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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후보 검증, 미래에 맞추자

영국신사77 2007. 7. 23. 15:32
[중앙시평] 후보 검증, 미래에 맞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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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은 ‘정책’으로 신선한 출발을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지겨운 네거티브(negative)의 늪에 빠졌다. 흔히 선거는 인물과 정책이라고 한다. 정책은 표 모으기용이 대부분이므로 본질적인 것은 인물이다. 그래서 인물을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모적이며 혐의 증폭적 성향의 정치 환경 속에서 우리는 몇 번의 대선을 치렀다. 선거가 감성으로 흐르고, 음모적 문제가 본질을 대체하는 순간 전광석화처럼 진행되는 집단결정이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장애물이다. 게다가 정치적 노림수로 앞날을 예측 불가능으로 몰고 가는 정파들의 잦은 출현도 고질적 문제다. 몇 주간의 이벤트로 선거를 결딴 내려는 풍토는 네거티브보다 더 위험하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이 바라는 바는 지역에 중독되고 이벤트에 휩싸인 선거 과정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그래야 국력에 맞는 민주주의를 빚어 갈 수 있다. 북한 변수에 매달리는 작태도 이제는 수장시켜야 한다. 그래야 공약이 돋보이고, 인물 검증이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물 검증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것은 분명하다. 국가가 안고 있는 중대 문제나 앞으로 제기될 위기를 조명하고,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대비해 국정 능력을 입증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물론 과거의 탈법과 부도덕성에 대한 엄정한 심판 내용이 이 과정에 통합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과거의 부도덕을 현재의 것보다 중시하거나, 미래 대처에 대한 후보의 취약점을 다른 요소보다 경시해서는 결코 안 된다. 검증의 문은 ‘뒷문’이 아니고 ‘앞문’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국민은 후보들이 ‘앞날에 대처하는 신뢰의 시험(credibility test)’을 치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암투와 폭로가 난무한 상황에서 책잡히지 않고 이기려고 이합집산을 거듭한 역대 대통령들이 화려한 공약과 능란한 수에도 불구하고 퇴임 후 존경의 대상에서 멀어진 데는 ‘신뢰의 뒷문’을 중시한 국민의 회고적 검증이 한몫한 것이다. 그때 국민이 앞날에 다가올 문제를 누가 잘 대처할 것인지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살폈더라면 지금의 살림살이가 나아졌고, 투쟁과 질투로 사회가 병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후보의 도덕성을 점수로 채점하는 것이 지난한 일임은 선진국의 선거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현재 우리 국민은 정치인에게 40점 이하의 신뢰를 주고 있다. 이번 선거라고 신뢰의 문지방을 한순간에 높일 수는 없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앞날은 중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인물인가’ 하는 신뢰의 앞문이 더욱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역대 대통령이 공약한 백수십 개가 넘는 주옥같은 정책은 다 어디 갔는가? 문민정부가 외환위기를 예측하였으며, 국민의 정부가 북핵을 상정하였으며, 참여정부가 부동산 폭등을 예상이나 하였는가? 자식 문제로 정치적 위기를 맞아 국사는 뒤로 밀려났고, 심지어 자식을 숨겨 놓은 대통령도 있었고, 사상이니 병풍(兵風)이니 하던 문제들도 당시의 검증으로는 결판나지 않았었다. 문제는 앞으로 닥쳐올 각종 국가적 시련과 민생의 위기를 다룰 통치자로서의 능력을 후보들이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과대 포장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후보에게 따라다니는 도덕성 의혹이 앞날의 국가적 과제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하자인가? 후보가 위기에 당하여 강인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 과거의 도덕성이 장애물인가? 정말 중요한 도덕성은 앞날의 문제를 풀 역량과 의지의 도덕성이고, 이를 검증함으로써 좋은 인물을 선택하는 데 기여하여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 검증에 필수적인 신뢰의 강은 앞을 보고 흐르는 강이어야 한다. “그가 타이타닉이었다면 반드시 빙산을 부수었을 것이다”라는, 어느 대통령이 전임자를 평가한 말을 상기하자. 침몰하는 타이타닉 안에서 과거에 매달릴 수는 없다.

이달곤 서울대 교수·정책학

2007.07.22 2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