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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에 100개의 교회를 세우는 비전을 가진 과테말라 장로님

영국신사77 2007. 11. 12. 12:45

           중남미에 100개의 교회를 세우는 비전을 가진 과테말라 장로님                  

 

                                                                                -과테말라에서 만난 친구들

 

 

                                                                                                    재미교포 이인선  2007·11·11 05:00 
4 박 5 일의 일정을 마치고 새벽에 비행장에 줄을 서고 있을 때였다.
출국 수속 서류가 글짜들이 깨알 같은데다 연한 회색이어서
어둠 침침한 곳에서 잘 읽을 수가 없었다.
아직 남보다 좋은 시력을 가졌다고 돋보기 안쓰는 것을 자랑까지 해대곤 했는데,  
이런 땐 나도 할말이 없었다.
60 이 내일 모레인 판에 돋보기 쓰는 일에 자존심이 상하다니
살짝 부끄런 마음에 “도대체 지들은 안 늙는담? 왜 이렇게 작은 글씨야?”  불평이 나왔다.
    
눈치를 차린 장로님은 자기가 대신 써 주겠다고 하신다.
나보다 너 댓 살이나 많은데 글씨를 대신 써 준다니?
나는 의아하면서도 서류를 넘겨 드렸다.
“안경을 가져오셨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랬더니 안경도 안쓰고 쓱쓱 쓰시는 것이었다.

놀라는 내게 “장로님의  눈이 밝은 것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이라”고
옆에서 부인이 이야기 해준다.
“ 눈을 좋게 해주시면 성경을 열심히 읽겠습니다.” 라고 드렸던 기도의 응답…
“아, 얼마전 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장로님 이시구나.” 다시 한번 놀랐다.

눈이 어두어지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인데
최근 기도의 응답으로 밝아진 눈은 오히려 옛날보다 더 좋아져서
아무리 깨알 같은 글씨라도 돋보기 안경 안쓰고 읽을 수가 있다고..
세상에,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리고 그런 응답 받은 살아 있는 간증을 듣다니,
별안간 따뜻한 마음이 되는 좋은 아침 이었다.

이번에 4 년 만에 만난 그분들은 하나도 안 변하고 여전히 멋쟁이었다.
그 장로님댁 이야기는 아주 특별난 데가 있다.

우리 교회에 딸 하나 아들 하나, 네 식구를 데리고 온 것이 아마 15~20년은 되었을 것이다.
교회에 오신 첫날, 다 함께 나가서 가족창을 하시는데 우리 눈과 귀가 모두 다 커졌다.
네 사람 모두가 영화 배우처럼 키가 큰 미남 미녀들 이었고… 최고급 일류 화려한 옷들을 입었고…
게다가 찬양 솜씨는!
네사람 모두 성악 전공자들 이상으로 기막히게 합창을 해 내었던 것이다.
그 때로부터 권사님은 때마다 독창을 맡아놓고 하셨다.
  
아이들 교육을 위하여 미국에 온 부인과 떨어져 과테말라에 홀로 사시던 장로님은  
과테말라에서 큰 의류공장의 공장장의 일을 맡아 하고 계시다.
이제는 아이들 교육이 끝나고 남편 곁으로 다시 가신 권사님은 훤칠한 미인인데
어디서나 열심과 헌신으로 교회일을 도운다.

아버님이 목회자였고 오빠가 또 현직 목사님이셔서 그런지
목회자님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남달리 지극하시다.
아, 딸도 목사의 부인이 되었다. 그러니 그럴만도 하겠다...

그분들은 과테말라에서 돈만 버시는 것이 아니라
출석하는 사랑의 교회와 합력하여
우리 시카고 교회의 의료 선교팀을 유치하는 큰 일을 하고 계신다.
우리 교회는 의사가 40명 되는데 매년 봄에 의료선교로 20명쯤 간다.
  
그러면 현지 교회에서 20명 이상의 자원자가 통역과 돕는일을 한다.
협력 선교라고 하는데, 이 일을 잘 돌아가게 하는 주역이 바로 우리 장로님과 권사님인것이다.
이번 가을에는 처음이었고 6 명만 갔다.
이틀 동안 615명을 만나고 약을 나눠주고 왔다.
권사님의 따뜻한 리더쉽은 돕는 사람을 끌어 모으는데 천재적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어글리 코리안들은 현지인들을 혹사하고 나쁜짓도 많이 해서
한국인의 악명을 얻었는데
선교팀들은 약과 사랑을 나눠줌으로
어느정도 그것을 완화 해준다고 한다.
물론 현지인의 교회가 부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고...

