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믿음간증歷史

[역경의 열매] 안찬호 (8)~(14) “주님 믿읍시다” 첫 한국어 설교

영국신사77 2008. 2. 27. 14:23
 
[역경의 열매] 안찬호 (8) “주님 믿읍시다” 첫 한국어 설교

케냐 마사이 부족 마을에 첫발을 디디고 얼마후였다. 추장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놀랐다. 어렵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마사이 부족의 경계를 넘은지 얼마 안돼 이들의 마음이 변심한 게 아닌지, 나를 저주하는 것인지, 선교의 시작도 못하고 이대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라는 절망과 함께 화가 났다. ‘이제껏 당했으니 이제는 내 참모습, 강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해 나도 추장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이런 수모는 참지 못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추장과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나를 안고 즐거워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나중에 침 뱉기가 일종의 환영인사라는 것을 알았다.

맛사이 땅은 건기에 사막처럼 건조하고 우기에 아름다운 초원으로 이루어지는 사바나 지역이다. 이곳은 물이 아주 귀하기 때문에 부족민들은 물을 잘 먹지 않는다. 또 물이 몸밖으로 나오는 것도 매우 신경을 쓴다. 예를 들어 땀 흘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소변도 하루에 한 번 보거나, 아예 참거나 한다.

이렇게 물이 귀하다보니 자신의 수분, 즉 침을 뱉는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을 의미했고, 존경하는 손님에게 환대의 표시로 침을 뱉는 것이 오랜 풍습으로 이어져왔던 것이다.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황당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침뱉기’ 사건 다음 날이었다. 나를 환영하는 행사가 열려 온 부족민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나누는데, 마사이족은 잔치에 쓸 소와 양을 그들 전통 방식대로 잡았다. 우선 살아 있는 소와 양의 목을 베고는 피가 뿜어져 나오는 부분에 얼굴을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고 그 피를 그대로 받아먹는 것이었다. 게다가 한 모금 입에 넣은 피를 온 사람들에게 전했다. 나도 할수 없이 피를 한 모금 받아 먹은 후 그것을 옆 사람에게 전했다.

나는 이 와중에 그들에게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이곳에 살고 싶소. 우리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함께 천국으로 갑시다”라고 했다. 이것은 마사이 부족에게 한 최초의 한국어 설교였던 셈이다.

이렇게 선교지에서의 환영식까지 마친 나는 마사이족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먼저 술탄 하무드라는 도시에 월세방을 얻고 조그마한 중고 오토바이를 구입해 50km나 되는 거리를 매일 매일 출퇴근했다. 아침 일찍 마사이 마을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지내고 저녁이 되면 숙소로 돌아와 마사이 선교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저녁 늦게 돌아올 때는 길에서 사자, 표범, 기린, 얼룩말들과 종종 마주쳤는데, 이곳의 동물들은 아예 나를 무시하는 것인지 도망가지도 않는다. 나를 보고 도망가는 것은 오직 마사이 사람들이었다. 이제껏 까만 피부의 동족만 보다가 황색 피부를 가진 이방인을 처음 대한 그들에게는 내가 사자보다 더 무서워 보였을 것이다.

또 내 오토바이를 마사이 부족들이 처음 봤을 때는 모두 기절하려고 했다. 그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는 동물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워 두고 대변을 보러 숲에 갔다가 돌아와보니 오토바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창에 찔려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마 내가 없는 동안 오토바이를 처음 본 마사이 청년들이 이것과 ‘싸움’을 했던 모양이었다.

소리는 나는데 움직이지 않고 서있자 오히려 두려워한 마사이들이 창과 돌멩이를 던져 오토바이를 쓰러뜨렸고, 결국 엔진이 고장 나 소리가 나지 않자 이들은 자기들이 이겼다고 환호하며 기뻐했던 것이다. 나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역경의 열매] 안찬호 (10) 마사이족에 일부일처제 설교


많은 사람들이 마사이족은 일부다처제라고 말한다. 그 말도 맞다. 그러나 좀 더 엄격히 말하면 다부다처제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일부다처제는 무슬림처럼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두고 가장이 선택해 보호하는 것이지만 마사이족은 한 마을에 약 50∼100가구가 추장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일종의 지방자치제를 기반으로 한다.

