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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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방후 기독교 | |
남한에는 미군이 진주하여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일제말엽에 강제로 모든 교파의 통합이 이루어졌고 해방후에도 그 합동교단을 그대로 존속하려는 운동이 있었다. 1945년 9월 8일에 새문안교회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목사들이 모여 교회의 합동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나 자파교회로의 환원에 대한 집념이 더 강하여 하나의 교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구세군 등 각 교파는 각각 활발히 선교하여 교세를 확장하여 갔다.
< 해방의 기쁨에 환호하는 국민들 > |
4. 6.25 전쟁후 기독교 | |
6.25사변을 통하여 받은 교회의 손실은 동족상잔의 비극 그대로였다. 공산당에 의하여 북한으로 납치되어 간 목사의 수와 순교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회만도 236명이었고 교회의 파괴와 손실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교회가 267개에 달하였다.
< 공산당들에 의하여 세아들을 잃고 '사랑의 원자탄'을 쓴 손양원 목사 > 6.25사변중에 공산당이 저지른 만행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 전북 옥구군 원당교회는 75명의 신도중에서 73명이 공산당에 의하여 학살되었다.
이러한 슬픔과 고통의 어려움을 딛고 한국교회는 순교자의 터전위에 날로 부흥되어 갔다.
1951년 2월에는 국군안에 군목제도를 창설하여 현대전에서의 정신적 자세를 확립할 뿐 아니라 젊은 군인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선교전위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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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근대사의 기독교 | |
한국교회의 놀라운 발전은 교회안에서의 사명을 다할뿐만아니라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국 방방곡곡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1954년 12월에 각교파가 힘을 모아 서울에 「기독교 중앙방송국」 (HLKY)을 개국하였다. 1954년 8월에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미국의 에반스론에서 열렸는데, 그때에 이 협의회안에 평신도국을 둠으로써, 교회의 평신도운동은 한국교회에서도 1960년대에 들어와 활발히 전개되어 교회에서의 평신도의 역할이 크게 강조되었다. 평신도운동은 종래의 성직자 중심의 교회선교에서, 이때까지 유휴자원으로 있던 평신도의 기동력을 동원하여, 교회가 세상으로 파고들어가려는 흩어지는 교회의 선교운동이었다. < 해방후 처음으로 기독교연합회추최로 가진 부활절 연합예배(남산) > 1965년은 한국교회 역사에서 특기할만한 역사적 운동이 일어났다. "3천만을 그리스도에게" 라는 표어를 내걸고 전국을 복음화하는 열렬한 전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복음화 운동은 개신교 18개교단과 로마카톨릭과 정교회까지 포함하여 20개 교단이 함께 참여한 대규모 전도운동이었다. 복음화운동은 1년동안 전국에서 계속되었고,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11월 5일에는 서울운동장에서 전국신도대회를 열어 "교회는 일치를, 사회는 봉사를, 민족에게는 소망을"이란 선언문을 채택하고, 1년 동안 계속된 복음화 운동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한국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얼스 박사의 전도집회 >
그러므로 한국교회 협의회(K.N.C.C)는 금년[1984년]에 창설 60주년을 맞이하였다. 한국교회협의회에 가입된 교단은 감리교, 장로교(통합측), 기독교 장로회, 성공회, 구세군, 복음교회 등 6개 교단이다. < 1952년에 가진 빌리 그래함의 부산전도 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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