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운동의 한국 수용사와 특성 |
[뉴에이지 운동 시리즈 3] |
전명수 / 고려대 강사, 종교사회학 |
뉴에이지 운동이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또는 누구에 의해 한국에 소개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990년대 이후 갑자기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논문과 글들이 등장해서 아직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나 이해의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채 비판담론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 한국의 뉴에이지 수용 초기단계의 특성이었다. 뉴에이지 수용사를 작성할 때 가장 큰 난관은 이와 유사한 여러 운동과의 관계 설정에 있다. 예를 들어 마인드 컨트롤, 요가, 기 수련 등은 이들이 함축하는 사상이 뉴에이지 운동의 범주에 포괄될 수는 있으나, 본래부터 뉴에이지 종교나 사상과의 관련 하에 태어나고 성장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고유성과 역사성을 가진 것들이다. 인도의 구루들이 1970년대 동양인의 입국이 자유로워진 미국에 대거 몰리면서 뉴에이지 운동의 형성에 크게 기여했고, 반대로 미국의 초창기 뉴에이지 운동가들은 인도를 방문하여 그곳의 영적 지도자들을 만나 명상과 고행의 수련을 쌓았으나, 이들 소위 ‘영적 스승’들을 모두 뉴에이저, 또는 뉴에이지 운동의 참여자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1980년대에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이들의 저서들은 뉴에이지의 한국 수용 전사(前史)로 귀속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마음․정신․기(氣)에 초점을 둔 명상 수련이 일반인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 1980년대부터이고, 특히 이때부터 명상 서적의 수용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인도의 영적 스승으로 불리는 크리슈나무르티의 『크리슈나무르티: 명상/완전한 자유를 위해서』가 1982년에 번역(삼연사, 강연호 역) 되었고, 3년 뒤에는 『크리슈나무르티』(정신세계사, 류시화 역)로 재출간되었다. 이 시기에는 뉴에이지 운동의 형성에 중요한 인물의 저서도 소개되었다. 후에 뉴에이지가 사회운동으로 향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는, 그 영적 초석을 놓아준 인물로 평가받는 람다스(Baba Ram Dass)는 명상이 인간의 내적 자아로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길임을 입증하기위해 노력한 학자였다. 명상 기술은 인간 잠재력 개발운동(human potential movement)과 가깝거나 그 운동에 기본이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심리적 고통을 경감시키고 쾌락을 증진시키며 힘을 고양하는 데에 목표를 둔 명상은 람다스에게 단순히 자아(ego)를 강화시키는 것뿐으로 간주되었다. 대신 그는 자아 이상의 것을 찾고자 했는데, 이것만이 완전히 자유로운 깨달음을 주고,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그래서 해방된 존재로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람다스는 뉴에이지 운동에 관한 언급 없이 단지 명상과 이를 통한 자유로움, 그리고 열린 의식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을 서술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던 그는 내면적인 문제들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면서 환각제를 직접 복용하기도 하고, 인도의 히말라야에서 수행을 하기도 했다, 그 과정을 기술하고 있는 Journey of Awakening은 명상 안내서라는 부제를 갖고 1978년에 처음 출간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에 “깨달음의 여행”(봉준석 역, 김영사)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이 1980년대 중반까지는 뉴에이지 운동이 분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당시 인도의 명상서적과 함께 직접 뉴에이지 운동의 형성에 관계한 인물의 저서가 번역되어 출간됨으로써 어느 정도 뉴에이지 수용의 기반을 닦아주었다. 이 운동의 한국 수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전반이었는데, 이 시기는 우호적 수용과 비판적 거부가 아주 강력하게 양극단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1980년대 말부터 신문 방송 매체를 통하여 뉴에이지 관련 기사가 나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주로 기독교 신학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이를 비판하는 글과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자는 뉴에이지 사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문학․영화 등의 예술 작품이, 후자는 학술지, 논문 등을 통한 이론적 측면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이 시기 한국에 우호적으로 수용된 뉴에이지 예술작품들은 주로 영화와 서적인데, 이들은 대부분 뉴에이지라는 명칭을 내세우지 않았을 뿐더러, 이들을 제작한 감독들이나 작가들 역시 자신이 뉴에이저(new ager)임을 밝힌 사람들이 없다. 이들 작품들을 뉴에이지에 귀속시킨 것은 오히려 대부분 기독교 신학 연구자들의 논문에서였다. 따라서 어느 작품을 뉴에이지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닌지의 판단에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할 수 있겠으나, 뉴에이지에 대한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라는 점에서 일단 그들이 지적한 작품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가장 큰 주목을 끈 것은 영화로, 뉴에이지 영화란 물론 뉴에이지의 핵심 사상들이 반영된 영화를 의미한다. 