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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울 <온맘닷컴>

영국신사77 2008. 5. 13. 08:48
사    울


 

(lWav; , Saul) 「희망」
[1]에돔의 왕으로서 유브라데 강가 르호봇 출신이다(창 36:38).

 

[2]시므온의 아들인데, 가나안 여인의 소생으로서 야곱의 손자이다(창 46:10).

 

[3]이스라엘 민족 왕제 시대 최초의 왕이다(BC 1030- 1010). 그는 베냐민 지파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의 아들이다(삼상 9:1,10:21). 이스라엘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했다(삼상 9:1,10:23). 풍족한 가정에서태어났으나, 그의 출생지와 생
년월일은 분명치 않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 사람의 압박을 받아 고통을 당하던 시대이며, 민족 생활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도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없었다(삼상 4:11). 또한 선지자 사무엘은 연로하고 그의 후계자인 두 아들은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므로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열방과 같이 저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삼상 8:4,5,19,20). 이스라엘에 왕국의 출현은 옛날부터 예기되어있었던 것이다(창 17:6,16,35:11,신 17:14-20).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 성립되게되어 있었지만(삼상 8:7,8), 이와 같은 위기에 직면하여 왕정을 구한 백성의 태도는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이스라엘 신정정치에 대한 거부의 죄였다.
 
  위와 같은 상태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독립시키기 위해 왕제가 필요하게 되어 제 1대의 왕위에 오른 왕이 바로 사울이다. 사울에 관한 지식은 주로 사무엘 상하서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된다.
 
  옛날 자료에 의하면, 사울은 한 사환을 데리고 아버지의 잃은 암나귀를 찾아 에브라임 산지의 숩 땅으로 갔다. 거기는 선지자 사무엘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사무엘에게서 나귀의 행방을 알려고 했다. 때마침 그날 성읍에서 산당으로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는 사무엘을 도중에서 만났다. 사무엘은 이미 전날 사울이야말로 백성이 구하는 왕의 적임자라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받았으므로, 나귀에 대해서는 뒤로 밀어 놓고 그를 초청하여 잘 대접하고 하룻 밤 묵게 했다. 그리고 이튿날 사환을 먼저 돌려보내고 사울에게 왕위에 오를 기름을 부었다(삼상 9:1-10:11).
 
  다음에 사무엘은 12지파를 미스바에 소집하여 그들이 구한 왕의 선출을 위해 제비를 뽑게 했다. 그 결과(일부의 반대도 있었지만,삼상 10:27) 이스라엘 왕국 제 1대의 사울 왕이 탄생하였다(삼상 10:17-24).
 
  사울사울그 후, 암몬 사람 나하스가 요단 동쪽 갓 지파의 거주지인 길르앗에 이르러 야베스를 치고자 하여 무서운 협박을 하자, 야베스는 이스라엘 전역에 사자를 보내어 구원을 청하였다. 이 사자가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나하스의 협박을 알리고 구원을 청하매 기브아의 모든 백성이 소리높여 울었다. 이 울음 소리를 들은 사울은 성령에 감동되어 이스라엘 전역에서 의용병을 모집하니 33만이 그를 따라 지지하였다.
 
  민심은 통일되고 사기는 충천하였다. 사울은 군대를 3대로 나누어 새벽에 적진에 돌입하여 정오까지 공격한 결과 적군은 산산 패주하고 말았다. 이것은 사울이 왕이 된 후 첫 대승이니, 백성의 통일과 외적에게 일대 위협을 보이는 동시에, 국위 선양에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때 백성들은 전에 사울을 멸시하던 비류(匪類)를 색출하여 죽이고자 말했으나 사울은 이를 금하였다(삼상 11장).
 
  사울왕은 즉위후 3천 명의 상비군을 편성하여 그 중에서 2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1천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배치하였다. 천부장 요나단은 게바에 있는 블레셋 수비대를 침으로써 양국은 대적 관계에 들어가 이스라엘은 위기에 빠졌다(삼상 13:2-6).
 
  사울의 군대는 믹마스에 진군하여 온 블레셋 군의 압박을 받게 되자, 많은 백성이 사울을 떠났다. 사울은 먼저 하나님의 구원을 약속한 선지자 사무엘(삼상 10:7,8)의 도착을 기다리다 못해 자기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중죄를 범했다(삼상 10:8,13:8-15).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불순종의 죄에 대하여 사무엘은 사울 왕국(그의 1대에 한하는) 단절의 예언을 선고 하였다(삼상 13:9-14). 그러나 절대적으로 열세한 사울 군은 요나단과 그 부하의 신앙과 용기에 의해 기적적으로 블레셋 군을 격파했다. 즉, 요나단의 기습에 의하여 적은 저희끼리 칼로 쳐 큰 혼란이 일어나 공포와 사기저하로 패주하니 전쟁은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의 승리로 돌아 갔다. 귀순자가 속출하고 그들이 이스라엘 군에 합세하여 진격하였다(삼상 14:16-23).
 
