은 1886년 5월에 한사람의 학생을 상대로 학교를 시작하였는데 명성황후는 그 이름을 '이화학당'이라고 하사하였다. 이 두 학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현대교육을 실시하는 남학교와 여학교가 되었다.

 

 

                                      
                                         < 이화학당 설립자 스크랜톤 >


이렇게 계속 세워진 우리나라의 기독교학교들은 1909년까지 장로교에서 세운 학교가 605개교, 감리교에서 세운 학교가 200개교 등 다른 교파에서 세운 학교까지 포함하여 기독교학교는 950여개 교에 이르렀다. 1910년에는 이화학당에서 대학부가 설립되었고 1915년에는 연희전문학교가 설립되었다.

< 한국최초의 남자학교 배재학당 >

< 숭실대학 본관(평양) >


< 한국최초의 여자학교 이화학당 >

< 숭실학교 설립자 마펠(마포삼열) >

 

 

  선교사들은 선교의 매체로 삼기위하여 먼저 한글로 성서번역을 시도하였다.

 

  실은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입국하기 전에 이미 만주에 있던 로스(Ross)목사가 번역한 한글성서가 있었고, 일본에서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이 출판되었다.


< 최초의 성서번역 위원 >

< 요한 로스가 만주에서 번역한 최초의 성서 >


  성서번역을 위하여 국내에서는 1890년에 조선성서공회가 조직되고, 아펜셀러와 언더우드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한글로 출판하였다.

 

  또한 1900년에는 [신약성서]가 간행되었고, 이어서 1911년에는 [구약성서]가 완역되었다.


< 성서를 한글로 발행한 선교사 게일 >

< 한글로 번역된 최초의 신약성서 >

  찬송가는 1892년 감리교의 존스(Johns)목사가 처음으로 [찬미가]를 펴낸 뒤 1908년에 감리교와 장로교가 함께 [합동찬송가]를 간행하였다.

1889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배재학당 안에 현대식 인쇄소가 설치되어 문서선교를 위한 기독교 서적들과 기독교 신문 등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인쇄소에서 서재필박사가 주간이던 [독립신문] 창간호가 인쇄되었다
.

< 언더우드가 발행한
'그리스도 신문' >

< 서울에서 번역된 최초의 복음서인
'요한복음' >

< 한글로 번역된 신앙지
'천로역정' >

  기독교신문으로는 1897년 2월에 아펜셀러가 주관한 [조선그리스도회보]를 비롯하여 [그리스도신문](1897년), [예수교신보](1902년), [예수교회보](1910년) 등 많은 신문들이 발행되었다.

 

 

 

                                   2. 일제치하 기독교

  한일합병 이후 일제의 통감정치가 시작되자 민족의 비극적 삶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때부터 민족의 수난에 앞장서서 싸우는 강력한 단체가 되었다.

  교회지도자들은 교회 옆에 반드시 학교를 세워서 교육사업을 통한 구국운동을 크게 일으켰다. 일본의 통감부는 교회의 교육운동에 다른 뜻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회 지도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 '105인 사건' 공판정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 >
 

<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검속된 평북 선천의
신성중학교 교사들 >

  저들은 마침내 1910년에 '해서 교육 총회사건'과 1911년에 '105인 사건'을 조작하여 일으켰다. 이 두사건에 관련되어 검거되고 투옥된 인사는 약 700명이었으며, 당시의 기독교계의 중요인물을 총망라하였었다. 이 두 사건은 한국교회가 일본 침략자들에게 당한 최초의 박해였다.

 

 

                                     3. 해방후 기독교
  남한에는 미군이 진주하여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일제말엽에 강제로 모든 교파의 통합이 이루어졌고 해방후에도 그 합동교단을 그대로 존속하려는 운동이 있었다. 1945년 9월 8일에 새문안교회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목사들이 모여 교회의 합동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나 자파교회로의 환원에 대한 집념이 더 강하여 하나의 교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구세군 등 각 교파는 각각 활발히 선교하여 교세를 확장하여 갔다.

< 해방의 기쁨에 환호하는 국민들 >

 

 

 

 

                                     4. 6.25 전쟁후 기독교
6.25사변을 통하여 받은 교회의 손실은 동족상잔의 비극 그대로였다. 공산당에 의하여 북한으로 납치되어 간 목사의 수와 순교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회만도 236명이었고 교회의 파괴와 손실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교회가 267개에 달하였다.

< 공산당들에 의하여 세아들을 잃고 '사랑의 원자탄'을 쓴 손양원 목사 >

6.25사변중에 공산당이 저지른 만행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 전북 옥구군 원당교회는 75명의 신도중에서 73명이 공산당에 의하여 학살되었다.

< 공산당에 의하여 학살된 양민들 >
 

< 한국동란으로 끊어진 다리
밑으로 피난길에 오른 서울시민들 >

이러한 슬픔과 고통의 어려움을 딛고 한국교회는 순교자의 터전위에 날로 부흥되어 갔다.

