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고고학자인 데이비드 다운(David Down, 아래 사진)은 이스라엘에서 반원 모양의 고대의 돌들이 있는 곳에서 발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그는 자원봉사자들 중 한 여성의 다리가 구멍 아래로 사라져있는 것을 보았다.
데이비드는 중동지역의 고고학 발굴지들을 20 여년동안 발굴해 왔기 때문에 그 상황을 잘 대처할 수 있었다.
'그녀를 구하려고 뛰어 들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구멍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데이비드는 성경이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많은 발견들을 해왔다. 최근에 그는 성경의 연대기에 이집트의 고고학을 연결시키면서, 성경의 바로(pharaohs)들에 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책을 썼다.[1]
노련한 고고학적인 솜씨로 데이비드는 곧 그 입구를 통해 어둡고 서늘한 무덤으로 내려갔다.
“나는 2300년 만에 그 무덤에 들어간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도굴꾼들이 모든 것을 가져갔으리라 생각했지만 모든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86세의 나이에도 데이비드는 활기차게 최선을 다해서 발굴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아직도 일주일 중 세 번 오전 업무 시작 전에 테니스를 친다.
작은 통로를 통하여 기어들어가는 것은 현장 고고학에서 흥미진진한 일이다. 이 사진은 데이비드가 이집트의 첫 번째 피라미드를 건축한 세네페루(Seneferu)의 아들 무덤(mastaba, tomb)을 기어 들어가고 있다. 데이비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는 실제로 세 개의 피라미드를 건축했고, 고금을 통털어 가장 위대한 피라미드 건축가였습니다. 그의 아들 쿠푸(Khufu)는 기자(Giza)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를 건축했습니다. 무덤이 완성되고 시체가 안치되면, 도굴꾼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입구를 막아 버립니다. 도굴꾼들은 결코 통로를 뚫고 들어갈 수 없을 것이지만, 무덤의 다른 측면으로 돌아서 무덤 방 안으로 들어가는 터널을 팠습니다.” 그들은 큰 통로를 파느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않았고, 다만 비좁게 들어가는 것으로 충분했다. 오늘날 이 통로는 무덤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현장 고고학자로서 데이비드는 이스라엘에 자원봉사자로서 발굴을 시작했다. “점차 나는 나의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대부분의 고고학자는 학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고고학을 한 후에 공부를 했고 경험을 얻습니다.”
데이비드는 또한 ‘고고학적 발굴들(Archaeological Diggings)’ 이라는 고대 역사와 고고학에 관한 두 달에 한번 나오는 컬러 잡지의 편집을 맡고 있다.[1] “나의 잡지는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잡지입니다“ 라고 데이비드는 설명했다.
“다른 고고학 잡지들, 예컨대 ‘성서 고고학(Biblical Archaeology)’ 또는 ‘성서 고고학 리뷰’ (Biblical Archaeology Review)등과 같은 것들은 그들의 잡지명에 '성서' 라는 단어는 사용하고 있지만, 거기에 실린 기사들 모두가 성경의 정확성을 반드시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모든 것이 시작되었나.
데이비드의 고고학에 대한 열정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의 삼촌이 그를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된 공식 회의에 가자고 했을 때 시작되었다.
“그것은 한 극장에서 열렸고, 그래서 나는 이것이 정치 강좌라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데이비드는 회상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기도로 시작하고 헌금을 드렸을 때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만약 내가 삼촌과 같이 있지 않았다면 나는 떠났을 것입니다.“
데이비드는 생애 처음으로 바벨론(Babylon)의 왕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과 성경의 다니엘서 2장에 기록된 정금으로 된 머리와 은으로 된 가슴과 팔들을 지닌 한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데이비드는 회의적이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바벨론과 메데-바사(Medo-Persia)에 관한 것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그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공공 도서관에 갔고, 결국 바벨론과 메데-바사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다른 강좌에도 참석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계속해서 데이비드는 바벨론을 방문하였고, 그 스스로 그것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성서의 땅들, 즉 예루살렘, 베들레헴, 나사렛, 갈릴리, 그리고 특별히 바벨론과 니느웨를 보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땅들에서 일어난 성경적 역사의 사실성 때문에 변화되어졌기 때문에 그것들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기회는 인도에서 선교사로서 마지막 기한을 보내고 있던 1958년에 찾아 왔다. 본국인 호주로 귀향하는 대신에 그는 자동차와 캐러밴으로 성서의 땅들을 여행했다.