  이때 사울은 일시적 흥분에서 원수에게 보수하는데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백성에게 무모한 맹세를시키고 경계했으므로, 전투에 피곤한 백성에게 설상가상의 고통을 주었다. 아들 요나단은 이 맹세를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수풀 속을 지나가다가 꿀을 지팡이 끝으로 찍어 먹었다. 허기진 때라 눈이 번쩍 뜨이었다(삼상 14:23-30). 허기진 백성은 우양을 잡아서 피채로 먹어 범죄하였는데, 이 책임의 일부가 사울에게도 있었다.
 
  사울은 전승축하를 위해 단을 쌓았다. 사울이 블레셋 군 추격에 대하여 하나님의 응답이 없음을보고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임을 알고 범죄자를 색출하니, 그는 다름 아닌 아들 요나단이었다. 사울이 그를 처단하고자 할 때에 백성들은 요나단의 공을 들어서 변호하였으므로 면죄하게 되었다.
 
  사울은 평생 블레셋 사람과 싸움이 있었으므로 그는 힘있는 자나 용맹한 자 모두를 불러 모았다(삼상 14:31-52). 그 후 사울은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을 괴롭힌 아말렉 사람(민 24:20,신 25:17-19)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 노소, 그리고 우양이나 약대, 그리고 나귀에 이르기까지 다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사울은 하윌라에서부터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그들의 왕 아각을 사로 잡았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각과 우양 중 가장 좋은 것은 죽이지 않고 남겨 두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 사무엘에게 임하시어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시었다. 사울은 또 갈멜이라는 곳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
 
  사무엘이 길갈에 이르러 사울에게 우양의 소리에 대해 물으니, 그는 아말렉에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그 중 좋은 것을 남긴 것이라고 변명하고, 자기의 탐욕의 소행을 백성에게 전가시켰다.
 
  이때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사울을 책망하고 폐왕을 예언했다(삼상 15장).
 
  사무엘은 사울왕을 대신할 제 2대의 왕이 될 다윗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 베들레헴에 보내어졌다(삼상 16:1). 그 후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했다. 사울의 신하들은 사울에게 수금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수금에 의하여 위안을 얻으라고 건의한다. 이에 다윗이 발탁되어 흥하게 되고 사울은 점점 쇠하여져 갔다(삼상 16:14-23).
 
  그 후 사울 왕은 블레셋 사람과의 싸움에서 적장 골리앗을 죽여 전공을 세워 일약 영웅으로 된 다윗을 군대의 장으로 삼았다. 다윗이 개선할 때 환영 나온 여인들은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며, 북을 치고 노래하며, 춤을 추어 환영하니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했다(삼상 17:4-18:9).
 
  그 후 사울은 수금을 타는 다윗을 여러 번 죽이려 했고, 그의 지혜롭게 하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다. 사울은 자기 손을 대지 않고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기 위하여 블레셋 사람과의 전투에서 `용맹을 내어' 싸울 것을 다윗에게 지시하면서 승리할 경우 맏딸 메랍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실제로는 그녀를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주었다.
 
  그 다음에는블레셋 사람의 양피 100을 가져오면 딸 미갈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윗이 이를 시행하므로(블레셋 사람 200명을 죽여 그 양피를 사울에게 올림) 그는 사울의 딸 미갈을 아내로 맞았다(삼상 18:10-27).
 
  사울은 그 후 다윗을 9번이나 죽이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과 싸워 대승한 것이 사울에게 더욱 살의를 일으켰다(삼상 19:8-10).
 
  다윗이 요나단과 미갈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피신하여사무엘을 찾아 라마로 가니 사울은 자객을 세 차례나 그리로 보냈다(삼상 19:8-17,20). 사울이 월삭(月朔) 식탁에 다윗이 불참한 이유를 아들 요나단에게 물을 때에 고향에 갔다고 하니 사울은 다윗을 옹호한다고 대노하여 질책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담대히 다윗의 무죄함을 부왕에게 간하였다(삼상 20:24-34).
 
  또한 사울은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식물과 골리앗의 칼을 주었다는 정보를 듣고 아히멜렉 일가를 비롯하여 무죄한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하였다(삼상 22:9-19).
 
