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거친 들판에서 알몸으로 온몸에 상처가 나도록 지옥 사자들의 발길에 채여 끌려다니며 상처가 나서 비명을 지르며 고통 당하는 것을 보았다. 이 영혼들은 땅에 살면서 돈이 있다고, 부모가 잘 산다고, 자식이 잘산다고, 남편이 잘산다고 지나치게 사치한 옷을 입고 살았으며 한번 입고는 벗어버리고 다시 더 좋은 옷으로 입으며 몸에 걸치는데만 힘쓰고 선한 사업이나 착한 일은 전혀 안한 영혼들이다.
땅에서 돈을 번 것은 땀흘리지 않고 불로소득으로 모아온 재물가지고 저렇게 사치하는데 돈을 썼기 때문에 지옥에서 발가벗고 지옥사자들에게 발길에 채여서 또 끌려다니며 피투성이가 되도록 고통을 당한다고 말했다.
13) 지옥영혼들에게 닥치는대로 욕을 먹으며 구타를 당하는 영혼을 보았다. 이 영혼들은 땅에 살 때에 부모에게 불효를 하며 부모에게 욕설을 퍼붓고 부모가 기뻐하는 일은 한번도 하지 않은 짐승같이 산 영혼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지옥에서도 지옥에 온 영혼들로부터 같은 욕설을 먹으며 만나는대로 맞고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것이었다.
14)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고통을 당하는 영혼을 보았다. 이 영혼은 땅에서 물구나무하는 식으로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땀을 흘리며 애를 쓰는데, 차마 볼 수 가 없었다.
왜 저렇게 저런 방법으로 고통을 당하느냐고 했더니 저 영혼들은 땅에 살 때에 깡패들로서 자기 조직에서 이탈자나 또 선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하고 조직을 떠나는 사람을 잡아다가 마구 구타하며 힘으로 억압을 하고 협박을 하여 새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땅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던 고통을 그대로 지옥에 와서 받는다고 했다.
15) 펄펄끓는 더러운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뜨겁다고 소리지르며 고생당하는 것을 보았다.
땅에서 일로 말하면 목욕탕과 같은 곳인데 그곳은 말할 수 없이 더러운 물로 가득차 있는데 수십,수백 영혼들이 더럽고 냄새나는 펄펄끓는 물에 들어가서 뜨겁다고 아우성치면서도 감시하고 있는 지옥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뜨겁고 더러운 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그 물이 입으로 들어가 먹어야 되고 그 물을 먹고는 고통을 몸속에서 느끼는 것도 보았다.
이 영혼들은 땅에 살면서 자기는 깨끗하고 쉽고 편안한 일만 하면서 자기 집에,자기 사업에,자기 직장에 있는 아랫사람들에게 힘들고 �은 일만 골라가면서 일을 시키는 잔인하고 악한 습성이 있어서 그 일을 부하들에게 시키지 못하면 참지 못하는, 마음이 삐뚤어진 지도자와 주인이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하며 땅에서 남에게 힘들고 �은 일을 시켰기 때문에 지옥에서 더럽고 냄새나는 물 속에서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면서 고통을 당한다고 말했다.
16)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또 반복하여 계속적으로 뛰어 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땅의 일로 말하면 높은 벼랑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내리는 일을 하는 것 같이 힘들고 어려운 고통이었다.
이 영혼은 땅에서 지도자로 있으면서 백성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괴롭히고 죽이고 직위를 파직시키는 일을 마음대로 하던 독재자 지도자였다고 한다.
이 영혼들이 땅에 살면서 무수한 백성들을 고생시켰기 때문에 저 위험한 높은 곳에서 반복하여 뛰어내리는 일을 하며 고통을 당한다고 했다.
이런 영혼들이 다른 방법으로 고통당하는 영혼의 숫자와 같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높은데로 올라가고 뛰어내리고 또 올라가고 또 뛰어내리고 쉴 사이 없이 반복하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참혹한 일이었다.
3. 영혼들이 고통을 이렇게 받고 있다.
나는 세가지 종류로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안내하는 천사에게 물어 보았다.
