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이 성경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를 깨달았다.
‘이기는 습관’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나는 과거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의 변화를 겪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사실에 감격도 했지만 점차 교만이라는 무서운 것이 나를 찾아왔다. 교만은 이기는 습관의 최대 적 가운데 하나다.
여기저기서 치켜세워 주고, 점차 유명인이 돼가자 나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세상적으로 흘러가려는 관성은 걷잡을 수 없었다. 시험에 든 것이다. 철저하게 주님과 동행한 삶을 살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이 자라고 점점 욕심이 커져 무엇이든지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것처럼 뻣뻣해져 갔다. 어느새 강연도 회사일도 원고 쓰는 일도 교만과 관성에 젖어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났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내 인생의 방향이 무언가 그릇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교만해서는 안될 사람이다. 나는 주님과 약속을 했었다. “주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얼마나 숱하게 약속하였던가. 그러나 종은 커녕 돌이켜 보면 내가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내가 유명해지면서, 힘을 가지게 되면서, 나는 내 힘의 원천이신 주님을 점차 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위기였다. 전쟁터와 같은 기업현장에서 경영 최일선에서 활약했던 나였다. 수많은 위기를 겪었던 것이 나의 지난 삶이었다.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성공 뒤에 찾아온 이 위기는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어떤 위기보다도 더욱 위험하다는 사실을.
앞만 보고 달려 왔던 지난날의 삶에 대한 정리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가던 길 멈추고 잠시 지나온 삶을 생각해 보았다. 내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함께 해주신 주님이 계셨다. 그 분이 내 힘의 원천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면서 주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려놓아라. 너를 이처럼 높인 이유를 생각해 봐라. 너는 내가 세상에 왔던 이유를 아느냐, 사명을 갖고 민족을 행해 부르짖어라!” 그 분은 내게 내려놓을 것을 명하셨다. 철저한 ‘내려놓음’이 그 분의 명령이셨다.
‘이기는 습관’ 발간 후 5개월이 경과한 2007년 9월경의 일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이 모든 일이 내 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사실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이처럼 사랑을 받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지만, 사랑을 받을수록 마음 한 구석에는 엄청난 허탈함이 밀려들어 왔었다. 그러면서 내가 잊고 있었던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뭉글뭉글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직장 생활에서 느낄 수 없었던 그 어떤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었다.
그 길로 나는 신학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꼭 목사나 전도사가 되어 대단한 목회를 하려는 게 아니다. 삶의 원리와 신앙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과 공부가 필요해서였다. 물론 주변에서는 만류하고 나섰다. 지금 잘 나가고 있는데, 지금 하는 일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뭐하러 또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님이 당신이 준비하신 계획대로 나에게 또 다른 길을 가라고 인도하시는 것만 같았다. 신학대학원에 합격한 날, 내 신앙의 큰 양육자이셨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는 언젠가 꼭 주님의 일을 해야 한다.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하고 훌륭한 목회자가 될 것이다. 이러한 주님께서 명한 소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신학대학원 입학만이 주님의 길을 가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내게 있어 신학대학원 입학은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첫걸음이었다. 내려놓음의 첫 시도였다. 내려놓기 시작하자 다시 내 마음에 기쁨이 찾아왔다. 첫사랑을 회복하게 됐다. 다시 주님과의 풋풋한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주님과 긴밀하게 교제하는 것, 그것이 나의 기쁨이요, 찬송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역경의 열매] 전옥표 (11·끝) ‘믿는 자만이 세상을 이긴다’ |
2008.02.19 18: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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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에 진학하고 나니 왠지 마음이 평안해지고 모든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런데 아내의 건강이 갑자기 극도로 악화되며 이유 없이 계속 아팠다. 2006년 딸을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보낸 후 허탈감이 찾아왔는지 하루하루를 힘들어했다. 지난해 갱년기 증상이 심해지더니 올초부터는 더욱 더 상태가 나빠졌다. 무기력 증세와 함께 몹시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병원에 가도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마냥 잘나가기만 한다는 평판을 들으면서 회사일로 바쁘게 보낼 즈음, 아내의 건강이 나빠지고 무기력증까지 생기자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직도 내 욕심과 내 소욕을 따라 사는 것은 아닌가?
주님의 참된 종이 되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나 아직까지도 사그라들지 않는 한없는 성취의 욕망들과 솟구치는 오만함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신학대학원 진학과 함께, 내친 김에 비즈니스에서도 좀 더 주님께 가까이 가면서 가치 있는 새 사업을 모색해 보기로 결심했다.
"주님, 이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겠습니다. 제가 사회와 기업, 교회에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거기에 사용하시려는 주님의 거룩하신 뜻이 있으시다면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제 알량한 전문지식도 거기에 바칠 것입니다. 그러니 집사람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길을 알려주시옵소서. 저를 겨레와 민족과 이웃을 위해 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상처투성이에 찢기고 아픔투성이인 이 못난 것을 사용해 주세요."
눈물, 콧물 흘려가면서 기도를 하는데 주님의 세밀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분은 나의 기도에 조용히 응답하셨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내게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후 모 컨설팅업체로부터 '이기는 습관'과 관련한 교육사업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다. 평소 교육사업에 관심이 깊었지만 회사 일에 쫓겨 먼 훗날의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터였다. 그 순간 '주님이 길을 나에게 보여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이나 강연, 컨설팅 사업이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주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나는 잠언 16장 9절 말씀을 붙들고, 내려놓을 때 채워 주실 그 크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집사람 역시 적극적으로 내 사역을 돕기로 하였다.
지난 1월 말, 서둘러 회사 일을 정리하고 사직을 청했다. 직원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성공하고 안전한 길을 마다하고 또 왜 독립하여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하느냐고 적극 만류하였다. 특히 강연이나 컨설팅은 일시적이어서 먹고 살 수 있겠느냐며 걱정을 해 줬다. 그때마다 나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와 정녕 함께하리라"는 이사야 41장10절 말씀을 생각하며 철저하게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주님은 또 다른 한 편의 드라마를 이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통해 쓰시려고 하시는 것 같다. 서울 도곡동에 조그만 사무실을 차렸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기업, 교회, 직장인들에게 그동안의 내 경험을 전파하여, 자신과의 경쟁, 목표와의 경쟁, 잘못된 것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되도록 산파 역할을 하고 싶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이김'을 주시는 주님의 경영철학을 우리 인생에서 배우고 익히고 따르게 하기 위해서 '위닝 경영연구소' 로 칭하였다.
이제 나는 주님의 영광을 위한 먼 길을 떠났다. 두려움은 없다.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했기에 마음이 평안하다. 부족한 나를 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매일 감격한다. 그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갚기 위해서 나는 매일 새벽을 깨우면서 동서 사방으로 달려간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긴 자가 누구뇨"(요한일서 5장4∼5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