마사이족 가정은 남자들을 모두 남편으로 보고 또 여자들도 모두 아내로 본다. 즉 집안 행사나 어려운 일을 공동으로 처리한다. 심지어는 성생활까지 함께 한다.

이들에게 결혼이란 하나의 형식이며 의무를 다하기 위한 방법이다. 의무는 자신이 결혼한 여자가 낳은 모든 아이를 12세가 될 때까지 키우는 일이다. 남편은 4명의 아내를 가질 수 있다. 남편이 하룻밤에 한 아내를 선택하면 나머지 3명의 아내는 모란(마사이족 청년)이라든가 다른 남자, 즉 여행 온 마사이 족과 남편의 친구를 선택해 성생활을 할 수 있다. 여기서 성생활이란 오직 종족 번식을 위한 것이다.

마사이족은 12세가 되면 할례를 받는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불로 달군 칼로 성기의 일부분을 잘라내 성감대를 없앤다. 쾌락을 위해 성생활을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다. 마사이족 여성은 임신하면 절대 성행위를 하면 안된다. 성행위는 종족을 번성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첫 결혼은 아주 성대하게 치러진다. 아내를 맞기 위해 온 동네가 축제를 한다. 축제가 끝나면 남자의 어머니가 신부에게 3일 동안 교육을 시킨 후 신랑과 동침하게 한다.

마사이족은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허락되지 않는다. 성인은 물론 아이들도 마사이 공동체의 일부분인 것이다. 한 집안의 불화나 기쁨도 공동체의 것이며 공동체에서 상벌(賞罰)을 결정한다. 결혼식 날짜도 공동체에서 택하게 된다.

마사이 남자들은 할례 후 모란이라는 공동체에 들어간다. 모란에 들어간 마사이 남자들은 마을을 지키며 가축들을 돌본다. 때로는 먼 곳까지 이동도 해야 하고 사자 등 맹수들과 싸워야 한다. 질병으로 죽고, 사나운 짐승과 싸우다 죽고, 먼 곳으로 이동하면서 많은 남자가 죽는다. 자연히 여자가 많아진다. 이런 현상도 마사이족이 다부다처제를 선택한 한 원인이다.

다부다처제는 성생활이 문란해지고 성서에 위배된다. 나는 다부다처제에서 일부일처제로 교육을 시켰다. 크리스천은 아내가 한 명이어야 하고 남편이 가장이 돼 가정을 돌봐야한다고 설교 때마다 강조했다. 왜냐하면 마사이 남편들은 아내를 얻으면 모든 가사에서 손을 떼기 때문이다. 가정의 모든 일은 여자가 해야 하는 전통과 풍습 때문에 일하기 싫은 남자들은 일찍이 소를 처가에 주고 여자를 데려온다. 그 때문에 아내는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반대로 남자는 하루종일 나무 그늘 밑에서 빈둥거린다. 이런 것들이 마사이족의 문명화에 큰 걸림돌이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문화와 전통도 점차 바뀌었다. 기독교 문화가 들어오면서 한 곳에 정착하는 가정이 늘었고 할례를 할 때도 병원에서 청결하게 했으며 맹수와 싸우는 일도 줄어들어 전처럼 남자가 죽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은 오랜 전통과 관습에 익숙해진 기성세대들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잘 따라줬다. 그리고 내 가정을 개방해 모범을 보였다. 지금은 거의 일부일처제로 정착됐지만 전에 얻은 다처들은 그냥 인정하고 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역경의 열매] 안찬호 (11) 역병에 죽어가는 소 보며 ‘망연자실’

마사이 족에게 가장 힘든 일은 건기에 소를 몰고 이동하는 것이다. 소를 몰고 떠나면 나는 추장 일행과 소를 보호해 달라고 새벽에 작정 기도회를 연다.