"유황불에서 고통 당하는 영혼, 벌레에게 고통 당하는 영혼, 갖은 형벌로 고통 당하는 영혼들이 한가지 고통속에서 영벌을 받고 있습니까?" 물었더니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느 죄인의 영혼들이든지 한가지 고통에서 영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를 자기가 땅에서 죄지은 종류에 따라 고통을 돌아가며 받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가지 고통에서 그치면 지옥에서 영벌을 받는 죄인의 대가가 너무 약하다고 말했으며, 지옥의 고통은 지옥에 있는 가지가지의 종류를 다 당해봐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지옥이 얼마나 무섭고 참혹하고,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한없는 영벌이란 것인가를 또 한번 깨닫고 생각할 수가 있었다.
나를 안내하는 천사들은 지옥 광경을 다 보여준 다음에, 나에게 잘 보았느냐고 말하면서 다음에는 천국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보자고 말했다.
나는 한국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꿈에 지옥을 구경하면서도 한국교회를 박해하고 괴롭힌 몇 명의 이름있는 역사적인 인물이 어떻게 고통당하면서 지내고 있는가를 알고싶은 생각이 나서 천사에게 그 인물들이 지옥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 또 내가 한국교회에서 증거할 때 과거에 교회를 괴롭혔던 사람들이 죽은 후에 지옥에서의 생활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천사가 누구누구를 보고 싶냐고 말하여, 대원군과 조대비, 그리고 강양욱목사, 한국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일본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신앙을 변절한 몇몇 지도자들, 또 일본인으로서 한국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한국교회를 괴롭혔던 평안남도지사 야스다끼를 보고 싶다고 했다.
천사는 나에게 보여 주겠다고 허락을 했다. 그리하여 나는 천사를 따라 그들이 고통 당하는 곳으로 찾아가서 볼 때에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땅에서 목사 생활을 하여, 지옥이 어떠한 곳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믿고, 알았지만 실제로 교회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불신자들 보다 더 무섭고, 참혹하게 고통을 당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괴롭히고 박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지옥에서도 제일로 무섭게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ㄱ.대원군과 조대비가 받는 고통
이 두 사람은 유황불 붙는 못 중앙에 들어가서 가장 뜨거운 곳에서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을 치고 울부짖고 있었다. 어떤 때는 목말라 견딜 수 없으니, 물! 물! 물! 물을 달라고 지옥사자에게 애원을 하고 있었다. 이때에 험상궂은 지옥사자는 불꽃 가운데로 떠밀면서, "너희들은 땅에 있을 때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을 주었으니 지금의 이 고통이 마땅하다."하며 소리를 질렀다. 참으로 무섭고도 견딜 수 없는 지옥불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꿈이었지만 하나님이 이런 자들을 위해서 지옥을 만들어 놓고 그 댓가를 받게 하는 것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하였다. 흥선 대원군 이하응과 조대비는 이렇게 천주교를 박해하였던 것이다.
1862년 철종이 세상을 떠나고, 황후 조대비가 세도를 잡고서 고종을 왕으로 임명하게 되니, 그가 곧 1910년까지 한국을 다스린 고종황제였던 것이다. 조대비는 아직 나이 어린 왕의 부친을 섭정으로 삼았는데, 그가 흥선 대원군이다. 흥선 대원군 이하응은 극렬한 외세 반대자이며, 반 그리스도교적 인물이었다. 이때에 궁중에는 상당한 수의 카톨릭 신자가 있었다. 그중 고종의 어머니와 고종의 유모인 박마르다도 있었다. 조대비와 흥선 대원군은 카톨릭 교회를 멸절시키라는 포령을 내렷다. 그와 동시에 최후적인 대박해가 1866년에 일어났다. 각처에서 신자는 모조리 잡아 가두었다.
감독과 궁중에 있는 10명의 프랑스 신부까지 잡아 갖은 고문을 하다 사형을 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용산 건너편 한강언덕 새남터 근처에서 몰살당했는데, 이곳은 바로 1839년 박해 때에 카톨릭 신자들을 사형하던 곳이었다. 이때에 한국인 신자가 몇 명이나 사형 당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여튼 수천명이 잡히었고, 수백명이 순교당했었다.
