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편 아르논강과 계곡(1),(2) | |||
조근식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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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침례교회 조근식목사 홈페이지
왕의 대로에 있는 길하레셋과 아로엘
(국민일보12월1일연재) -이원희목사 2005-11-25 13: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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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요새 길하레셋
이스라엘이 에돔과 모압의 국경이 되는 세렛 시내를 건너므로 실질적으로 광야 40년의 방랑을 마치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가나안 입주를 위해 요르단 고원지대로 난 소위 왕의 대로를 따라 북진해 올라갔다. 이 왕의 대로(The King's Highway)는 바닷길(Via Maris)와 함께 민20:17에도 언급되는 성서시대의 가장 중요한 두 개의 고속도로 중 하나이다. 이 왕의 대로변에는 고원지대에 있는 중요한 성읍들이 있다. 나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지나간 왕의 대로변의 성읍들을 찾아가기 위해 먼저 동쪽으로 난 쉬운 사막길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왕의 대로를 따라 올라오기로 했다. 요르단은 랜트카가 가능하지만 택시도 하루에 100불 정도면 기사와 함께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택시를 랜트하여 기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요르단 수도 암만을 아침 일찍 출발한 나는 가장 남쪽에 있는 길하레셋으로 쉬지 않고 달렸다. 암만에서 이곳까지는 118km 떨어져 있다. 사막으로 난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눈에 띄일 만큼 험한 지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내 험한 계곡 사이로 멀리 길하레셋이 시야에 들어왔다.
길하레셋(Kir-Hareseth)은 아르논 남쪽 28.4㎞, 사해 동쪽 17.6㎞ 지점의 고대 모압의 수도로 오늘날 케락(Kerak, 카락)이다. 해발 933m 고원에 위치한 이곳은 주변의 언덕과 깊은 계곡들로 인해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이사야의 신탁에서 두 번 언급되며(사16:7,11), 예레미야서에서도 두 번 나온다(렘48:31,36). 사15:1에 나오는 길(Kir)도 길하레셋으로 본다.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왕은 공물을 거절하고 배반한 이곳을 치기 위해 남유다의 여호사밧왕과 연합하여 길하레셋을 공격하여 함락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이때 모압 왕은 성벽 위에서 자신의 맏아들을 자기들이 섬기는 신에게 번제물로 드리며 전세를 만회하려 했다. 그것이 효험이 있었는지 이스라엘은 본국에서 큰 통분함이 있어 포위를 풀고 귀국했다(왕하3장).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성채는 중세 십자군 시대에 쌓여진 것으로 이중, 삼중으로 쌓여진 성채는 이곳에서 일어난 전쟁의 역사를 증언해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성 안에는 막사와 감옥이 아직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다. 그리고 고지에 위치한 이 성의 가장 큰 문제는 식수였는데, 우물은 옛부터 성 밖에 있었다. 그래서 이 성읍의 바로 밑에는 수로로 추정되는 180m 정도의 터널이 있다. 1924년 발굴을 통해 모압인과 로마시대부터 중세 아랍시대의 도기들이 발견되었다.
한눈에 보아도 무너뜨릴 수 없는1230m 고지에 있는 천혜의 성채인 길하레셋를 떠나, 왕의 대로를 따라 계속 북쪽으로 달려 아르(Ar, 민21:28)를 답사한 후, 계속해서 북진으로 향한 차는 아르논 골짜기가 가까이 올수록 더욱 험한 지형을 달려야 했다.
아르논을 관통한 왕의 대로를 보호하는 아로엘 요새 마침내 아르논 골짜기에 이르자, 이곳이 옛부터 암몬과 모압의 경계가 되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깎아지르듯한 계곡을 S길을 따라 올라가, 다시 골짜기 북쪽에 있는 아로엘에 도착했다.
아로엘에 이르자 가장 먼저 양을 지키는 개가 이방인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겼던지 짖으며 달려 들었고, 양치기 노인의 저지로 무너진 옛 성채에 올랐다.
아로엘은 요단 동편의 옛 모압과 암몬의 경계선이 되었던 아르논 강둑 바로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오늘날 키르벳 아라이르(Khirbet Arair)에 위치하였다. 이 지역은 와디 무지브(성경의 아르논) 북쪽 경사면의 메데바와 케락 사이의 교통로 동쪽 4㎞ 떨어져 있다. 이곳은 아르논을 관통한(렘48:19) 왕의 대로를 보호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위치한 요새지였음을 성채 위에서 아르논 골짜기를 바라보니 실감이 났다.
아로엘은 ‘가난한’, ‘내쫓긴’이란 뜻이 있다. 이곳에 대해서는 수12:2, 신2:36, 왕하10:33, 렘48:19 등지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복 후에 르우벤 지파가 거주했던 이곳(대상 5:8)은, 사사 시대와 왕조 시대에도 이스라엘이 관할하였다.
그러나 모압 메사의 성공적인 군사 원정의 결과로(BC 850년경), 이곳은 모압 왕국에 병합되었다. 메사 비문에 의하면, 메사왕 은 아르논에 대로를 만들고 아로엘을 건설하였다. 그후 이곳은 앗시라아의 확장기를 거쳐 다메섹이 몰락할 때까지 시리아 소유지로 남아 있게 된다(BC 732년).
이곳에 대한 발굴작업은 1964년~1966년까지 에밀리오 올라바리가 이끄는 예루살렘과 스페인 센터 회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여섯 개의 고고학층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헬라 도자기들이 많다는 것은 BC 3~2세기에 새로운 거주가 있었음을 증명해 준다.
지금은 무너진 성채와 까막득히 절벽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아르논 골짜기만이 그 옛날 암몬을 지키는 요새임을 보여주는 아로엘과, 천혜의 요새였던 길하레셋의 무너진 성에서 하나님 만이 우리의 요새임을 깨닫게 한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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