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사시대 | ||
| ||
사사란? 동성연애,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죽임. 사회는 혼란, 부패, 타락이다. 당시 가나안에는 많은 이방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삿 2:14-15)로 사용되었습니다.
여사사인 드보라가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물리치는 승전가의 노래 (삿 5장),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 족속을 물리치는 나팔과 횃불전쟁 이야기 (삿 7장), 외동딸을 제물로 바치는 안타까운 입다의 이야기(삿 11:30-40), 천하무적의 힘을 가졌던 삼손과 그를 유혹하는 들릴라의 이야기
는 오늘날에도 우리들을 흥미롭게 해 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이밖에도 소사사들에 대한 기록들이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삿 10:1-5; 12:8-15).
|
7. 통일왕국 시대 | ||
| ||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우리를 구원하신다. 예언할 정도로 신실한 사람이었다.
|
8. 분열왕국 시대 | ||
| ||
이제 하나님의 징계와 왕국의 분열이 예언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죽고 다음 세대 가 시작되었습니다. 솔로몬의 무거운 세금 아래서 고통 받던 백성들은 그 아들 르호보암이 세금을 경감하여 선정을 베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지혜롭지 못하게 노인들의 진언을 버리고 젊은이들의 제안을 따라 백성들을 위협합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르호보암은 18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통일왕국을 유지하려 했으나 선지자 스마야의 말을 따라서 포기합니다. 왕국분열의 이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유다 지파가 강성해 지파 간의 연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다른 지파들이 소외됨 2) 애굽의 왕 시삭이 솔로몬의 통치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후원하여 솔로몬 왕국에 반체제 세력을 강화시킴 3) 르호보암의 그릇된 야망과 백성들의 신임을 잃음 1 . 왕국 분열의 이유 솔로몬은 통일왕국을 다스린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이 됩니다. 그 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난 자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며 기도할 때, 지혜와 더불어 부와 영광을 약속 받았던(왕상 3장) 사람입니다. 봄에 성전 공사를 시작하여 7년 만에 완성 하여 하나님께 드렸던 그는 국방에서, 명성에서, 부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영화를 누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이 땅에서의 명성과 부로써 평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우상 숭배자로 타락하였으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2. 북왕국 이스라엘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통해 세워졌습니다. 여로보암은 르호보암의 그릇 된 야망으로 돌아선 백성들을 규합하여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범하였고 계속되는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조상들이 심어 놓은 파멸의 열매를 거두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운명, 또는 한 나라의 운명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이 삶의 원리입니다. 1) 여로보암의 죄(왕상 12:25 - 14:20) - 백성들의 마음이 유다로 향할 것을 두려워하여 새로운 제사법 제정. -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벧엘에서 분향하는 왕을 책망, 아들이 병들었을 때 책망하며 파멸을 예언). 2) 오므리 왕조와 아합의 통치 수도를 '디르사' 에서 '사마리아' 로 옮기고 북왕국의 번성기를 열었던 오므리 왕과 그 아들 아합도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왕들입니다. 나라는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온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의 우상, 특히 아합의 왕비였던 이세벨을 통해 들어온 두로와 시돈의 우상 바알과 아세라를 음란히 섬기게 한 죄가 큰 왕들입니다. 오므리 왕조 시기는 군사적․ 물질적 번영기간으로 안정을 추구하여 국제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적 타락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합 왕 시대가 가장 타락한 시기였다면, 동시에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하나인 엘리야의 활약이 가장 돋보이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7-21장 까지는 엘리야의 활약상이 나오는데,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홀로 선 자의 승리' 입니다. 그는 혼자인 듯 하나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의 대결하여 이길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승리는 숫자에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엘리사(왕하 1-8장)는 은총의 선지자로 기적을 통하여 개인과 나라를 도운 사람입니다. 엘리사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스라엘의 요람 왕이 통치하던 시대로 이 당시 시리아의 침공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엘리사가 구해 주었지만 요람 왕은 감사하기 보다는 오히려 엘리사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엘리사는 구약의 예언자 중에서 가장 많은 이적을 행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3) 예후 왕조 - 선지자 요나와 아모스 예후는 개혁을 시도한 왕이었지만 그의 개혁은 불완전했습니다. 그는 바알 숭배를 심판하여 이스라엘의 요람과 이세벨, 아합 왕에 속한 자, 바알의 선지자들과 유다 의 아하시야 왕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금송아지 숭배를 계속했습니다. 성경은 그의 개혁이 종교적인 동기가 아니라 정치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왕하 10:29). 당시에 요나는 옛 왕국의 지경이 회복될 것을 예언했으며, 여로보암 2세에 의하여 그 예언은 실현되었습니다. :그 다음 활동한 선지자는 아모스입니다. 그는 사회정의가 서지 않은 나라와 도덕성이 없는 종교에 대한 심판을 말하였습니다. 4) 말기의 왕들과 호세아 북이스라엘의 말기는 정치적으로 무정부 상태이며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이때에 '사랑의 선지자' 라 불리는 호세아는 사마리아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예언했으며, 여호와께 돌아오면 용서하시리라는 복음을 끊임없이 선포했습니다. 