프랑스 신부들은 3사람을 빼놓고는 다 순교당했다. 카톨릭교에 대한 박해는 심해져 갔고, 이 박해가 끝났을 때는 한국에서 카톨릭교회가 거의 멸절되다시피 되었다. 지도자로 있던 이들은 다 죽고, 12명의 신부 중 9명이 죽임을 당했으며, 청년 신학생들은 도망하거나 혹은 죽임을 당했다. 모든 종교서적을 없애고, 그러한 책을 가졌거나 자기가 교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다 죽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1868년까지 2,000여명이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그후 10년 동안은 프랑스 신부가 한국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ㄴ.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일본의 앞잡이가 되었던 몇 명의 지도자
내가 제일 관심있는 것은 한국교회의 지도자로써,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일본의 우상인 신사참배를 종교의식이 아니고 국가의식이라고 교인들과 교회에서 양심의 가책없이 총회, 노회, 연회에서 신사참배 가결을 하였고, 신앙 양심으로 가책을 느끼지 않아으며,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하고, 목사, 장로, 집사들을 투옥시키는데 앞잡이가 되어 급기야는 순교까지 하도록 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되자, 총회적으로 신사참배했던 것을 통회하고 얼마 동안 교회 강단에 서지 말고 회개하여 근신하고자 할 때, 끝까지 이 일도 반대하고 교회 앞에 나서서 지도자라고 떠들며 총회와 노회와 연회에서 교회를 어지럽히던 기회주의적 지도자들의 이름을 말하면서, 이들 중에 지옥에 온 사라이 있느냐고 천사에게 물었더니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교회에 신사참배로 물의를 일으키고, 우상에게 경배하게 한 그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죽었으니 지옥에 온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지옥의 고통을 당하도록 지옥으로 던졌다." 이때에 나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지옥에서도 가장 더럽고, 추하고, 냄새가 나는 곳에 앉아서 온몸이 지옥에 있는 벌레들에게 물어 뜯기고 있었다.
그들은 손으로 뜯으려고 애썼지만, 벌레를 하나 뜯고 나면 또 붙고, 또 붙어서 너무나도 심하게, 악착스럽게 괴롭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눈으로 그들의 고통과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볼 때에,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빨리 그 자리를 떠나자고 했다. 떠나기 전에 땅에서 하는 것 같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목사님! 목사님!"하여도, 그들은 벌레를 뜯는데만 정신이 있고, 내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 자리를 떠날 때에 천사는 나에게 말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명령이다. 박용규 목사가 땅에 돌아가서 지옥에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이름을 말하면서 보았다고 하면, 죽을 때까지 다시 말을 못하고 벙어리가 되리라."하였다. 그래서 나는 신사참배 가결로 지옥에 가서 고통 당하는 지도자들의 이름을 밝힐 수가 없는 것이다.
ㄷ.공산당 강양욱 목사를 보다
강양욱은 1943년 평양신학교 38회 졸업생이다. 그리고 1944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 평양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것이다.
신학교 학생때부터 사회주의를 찬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김일성 6촌 외할아버지가 되고, 김일성이 국민학교 6학년때 담임 선생이었다고 한다. 1945년 8.15해방이 되자, 평양에 김일성이 나타나서 정권을 잡을 때 김일성의 부름을 받아, 공산당 앞잡이가 되고, 1947년 11월 북한교회에 기독교 연맹을 조직하고 많은 교회 지도자를 포섭하여 공산당을 찬양하여 김일성을 도와 교회가 일하도록 하는데에 전력을 다하고, 말을 듣지 않는 지도자들과 교회는 소리없이 잡아다가 죽이고 교회를 폐쇄하는데 앞장섰던 것이다. 그리고 6.25를 일으키는데 동참했고 1980년초에 죽을 때까지 북한 공산당 서열 6위까지 올라서면서 김일성의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양심이 마비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교회를 파괴하고 목사들을 죽인, 목사가 타락되어 마귀의 앞잡이가 된 강양욱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말했을 때, 천사는 바로 우리가 있는 곳에 그가 있다고 말했다.
강양욱은 황막한 들판에서 지옥사자들에게 몽둥이로 맞으며 시퍼런 칼날에 온몸을 찢기면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지옥사자에게 맞지 않으려고 피하면 다른 지옥사자가 시퍼런 칼로 몸을 뜯을 때, 비참한 비명소리를 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지옥사자가 말하기를 "너는 세상에서 35년 동안 행한 댓가로 세세토록 이런 고통을 당하리라"고 소리질러 외쳤다.
