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겜(Shechem)
뜻 : 언덕
예루살렘 북쪽 약 49km 지점 떨어진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
(삿 9:7).
아랍인들은 나블루스(Nablus)라고 한다.
세겜의 중앙지대에서 발굴된 돌로 쌓은 제단이다.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았다.
오른쪽 위의 제단에 세워진 돌기둥은 여호수아의 유적비다.
(1)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처음으로 멈춘 곳(창 12:6)
(2)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귀환하던 중 세겜 성 앞에서 장막을 쳤고 단을 �은곳(창 33:18, 19, 34:2).
(3) 도피성 중의 하나였다(수 17:7).
(4) 북쪽 지파들이 르호보암을 그들의 왕으로 추대하여 분열 왕조를 만든곳(왕상12:1-19, 대하 10장).
세겜에서 일어난 일(1), (창세기 34:1-13)
야곱이 고향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 않습니다. 너무 힘들던 문제인 에서의 분노를 잠재우고 나니 이젠 있어서는 안 될 가정의 어려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야곱 일행이 세겜 땅에 머물고 있는 동안, 딸 디나가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디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세겜이 청혼을 하지만 그리 단순하게 끝나질 않습니다. 급기야 이 사건은 디나의 오라비들이 세겜 땅을 살육하는 복수극으로 끝납니다.
오늘 본문은 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전장 말씀을 다 살피기에는 시간이 요하여, 오늘은 앞부분을 중심으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어났는지, 이런 사건을 맞는 야곱의 대응은 어떠한지, 또 일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인 세겜성 사람들은 어떻게 이 사건을 풀려하는지 등을 살피며 주님께서 하시는 메시지를 들으려 합니다.
디나의 실수
왜 이런 불상사가 벌어졌습니까? 두 가지로 그 요인을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디나의 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나가 세겜성의 문물이나 유행이 몹시도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1절)에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라고 했습니다. 디나는 요셉의 누이이므로(30:21) 그녀 나이가 17세쯤으로 추정됩니다. 한참 세상에 관심이 있을 나이입니다. 그러나 그의 호기심이 얼마나 큰 참상이 되었는지 끔찍한 일입니다.
당시 세겜 마을에서는 여자들이 베푼 잔치가 있었습니다. 이런 사교모임에는 여자들이 옷을 잘 입고 나오고, 또한 춤을 추는 등 즐거운 행사들이 있었는데, 디나가 이런데 유혹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러 나갔다'고 합니다. 보러만 나간 게 아니라 '보이러 나갔다'고 해도 잘못 됨이 아닐 겁니다. 보러 나갔던 보이러 나갔던 여기서부터 잘못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는 것도,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는 것도 보는 것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후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하고, 또 (고후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합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눈으로 보는 것 때문에 갖는 호기심과 허영심은 예나 지금이나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야곱의 행로변경입니다. 비록 세겜성은 야곱의 일행이 장막을 치고 머물고 있지만, 그곳은 야곱이 살려고 하는 땅은 아닙니다. 야곱은 브엘세바로 가려고 여정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브엘세바로 가지 않고, 에서를 만난 후 행로를 요단 강 쪽으로 틀어 세겜에 이른 것입니다. 히위족속인 하몰이 이 성을 세우고 자신의 아들 이름인 세겜이라 부른 땅입니다. 예루살렘에서 58km쯤 떨어진 에발 산 근처인 지역입니다.
야곱의 예정하지 않은 진로 변경이 이런 엄청난 사건을 초래할 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는 하란에서 서원한 대로 벧엘로 갔다면(28:19-22)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인데, 나중에야 벧엘로 갑니다.(35:1) 그 때는 이미 어마어마한 사건을 경험한 후였습니다. 우리도 후회하고 나서야 진로를 변경하지 말고 주님 정해주신 진로를 따라 생을 살아야 합니다.
