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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을 키운건 기업가 정신, 그리고 열정…

영국신사77 2007. 7. 16. 18:00
 

GM을 키운건 기업가 정신, 그리고 열정…

 

Billy, Alfred and General Motors
저자 William Pelfrey, 2007

 

박정태 국제경제평론가
입력 : 2007.07.13 08:50 / 수정 : 2007.07.14 03:46

    • 난세는 영웅을 만들어내고, 영웅은 천하를 통일한다. 기업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100년 전 미국 자동차 산업은 춘추전국의 시대였다. 500여 기업이 새로운 운송수단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

      그러나 포연이 걷혔을 때 미국 자동차 시장의 맹주는 ‘투기의 귀재’로 불렸던 윌리엄 듀런트가 세운 제너럴 모터스(GM)가 차지했고, 천하 통일의 대업은 ‘경영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알프레드 슬론에게 돌아갔다. 이 책은 미국 자동차 산업과 GM의 역사를 듀런트와 슬론이라는 걸출한 두 인물의 인생역정과 경영철학을 통해 재조명한다.

      저자의 말처럼 듀런트와 슬론은 ‘더 이상 다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듀런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외할아버지의 제재소에서 일을 시작해 30대에 미국 최대의 마차회사를 일궈낸 타고난 세일즈맨이었다. 지치지 않는 열정과 원대한 포부를 지녔고, 호화 저택에서 고급 시가를 피우며 상류사회 생활을 즐겼다.

      듀런트는 새롭게 떠오르는 자동차 시장을 거머쥐기 위해 남들처럼 자동차나 엔진을 만드는 대신 자동차회사와 부품회사를 사들였고, 1904년에 인수한 뷰익을 발판으로 1908년 GM을 세웠다. 1909년 캐딜락을 사들이는 등 기업인수에 돈을 아끼지 않았던 듀런트는 그러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1910년 은행 채권단에 의해 쫓겨난다. 듀런트는 1911년 시보레와 함께 시보레 자동차를 만든 뒤 5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GM의 최대주주로 등극,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러나 이 역시 오래 못 간다. 1920년 경기 부진과 포드 자동차의 가격인하 공세에 밀려 GM은 이 해 3월 4만2000대였던 판매량이 11월에는 1만3000대로 떨어졌다. 재고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뷰익과 캐딜락을 제외한 생산라인은 전부 가동을 중단했고, 11월에는 은행에서 단기어음으로 8300만 달러를 차입해야 했다. 듀런트는 12월 은행측의 사임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고, 다시는 GM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1921년 듀런트 자동차를 설립해 재기를 노렸지만 끝내 실패했다. 1929년의 주식시장 붕괴로 큰 타격을 입은 듀런트는 1936년 전 재산 250달러를 신고하며 개인파산을 신청했고, 194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슬론과 GM의 임원들이 보내준 생활비로 연명해야 했다.

    • 듀런트가 물러난 뒤 이사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임명된 피에르 뒤퐁은 슬론에게 회사 운영을 맡겼고, 슬론은 기적처럼 GM을 회생시켰다. 듀런트가 물러날 당시 GM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2%로 포드의 42%에 크게 뒤졌지만, 슬론이 GM을 떠난 1957년에는 52%로 경쟁업체들을 압도했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말이 회자된 것도 슬론이 GM을 이끌던 1950년대 초였다. 슬론의 결정적인 전략은 모델T에 안주했던 포드에 맞서 소비자들이 자신의 소득수준과 취향에 맞춰 스스로 차종을 결정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델을 선보인 것이었다.

      슬론은 넉넉하지 않은 집안 출신이었지만 MIT를 최우등으로 3년 만에 졸업했다. 그는 늘 GM이라는 기업조직과 경영전략만 생각했고, 어떤 취미도 갖지 않았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고, 골프도 치지 않았다.

      슬론은 1916년 자신이 운영하던 베어링 공장을 GM이 인수하면서 듀런트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고, 1930년대에는 그의 보유 주식만으로 거부가 됐으나 죽을 때까지 단 한 주의 GM 주식도 팔지 않았다(그의 재산은 대부분 메모리얼 캐터링 슬론 암센터와 MIT 경영대학원인 슬론 스쿨 등에 기부됐다).

      GM의 영광은 모두 슬론에게 돌아갔고, 듀런트의 흔적은 GM에서 거의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듀런트다. 저자는 21세기 미국 경제의 활로를 슬론이 아닌 듀런트에서 찾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업환경에서 듀런트가 처음으로 선보였던 기업인수와 수직계열화는 슬론이 GM을 세계 최대의 자동차 기업으로 키워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반면 슬론의 경영이론은 경직된 기업구조를 고착화해 빠른 의사결정을 막고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조직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가 정신이다. 듀런트는 우리나이로 여든이 되던 1940년 새로운 벤처기업을 시작한다. GM의 본거지인 미시간 주 플린트에 18레인 규모의 볼링장과 드라이브인(drive-in) 햄버거 체인점 1호를 개장한 것이다. 그는 볼링이 곧 미국 중산층이 즐기는 최고의 가족 스포츠가 될 것이며, 볼링을 즐기는 가족은 기존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예상은 적중해 20년 뒤 미국에는 볼링 열풍이 불었고, 맥도날드 같은 햄버거 체인점은 전국적인 기업이 됐다.

      그러나 듀런트는 자신의 마지막 벤처기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심장발작을 일으켰고, 결국 볼링장과 햄버거 체인점을 50개 이상 만들겠다는 마지막 꿈도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GM은 지금 쇠락해가는 미국 제조업체의 상징이다. 70년 이상 지켜왔던 세계 자동차 업계 1위의 자리를 일본 도요타 자동차에게 내주었고, 지난해에는 채권 신용등급이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듀런트가 가졌던 기업가 정신과 열정이 있는 한 GM은 물론 미국 경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 책이 전해주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