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聖地 · 선교사/1.國內 성지순례歷史교회文化탐방

강 화 도 (역사와 신앙)

영국신사77 2008. 4. 7. 23:05

                                                      강  화  도 (역사와 신앙)
Ⅰ. 역사-
국가의 변란이 있을 때마다 피난처가 된 곳, 민족 저항의 보루, 눈물겨운 수난과  저항이 역사(개성 수원 광주 남한산성과 함께 한양의 4대 방어 요새)

   몽고 군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23대)~원종 때 39년간 고려의 수도, 이 시기에 청자 문화와

           8만 대장경을 판각

   충렬 왕(25대) 때 거란 군의 침입으로 2년 간 수도를 강화로 옮김

   조선 선조(14대) 때                                                                               
     왜선들이 전라도 손죽도 침범 등 동태가 수상하다고 생각하여 1590년 통도사 황윤길(서인), 부사 김성일(동인)등을 일본에 보냈으나 황윤길은 왜국이 전쟁 준비에 한창이라고 하고 김성일은 토요토미가 인물이 보잘 것 없고 군사 준비가 없으니 민심만 혼란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하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1592년 왜군 20만 명이 9개 부대로 나뉘어 4월13일 부산, 29일 충주, 5월 2일 한양이 함락되고 선조는 의주로 피난(강화도 부근의 임진강가에서 도로묵 이야기) 
임진 왜란 후 강화도를 한양을 지키는 방어 진지로 구축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정묘호란-1627년 후금이 침입하자 40일 간 강화도로 몽진, 후금 3만 군사가 쳐들어오자 조정에서 강화 출신 김상용을 유도대장에 명하여 한성을 지키게 하였고 인조가 굴욕적인 항복을 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한 김상용의 절개를 기린 비석이 성공회 성당 부근에 있음.


    병자호란- 1636년 청나라 태종이 12만 군사로 침입하자 세 아들 (소현세자, 봉녕대군, 인평대군)은 강화도로, 인조는 45일간 남한산성에서 버티다가 1월 30일 삼전도에서 항복(대청 황제 공덕비) 
     *1628년 네덜란드 사람 빌테브레(박연)가 울산에 표류해와서 조선 여자와 결혼하여 삼.


5) 효종(17대)-청나라 심양에서 인질 생활 후 귀국하여 왕이 된 후 북벌 정책을 쓰며 강화 성을 축조하고 군량을 보충, 한양 외곽의 군력을 증강시켜 수도의 안전을 꽤함
    * 네덜란드 사람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해 왔다 돌아가서 하멜 표류기를 씀


6) 철종(25대)
   정조가 22대가 왕이 되어 이복 동생 은원군을 강화도로 유배시켰고  그 아들  이광(전계군)의 세 아들(원경,경응, 원범) 중 원범(강화도령)을 세워  헌종의 뒤를 이어 25대 왕이 됨.  용흥 궁(철종이 살던 기와 한옥), 왕자 우물
    철종은 8명의 부인을 두었으나 아들들은 낳자마자 다 죽고 영혜 옹주도 박영효와 결혼한 후 3개월 만에 죽고 말았음


7) 고종(26대)- 12세에 왕으로 등극, 조대비의 수렴청정, 대원군의 섭정
1866년,1872년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프랑스 신부9명을 포함하여 8000여명을 학살(병인 박해)


* 병인양요(1866년 고종3년)-군함 7척, 총병력 1000명으로 강화도 점령, 문화재 약탈
                   제주 목사 양헌수의 전략으로 정족산성 싸움에서 승리하여 프랑스 군을 격파

      (규장각 도서 345권, 은19상자 등 문화재 약탈-외규장각 도서는 아직도 반환받지 못하고 있음


* 신미양요( 1871년 고종 8년)-1866년 대동강에서 General Shermann 호 사건으로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하고 미국 사람들이 모두 죽자 이를 조사하기 위하여 군함 5척, 병력 1200명, 함포 85문으로 중무장하고 침입하여 초지진, 광성보 전투를 거쳐 강화도를 완전히 점령하였다기 1개월 후 철수


* 운양호 사건(1875년)- 일본 군함이 영종도를 점령하였다가 이듬해에 강화도에서 병자 수호조약을 체결하고 3개항을 개항(부산, 인천, 원산)

 

 

                                                  Ⅱ.강화의 기독교 역사

  1893년 성공회와 감리교가 같이 시작( 개혁과 수구 사이에서 곡예를 하던 시대)
  교세는 감리교가 우세하지만 문화적 유산은 성공회가 우세한데, 이는 감리교는 농어업에 종사하는 상민 이하 계층이 처음 믿기 시작하였고(토담집에 초가집), 성공회는 기존 전통 문화와 조화를 이루며 복음을 전하려는 토착화 의식이 강해 지배 계층과 유식자 계층을 대상으로 전도한 결과이다.

