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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메테오라 수도원(현종필 연구원) #7

영국신사77 2007. 5. 26. 13:58
제        목   대 메테오라 수도원(현종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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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메테오라 Megalo Meteora*


  ‘메테오로스’란 원래 그리스어로 ‘바다에 떠 있는, 공중에 떠 있는’ 이라는 뜻의 형용사이다. 또한 현대어 ‘메테오로’란 ‘운석,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 또는 ‘천둥이나 비등의 대기현상’이라는 뜻의 명사다. ‘어느 날, 화가 난 제우스신이 천계에서 던진 암석이 남겨 졌다.’ 라는 전설이든, ‘풍화나 물로 인한 침식에 의해 남겨 졌다’라는 자연 현상설이든, 아무튼 메테오라의 기암이 지상에 떠 있는 느낌에는 변함이 없다.

  메테오라(솟을 바위라는 뜻)의 자연이 만든 사암 탑들은, 985년에 바르나바스라는 한 은둔자가 살기 시작하면서 최초로 종교적 은거지가 되었다. 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그와 합류했고, 1336년 아토스산에서 온 수도사 아타나시오스가 이곳에 메갈로 메테오로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이 유명한 메테오라 최대의 수도원이된 것이다. 내부에는 이콘 방, 박물관, 매점, 전망대(이곳에서 메테오라 기암들을 바라보면 너무나 멋있다)등이 있다. 그리고 현재의 교회는 16세기 중엽에 세워진 것이며, 그리에트 메테오로도 알려진 이곳은 최초로 건설된 수도원이며, 최고로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원(623m)으로, 입구 옆에는 아타나시오스가 살았던 동굴이 있다. 이곳에는 수도원의 창설자 아사나시오스와 이오아사프의 묘가 있다.

  최초의 은둔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수직으로 깎아지는 이 바위 절벽 꼭대기에 올라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바위의 작은 틈들 사이에 팩 박아 건축자재들을 날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이론으로는 연에 밧줄을 매달아 꼭대기 위로 날린 다음, 이 밧줄로 밧줄 사다리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메갈로 메테오르는 매우 엄격한 규율을 적용했다. 여자는 얼씬도 할 수 없으며, 짐승의 암컷도 접근 금지였다. 우연히도 메테오라에 수도원들이 세워지던 시기는, 여자가 남자와 한 상에서 밥을 먹을 수 없던 조선시대와 비슷하다.

 

  메갈로 메테오로가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세르비아의 한 황제가 이 수도원에 재산을 몽땅 헌납하고 수도사가 된 이후, 이 수도원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왜 수도원이 이 산꼭대기에 있을 수 밖에 없었을까? 그 이유는 그리스 중세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에 시달리던 중세 그리스의 역사를 짧게 살펴보자.

 

  1081년부터 1149년까지는 노르만족이 그리스에 쳐들어왔다. 1204년 이후에는 십자군이 비잔틴제국(그리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이후 그리스는 베네치아인들과 프랑크족들의 분할통치를 받는 신세가 됐다. 1354년에는 오스만투르크가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을 침공했다. 1453년에는 투르크군이 아예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버렸으며, 1460년에는 그리스 영토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어버렸다. 그래서 그리스는 약 350년 동안 세계의 역사에서 까맣게 사라지고 만다.

  그러한 중세 역사의 소용돌이, 즉 투르크족의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도사 들은 그 험한 바위 절벽으로 숨어들어 점점 더 깊은 피난처를 찾다가, 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이후 23개의 수도원들이 세워졌으나 불안정한 지반 때문에, 대부분 18세기 말에 무너지고 말았다.

 

  1920년대에, 남아 있는 6채의 수도원들에 올라다니기 쉽도록 계단이 설치되었다. 최근 종교에 대한 관심이 고양되면서, 수도사들과 수녀들이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