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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찾아서7-힉소스민족과 히브리족

영국신사77 2007. 10. 26. 01:24
                                성지를 찾아서7-힉소스민족과 히브리족


우리는 성서를 통해 이집트가 예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피난처가 되어왔음을 알고 있다.아브라함이나 야곱의 가족은 가나안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아 기근이 들자 물이 풍성한 이집트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고,신약시대 예수의 가족은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도피하기도 했다.하지만 노예로 팔려갔다가 총리대신의 자리에까지 오른 요셉이야말로 이집트의 성서적 배경을 가장 잘 나타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중세 이후 이집트를 여행했던 유럽인들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요셉의 곡식창고'라고 불렀으며,지금도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으로부터 흘러나와 저지대인 파이윰 오아시스의 호수로 흐르는 하천을 아랍어로 `바흐르 유셉',즉 `요셉 하천'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생했다기보다는 무력으로 이집트를 점령했다는 사실은 신약시대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한 작품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당시 이집트의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는 매우 번성했다.그 도시의 아피온이라는 한 이집트인이 `유대인들에 대항함'이라는 글을 통해 출애굽 당시 유대인들이 문둥병자들이었기 때문에 이집트로부터 쫓겨났으며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서는 금으로 만든 당나귀를 만들어놓고 숭배했다고 주장했다.그러한 치욕적인 비난에 대항해 요세푸스는 `아피온 반박문'을 발표했다.그는 그 글에서 기원전 3세기 이집트의 역사가 마네토를 인용하면서 유대인들이 한때 이집트를 통치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유대인을 옹호하거나 반박하는 편 모두가 인용했던 마네토라는 인물은 기원전 3세기 헬리오폴리스의 제사장으로서 이집트의 역사를 그리스시대까지 모두 30왕조로 나누어 저술한 이집트 최초의 역사가였다.비록 그의 역사책 원본이 남아있지 않고 요세푸스에 의해 부분적으로 인용됐을 뿐이지만,힉소스라 불리는 이방민족이 다름아닌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의 저술은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에 의하면,힉소스 민족은 북쪽에서 쳐들어와 많은 도시들을 불사르고 신전을 파괴했으며 이집트민족을 학살했다.그들은 처음에는 멤피스를 점령해 수도로 삼았다가 아바리스라는 도시를 건설했고,나중에 이집트에서 쫓겨날 때는 그들의 재산을 모두 가지고 나가서 유다 지방에 예루살렘이란 강력한 요새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1824년 영국의 윌킨슨(G.Wilkinson)은 이집트 중부지방의 한 유적지인 베니 하산에 들러 절벽 중턱에 만들어진 바위굴 무덤들을 조사했다.모두 39개나 되는 무덤의 주인들은 대부분 중왕국시대인 11왕조와 12왕조시대의 지방 영주와 귀족들이었다.그 중에서 `크눔호텝'이라 불리는 한 영주의 무덤 벽에는 농사짓는 모습과 사냥하는 장면,다양한 동작으로 두 사람이 레슬링을 하는 모습 등 당시 이집트인들의 일상생활이 매우 생동감있게 표현돼 있었다.

그는 벽화 중에서 이집트인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턱수염이 있고 화려한 무늬로 짜여진 통치마를 걸친 한 무리의 사람들을 주목했다.그들의 우두머리는 산양 한 마리를 붙들고 있었으며,그의 이름은 힉소스 `아비샤'로 기록돼 있었다.또 그림의 위쪽에는 `37명의 힉소스들이 눈 화장품을 팔기 위해 이집트에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윌킨슨은 그들을 통해 아브라함을 비롯해 창세기에 등장하는 히브리 족장들의 실제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그 무덤은 기원전 1900년경 건설된 것이므로 어느 정도는 연대상으로도 가능한 추론이었다.비록 이름은 다르게 나타났지만,이집트의 한 무덤벽화에서 히브리 족장들을 연상시키는 가나안 출신 유목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히브리 족장들 중의 하나인 야곱은 `스캐럽'이라 불리는 이집트의 도장에서 그 이름이 처음으로 발견됐다.고대 이집트인들의 최고신은 태양신 `라'였다.이른 아침에 짐승의 똥을 공처럼 둥글게 뭉쳐서 굴리고 가는 말똥구리를 그들은 태양신의 운반자로 여겨 풍뎅이 형상의 부적을 만들었으며,도장에 새겨서 반지에 끼고 다녔다.1930년대 예루살렘에서 수집돼 베를린의 이집트박물관에 소장된 한 스캐럽에는 `야쿱~헤르'라는 이름이 파라오를 의미하는 타원형 테두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1969년 이스라엘의 항구도시인 하이파 근처 쉬크모나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스캐럽에도 상형문자로 분명하게 `야쿱~헤르'가 표기되어 있었으며,베를린에 있는 것과 거의 같은 모습이었다.함께 출토된 토기들을 통해 그 무덤의 주인공인 야곱이 기원전 1750년 경의 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또다른 스캐럽에는 이집트 15왕조의 파라오임을 증명하는 표시와 함께 야곱의 이름이 새겨져있다.그는 힉소스 왕조의 2대 왕으로서 기원전 1600년 경의 통치자였다.그 조그만 도장들을 통해 야곱은 당시 가나안의 왕족들에겐 흔한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900년 경의 화려한 채색 옷을 입은 아비샤를 비롯한 37명의 힉소스들과 이스라엘 항구도시에서 발견된 기원전 1750년 경 한 도시의 왕이었던 야곱,이집트의 최고 통치자로서 군림했던 기원전 1600년경의 파라오 야곱 등은 모두 창세기의 족장들을 역사적으로 조명해주는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들이다.이집트 역사에서 힉소스라 불렸던 히브리 족장들은 파라오로서 1백여년간 이집트를 식민통치했다.따라서 이제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도자들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김성(협성대 교수·성서고고학)


[사진 설명]

1. 크눔호텝3세 무덤의 힉소스 벽화
기원전 1900년경 12왕조 당시 영주였던 크눔호텝의 무덤에는 37명의 힉소스들이 눈 화장품을 팔러 이집트를 방문했음을 보여주는 벽화가 있다.그들은 가나안지방 출신으로 요셉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채색옷과 독특한 수염 때문에 이집트인들과는 쉽게 구별된다.

2. 베니 하산의 바위굴 무덤
중부 이집트에 위치한 베니 하산(Beni Hasan)에는 중왕국시대인 11~12왕조의 바위굴 무덤 39기가 절벽 중턱에 있다.

3. 야곱(야쿱~헤르)의 스캐럽 도장
창세기의 야곱이라는 이름과 같은 `야쿱~헤르'가 새겨진 스캐럽 도장이 1969년 이스라엘에서 발견됐다.기원전 1750년 경의 것으로 밝혀졌다(하이파 박물관 소장·왼쪽).

이것과 거의 같은 스캐럽 도장이 1930년대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이집트의 파라오를 표시하는 타원형의 테두리가 있다.(베를린의 이집트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