이 시기 제작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뉴에이지 영화에는 < E.T. >(1984), <인디아나 존스>(1984), <백 투더 퓨처>(1987), <사랑과 영혼>(1990), <꿈의 구장>(1991), <미녀와 야수>(1992), <쥬라기 공원>(1993) 등이 있다. 이들은 국내에서도 상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로, 환생, 사후세계, 과거로의 회귀와 현재와의 연계, 외계와 외계인을 다룬 환상의 주제가 그 중심을 이룬다. <사랑과 영혼>의 한국 상영 6년 뒤인 1996년에 천년에 걸친 사랑을 다룬 〈은행나무 침대〉와 TV 드라마 〈팔월의 신부〉가 나와 여전히 인기를 모았던 것을 보면 이 영화의 환생 주제가 특히 한국 대중문화에 발동체로서 기능했음이 추측된다. 뉴에이지는 한국 출판계에 새로운 책들을 많이 등장시켰는데, 이러한 책들은 뉴에이지 사상과 신조를 소개하고 전파하는 데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체로 反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명상 서적들로서 기독교 신앙과 배치되는 내용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흥미를 갖고 구독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불제자였던 예수』(1987),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1987), 『성자가 된 청소부』(1988-9), 『꼬마성자』(1989), 『히말라야의 성자들』(1989), 『빵장수 야곱』(1989), 『동냥그릇』(1991), 『빠빠라기』(1990), 『배꼽』(1991), 『어느 꼬마의 마루밑 이야기』(1991), 『인도로 간 예수』(1995) 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 중 가장 인기를 모은 것이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의 『배꼽』이었다. 출판 연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에 발행되었고, 대부분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릴 정도로 대중들에게 많이 읽혔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1990년대 들어와서 재발간되고 있는 것이 특성이다. 이러한 예술작품을 통한 뉴에이지 사상의 전파는 그 이론의 허구를 공격하던 신학자들에게 위기감을 줄 정도로 위협적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들을 뉴에이지에 귀속시킨 것은 기독교 신학자들이었고, 이들에 대한 신학자들의 비판도 거의 동시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기 주로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해 수행된 비판은 먼저 미국에서 간행된 반뉴에이지 서적의 번역과 이와 유사한 내용의 저서 간행을 통해서이다. 한국에서 뉴에이지 운동 연구를 사실상 주도했던 대표적인 목회자는 뉴에이지 운동 비판 시리즈의 저자(역자)인 박영호 목사이다. 실제로 뉴에이지라는 용어가 反기독교적 현상으로 한국 대중들에게 쉽게 인식되게 된 데에는 박영호 목사의 뉴에이지 운동 비판 시리즈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1990년대 전반까지 뉴에이지 작품으로 지적된 다양한 갈래의 작품들이 수용된 것과 동시에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이들에 대한 신학자들의 치열한 비판이 이루어지면서 한국의 뉴에이지 운동이 비로소 정리되고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뉴에이지를 종교 또는 신종교 분야에 포함시켜 이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시도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고, 다시 이를 전문 연구 영역으로 설정한 학자들이 출현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부터이다. 뉴에이지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본격적 연구는 1980년대 말에서 시작하여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수행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그 연구 성과의 수용이 거의 동시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술한대로 처음 다양한 갈래의 뉴에이지 작품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는 뉴에이지가 기독교와 치열한 대립적 관계를 보여주었고, 이것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이에 비해 제3단계인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뉴에이지 '이론'과 이를 구현한 '작품'의 확연한 '이원화'가 특성이다. 전자를 주도하는 것은 신학자가 아닌 종교사회학자인데, 여기서 고찰된 뉴에이지 이론은 뉴에이지 서적이나 영화 또는 이들을 받아들인 대중문화와는 그렇게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 못하고, 따라서 대중문화 속의 뉴에이지 '스타일'을 뉴에이지 '사상'과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특히 음악은 뉴에이지 표제를 달고 있는 거의 유일한 갈래임에도 뉴에이지 음악가나 향유자들 역시 대부분 그 배경이 되는 뉴에이지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수용된 뉴에이지 운동이 대중문화로 방향전환을 보여주고 있는 한국 뉴에이지 운동의 한 특성인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의 고전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매릴린 퍼거슨의 The Aquarian