< 한국동란으로 파괴된 교회와 주변 >
 

< 파괴된 대동강 철교위로
피난길에 나선 평양의 기독교인들 >

1951년 2월에는 국군안에 군목제도를 창설하여 현대전에서의 정신적 자세를 확립할 뿐 아니라 젊은 군인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선교전위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 공산당들에게 끌려가는 애국지사들 >

< 공산당들의 만행 >

 

 

                                     5. 근대사의 기독교
  한국교회의 놀라운 발전은 교회안에서의 사명을 다할뿐만아니라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국 방방곡곡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1954년 12월에 각교파가 힘을 모아 서울에 「기독교 중앙방송국」 (HLKY)을 개국하였다.

  1954년 8월에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미국의 에반스론에서 열렸는데, 그때에 이 협의회안에 평신도국을 둠으로써, 교회의 평신도운동은 한국교회에서도 1960년대에 들어와 활발히 전개되어 교회에서의 평신도의 역할이 크게 강조되었다. 평신도운동은 종래의 성직자 중심의 교회선교에서, 이때까지 유휴자원으로 있던 평신도의 기동력을 동원하여, 교회가 세상으로 파고들어가려는 흩어지는 교회의 선교운동이었다.

< 해방후 처음으로 기독교연합회추최로 가진 부활절 연합예배(남산) >

  1965년은 한국교회 역사에서 특기할만한 역사적 운동이 일어났다. "3천만을 그리스도에게" 라는 표어를 내걸고 전국을 복음화하는 열렬한 전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복음화 운동은 개신교 18개교단과 로마카톨릭과 정교회까지 포함하여 20개 교단이 함께 참여한 대규모 전도운동이었다. 복음화운동은 1년동안 전국에서 계속되었고,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11월 5일에는 서울운동장에서 전국신도대회를 열어 "교회는 일치를, 사회는 봉사를, 민족에게는 소망을"이란 선언문을 채택하고, 1년 동안 계속된 복음화 운동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한국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얼스 박사의 전도집회 >


  한국교회가 세계교회 협의회에 대표를 파송한 것은 1948년 네덜란드의 암스텔담에서 열린 제1회 총회때였다. 이 협의회에 가입된 우리나라 교회는 감리교, 장로교(통합측), 기독교 장로회 등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일치 운동의 역사는 1924년 3월에 감리교와 장로교가 조선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한데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협의회(K.N.C.C)는 금년[1984년]에 창설 60주년을 맞이하였다. 한국교회협의회에 가입된 교단은 감리교, 장로교(통합측), 기독교 장로회, 성공회, 구세군, 복음교회 등 6개 교단이다.


< 1952년에 가진 빌리 그래함의 부산전도 집회 >


  한국에서 개신교와 로마카톨릭교회와의 일치운동은 1966년 3월 8일 초동교회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신·구교 합동예배가 거행되었다. 1968년 1월에는 신구교 일치 기도주간을 설정하고, 한국교회협의회의 회원교단과 카톨릭교회와의 강단교류가 시도되었다. 카톨릭교회의 박양운 신부가 영락교회 강단에서 설교하였고, 경동교회의 강원용 목사가 명동성당 에서 설교하였다.

  또한 1969년 1월에 신·구교가 합동하여 성서의 공동번역을 착수하여, 1977년 부활절에 신구약 [공통번역서]가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6. 오늘의 교회사업
 기독교는 처음부터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을 선교의 중요한 기관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 학교는 1910년까지 상당히 많이 설립되었다.(829교 설립)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사립학교령' 발표이후 일제치하에서의 많은 학교가 폐교되었다.(1919년에 298교로 줄었다.)

  해방과 더불어 기독교 학교는 새로 재건되고 또 신설된 학교들이 많아져서 기독교 정신으로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학교의 수가 증가하였다.

  다음은 오늘의 한국 기독교계통 학교의 통계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대학 대학 대학교 신학대학
6 109 104 6 5 4 14


< 중부신학교 >

< 한양대학교 >

< 중앙대학교 >

< 배재대학교 대전캠퍼스 >

< 명지대학교 용인캠퍼스 >

< 서울여자대학교 >

< 부산외국어대학교 >

< 전주한일신학교 >

< 개명대학교 >

< 경성대학교 >

< 배화여자중 ·고등학교 >

< 경신중 ·고등학교 >

< 숭실중 ·고등학교 >

< 배제중 ·고등학교 >

< 이화여자고등학교 >

< 연세대학교 >

< 이화여자대학교 >

< 숭실대학교 >

< 장로회신학대학교 >

< 한신대학교 >

< 감리교신학대학교 >

< 서울신학대학교 >

< 총신대학교 >

<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 >

< 고신대학교 >

 

 

기독교의 의료사업은 선교의 매체로서 처음부터 활용한 주요한 사업중의 하나이다. 선교사 알렌이 세운 광혜원이 한국 최초의 현대 의료기관의 효시가 되었다.


이렇게 100년 동안 기독교가 선교의 매체로서, 또는 인간의 생명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상징으로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기독교계통의 병원은 전국에 16개 병원이 있다.

