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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첫 순교자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영국신사77 2007. 7. 17. 01:08
                     개신교의 첫 순교자 로버트 토마스 목사
 
 

                                                                  

                                                                     로버트 토마스

1840년 9월 7일                영국 웨일즈 라드노주 라야다에서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남

1857~1863년 5월[17세~23세]     런던대학 뉴칼리지에서 학업


 

1863년 6월4일[24세]       고향인 웨일즈에 Avergavenny라는 소도시에 있는

                                     하노버 교회에서 목사안수


 

1863년 8월[24세 ]           런던 선교회 파송선교사로 아내와 함께 중국 상해 도착. 
                                     아내 캐롤라인 곧 병사


1865년 1~8월[26세]         청나라 해상세관 통역으로 근무


 

1865년 9월                       세관 사임. 1차 한국선교여행
                       ...............13일 서해안 도착, 두달 반동안 선교활동. 
                       .............. 서울 향해 떠나다 태풍만나 구사일생.
                       ..............
만주 거쳐 북경으로 돌아감


1866년 8월9일[27세]                   제너럴 셔먼호 동승, 2차 한국여행


1866년 9월2일경[27세]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와중에 순교(27세)

 

 

                                                                                  출처 : http://www.cgntv.net/culture/program.asp?pid=1346&gotopage=2

 
 

                        개신교의 첫 순교자 로버트 토마스 목사

 

 

 

 

  대원군 집권3년인 1866년 병인해는 우리나라 교회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한해였습니다. 새해벽두부터 나라안의 천주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병인박해가 일어났고 곧이어 병인양요까지 치뤘으니, 외세에 대한 조선의 쇄국정책은 극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같은해 8월 평양의 대동강에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나타났는데

 

   - 군사:저건 뭐냐! 어서 대원군께 알려라! 적군이 나타났다!

 

 

  이 배에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후원을 받은 로버트 토마스라는 선교사가 통역관으로 동승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한국 개신교의 첫 순교의 피를 흘린 주인공입니다.

 
  1840년,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토마스. 어려서부터 선교사에 대한 소망이 남달랐던 그는, 드디어 1863년 24살의 나이에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의 파송을 받아, 꿈에도 그리던 중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이은 부인의 죽음과 선임 선교사와의 갈등으로 런던선교회와 불화가 생긴후  한 때 선교사역을 포기하기도 했는데, 그후 스코틀랜드의 성서공회로 옮긴 후에 조선 선교사로 파송받게 됩니다.
 
하지만 세관에서 통역일을 하던 그에게 조선 선교라는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조선인:저희는 조선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토마스: 조선? 조선이라고...?
 
  다시금 복음사역의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같은해 9월 백령도 근처의 작은 섬에 도착해
주민들에게 성경책 200여권을 전하며 전도했습니다.
 
    토마스: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세요!
 
  베이징으로 되돌아간 그는 런던으로부터 정식으로 조선선교를 허락받았고, 다시 조선에 갈 배편을 찾던 그 앞에 제너럴 셔먼호가 나타났습니다.
 
  중국을 떠난 셔먼호는 일주일후 평양근처 대동강변에 도착했고, 역시 우려하던 대로 조선군과 무력충돌이 발생했습니다. 대동강변에 좌초하게된 셔먼호는 최대의 위기를 맞게되는데...
 
     군사 :어서 불화살을 쏴라! 적군들은 이제 우리 손아귀에 들어왔다!
 

  한편 불바다가 된 셔먼호 위에서는 백기를 들고, 화염속을 헤치며 사력을 다해 강가로 책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토마스 선교사였습니다.

 


 

 

   토마스:하나님..지금 죽어도 좋습니다. 단 한권이라고 더 조선인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십시오.

 

  그는 마지막 남은 한권의 성경책을 품안에 넣고 강물로 뛰어들었고, 곧 조선군에게 생포되었습니다.
그의 처단은 즉시 집행됐고, 그 임무를 맡은 조선군사가 바로 박춘권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박춘권이 칼을 뽑아들자, 토마스는 급히 자기품에 품었던 성경책을 꺼내어 웃으며서 그에게 내밀었고, 그리고 두손을 모아 마지막 기도를 올렸습니다.

 

  토마스: 오! 하나님. 이 사람이 자기의 하는일을 모르오니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조선땅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과연 토마스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에게 성경을 받은 이들중에 훗날 평양에 유력한 신앙가문을 일으킨 이들이 많은데, 박춘권은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석호정 만경대의 최취량은 평양교회를 창설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준 성경을 뜯어 벽지를 바른 영문주사 박영식의 집은 널다리교회의 예배처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정식으로 조선땅을 밞아보지도 못한채, 27살의 꽃다운 나이로 죽음을 당한 로버트 토마스선교사.
하지만 그의 죽음뒤에야 비로소 조선땅에도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데... 서툰 한국말 실력에 가진 것이라곤 한문으로 된 성경책 한권 뿐이었지만,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이땅에 복음의 부흥을 위한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출처:행복천사
 
 
                                                  로버트 토마스 목사 동영상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pid=1346&vno=3
 
 
 
 
 
               [기독교]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님(영국)

                                                                                   och6289 (2004-10-18)

 

런던 선교회 [London Missionary Society]
1795년 영국에서 초교파적으로 연합하여 설립한 해외선교단체.

구분 - 선교단체
설립연도 - 1795년
소재지 - 영국
설립목적 - 해외선교
주요활동 - 인도, 아프리카, 중국 등에 선교사 파송

영국 런던에서 회중교회, 성공회,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도들이 연합해서 선교단체를 설립하였다. 각 교회의 대표자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여 회원을 구성하였다. 1796년 처음으로 선교사 29명을 선발하여 타히티섬에 보냄으로써 해외선교를 시작하였다.

선교사들은 어떤 교파형태를 취하지 않았으며, 개종자 스스로가 교회 정체를 선택하도록 하는 원칙을 세워 이를 지켰다. 그후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고, 중국에서는 1842년 아편전쟁 직후에 체결된 난징조약[南京條約]에 따라 선교사업을 시작하였다.
 
한편, 1866년 대동강에서 순교한 R.J.토마스도 처음에는 런던선교회에 소속되었다가 선교부와 불화가 생겨 탈퇴하였다.

●로버트 토마스(Robert J. Thomas) : 제너럴 셔먼호 사건때 대동강에서 순교함.
토마스 목사를 처음 파송한 기관은 교회가 아니었고, 런던선교회라는 선교단체였습니다.
※질문추가에 답변~
  토마스 목사님이 어릴적 다니던 교회는 스코들랜드가 아니구, 웨일즈에 Avergavenny라는 소도시에 있는 하노바 교회입니다. 런던선교회와 불화가 생긴후 스코틀랜드의 성서공회로 옮기시고, 드디어 조선 선교사로 파송받으셨던겁니다.
 하노바교회에 대해서는 http://ccmez.com/%7Estewarduk/top3_3.htm 여기에 자세하게 나와있습니다.^^ 하노바 교회는 현재 7명의 성도밖에 나오지 않는 매우 침체된 상태라고 하네요. 예전에 선교사들을 많이 파송했고,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선교사들이 많았던 스코틀랜드나 웨일즈는 지금은 매우 침체된 상태라고 하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토마스목사님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요. 조선 선교를 위해 순교하신 훌륭한 분이시죠.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한국이 이만큼 되었다는 걸 믿어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