나는 꿈에 보면서도 하나님 앞에 참 감사하다고 기도드렸다.
ㄹ.세계적인 독재자들
이외에도 일본의 전쟁광인 동독과 이등박문, 중국의 모택동,소련의 레닌과 스탈린, 독일의 히틀러가 고생 당하는 것도 보았다. 또 우리나라의 많은 임금들이 지옥에서 악형을 받고 있는 것도 보았다.
ㅁ.한국교회에 분열자들
또 한국교회 지도자이면서 노회와 총회와 연회에서 싸우고, 교회를, 노회를, 총회에서, 교단을 찢고 분쟁을 일으키고 자기의 교권을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세상에 조소거리가 되도록 하던 지도자들이 지옥에서 고통 당하는 것도 보았다.
지옥에 교회를 괴롭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움직이던 집사, 장로, 권사들도 있는 것을 보았다.
4.천국에서 만난 영혼들
나는 천사의 안내로 지옥을 구경한 후, 천국의 이곳저곳도 구경하게 되었다. 천국을 두루 구경하는 가운데, 한국교회에서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면서 봉사하며 살다가 앞서 간 목사와 장로들의 영혼을 여럿 만났는데, 그중 몇 사람의 이야기를 쓰기로 하겠다.
ㄱ.최권능 목사님을 만나다.
천국에는 성도들의 영혼이 사는 집들이 있다. 물론 그 집들은 성경 말씀과 같이 땅에서 말하는 보석보다 좋은 재료로 꾸며져 화려하고 찬란하였다. 어떤 집은 상상도 못하도록 높고 컸으며, 또 어떤 집은 보통집과 같이 아담하고 작기도 했다.
나는 천사들의 인도를 따라 천국에서 제일 크고 높은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을 구경하게 되었다.
마치 뉴욕의 맨하탄처럼 우뚝 솟아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성도의 영혼들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 중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한 성도의 영혼이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군지 쉽게 알아볼 수가 있었다.
바로 한국교회의 유명한 전도자이며 순교자인 최봉석(최권능)목사의 영혼이었다.
천사는 나에게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나는 최목사님에 대한 글인 '평안도 그 한 사람'이란 책을 썼고, 여러 기독교 방송국에서 최목사님에 대해 방송으로 얘기를 많이 했는데 모를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그랬더니 최목사님의 영혼도 나를 잘 안다로 하시며 반가와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최목사님이 어느 집에 살고 계실까 궁금해서 "목사님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목사님은 웃으시면서 고개를 들어 내 집이라고 가르켰다.
나는 깜짝 놀랐다.
최목사님이 사시는 집은 천국에서도 가장 높고 큰 집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호기심에 "최목사님이 어떻게 저렇게 좋은 집에서 사십니까?"하고 천사에게 물었더니 이때에 내뒤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너는 최목사의 집이 저렇게 크고 화려함에 대해 왜 신기하게 생각하며 놀라느냐."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 최목사님이 사시는 집은 천국에서 가장 크고 좋은 집인데, 이 땅에서 천국에 온 영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그 많은 영혼들 가운데 최목사님이 가장 좋은 집에 사신다는 것이 무척 궁금합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이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알라. 최목사의 집은 최목사가 땅에서 충성되고 진실한 종으로 산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상급으로 주신 것이다. 최목사는 일생 동안을 굶고, 헐벗으며, 오로지 목음을 위해 산골과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희생하였다.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70여 교회를 개척하였고,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예수 믿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했으니, 하늘나라에서 최목사와 같은 상급을 받을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는다."
나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최목사님과 같은 충성된 종이 받는 상급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천사와 최목사님의 안내로 집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어찌나 아름답고 화려한지 가는 곳곳마다 넋을 잃을 정도였다. 이 세상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한 보석들로 꾸며져 있었고, 또 집안이 얼마나 크고 넓었는지...
최목사님은 거하시는 방을 구경시켜 주셨는데, 그 방은 이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방안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아름다운 향내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방 벽에는 최목사님이 땅에서 전도하여 예수 믿게 된 사람들의 이름과 전도로 세워진 교회의 이름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최목사님은 그 이름과 교회의 이름들을 바라보면서 날마다,시간마다 기뻐하며 즐거워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ㄴ.주기철 목사를 만나다.