<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


< 의료봉사 봉사선 >

< 전주예수병원 >

< 부산침례병원 >

< 대구동산병원 >

 

 

 

기독교 선교를 시작하던 초창기부터 사회복지시설은 함께 시작되었다. 선교사들은 고아원을 처음으로 시작하여 불쌍하고 돌보는 사람없는 고아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기르고 보호해 주었다.

< 정신지체아들의 음악시간 >

< 보행연습하는 정신지체아 >

현재 우리나라 전체의 복지시설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탁아소 382, 영아원 31, 육아원 153, 지체부자유자 보호소 30, 부랑아 보호소 15, 직업보호기관 23, 양로원 36, 경로당 2,338, 정신박약아 보호기관 17, 아동상담소 16, 모자보호기관 27, 근로자합숙소 57, 윤락녀 보호기관 9, 윤락녀 보호소 4 등 모두 3,138개소이다.


< 농아들의 어학실습 >
 

< 장애인의 날 기념체육대회에서
홀트아동복지회 어린이들의 운동경기 >

그런데 그중에서 기독교가 운영하고 있는 복지시설은 다음과 같다.

아동복지시설 253, 부녀복지시설 16, 노인복지시설 48, 장애자 복지시설 48 등 모두 365개소나 된다.

< 고아원을 방문 위로하는 따뜻한 온정 >

< 불우아동을 돕는 국내 결연사업 >

 

 

기독교 청년운동은 YMCA와 YWCA를 비롯하여 여러 기독학생운동단체들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 YMCA >

< 여름성경학교 >

초창기의 YMCA는 물산장려운동과 공업기술 등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쳤으며 또한 새로운 스포츠를 도입하여 우리나라 운동 역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 YMCA 연합회 >

< 야간학교 >

그리고 일제치하에서는 월남 이상재 선생같은 분이 계셔서 젊은이들에게 민족의 독립운동을 지도하였다.

< 가나안 농군학교 >

< 가나안 농군학교 연수생 >

 

 

- 기독교방송 (HLKY)

"기독교방송은 한국사회에 있어서 도의심 향상과 기독교적 교양을 육성시키며 아울러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널리 선교하는데 그 목적을 둔다."고 천명하고 1954년 12월 15일에 한국 최초의 민간방송으로 설립되어 현재 5대 도시를 연결하는 라디오 네트웍을 형성하여 전국에 선교방송을 하고 있다.

< 기독교 방송국 >

< 방송하는 아나운서 >

기독교 대구방송(HLKT)은 1959년 3월에, 기독교 부산방송(HLKP)은 1959년 12월에, 기독교 광주방송(HLCL)은 1961년 8월에, 기독교 이리방송(HLCM)은 1961년 11월에 개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국 기독교방송의 전파를 통하여 상한 심령에 위로를 주었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공산치하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의 기쁨과 힘을 알려주는 사명을 다해왔다.

< 방송 기계실 >

< 방송 녹음하는 모습 >

「기독교방송」은 우리 국토의 1/3과 북한지역의 반을 그리고 중공과 만주지역에 까지 미치고 있어서 기독교 방송으로서의 기틀을 견지해 오고 있다.


- 극동방송 (HLKX)

극동방송은 1956년 12월 23일에 선교사 파송이 불가능한 공산권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하여 중국어, 러시아어, 몽고어, 영어, 한국어 등 5개 국어로 방송을 시작하였다.

< 극동방송의 방송하는 모습 >

< 방송 녹음하는 모습 >


< 극동방송을 듣고 중국에서 보낸 편지 >


- 아세아방송 (HLAZ)

아세아방송은 1973년 6월 30일에 제주도에서 개국하여 공산권 선교에 힘을 기울여 오고있다. 1977년부터 극동방송과 아세아방송은 공동운영을 하면서 공산권 선교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두 방송은 특히 공산권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을 고국과 연결시키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는 초창기부터 전도의 일환으로 출판사업에 역점을 두었다.

성서번역과 출판을 담당하고 있는 성서공회와 찬송가와 기독교 서적들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기독교서회와 생명의 말씀사와 컨콜디아사 등은 기독교 서적만을 출판하는 훌륭한 기관들이다.

< 성경·찬송가 >

< 여러 기독교 출판사들>

또한 기독교 신도들이 경영하는 출판사와 서점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이밖에도 월간잡지와 단행본들을 많이 출판하여 문서선교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 계통의 주간신문인 「 크리스챤」 신문과 「 교회연합신보」등은 전문적인 교회신문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


< 여러 기독교게 신문들 >

 

 

 

 

 

 

 

 

 


<여러 기독교게 잡지들>

 

 

 

 


< 케냐 전도 >

< 케냐 주일학교 >


< 칠레 SAN MIGUEL교회 교우 >

< 칠레 BELLOTO주일학교 >


< 인도 기도모임 >

< 인도 야간학교 >


< 스페인 양로원봉사 >

< 파라과이 전도현장 >


< 인도네시아 세례식 >

< 인도네시아 성경수업 >


< 필리핀 남평신도 >

< 필리핀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구역교인 >

 

 

 

 

 

                                                              출처: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