세겜이 청혼
세겜은 디나를 욕보이고는 그녀에게 청혼을 합니다. (3절)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련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이 구절만 보면 분명히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그 사랑은 아버지 하몰에게 야곱 집안에 청혼을 넣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무 문제없는 듯 보이지만 잘못된 청혼입니다. 첫째로는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청혼이 성사되고 결혼을 한 후에 할 일을 먼저 저질렀습니다. 둘째는 그 정욕이 문제입니다. 물론 순서를 어긴 것이 바로 그 정욕 때문이지만 말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용서될 상황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도덕적 가치라도 그 순서와 절차를 무시하면 그 가치를 상실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 것도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다. '연련하며'는 '정신을 다하여, 영혼이 깊이 빠져'란 뜻인데 잠깐 보고 그리 연련한다는 것은 쉽게 붙은 열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정욕에 사로잡힌 감정이라고 함이 옳습니다. 정욕에 이끌려 분별 없이 하는 결혼이 행복을 가져다 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청혼은 정중하였습니다. 하몰은 여러 번 거듭하여 정중한 태도로 청혼을 하였습니다. (8절)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련하여 하니 원컨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12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빙물과 예물을 청구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수응하리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자는 것이지요. 자기 아들이 사랑하는 디나만 시집보내 준다면 어떤 큰 요구라도 들어주고 서로 돕고 사는 사이가 되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당신에 얹혀 사는 야곱에게 이만한 제안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 청혼은 야곱의 가족이 받아드릴 수 없는 청혼입니다. 그는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이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혼혈아의 탄생을 두려워해서가 아니고 혼합종교의 탄생을 우려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게 바로 이방인의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신7:3,4)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아무리 사랑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야곱의 대처
디나의 사건에 대하여 야곱과 그 아들들의 대처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물론 결국 아들들의 대처방법으로 문제가 번져나가게 되었지만, 여기서 우리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함이 옳은 건지를 배워야 합니다.
(5절)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의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이 짧은 구절이 야곱의 대처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야곱은 디나가 세겜에게 욕을 보이고 또 감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즉시 분노의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좀 다르지요.
(7절)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치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같은 사건이지만 똑같이 대처하지 않습니다. 아들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실은 나중에 할례라는 꾀를 내 세겜성을 살육하지 않습니까. 분노는 복수극을 불러옵니다. 분노는 죄가 아니지만 죄로 갈 확률이 높습니다.
야곱은 즉시 그 분노를 표현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다가오는 어려운 문제와 불행한 일들에 항상 분노하기만 한다면 그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일에 침착하게 대처하면, 그렇지 못하고 서두는 것보다 해결할 확률이 높습니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맞습니다. 주님의 뜻을 바라며 기도하는 인내가 성도들에게 필요합니다.
(김학현 목사)
세 겜(Shec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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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 세겜길을 따라 약 60Km 지점에 잘 알려진 세겜이 있다. 세겜의 뜻은 “목덜미”란 뜻으로, 세겜은 에발산과 그리심산을 양쪽 어깨에 메고 있는듯이 두 산 사이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겜은 현재 나블러스라고 불려지고 있다.
나블러스는 로마시대부터 쓰여진 이름으로 “새로운 도시”라는 뜻이다. 오늘날 세겜은 요르단 서안(West Bank)의 팔레스틴 지역에서 가장 큰 아랍인 도시로서 아랍민족주의 중심지이다. 따라서 유대인과 아랍인과의 갈등이 가장 심하게 대두되고 있는 점령지로서 시내 곳곳에 이스라엘군의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겜은 이집트에서 시리아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일찍이 주전 1850년경에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곳 세겜에 이주해 왔고(창 12:6-7), 그의 손자 야곱은 천막과 제단을 세우기 위해 땅을 매입하였다(창 33:18-19).
야곱의 딸 디나는 세겜에서 하몰의 아들 세겜에서 강간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거민들을 살육함으로서 디나에 대한 보복을 하였다(창 34장).
요셉의 유언대로 출애굽할 때 가져온 요셉의 시신을 세겜에 매장하였다(수 24:32).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세겜에 모아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였다(수 24장).
주전 9세기에 북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은 수도를 세겜에서 사마리아로 옮김으로서 세겜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주전 722년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세겜에 앗시리아인들이 대거 이주해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겜 사람들은 이민족과 피가 섞이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남 유다 유대인들은 혼종이 된 사마리아인들을 거절하였다. 이때부터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서 독자적인 종교생활을 다지기 시작하였고 모세 오경과 여호수아서만 성경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적대시하게 되었다.
