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덕 신부의 '성령세례' 간증
"주님, 만일 제가 받은 것이 성령세례가 아니었다면 지금 제게 성령세례를 주시고, 만일 제가 받은 것이 성령세례가 맞다면 제게 방언의 은사를 주시옵소서."
그렇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일이 있은 직후 성령세례를 위해 순복음(오순절) 교단의 목사님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안수기도를 받았지만, 방언의 은사는 없었습니다.
그때 오순절 교회의 한 목사님이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너는 이미 성령세례를 받았으니 가서 목회에 전념하라. 적합한 때에 방언의 은사도 주리라." 저는 이것을 주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받아 들였고, 얼마 후 개인기도 중에 조심스럽게 방언기도를 시도하였는데, 저는 그것이 아주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잔잔한 기쁨가운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방언이라면 20년 전에도 할 수 있었을 것을.....' 이후로 개인기도 시간에는 계속해서 방언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14:18-19)
라고 하신 사도 바울의 말씀이 저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한 사람이 일어나서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성령님은 갑자기 제가 그것을 통역하도록 요구하셨습니다.
방언 통역의 은사를 구한 적이 없었고, 통역할 내용 또한 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했지만, 주님께서는 강권하셨고 마침내 그것을 통역하였을 때,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다른 학교로 전학하도록 배려해 주셨는데, 다행히 그곳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곳이었으므로,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대학은 대체로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유지했지만 -성경이나 성령의 인도하심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순종의 원칙을 따르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그로 인해 한동안 반항적이 되었습니다.
제가 보다 성숙하게 되었을 때 성령님은 어느 상황에서 분명하게 반대입장을 취해야하고, 또 언제 침묵을 지켜야 하는지 알려주셨지만, 그분은 결코 상황과 타협하도록 인도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소수파에 가까운 저의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그와 같은 사람들을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또한 제가 성경공부를 하는데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항상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해왔고, 10대 시절부터 성령님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시리라 기대했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적 해석에 접하게 되었을 때도, 성령님이 저에게 진리를 보여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한 연구가 늘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고, 때때로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지만, 저로 하여금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심을 확신하게 하였습니다.
코이노니아(koinonia)의 어원을 살펴본 결과, 이 단어가 영어나 한국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성경과 한국어성경은 이 단어를 대략 17가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코이노니아는 성도들이 -다양한 차원에서- 서로 섬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함께 구하며, 서로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며, 서로 사랑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연단을 주고, 참회하는 이들을 회복시키며, 서로의 필요에 대해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서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충족시켜주는 것이고, 마치 심장과 허파와 신장과 간과 뇌 및 신체의 다른 모든 기관들이 서로 합력하여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것과 같이, 이와 동일한 기능을 하도록 서로 합력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코이노니아는 마치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혼처럼, -희랍어 코이노니아는 '결혼'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함- 배우자가 죽기까지 지속되는 것 -죽을 때까지 서로 책임지는 관계- 이기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과 에너지는 각 지체들이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 힘주시는대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가운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 드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공동체 삶이 긴 순례의 여정 가운데 있으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4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출처: 예수원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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