 

                                              1.강화 성당
 ① 1893년 서해5도 통어사가 있던 강화에 朝鮮水師海防學堂(해군 사관학교) 설치
 ② 영국에서 교관 해군대위 콜웰, 부관 커티스가 부임(합법적 외국인 거주)
    * 당시 서울에서 30리 안에는 선교사들의 활동을 허용, 100리 안에는 護照라는 여행 증명서 없이도 자유롭게 여행을 허용- 서울의 마포까지(30리)와 강화도까지(100리) 교회 설립이 가능
 ③ 몇몇 외국인들이 외국어 교육 목적으로 입국하였고 성공회 선교사들도 들어옴
 ④ L.O. Warner(王蘭道)-강화 성곽 진해루 근처에 집을 사서 ‘성 니콜라스 회당’교회를 세우고 영국 성공회에서는 강화를  조선의 Iona(영국 스콧틀랜드와 아일랜드 전도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섬 이름)가 될 것을 기대함
⑤ 1897년 성공회 신부들이 들어오고 3대 주교 트롤로프(Trollope 趙馬可)가 일본측 방해로 문닫은 조선수사 해방학당의 교관들이 살든 견자산 마루의 집을 사서 성당을 건축(1900년 완공-영국 선교회와 메리엇 선교기금 500파운드로 지음 (당시 교인 40명, 좌석 200명의 건물로 지음)
⑥ 구조
배 모양의 성당-갑곶 드나들던 조선 배, 성당이 자리잡은 곳이 섬, 교인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 갈릴리 호수의 배를 상징, 영국 선교사들이 해상 제국 출신, 아라랏 산의 방주 같은 느낌
절 같은 교회(전통적인 伽藍 형태) 
* 천주 성전(그리스도의 성체를 모신곳-萬有眞原 만물의 참 진리의 원천) 불교의 불당, 법당
   * 사제관( 사제들이 사는 곳) 불교의 승당
   * 3문( 외삼문=일주문, 내삼문(종각으로 쓰임)=천왕문, 영광의 문(양쪽 출입문)=중문
      1914년 영국에서 주조한 종이 있었으나 일제가 징발, 현재의 종은 1993년 선교 100주년 기념 때 제작
● 장방형의 2층 탑모양, 팔작 지붕, 겹처마(5색단청)-4칸 X 10칸=40칸
* 지붕 내림 마루에 용머리 모양의 置獸頭-윗지붕 사방에 2개씩 8개, 아랫 지붕 사방에 1개씩 4개-12사도를 상징
   * 아랫 내림 마루 끝에 물고기 모양의 막새 기와 8개- 초대 교회 때의 기독교인을 상징
   * 다섯 폭에 쓰인 55자 글자-진솔한 기독교인의 신앙고백
     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무시무종선작형성진주재-처음과 나중이 없으시니 소리와 모습을 먼저 지으셨으니 참 주재시라)
     宣仁宣義聿照拯濟大權衡(선인선의율조증제대권형-어질고 옳음을 널리 펴시며 무리를 비추시고 구하시니 큰 저울이시라)
     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삼위일체천주만유지진원-삼위 일체 하나님이시니 만물의 참된 근원이시라)
     神化周流유庶物同胞之樂(신화주류유서물동포지락-하나님의 감화가 흘러나와 만물을 기르시니 동포의 기쁨이라)  동산 유(입구안에 있을유자-컴퓨터에 없는 글자)
     福音宣播啓衆民生永之方(복음선파계중민생영지방-복음을 널리 펴서 백성을 깨우치니 영생하는 길이로다)

● 바실리카 구조(귀족의 집)
   내부를 텅 비우고 기둥과 지붕으로만 꾸민 단순한 건물(연극, 재판, 토론)-20개의 기둥, 4M 이상의 높이
* 기둥, 대들보, 마루-트롤로프 신부가 직접 신의주까지 가서 뗏목으로 운반한 백두산 적송
 * 성전 양쪽,뒤편 문 4개는 영국에서 제작하여 운반

● 강화 성당기-칼과 열쇠
* 칼-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율법학자 출신 바울(양반)
* 열쇠-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9)-어부출신 베드로
行執聖神之劍
賜爾天國之약     (열쇠약-컴퓨터에 없는 글자)
세례대-화강암. 바탕은 8각, 받침돌은 4각,배흘림으로 깍은 다섯기둥
重生之泉   修己   洗心   去惡   作善 (세례의 의미)

     ● 쌍둥이 보리수-수령 100년이 넘는 나무( 영국 선교사가 본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인도에 들러 가져와서 심은 나무
       