신약시대에 빌립, 요한 그리고 베드로는 세겜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행 8:4-5).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비잔틴 시대에 세겜과 그리심산에 교회가 세워졌다. 1948년 독립당시 세겜은 요르단에 속했었으나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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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포항침례교회 조근식 목사 홈페이지(http://www.phbc.or.kr/Board/view.php?board=sacred&page=1&Mk=15)
세겜과 사마리아인
출애굽 이스라엘인들 복귀예배 보던곳
후손 7백여명 생존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구약성경은 이렇게 이스라엘 땅의 경계를 표현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스라엘 땅의 최북단은 '단'이요, 사람이 살 수 있는 남쪽 끝은 '브엘세바'라는 뜻이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는 230 km, 정확히 그 중간지점에 도시가 있다. '세겜'이다. 세겜은, 역사무대에서 예루살렘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중심지였다.
세겜은 두 산 사이 계곡에 있다. 남쪽에서 보면 왼편에 '그리심'산, 오른편에 '에발'산이 있어 사람의 양어깨 같은 형태다. 그래서 도시의 이름도 '양 어깨'를 뜻하는 '세겜'이 되었다. 고대부터 세겜은 이스라엘의 동서와 남북을 왕래하는 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오늘도 이스라엘의 남북 간선도로는 두 산 사이를 지나 세겜을 통과하고 있다. 세겜은 낮은 계곡지대여서 공격해 오는 적을 막기에는 불리했다. 이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거대한 성벽으로 세겜을 둘러싸았다. 1950년대 성벽의 일부가 발굴되어 구약시대 세겜은 대규모 도성이었음이 밝혀졌다.
이스라엘 중심도시였던 세겜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일이 일어난 역사적 현장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하던 끝에 꿈에도 그리던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한
곳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새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 뜻깊은 예배의 장소가 세겜이었다. 세겜 예배는 특이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 산 앞에 나눠선 후 그리심산 앞에 선 사람들은 축복을, 에발산 앞에 선 사람들은 저주를 선언한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삶의 결과를 선포한 것이었다. 그후 오늘날까지 그리심산은 축복의 산으로, 에발산은 저주의 산으로 전하고 있다.
기원전 920년대, 세겜에서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되는 정치적 변혁이 일어났다. 솔로몬 왕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을 때, 이스라엘 북쪽 10지파 사람들은 세겜에 집결했다. 그들은 르호보암 왕에게 백성들의 부담을 경감시킬 것을 요청했다. 왕이 요구를 묵살했고 그들은 반기를 들고 독자적인 왕국을 세웠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남쪽의 '유다 왕국'과, 분열해 나간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북왕국의 수도는 처음에는 세겜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방어에 유리한 '사마리아'로 천도했다. 오늘날 세겜은 '사마리아인'들의 중심도시로서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다.
강도만난 사람을 극진하게 돌보아준 '선한 사마리아인', 예수께서 10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셨을 때, 유일하게 예수께 와서 감사했던 '사마리아인', 이들은 모두 잘 알려진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신약시대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온갖 차별과 멸시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러기에 이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들은 더 큰 감동과 교훈을 받는다.
놀라운 것은 이 사마리아인의 후예들이 세겜을 중심으로 지금도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그들은 모두 합쳐 불과 7백명 남짓하다. 그러나 그들은 2천 5백년 이상 오랜 전통을 고수하며 건재하고 있다. 이 사마리아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유대인들의 경멸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는가? 사마리아인들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조상 '요셉'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그들의 주장에 회의적이다. 사마리아인의 기원을 북이스라엘 왕국 멸망 이후로 보기 때문이다. 기원전 720년경, 세계의 패권자 아시리아 제국은 북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했다. 북왕국이 멸망한 후 그 곳은 '사마리아 지역'으로 전락했다. 한편, 아시리아제국은 정복민 '인구 교환정책'을 강요했고, 이에 따라 북왕국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역으로 분산되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지파' 전승과 전설이 생기게 되었다. 동시에 많은 이 민족들이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주해 들어갔다. 자연 그곳 사람들은 혼혈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혼혈이 된 사마리아 지역민들을 '사마리아인' (Samaritans)으로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혈통의 순수성을 귀히 여기던 남쪽 유다 왕국의 후손인 '유대인'(Jews)의 멸시를 피할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을 성산으로 여겨왔다. 오늘날도 매년 유월절이 돌아오면, 그들은 산자락에 모여 구약성경에 규정된대로 양을 잡아서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를 지킨다. 사마리아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소수민족이지만 수천년 동안 종교적, 문화적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오늘날 이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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