유난히 소 피해가 컸던 해였다. 우기가 시작되는 10월말쯤 돌아온 마사이 족들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소들도 많이 죽었고 살아 있는 소들도 매우 지쳐 있었다. 추장도 역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을 토해냈다. “예수를 믿고 기도도 열심히 했는데 소를 지켜주지 않았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맞아?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신다더니 난 열다섯 마리나 잃었어!”

추장의 소는 153마리였는데 91마리나 죽었다. 이상한 병이 돌기 시작하더니 하루에 두세 마리, 어떤 날은 열 마리씩 쓰러졌는데 그것을 보고 추장이 미치더라는 것이었다. 안 목사의 소도 30마리 중 12마리나 죽었으니 아마 안 목사도 더 이상 예수를 믿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나는 추장이 “더 이상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한마디만 하면 끝장이었기 때문에 걱정하며 뜨겁게 기도했다. “추장을 지켜주옵소서. 변하지 않게 하옵소서.”

추장이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심방을 갔다. 그러나 추장은 안 만나주었다. 아파서 만나기 싫다는 것이었다. 하릴없이 기도만 하고 돌아왔다. 주일이 됐는데도 교회가 썰렁했다. 워낙 소를 많이 잃어 마을 분위기가 침통했기 때문이다. 예배 시간이 다 됐는데 추장은 보이지 않았다. 내 걱정은 더 커져갔다.

그때였다.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렸다. 추장이 하얀 소를 몰고 교회에 온 것이다. 하얀 소는 마사이 족이 성스럽게 여기는 동물로 축제나 제사 때만 잡는다. 나를 보더니 추장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기둥에 소를 매어놓고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놀라서 추장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렸고 나도 긴장했다.

추장은 내게 오더니 “목사님, 간증을 하고 싶습니다. 제게 약간의 시간을 주십시오.” 나는 허락했다. “할렐루야!” 추장이 소리쳤다.

“예수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너무 감사하여 가장 좋은 소를 하나님께 감사 예물로 드립니다.”

모두 놀랐다. 화를 내도 모자랄 판에 귀한 소를 예물로 바치겠다니….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제가 감사하는 이유는 제 소 62마리와 목사님의 소 18마리가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소를 91마리나 죽이셨습니다. 처음에는 야속했지만 계속해서 죽어가는 소를 보고 기도했습니다. ‘지켜 주옵소서. 살려 주옵소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소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91마리를 죽일 수 있는 분이라면 153마리를 모두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기도를 들으시고 더 이상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제 소는 91마리밖에 죽지 않았고 그래서 62마리나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지 않고 저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소는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저를 사랑하시고 제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감사해서 이 소를 드립니다. 모두 드려야 하지만 아직 제게는 어린아이가 있고 먹을 우유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교회나 목사님이 필요하시다면 소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가진 소는 하나님 것입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 역시 18마리나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소 한 마리를 예물로 드렸다. 그러자 성도들이 소와 양, 염소를 감사 예물로 드리겠다고 나서서 우리 모두 뜨거운 은혜를 받았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역경의 열매] 안찬호 (12) 마을에 학교·병원 건립… 마사이족 삶을 변화시키다

내 사역의 첫째 목표는 동물처럼 살고 있는 무쿠타니 지역 마사이족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들을 통해 주변 국가에 복음을 수출할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다.

먼저 교회를 세워 예수를 믿게 한 뒤 성도들의 주소를 파악해 가장 먼 곳에서 오는 성도들의 마을 동서남북에 교회를 개척한다. 교회마다 선교유치원을 설립하고 글자와 문화를 가르치고 초등학교를 세워 어린이들을 교육한다.

또 무쿠타니 지역을 본부로 삼아 중·고등학교와 병원, 선교사 주택, 세미나실, 트레이닝 센터 등을 세워 자연만 믿고 따르며 흩어져 사는 마사이족들을 정착시킨다. 유능한 인재를 선발, 대학에 보내 지역 지도자로 양성한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꿈이다. 그러려면 먼저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 교회를 세우면 주일과 수요일, 금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마사이족은 소와 양, 염소들을 돌봐야 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또 학교를 세우면 목동들이 줄어든다. 목동인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먼 들판으로 소와 양을 몰고 나가야 하는데 이 일은 누가 할 것인가.