3. 남왕국 유다 1) 파멸의 씨앗 - 정략결혼(왕하 8:16-24) 여호람의 정략결혼은 바알 숭배의 길을 열었습니다(북왕국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 결국 아달랴는 왕위를 찬탈하고 자신의 손자들인 왕자들을 모두 죽이고 바알 신을 퍼뜨렸다가 대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2) 파멸의 재촉 - 하나님을 버림 아하스는 미가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의 권고를 무시하고 바알을 숭배하고, 영적, 윤리적 퇴폐, 가나인 족속의 가증한 행위, 어린이 제사 등을 일삼았습니다. 3) 파멸의 보증 - 가장 악하고 반역적인 왕, 므낫세 (왕하 21 :1 -18) 므낫세는 개혁자 히스기야의 아들이었으나 극심한 우상 숭배로 유다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과 포로를 예고하였습니다 (왕하 21 :12-14). 4) 유다 말기의 종교개혁 - 요시야와 예레미야 (왕하 22:1 -23:30) 요시야는 개혁자로 종교 부흥을 시도하였습니다. 남왕국 유다에서 우상을 제하고 산당들을 헐어버렸습니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 지경까지 가서 정화 작업을 하였으며, 산당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우상 숭배자의 해골을 불살랐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마음 중심에서 회개치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끊는 가마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즉 재앙이 북에서부터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이틀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렘 1:13-14). |
9. 포로 시대 | ||
| ||
포로시대는 역사적으로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후 끊임없이 말씀 하신 것이 있습니다. 즉 "너희가 내 계약 백성이 되었으므로 나의 율례를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라."는 것이었습니다. 포로시대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특히 역대기는 포로가 된 후 이스라엘 역사를 다시 한 번 조명하고 있습니다. 열왕기가 역사와 정치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고 있다면, 역대기는 신앙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 것입니다. 다기 말하자면, 자신들의 포로생활이 일반 역사 가운데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일어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므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로시대는 단순히 징계 받는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로 기간 중에 유대 백성이 선민임을 다시 한 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집안의 왕권과 영광스러운 과거, 그리고 죄에 대한 심판을 알려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하여 성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의 회복은 성전 재건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는 눈 (열왕기와 역대기의 비교) 열왕기 역대기 왕들의 전쟁에 관심 - 정치적 관심 성전과 의식에 관한 기록 - 신앙적 관심 남북 왕조에 대한 기록 남왕국에 대한 기록 (여러 왕가에 대한 기록) (다윗 왕가에 대한 기록) 우리가 여기에서 보아야 할 것은 '파멸의 원인' . '하나님의 심판' . 그리고 '포로 생활의 현실과 의미' 입니다. 1 . 파멸의 원인 - 불순종의 결과 북왕국 이스라엘 (수도-사마리아)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점령당하였고, 남왕국 유다 (수도-예루살렘)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점령당하였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서는 비슷한 역사가 되풀이해서 기록되어 있고, 그에 대한 해석이 뒤따릅니다. 열왕기하 17-25장에서 보듯이 우선 북왕국의 파멸이 언급되고, 이어서 남왕국 특히 성전의 파괴와 예루살렘의 함락 기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이 사건들을 해석하면서 두 가지를 강조하였습니다. 첫째. 책임은 이스라엘백성 자신들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분을 더디 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번 경고를 받았었습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에게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시킬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단계에 가서 백성들은 손을 쓰려 하였으나 그들의 병은 너무도 깊어졌기에 아무런 효험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기도와 절기를 지킴도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종교의식' 이 사회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 해결의 방법을 하나님에게서 찾지 않았습니다. 멸망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다른 민족과 군사동맹을 맺으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애굽의 군사력에 의존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 와 같은 선지자들은 지도자들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 지도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너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강대하게 비치는 애굽 또한 하나님이 세우시고 버리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했어야 했습니다. 외국과의 동맹은 해결책 은 아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동맹을 배교 행위라고 힐책 하였습니다 2. 이스라엘과 유다의 파멸 - 하나님의 심판 선지자들은 그들의 하나님. 언약, 성전, 백성들. 그리고 그들의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이들의 마음은 탄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눈물로 배교와 반항, 불륜과 사회 부정의 무서운 결과를 정지 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국은 무너지고 왕자들은 쇠사슬에 매여 끌려가게 될 갓입니다. 똑똑하고 건강한 백성들은 병거에 묶여 짐승처럼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불바다가 되고 폐허가 될 것입니다. 