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머珍奇불가사의

배꼽 빠지는 ‘한국어 만담’ 알고보니 일본 개그맨 작품

영국신사77 2008. 5. 29. 19:58

배꼽 빠지는 ‘한국어 만담’ 알고보니 일본 개그맨 작품 [중앙일보]

서울서 공연 펼친 요시이·다카스카 콤비
팀이름도 한국말로 ‘친구’
개콘·웃찾사서 승부하고파

한국어로 만담하는 일본 코미디언 콤비 ‘친구’의 멤버 다카스카 고지<左>와 요시이 신이치.
“백세주를 마시면 정말 백 살까지 사나요?” “바보, 그건 그냥 상표 이름이잖아.”

“저 사람 운동화엔 왜 ‘나이스’라는 상표가 붙었죠? 신상품인가 봐요.” “바보, 그건 ‘나이키’의 가짜 상표잖아.”

한국 문화에 빠져 한국어로 만담을 펼치는 일본인 코미디언 콤비가 있다. 친구 사이인 요시이 신이치(吉井愼一·31)와 다카스카 고지(高須賀浩司·35)가 주인공. 둘이 꾸리는 팀은 이름도 한국어로 ‘친구’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이에서 느낀 점을 만담의 재료로 삼는 ‘지한파’ 일본 개그맨 콤비다.

이달 중순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에서 공연을 올려 양국 관객을 웃음 바다에 빠뜨렸다. 공연 뒤 만난 두 사람은 “틈만 나면 한국에 오고 싶고, 1년에 적어도 두세 번은 꼭 온다”고 말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웃지 못할 일화가 많았다. 다카스카가 들려주는 일화 하나. “일본 택시는 운전기사 분들이 조작해 자동으로 문을 여닫아 주죠. 그걸 생각하고 한국에서도 목적지에 다 왔는데 계속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기만 해서 핀잔받은 적이 있어요. 이젠 반대로 일본에서 먼저 문을 열고 내리려고 해서 기사 분들이 당황해 하더군요.”

요시이도 처음엔 질주하는 한국 버스가 무서웠지만 이젠 오히려 지나치게 모범적인 일본 버스가 답답하다고.

요시이와 다카스카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 10여 년 전 만담 콤비를 결성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여행하러 왔다가 한국에 푹 빠졌다.

“사람들 목소리도, 웃음소리도, 심지어 술 마신 뒤 ‘캬’ 하는 소리도 일본보다 훨씬 더 컸어요. 더 자유롭기도 하고, 새로운 분위기에 빠져 하숙집을 얻어서 몇 달간 살았죠.”(다카스카)

일본에 돌아가서도 한국 공부는 계속됐다. 일본에서 활동 중이던 한국 코미디언 이봉원씨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고, 한국 드라마도 탐닉했다.

만담 문화가 한국에서는 거의 사라졌다는 점도 눈에 들어왔다. “만담이라는 건 마이크와 관객만 있으면 말솜씨만으로도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멋진 코미디예요. 그런데 한국에선 ‘할아버지들만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일본에선 여전히 남녀노소 불구하고 인기가 많거든요. 우리가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죠.” (다카스카).

때마침 일본에 찾아온 한류 붐과 함께 본격적으로 공연을 펼쳤고, 일본 현지 언론의 관심도 받았다. 도쿄의 오쿠보 지역 등지에서 수시로 공연을 펼쳤고, 일본 케이블 방송에서 한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서울 대학로의 ‘웃찾사’ 와 ‘개콘’ 공연 무대에서도 여러 번 호응을 받았다.

한국 관객과 일본 관객은 어떻게 다를까. “예를 들어서, ‘한국 여성들이 일본 여성들보다 더 예뻐요’라고 얘기하면 한국 관객 중에선 꼭 ‘당연하지’라고 소리 내어 말씀하시는 분이 있어요. 일본 관객들은 얌전히 앉아서 즐길 뿐인데, 한국 관객은 적극적으로 공연의 일부가 되죠. 그런 점이 재미있어요.”(요시이)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웃찾사’나 ‘개콘’의 TV쇼에 정식으로 나가보는 게 꿈이에요.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너무 달라요. 그 두 문화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글·사진=전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