나는 또한 주기철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목사님은 세상에서 주를 위해 살다가 순교한 영혼들이 사는 곳에서 살고 계셨는데 역시 집이 크고 좋았다. 주를 위해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순교했으니 천국에서 큰 상으로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을 흰옷을 입고 주의 사랑 가운데 영화롭게 살고 계셨다.
목사님의 집은 최권능 목사님의 집과 같이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고, 거하는 방에는 "주를 위해 죽은 자는 이와같이 하늘의 상급이 크다."라고 하늘나라 글로 쓰여 있었다.
많은 영혼들이 주기철 목사와 같이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온종일을 예배드리며 기뻐하고 있었다.
ㄷ.정찬우 장로를 만나다.
정찬우 장로는 황해도 재령읍 동부교회 장로였으며, 1910~1920년에 총회 회계와 황해노회 회계를 지냈고, 재령 동부교회 외에 수많은 교회들을 건축하고 봉사한 장로였다. 또한 가난한 교회의 목사와 전도사들에게 물질적으로 많이 봉사한 충성스러운 장로이기도 했다.
천사의 안내를 받아 좋은 집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됐는데, 어느 집 앞에 갔더니 집 문앞에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는 모습으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천사에게 "땅에 사는 박용규 목사가 나의 집을 방문한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며 손을 잡고 "오느라고 수고했다"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천사에게 "이 분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한국교회에서 교회 짓는데 건축헌금을 제일 많이 한 정찬우 장로이다. 참 믿음으로 진실하게 교회를 사랑하며 자기 재산을 아낌없이 바치었으므로 이렇게 천국에서 큰 영화를 누리며 산다."고 하였다.
나는 "땅에서 정찬우 장로의 전기를 글로 썼으나 사진이 없어 얼굴을 몰라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라고 말하고 인사를 했더니 장로님은 나를 잘 알고 있다며 반가와 하셨다.
땅에서 교회 건축에 충성하고 힘쓰면 정찬우 장로와 같이 큰 상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인도하신 것이다.
ㄹ.광주의 최흥종 목사를 만나다.
나는 두 천사의 안내로 전라남도 광주에서 1904년 크리스마스날 예수 믿고 목사된 최초 교인인 최흥종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최흥종 목사는 예수 믿고 목사된 후, 문둥병 환자들과 같이 살며 또 거지들의 친구가 되어 일생을 가난하게 산 진실하고 참된 목사이다. 말년에 집에서 부인과 자녀들과 같이 살지 않고 길거리에서, 리어카 안에서 살면서 굶주리고, 헐벗고,어려운 자의 친구가 되어 산 사랑의 목사였다.
최목사는 무등산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하늘나라에서 최목사의 영혼이 받은 상급은 참으로 크고 웅장하며, 호화롭게 하늘 영광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나는 최목사를 만나 본 다음에, 땅에서 권세와 명예를 누리지 않고 주를 위해서 스스로 가난하게 되어, 가난한 자의 벗이 된 성도가 하늘에서 받는 상급을 느낄 수가 있었다.
ㅁ.손양원 목사를 만나다.
우리는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하는, 안용준 목사가 쓴 손양원 목사의 전기를 읽고 은혜를 많이 받고 사랑의 사도요, 문둥병자의 아버지요, 두 아들을 순교시킨 아버지요, 그 자신이 공산당에게 순교 당한 순교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천국에서 손양원 목사를 만났을 때 나를 반갑게 맞아 주어서, 땅에서 당신의 순교사를 썼고 방송을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쳤노라고 그에게 인사를 전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손목사의 집은 천국에서 아주 큰 집이었으며, 손목사가 받은 하늘의 상급은 순교자가 받은 상급 뿐만 아니라, 문둥병자에게 베푼 사랑의 사도로서 하나님 앞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영광을 누리는 것도 보았다.
ㅂ.임송금 할머니를 만나다.
임송금 할머니는 서울 명륜동에 사는 박봉주 권사의 친정 어머니며, 양춘선 장로의 장모이다. 22세에 홀로되어, 두살된 박봉주 권사를 데리고 살면서 예수 믿고 충현교회 교인으로 일생을 기도와, 가정에 있는 기도처에서 예배드리며 손님 대접하기를 즐겨하던 사랑의 여성이었다. 85세에 하나님 앞에 갔다.