과테말라는 치안이 많이 불안하다.
최근에도 동포 한 사람이 납치조직에 의해 피납되었다가
천신만고 끝에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 왔지만 그런일이 너무나 많다.

인건비가 싸니까 한인 여자들은 집에서 식모와 운전사를 부리고 산다.
어떤 이들은 경호원까지 두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람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본토인들이
한국인을 노리고 납치를 해서 몸 값을 요구하기도 한다.
잘 안되면 살해도 하고…
요즈음에는 주 산업인 봉제 산업의 경기도 불안하여 더욱 불만이 고조되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현지 한국 주간 신문을 읽었는데 대사관에서는
연말에 한인들이 특별히 조심하도록 경고를 하는 글을 실었다.
우범지역에 가지말것, 자동차 탈때 좌우를 살필것,
은행에도 직접 가지 말것,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말것, 혼자 다니지 말 것, 등등…

이번에 만난 선교사님댁은 그곳에 산지 16년간 4번 강도를 만났고,
그 중 두번은 자동차까지 빼앗겼으며
그중 한번은 운전수까지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을 듣고 너무나 몸서리쳐졌다.

5 년전 이 장로님도 새벽 기도 후에 집에 가시는데 괴한에게 습격을 받았고 납치 당하셨었다.
그곳에서 하루인가 지나서 탈출을 하셨는데 그때 납치범이 쏜 총알에 맞으셨다.
다행히 안 잡히고 구사일생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음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이었다.
우리 교회에서 그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 했었는데 탈출에 성공하여 얼마나 기뻐했던지!

그런데 그 맞은 총알이 문제였다.
턱과 귀 사이로 들어가 이상한 곳에 멈추었으니까...
그것을 빼내려고 미국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셨다.
그런데  병원에서 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낫겠다고
잘못 건드리다가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해서
지금까지 그 총알을 몸 안에 지니고 살고 계신다.

그 사건 이후 렉서스 방탄차를 회사에서 내주어서 타고 다니시며,
그 뒤를 따르는 또 다른 차에 경호원이 24시간 따라 다닌다.
2003 년에 내가 처음 선교 갔을 때, 나도  그 까만 방탄차를  혼자 타 보았다.
으쓱으쓱 했던 기억...

이번에는 아예 그 차를 내 놓으셔서 우리들을 태워 선교지에 왔다갔다 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사양해도 안 들으셨다.

그 납치 사건은 그분에게 새로운 결심을 준 계기가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진실하고 훌륭 하셨는데
더욱 선교에 열심을 가지고, 중남미에
“100개의 교회, 만명의 성도(혹은 십만? 백만?..잊어버렸음) ”를 세우시는 비전을 갖게 되었다고
간증하셨던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들이 가기만 하면 얼마나 잘 먹이고 잘 해주시는지 …  
항상 고맙고 빚진 마음이다.

이번에 그 집에 잠시 갔었는데 장로님의 노모께서 편찮으셔서 누워 계셨다.
눈도 못뜨시고, 음식도 못드시고, 물도 잘 못 삼키시고
죽음 직전에 왔다갔다 하고 계셨다.
권사님은 교회까지 빠져가며 간호하고 있었다.

사람은 갓난 어릴 때도 많이 자지만 죽기 전에도 많이 자는 모양이다.
아무 반응 없이 잠만 자는 어머님을 정성을 다해 간호해 드리는 권사님을 보니
얼마나 멋쟁인데... 그런 다른 면이 있구나.... 감탄이 나왔다.

정이 듬뿍든 말로 “우리 어머님은 평생 며느리 흉을 한번도 안보신 분이야.
나를 얼마나 사랑해주신 분인지…평생 사람들에게 며느리 자랑만 하고 다니셨다.” 고
노 시모의 몸을 쓰다듬으면서  안타까워 하셨다.

거룩하고 복된 가정을 꾸리는 그 장로님과 권사님을 생각할 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떠나는 날에 여쭈니 어머님이 많이 회복하셨다고 한다.
부디 다시 건강해지셔서 귀한 아드님과 며느님의 아름다운 효도를 받으시며
더욱 장수하시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