경제가 파탄나고 솔로몬과 다윗이 정한 장소에 세운 성전도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 희망의 메시지: 만약에 너희가 회개하고 악에서 떠나 하나님께 순종하면 .,, ● 심판의 메시지: 그러나 만일 너희가 회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시대에 따라 구분한 선지서 ● 포로이전 이스라엘에게: 호세아, 아모스 유다에게: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요엘, 미가, 하박국. 스바냐 앗수르에게: 요나. 나훔 에돔에게 : 오바댜 ● 포로기 바벨론에서 : 에스겔, 다니엘 (다니엘은 묵시문학으로 구분) ● 포로후 포로 귀환자들에게: 학개. 스가랴, 말라기 1) 북왕국 이스라엘의 패망(주전 722) - 앗수르에 의해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의 설교와 예언에 따라 앗수르 군대가 지중해 연안을 따라 진군하여 내려왔습니다. 수도 니느웨를 본거지로 한 앗수르는 세계를 정복하려 하였고. 대부분의 근동지방을 통일하여 제국을 건설 하였습니다. 결국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독립을 잃었습니다. 예언한대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급들과 기술공들은 앗수르 제국 각 곳으로 잡혀갔고, 앗수르 제국의 각 곳으로부터 수천 명의 다른 민족이 이스라엘 땅으로 옮겨왔습니다. 이것은 결혼을 통한 혼합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는데, 이스라엘의 민족적 자부심을 깨뜨리고 앗수르 왕국을 통일하고자 하는 목적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만백성의 주님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방민족들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앗수르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2) 남왕국 유다의 패망(주전 586) - 바벨론에 의해 남왕국 유다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침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압력이 다소 약화되자 유다 왕 요시야는 중요한 종교개혁을 추진합니다. 성전 수리 중 발견된 율법서의 말씀을 듣던 요시야 왕은 크게 감동되어 예배의 순수성을 부활시키고, 왕국의 정직성을 유지하고, 사회법규를 제정 하였습니다 (왕하 22-23장). 요시야 왕은 제식 매춘행위를 폐지하고 앗수르인과 바벨론의 별 숭상 및 동물숭배를 금지시켰습니다. 또한 유월절을 다시 지키게 하고 모세의 율법을 재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바벨론의 세력이 강해지고 주전 609년 요시야 왕이 죽자 유다는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때에 다가올 하나님의 심관을 예언했으며 그 심판으로서 의 포로생활을 예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예언의 내용은 '바벨론의 침략은 유다 의 영적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므로 받아들이고. 포로생활까지 감수하라 ․ 다만 회개하는 마음으로 포로생활을 하다보면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그 기간이 70년 일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주젼 597년에 여호야긴 왕과 지도자 들이 I차로 포로가 되었고, 주전 586년에는 시드기야와 지도자들이 2차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3. 포로생활의 현실과 의미 - 영적 유익과 각성 1) 현실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 왔다는 사실은 유다 백성에게 신앙 의 큰 혼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위가 영원하리라는 말씀에 따라 자신들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잡혀온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그곳에서 자신의 신앙을 다시금 조명해 보아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왔지만 다른 전쟁포로와는 달리 심한 노역을 하거 나 고역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을 잡아온 목적이 노예로 삼기 위해서가 아닌 반란을 막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 이것을 잘 설명해 줍니다.(왕하 25:27-30) 유다 백성들은 비록 포로생활을 했지만 어느 정도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갈망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시온은 망하지 않을 것이며 영원할 것 이라고 부르던 시온의 노래는 이제 이방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편 (시 137편)은 영적인 회복을 갈망하는 그들의 모습을 잘 나타냅니다. 2) 의미 포로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가치관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포로생활은 타락한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자신들의 신앙을 정 화하는 하나님의 연단의 과정이었습니다. 포로생활을 통해서 그들의 신앙에는 새로 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① 성전회복에 대한 갈망 ② 하나님의 관점에서 역사와 신앙을 이해하기 시작함 ③ 하나님의 언약과 긍휼을 배움 ④ 흩어진 백성들의 회당중심의 생활 3) 희망 이스라엘 민족은 잘린 나무처럼 될 것입니다.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 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사 6:13). 하나님의 목적은 파괴에 있지 않고 징계에 있습니다. 그들을 전멸시키는데 있지 않고 그들을 정결케 하여 구원하자는 데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 한 자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징벌이 이루어실 때에 구원의 손이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전과 같지 않으십니다. 성전은 무너져도 하나님 은 살아계십니다. 약속된 땅은 황폐케 되어도 약속의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그들을 다스리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흩어지고 죽어도 남은 자(Remnant)가 그루터기가 되고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재건됩니다. "․․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사 28:16). 포로생활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욱 정련되는 연단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주의 인자와 자비가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
출처:성경연구게시판
'◈◈◈ 구약[舊約]강해 > ◈구약성경 강해(舊約)[종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성막사진/성막 입구 문 (0) | 2008.04.12 |
---|---|
[스크랩] 성막사진/성막 문 (0) | 2008.04.12 |
구약 성경 개관(2) (0) | 2008.04.08 |
구약 성경 개관(1) (0) | 2008.04.08 |
제목 : 성서 이해 제 20강/ 지혜서 (0) | 2008.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