내가 꿈에 천국에 갔을 때 나를 찾아왔다. 흰 옷을 입고 천국 영혼으로 단장을 하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땅에서 사는 박용규 목사님, 목사님이 하늘나라에 잠시 다니러 온다는 천국의 광고를 듣고 기다렸습니다. 다시 땅에 가시면 땅에서 나의 딸이었던 박봉주 권사를 만나, 내가 천국에서 하나님 사랑을 받으며, 영광을 누리며 산다고 전해 주십시오.
내가 천국에 온 것은 권사의 전도로 예수 믿고 이렇게 천국에 왔으니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이 말을 마치고 내가 말을 하려고 할 때에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ㅅ.박양보 목사를 만나다.
나는 나에게 세례를 주고 결혼 주례를 하시고 신학교 추천을 하셨으며, 어머니에게 세례를 주시고 회갑 주례를 하시고 장례 주례를 하신, 나의 신앙의 아버지시며 한국교회 경전의 상징이었던 박양보 목사님을 만났을 때, 땅에서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지만, 천국에서 상급이 많아 화려한 곳에 거하시는 것을 보고, 단둘이서 손을 마주잡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ㅇ.그외 많은 분들을 만나다.
내가 천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앞서간 목사님들, 신실한 장로님들, 충성된 권사님들 그리고 이름없는 성도들이다.
이들은 천국에서 만날 때 반가워하며 영광된 생활을 나에게 보였으며,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글로 다 적을 수가 없어 그만 기록하는 것이다.
내가 천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길선주 목사도 있었다. 길선주 목사는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한 집에 살던지, 참으로 놀랍도록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지내고 있었다.
또 부흥사이며 순교자인 김익두 목사, 제주의 개척 선교사 이기풍 목사와 황해도 장연교회에서 공산당에게 순교당한 박경구 목사,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황해도 안악산골에 들어가 신앙을 지켰고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한 정일선 목사도 보았다.
순교자 이유택 목사, 김진수 목사, 허천기 목사도 보았다. 일생을 주기철 목사와 함께 살며 공산치하에서 순교한 방계성 장로도 보았다. 또 주기철 목사의 부인 오정모 여사와, 공산치하에 순교한 백인숙 전도사도, 대구의 최재화, 이문주 목사와 안동의 이영원 목사도 보았다.
황해도의 교회 개척자인 서상윤 장로, 서경조 목사, 전북의 허화준 목사, 함경도 개척자인 모학수(모윤숙의 아버지) 장로도 보았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개척에 힘쓴 언더우드 선교사, 소알론 선교사, 헤론 선교사(의사)도 보았다.
순교자 박관준 장로, 또 성경 인명 지명 사전을 기록한 새문안교회 오인명 장로와 감리교 김영학, 신석구, 김종우 목사, 성결교회 박봉진, 이성봉 목사를 보았다.
### 6.치료는 이렇게 하였다. ###
5) 벤허 영화를 보다가 일어난 기적
1988년 4월3일은 부활절 날이었다. 이날은 병자인 내가 다시 없는 복을 받은 날이요, 내 생애에 기록으로 남을 날이다.
그날 나의 자녀들은, 교회에서 중고등부 성가대 대원이고 성도는 지휘자인고로 아침 일찍 교회에 갔고, 아침10시가 되자 아내도 교회에 갈 준비에 분주하였다.
나는 다소 의식도 있었고 손도 발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병자이고 내 모습이 신체적으로 말도 못하고, 손도 못쓰고 기억이 완전하지 못한 병신인 것은 나도 알고 가족들도 알고 나를 보는 그 누구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아내는 교회에 가기 전에 나를 붙들고 "목사님 오늘이 부활절날이올시다. 목사님이 흰 가운 입고 강단에서 설교할 때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외치며 설교했는데 오늘은 환자가 되어 그렇게 가고 싶은 교회도 못가고 집에서 누워 계셔야 되니..."라고 혼자서 울며 기도하고 나를 쳐다보고, 아내는 교회에 갈 시간이 되자 밖으로 문을 잠그고 교회에 갔다.