부작용도 상당하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니 이제는 라디오를 듣는다. 자기 부족의 부모나 가족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고 전에 모르던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나 국가적 상황을 알게 된다. 부모와 대화가 단절된다. 아이들이 도시에 나가고 싶은 충동 때문에 부모와 마찰이 생긴다. 일부일처제, 조혼 방지 등으로 음성적 교제와 만남이 싹튼다. 질투와 싸움이 발생, 사회 문제로 번진다. 문명사회의 문제점이 마사이 공동체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공동체 파괴도 문제다. 선교사가 무쿠타니 지역에 들어오기 전에는 공동체가 우선이고, 공동체의 법이 잘 지켜지고 비교할 대상이 없으므로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선교사가 들어오고 교회법이 생기면 혼란이 시작된다. 헌금과 교회 봉사 등을 잘하는 사람이 칭찬의 대상이 되고 믿음 좋은 자로 분류된다. 선교사가 개척교회를 시작하면 먼저 대화하며 조언을 얻을 성도를 찾게 되는데 이런 성도들이 그런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마사이 성도들은 선교사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여기에 선교사의 사역까지 얽히면 더 복잡해진다. 선교사는 마사이 공동체를 교회 공동체에 흡수하려고 한다. 교회가 사회를 지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마사이 공동체는 수천년 동안 지켜온 문화와 풍습 때문에 교회법과 선교사의 지시를 따르기 싫어한다. 찬성과 반대의 싸움이 시작되고 선교사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극단의 상황까지 치닫는다.

그러다가 반대파들이 줄어들어 교회법이 우선되면 또 다른 문제에 빠진다. 가짜 교회 지도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 문제에 간섭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짜 리더들이 판을 치고 믿음조차 없는 성도가 교회 지도자가 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쯤 되면 “선교사님, 동물처럼 살던 그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마사이족도 나타난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역경의 열매] 안찬호 (13) ‘가짜무덤’으로 100% 전도 기적

마사이에 정착한 지 1년이 되자 마사이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도 어느 정도 마사이 문화와 풍습, 전통에 익숙해졌다. 무쿠타니 마을 사람의 90%가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어디서 들었는지 선교사는 1년이나 2년 정도 일하다가 모두 수도인 나이로비로 이사간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안 선교사도 곧 이곳을 떠나 일주일에 한번 정도만 이곳에 왔다 갈 것이며, 자기네를 이용만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문에 화가 났다. 돌아오는 주일 예배시간에 이 부분을 확실히 해두었다.

“나는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내가 싫어서 나가라면 몰라도, 그리고 내가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서 ‘이젠 되었다. 그만 모든 것을 물려주고 자립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마사이가 되고 싶습니다. 살아서는 육체가 여러분 옆에 항상 있을 것이고 죽어서 나의 영혼은 여러분 옆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죽으면 묻힐 곳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내가 죽으면 혹시나 한국에서 내 시신을 가져가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죽으면 무쿠타니 교회 옆에 묻어 주십시오. 내일 나는 내가 묻힐 곳을 만들겠습니다.”

나는 다음날 내 무덤을 만들어 비석을 세우고 벽돌로 울타리를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이 일이 끝나자 마사이 어른 열댓명이 무덤을 만들면 안 된다고 야단했다. 이곳 풍습에 따르면 살아 있을 때 무덤을 만들면 엥카이(마사이 최고의 신)가 노해 정말 죽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모아 놓고 그것은 미신이며 나는 절대로 먼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마사이 할머니들은 날마다 내 무덤에 와서 비석을 만지며 기도했다. “우리 목사님 늦게 데려 가십시오. 목사님 때문에 우리들이 얼마나 좋은지 당신은 아시지요? 아직 하실 일이 많아요”라고 말이다.