     ● 알마(Alma)수녀 기념비-1896년 온수리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1906년 전염병으로 죽은 알마 수녀 기념


                                             2. 선비같이 소박한 온수리 교회
 ① Trollope신부, Hillary(吉康俊)신부와 함께 온 평신도 의사인 A.F. Ross(盧仁山)가 온수리 초엽 난저 골에 집 한 채를 사서 진료소를 차림-강화 전역에 유명인사가 되었고 강화 읍에 있던 Hillary신부도 이곳으로 와서 교회와 진명 학교를 시작.
② 불은면 출신의 한학자 具健祚가 전도활동에 합류하였고 광산 김씨 김영선, 김영지 등의 양반들이 교회에 나오게 되어 門中 교회가 형성됨(1924년 김영선은 사제 서품을 받아 온수리 성당에서 30년간 목회)
③ 1911년 11월 30일 교회 축성식-토착 교인들이 성금을 모아 교회를 건축
④ ‘소박하고 초라하여 헐어버리자’- 인천 지방 문화제 15호로 보존
⑤ 현재는 새로운 시멘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섬
⑥ 바실리카 양식-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기둥으로 지성소와 회중 석을 구분
⑦ 정면3칸, 측면 9칸으로 27칸의 소박하고 토착 미를 느끼게 하는 교회
 * 강화성당- 궁궐 드나드는 대감,  한껏 차려 입은 정경부인
* 온수리 교회- 낙향한 선비가 책 읽는 곳,  밭일 마치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시골아낙

 

                                                     3. 강화 교산 교회
  ① 1887년 서울에서 노병일이 인천에 내려와 契를 조직하여 선교-미국 선교사가 봐준다고 하자 계꾼 50여 명이 모였고 곗날은 주일, 모이는 장소는 교회
  ② 계원 중 강화 양사면 시루미(甑山증산) 출신 이승환이 주막을 경영하며 계에 가입.  계원 1명이 곗돈 타먹고 도망하자 교회 평판도 추락하고 뿔뿔이 흩어졌으나 이승환과 1명만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듣고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됨
   ③ 1892년 미 감리교 G.H.Jones(趙元時) 선교사가 인천에서 갑곶 나루를 통해 강화에 들어오려다 남문에서 �겨남
*  강화 유수-“우리는 당신네 선교사들이 왜 왔는지 잘 알고 있소. 우리는 당       신들이 가져온 것을 원치 않소. 빨리 이곳을 떠나시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거요”- 협박에 가까운 거절
( 신미양요 때 초지진 포격사건, 정족산성 점령, 유물 약탈 등이 일어난 지 20여년이 지난 때)
  ④ 1893년 감리교가 강화 읍에서 배척 받고  변두리를 통하여 들어옴
   ⑤ 존스 선교사가 이승환에게 세례 받으라 권하자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사양
      술파는 장사, 노모보다 천국가는 좋은 일에 먼저 받을 수 없다.
   ⑥ 술집 처분하고 강화도로 돌아와 어머니를 전도하고 세례 받기로 작정
   ⑦ 존스 선교사가 이승환의 안내로 강화 북쪽 양사면에 도착하여 다리목(橋頂교정)으로 가려고하자 그곳 경주 김씨 김 초시가 서양 오랑케가 자기 땅을 지나가 야소교가 들어오면 네 집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위협하자 어머니를 업고 배에 가서 선상 세례를 받음(보름 달빛 아래 세례 받아 강화의 겨자씨란 칭호를 얻음
   ⑧ 존스가 전도인 이명숙, 전도부인 백헬렌을 시루미로 보내 이승환의 집에서 집회를 시작(인천 내리교회 약사에 기록)
   ⑨ 김초시(김상임)-40세에 강화부 승부 초시에 등과, 관직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선비
      존스가 형님이라 부르며 한문 성경을 주고 가자 파고 들어 “옳구나. 이것이 바로 내가 정감록에 심취하여 난세에 구명할 수 있는 곳, 十勝地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성경 안에 십계명이 있고 십자가에 영생이 있으니 十字架之道가 다름아닌 십승지로다”
      또 믿기 시작한 천민들의 생활 태도가 바뀌고 마을 분위기가 바뀐 것에서 기독교의 힘을 느끼고 유교를 벗어 던지고 존스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음.
      김초시의 개종으로 다리목 마을 전체가 복음화됨
      자기집 앞 마당에 12칸 짜리 초가집 예배당을 짓고 이승환의 집에 모이던교인들이 옮겨옴
                시루미 천민(甑山)+다리목양반(橋頂)→橋山 교회


 

                                                  4. 기타 강화도 교회들
   ① 주문도 서도 중앙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