혼자서 생각없이 누워 있었다. 자다 깨다 하기를 벌써 두 시간, 눈을 떠보니 아내는 어느덧 교회에서 돌아와 있었고, 마리아 전도회 회장 한신영 집사, 또 부회장 무신자 집사, 오막동 집사, 그 외에 4명의 임원들이 부활절이 되어, 삶은 계란과 또 여러가지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나를 일으켜 앉히고 입에 떡도 넣어주고 계란도 넣어주고 했다.
집사님들은 울면서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목사님 오늘 장정환 목사님이 설교했어요, 내년에 목사님이 교회에 나와서 걸상에 앉아서 설교해도 좋으니..."하며 우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 나는 '왜 울까'하고 생각하고 내 모습을 보니 잠옷만 입고 있었다.
그래서 부끄러운 생각이 나서 옆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옷 좀 입혀 달라고 했다.
그런데 옷 입혀 달라는 말은 안되고, 그래서 내가 말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의 벙어리 소리를 들은 아내는 교회에 전화해서 아버지가 오늘 갑자기 많이 좋아졌다고 했고, 아이들은 곧 집으로 뛰어 올라왔다. 교회의 몇 몇 어른들도 왔다. 지금 목사님이 자유롭게 기억력을 되찾고 있으니 너무 충격적으로 대하면 다시 재발할 수 있으니까 목사님 충격 받지 않도록 하라고 하며, 우리 가족만 남겨 놓고 교회에서 왔던 집사들은 모두 돌아갔다.
너무 기뻐서 가족들은 저녁 늦게까지 TV도 보고 나와 같이 즐거워했다.
몇 마디 말 정도는 했으며 오른손 손가락도 다소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사 소통도 제대로 안되고 오무라진 손이 떨리고 고통이 느껴졌다.
밤11시쯤 되어 아이들은 TV보다가 다시 방으로 갔고, 나의 아내는 교회로 철야 기도하러 갔다.
큰 방에는 나 혼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런데 TV에서는 영화를 하고 있었다.
벤허 영화였다. MBC TV였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영화의 장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예루살렘에서 골고다로 가시는 중이었다.
로마 병정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쓰러진 예수님을 때리고 그 뒤에선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며 울고 있었다.
바로 이 때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렸고 벤허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서 있었으며 어머니와 누이 동생이 문둥병 환자로서 예루살렘 성밖에 쫓겨 나가 있다가, 남루한 옷을 입고 문둥병자의 모습을 가리고 대중 속으로 들어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흑암이 천지를 뒤엎고 천둥과 번개가 칠 때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 동생의 문둥병의 더러운 모습이 깨끗하게, 여자의 얼굴과 몸체로 제 모습을 되찾는게 아닌가.
나는 영화를 보다가 너무나 깜짝 놀랐다. 물론 건강할 때 대한극장에 가서 벤허영화를 두 번이나 보았지만, 그때도 지금과 같은 장면을 보았을 것이지만, 지금과 같은 느낌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이때, 누워서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예수님, 2천년 전에 불신자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의 문둥병도 깨끗하게 치료하여 주셨는데, 나는 목사올시다. 내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이 병석에서 낫지 못하고 이대로 앓다가 죽으면 가족들이, 특히 어린 4남매가 앞으로 신앙생활하는데 시험에 들지 않겠습니까. 나는 주님의 종으로 목사올시다. 23살에 전도사가 되어, 50살까지 27년 동안 충성스런 마음으로 교회에서 봉사했습니다.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보다도 더 큰 믿음이 있습니다.
나도 이 새벽에 손도 펴 주시고 뛰게도 하시고 말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혼자말로 중얼거릴 때, 벌써 내 모습은 일어서서 손을 들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있지를 않는가.
이렇게 하여 나는 벤허 영화를 보다가 손도 완전히 펴지고 말도 지금같이 시작되었고,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었다. 이 얘기를 듣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어찌 믿겠는가. 그러나 그 말을 전하고 이 글을 쓴 내가 본인인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인 것이요, 나를 죽음에서 살려주신 예수님의 사랑의 표적이었다.
기도하기를 "주님! 땅에 오셔서 앉은뱅이도 일으키셨고, 벙어리도 말하게 하셨고, 문둥병자도 깨끗하게 하신 주님. 나도 그렇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는 지금 내게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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