나는 기뻤다. 마사이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또 선교에도 큰 도움이 됐다. 성도들을 중심으로 안 목사님이 저렇게 우리를 사랑하는데 우리도 안 목사님 말씀에 따르자는 결의를 한 것이다.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기도회 이후엔 원로들의 비밀회의까지 열렸다. 많은 참석자들과 함께 울면서 간곡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안 목사님의 소원이 우리 동네 사람들 모두가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도웁시다”라고 결의했고 그 다음 날부터 원로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만일 그 주에 교회에 안 나오면 무쿠타니를 떠나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자 믿지 않던 마사이 사람들까지 원로들의 말에 순종해 교회에 출석했다.

그 주에 교회 참석인원은 600명. 무쿠타니 사람 100%가 출석했다. 원로들이 주민들을 일일이 체크했다. 그리고 내게 “당신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저 무덤을 없애고 죽을 생각일랑 말라. 앞으로 모든 사람이 교회에 나올 것이고, 만약 나오지 않으면 우리가 조치를 하고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후부터 계속 무쿠타니 사람 100%가 예배에 참석했다. 만일 여행을 가거나 아프면 토요일에 미리 연락이 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행을 가서는 그 곳에 있는 교회에 출석했다는 편지를 그 교회 목사님께 받아오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가짜 무덤을 통해 무쿠타니를 ‘100% 예수 믿는 마을’로 만드신 것이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역경의 열매] 안찬호 (14) 생사 갈림길서 극적으로 구원

케냐 무쿠타니 지역에 내가 처음 들어갔을 때 마사이 족들은 나를 동물 취급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면 동물원 원숭이 보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웃어댔다. 자기들의 생활이나 행동과 전혀 다르니 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두 피부가 까만데 나만 하얗다 보니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고 말까지 통하지 않으니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웃음거리에 그치지 않고 오해를 불러일으켜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어느 날 소변을 볼 때였다. 소변을 보려는데 화장실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무 밑으로 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지퍼를 내려서 소변을 봤다. 그런데 어느 새 아이들이 몰려들어 깔깔거리고 웃고 있었다. 마사이 족은 남녀 모두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변을 본다. 아이들은 내가 뻣뻣하게 서서 소변을 보자 우스웠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나는 볼 일을 다 마치자 웃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만 구경하라는 뜻으로 나무토막을 던졌다. 그런데 마침 이 모습을 본 마사이 족이 아이들에게 적대 행위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했다.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마사이 족들에게 회의 장소로 이끌려 갔다. 원로들에게 인사하려고 했지만 워낙 진지한 표정들이라서 이야기를 끊지 못하고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물론 나는 한마디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간혹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다만 이날 따라 이들이 유난히 나를 자주 바라본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내가 참석한 그날 회의는 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나무토막을 던지는 것을 보고 마사이 족들은 화가 났고 즉시 원로회의를 소집한 것이었다. 나를 추방할 것인가, 죽일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였다. 나를 묶어서 추방하든지, 아니면 창으로 찔러 죽일 것인지를 3일 후 결정하기로 하고 그날 회의는 끝났다.

3일 후 내 문제를 결정하기로 한 날이었다. 원로 추장이 집에서 나오는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에게 인사를 하더란다. 원로 추장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동물을 추방시키거나 죽여야 하는가? 난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내가 없어도 다른 원로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회의에 참석하는 원로들에게도 인사를 하면서 마사이 마을로 들어갔다. 회의장에 모인 원로들은 그런 나를 보고 서로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그냥 두자! 저런 멍청한 선교사를 죽일 필요는 없어.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안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단다.

내가 오늘까지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다.

마사이 족 선교는 겨우 유아기다. 단순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내게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의존한다. 아직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선교가 무엇인지,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두는 이들이 없고 몇 명의 지도자만이 고민할 뿐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자립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강하고 토착적인 주님의 교회가 이들의 토양과 문화 속에 깊숙이 심겨지기를 기도한다. 자신들의 문제에 스스로 해답을 찾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성숙한 교회가 되기를 간구한다. 때로는 힘겹고 소망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주님께서 내 기도 제목들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사이 족과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는 오늘도 무쿠타니 지역의 성도 가정들을 심방한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