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의 첫 순교자 로버트 토마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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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토마스
1840년 9월 7일 영국 웨일즈 라드노주 라야다에서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남
1857~1863년 5월[17세~23세] 런던대학 뉴칼리지에서 학업
1863년 6월4일[24세] 고향인 웨일즈에 Avergavenny라는 소도시에 있는
하노버 교회에서 목사안수
1863년 8월[24세 ] 런던 선교회 파송선교사로 아내와 함께 중국 상해 도착.
아내 캐롤라인 곧 병사
1865년 1~8월[26세] 청나라 해상세관 통역으로 근무
...............13일 서해안 도착, 두달 반동안 선교활동.
.............. 서울 향해 떠나다 태풍만나 구사일생.
.............. 만주 거쳐 북경으로 돌아감
1866년 8월9일[27세] 제너럴 셔먼호 동승, 2차 한국여행
1866년 9월2일경[27세]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와중에 순교(27세)
개신교의 첫 순교자 로버트 토마스 목사
대원군 집권3년인 1866년 병인해는 우리나라 교회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한해였습니다. 새해벽두부터 나라안의 천주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병인박해가 일어났고 곧이어 병인양요까지 치뤘으니, 외세에 대한 조선의 쇄국정책은 극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같은해 8월 평양의 대동강에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나타났는데
- 군사:저건 뭐냐! 어서 대원군께 알려라! 적군이 나타났다!
이 배에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후원을 받은 로버트 토마스라는 선교사가 통역관으로 동승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한국 개신교의 첫 순교의 피를 흘린 주인공입니다.
토마스: 조선? 조선이라고...?
한편 불바다가 된 셔먼호 위에서는 백기를 들고, 화염속을 헤치며 사력을 다해 강가로 책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토마스 선교사였습니다.
토마스:하나님..지금 죽어도 좋습니다. 단 한권이라고 더 조선인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십시오.
그는 마지막 남은 한권의 성경책을 품안에 넣고 강물로 뛰어들었고, 곧 조선군에게 생포되었습니다.
그의 처단은 즉시 집행됐고, 그 임무를 맡은 조선군사가 바로 박춘권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박춘권이 칼을 뽑아들자, 토마스는 급히 자기품에 품었던 성경책을 꺼내어 웃으며서 그에게 내밀었고, 그리고 두손을 모아 마지막 기도를 올렸습니다.
토마스: 오! 하나님. 이 사람이 자기의 하는일을 모르오니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조선땅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과연 토마스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에게 성경을 받은 이들중에 훗날 평양에 유력한 신앙가문을 일으킨 이들이 많은데, 박춘권은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석호정 만경대의 최취량은 평양교회를 창설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준 성경을 뜯어 벽지를 바른 영문주사 박영식의 집은 널다리교회의 예배처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정식으로 조선땅을 밞아보지도 못한채, 27살의 꽃다운 나이로 죽음을 당한 로버트 토마스선교사.
하지만 그의 죽음뒤에야 비로소 조선땅에도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데... 서툰 한국말 실력에 가진 것이라곤 한문으로 된 성경책 한권 뿐이었지만,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이땅에 복음의 부흥을 위한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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