Conspiracy가 『물병자리의 공모』라는 제목으로 김용주에 의해 번역된 것이 1994년이고, 노길명, 김종서, 김성건처럼 뉴에이지 이론에 대한 종교사회학자들의 관심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대부분 1990년도 중반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까지는 대체로 뉴에이지를 신종교의 틀에서 다룬 것이어서 특별히 뉴에이지 이론에 대한 해외의 연구성과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간 뉴에이지 운동이 비판 일변도의 기독교 신학적 논의에서 종교학, 종교사회학, 신학 등 관련학자들이 가능한한 객관적 관점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대체로 미국을 포함하여 서구의 종교학 또는 종교사회학자들의 뉴에이지 연구가 활발해진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이고 그 성과물은 2000년대에 이르러 이미 우리나라에 수용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를 전공 영역으로 하는 학자들의 뉴에이지 담론이 활발하게 나온 것이 21세기에 들어와서부터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이러한 이론서들의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아 주로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참고가 되고 있을 뿐 그 이론에 대해서는 뉴에이지 운동 또는 그와 유사한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마저도 극히 무지하고 무관심하다는 사실로, 이것이 대중문화 속에서 불리어지는 뉴에이지 스타일과 뉴에이지 운동․사상과의 거리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대중문화 매체에 ‘뉴에이지'가 그 이름을 밝히면서 비교적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1995년 송년 프로그램을 보도하면서 “SBS TV는 30일 밤 1시 파르테논 신전에서 울려 퍼지는 뉴에이지 음악의 진수인 「야니 아크로폴리스공연」을 내보낸다”는 기사가 나온다(<조선일보> 1995. 12. 30). 그 이후에는 뉴에이지에 대한 소개보다는 외국의 ‘뉴에이지’ 연주가, ‘뉴에이지’ 소설과 같이 연주가나 작품의 성격을 규정하는 수식어로서 사용되었다. 뉴에이지 서적으로 알려진 명상서적은 1980년대 이후 1990년대에 들어가서도 계속해서 뉴에이지의 표제 없이 새로이 번역되거나 이전 것이 재출판 되었다. 그중 다릴 앙카(Darryl Anka)의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유시화 역, 1999)에는 ‘뉴에이지 베스트셀러’라는 표제가 있어, 1990년대 전반까지 익명으로 살았던 뉴에이지란 명칭을 비로소 드러내주고 있다. 이것은 외국의 경우 뉴에이지가 이미 하나의 유파와 스타일을 의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 특성을 암묵적으로 이해하면서 차츰 이를 받아들여 사용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로 보면 1990년도 중반이 뉴에이지가 자기 명시를 분명히 하기 시작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뉴에이지에 대한 대중매체의 소개는 상당히 우호적이었으나 동시에 그 이론에 대해 무비판적이었음도 드러난다. 1996년도 3월에 나온 <조선일보> 기사에서 무엇보다 뉴에이지는 종교운동이 아닌 ‘문화적 운동’임이 강조되었고, 그 출현이 밀레니엄을 앞둔 시기에 세계가 겪는 심각한 패러다임의 변모와 연관된 것으로 보았다(<조선일보> 1996. 3. 5. “뉴에이지 물결”). 밀레니엄은 “퇴폐적이고 비관적인 세기말적 세계관과 새롭게 펼쳐질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교차”되는 양면성을 보여주는 시기이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 같은 사회분위기는 “보다 고양된 지적 능력의 추구와 영적 생명력을 얻으려는 인간의 내적 노력을 촉발시킨다. 이런 사회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등장한 것이 뉴에이지 사상이며, 이는 단순히 종교적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적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 기사는 뉴에이지를 소개하면서 무엇보다 ‘죽음과 사후세계’에 주목하여 뉴에이지의 특성을 영적 세계와 교류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과 이를 통한 자신의 상처받은 정신의 치유 가능성으로 요약했다. 실제로 뉴에이지는 이론보다는 자기변용의 체험을 중시하는데 가장 두드러진 사례가 치병(治病)으로, 어떤 점에서는 치병이 뉴에이지가 희구하는 변형된 세계를 갖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적인 삶의 추구를 종말론과 관련시킨 것이나 치병을 개인의 상처에 국한시킨 것에서 대중문화적 변형이 드러난다. 대중문화에서 뉴에이지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역시 음악이었다. 뉴에이지 음악가들(주로 피아니스트)의 국내 공연은 최근 들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피아니스트와 가수로 활동중인 노영심의 ‘가족과 함께 듣는 뉴에이지 피아노’ 공연이 있었고(2004년 4월 17일), 일본 뉴에이지 음악계를 이끌고 있는 피아니스트 유리코 나카무라는 스타 바리톤 김동규와 함께 조인트 콘서트를 가졌다(2005년 12월 12일부터 14일까지). 한국 대중매체에 의해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음악 분야인데, 이는 뉴에이지 관련 신문기사 검색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최근에 관심을 받고 있는 음악가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루마이다. 이것은 음악이 서적처럼 번역이나 미술, 무용처럼 직접 감상을 통하지 않고 앨범을 통해 용이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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