  사울은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말을 듣고 그일라를 포위하였으나 다윗은 탈출에 성공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안간힘을 다 써 대적(大敵) 블레셋을 눈 앞에 두고 다윗을 쫓는데 시간과 힘을 허비한다.
 
  다윗은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종자들이 사울을 제거할 기회를 맞아 시행할 것을 역설하였으나, 그는 사울을 끝까지 해치지 못하게 하고, 다만 후일에 그같은 사실을 입증할 증거로써 옷자락을 자르는 정도로 그쳤다(삼상 24:4-7). 또 사울은 십 황무지까지 다윗을 추격하여 내려 갔다가 오히려 다윗의 종자에게 헛점을노출시켜 창과 물병만 가져가게 하였다(삼상 26:8-12).
 
  다윗은 후에 사울 앞에서, 자기는 끝까지 왕에 대한 충성을 잃지 않고, 절대로 살의가 없음을 앞서의 증거물을 가지고 증명하는 동시에, 왕의 무모한 추격을 중단해 줄 것을 충간(忠諫)하였다. 사울도 여러 번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회개하였지만, 그때 뿐이었다.
 
  한편, 이스라엘의 영토를 침노하고 있던(삼상 23:27-29) 블레셋 사람은 이 틈을 타서 침입했다. 사울은 군대를 길보아에 집중 시켰으나, 블레셋의 대군에 질겁하여 사기가떨어졌다. 곤란을 당한 사울은 신접한 자나 박수를 그 땅에서 추방하고 한편으로 전비를 갖추면서 전쟁의 승부를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 물었으나, 대답이 없으므로 번민하였다.
 
  당시 하나님의 응답하시는 방법은
  ①꿈으로,
  ②제사장의 흉패 속에 있는 보석(우림)의 빛으로,
  ③선지자를 통하여 하셨는데, 이때 선지자 사무엘이 죽고 없었으므로 문의할 곳조차 없었다. 사울은 죄를 자복하고 기도로써 하나님께 직접 구하지 않고,자기가 추방한 신접한 여인을 찾아 갔다. 적진 가까이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변장을 했다. 그녀는 사울의 요청에 따라 사무엘의 영을 불러 주었다. 사무엘의 영은 사울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의손에 붙이시니라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사울에 대한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사울은 이 말을 듣자 졸도했다(삼상 28장).
 
  블레셋군대는수넴에서 추격하여 이스라엘 군의 진지 이스르엘 평야까지 내습하고, 길보아 산 전투에서 사울의 4부자가 전사하는 참패를 당했다. 사울은 적군의 활에 중상을 입었으므로 병기든 자에게 네 칼로 찔러 무할례자의 손에 죽어 모욕을 받지 않게 하라고 말했으나, 두려워 행치 않으므로 자기칼 위에 엎드러져 자결했다.
 
  블레셋 사람이 그의 머리를 베고 갑옷을 벗겨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고, 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았다. 후에 길르앗 야베스 사람이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했다(삼상 29장). 다른자료에의하면, 사울은 화살을 맞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옆에 있던 아말렉 사람에 명하여 죽여 달라고 했다(삼하 1:1-10).
 
  사울의 전사 소식은 피신 중인 다윗을 비탄에 잠기게 했다. 그는 사울과 요나단을 노래로 조상하였다(삼하 1:17-27).
 
  사울은 40세(어떤 사본에는 30세)에 즉위하여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삼상 13:1,행 13:21). 사울은 죽을 때까지 무할례의 이방인 손에 죽는 것을 불명예스럽게 생각하였으나, 그의 마음에 할례가 없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비참한 최후로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
 
  사울은 즉위 전에는 하나님의 사람, 곧 신앙의 사람이었으나, 왕이 된 후에는 사단의 사람, 곧 자만과 불순종의 사람이 되었다.
 
  사울의 가정에 대해서는 사무엘상 14:49- 51에 간단히 기록되어 있다. 거기 의하면, 그의 아내는 아히마아스의 딸 아히노암이고, 아들들은 요나단˙리스위˙말기수아 등 여러 명을 두었고, 딸은 메렙과 미갈이다. 아들들은 길보아 전투에서 부왕과 운명을 같이 하고, 한 아들 이스보셋만이 남아서 다윗에 대항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4]레위 사람 웃시야의 아들이다(대상 6:24).

 

[5]사도 바울의 회심 전의 이름이다. 히브리 이름 Saouvl(행 9:4,17,22:7,13,26:14. 호칭에만 사용되고 있다)의 헬라화된 형태이다(행 7:58,8:1,3,9:1,8,11,22, 24, 11:25, 30, 12:25, 13:1, 2, 7, 9). →바울.

 

 

 

                                                                                                                                                          출처 :온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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