그의 아내와 네 명의 아이들(가장 어린 막내가 한 살도 채 안되었지만)과 함께 그들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카이버 고개(Khyber Pass), 이란, 이라크, 결국에는 바벨론에 도착하는 여행을 했다. “우리들은 몸만 달랑 그곳에 있었습니다” 데이비드는 회상했다. 성경은 “바벨론은 ‘온전한 황무지가 될 것’(예레미아 50:13)이라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 온전한 황무지인 바벨론에서 우리 가족은 홀로 야영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7개월 반의 여행을 했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데이비드는 이미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문제들을 발견하다
그 당시에 기독교인들 사이의 대중적인 의견은 고고학이 성경의 진실성을 증명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1960년대 들어서서 세속적인 고고학자들이 성경과 충돌되는 이야기들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데이비드는 그가 호주에 있는 한 기독교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칠 때 이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집트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었고, 표준적인 이집트 연대기에 의하면 아멘호텝 2세(Amenhotep II)가 출애굽 시기에 애굽을 다스리던 바로(pharaoh)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제 나는 이집트에 가보았었고, 카이로 박물관에서 아멘호텝 2세의 미라를 보았습니다.“
데이비드는 그것이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그가 출애굽기의 바로였다면 그는 홍해(Red Sea)의 밑바닥에 있어야만 했을 것입니다.”(출애굽기 14:5~9, 28) [2].
데이비드는 미국 최고의 크리스천 고고학자인 지그프리드 혼(Siegfried Horn) 박사에게 그가 강의실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물었다. 혼 박사는 “유감스럽지만 해답이 없군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십시오.” 라고 답장을 해왔다.
데이비드가 발견했던 또다른 문제는 솔로몬 왕과 관련된 것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솔로몬이 살았음직한 시기에서 풍요로운 기간을 발견하지 못한다. 대신에 그들은 궁핍함을 발견하고 있다.
'이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데이비드는 설명했다. “만약 당신이 고고학자들이 '철기 시대 IB (Iron Age IB)' 라고 불리는 곳을 발굴해 들어간다면, 당신은 오직 겉만 번드르르하게 보이는 도기류(pottery)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는 강력한 도시들이나 성벽들이나 요새들이나 그와 비슷한 어떠한 증거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떠한 보석류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속적인 고고학자들은 솔로몬 왕의 이야기를 지지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없다고 말하면서, 맹렬하게 성경의 그 이야기를 공격하고 있지만, 그들의 말과 모순되는 솔로몬이 존재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만약 솔로몬 왕의 이야기가 위조된 것이라면, 성경의 어떤 부분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데이비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해답들이 있어야 할 것임을 알았지만, 2년 동안 그는 그것들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성경이 옳다는 것을 알았지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연대기의 핵심
그 무렵 어느 날 그는 도노반 쿠르빌(Donoval Courville) 박사가 쓴 '출애굽 문제와 그것의 파생 문제들 (The Exodus Problem and Its Ramifications)' 이란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이집트의 연대기가 줄어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데이비드는 “그것은 나에게 빛을 비춰 주었습니다' 라고 밝게 말했다. ”나는 그것이 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줄곧, 그는 이집트의 '연대기를 개정하기 위한' 헌신적인 사람이 되었다.
오랫동안 고고학자들에게 있어서 이집트 연대기(Egyptian chronology)는 '절단되고 건조되어진(cut and dried)' 것이었다고 데이비드는 설명하였다. “그것은 천랑성 주기(Sothic cycle)에 의해 지지되는 것으로 주장되어졌고, 고고학자들은 그 날짜들이 천문학적으로 고정된 것으로 주장하였습니다.”
“이집트 역사의 표준 시각을 표시하고 있는 태양의 일식(eclipses)들이 그 연대들이 정확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랑성 주기는 일식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데이비드는 말한다.
데이비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천랑성 주기는 기괴하고 놀라운 것입니다. 이집트 역사에서 약간의 언급들이 천랑성의 떠오름(the rising of Sothis)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것은 억측입니다. 천랑성(Sothis, Dog Star)은 무엇인가? 시리우스 별(Sirius) 인가? 금성(Venus)인가? 그것에 대한 어떤 동의도 없습니다. '떠오른다(rising)'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언제 그것은 수평선 위로 나오는가? 그것은 전부 추측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그들의 연대를 지지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그냥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데이비드는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말했다. “사실,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천랑성 주기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집트의 연대들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천문학적으로 고정되었다(astronomically fixed)’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이집트 연대기가 단축되어져야하는 이유는 왕조들이 겹치고(overlapping dynasties)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데이비드는 설명한다.
“몇몇 왕조들이 동시대적으로 존재하였다는 것을 부인하는 고고학자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제3 중간기(Third Intermediate Period) 에서도 있었는데, 그 시기에 대해 가장 권위를 가지고 있는 케네쓰 킷첸(Kenneth Kitchen)까지도 같은 시기에 4 개의 왕조가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어떠한 왕조들이 동시대적으로 있었는가?’ 라는 질문이 아닙니다. 그 질문은 ‘얼마나 많은 왕조들이 그리고 얼마나 오랜 기간동안 그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이전에 확인되어졌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동시대적인 왕조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의 고고학은 이집트와 관련이 있고, 그들 자신만의 어떤 연대기도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고 데이비드는 설명했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이스라엘에서 바로(pharaoh)와 관련된 기록이 새겨져있는 도기 파편들을 발견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에 그 바로에 해당하는 연대와 같은 연대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만약 바로의 연대가 틀렸다면,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도기류들의 연대도 또한 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증거들은 아름답게 들어맞다
데이비드는 이집트의 연대기가 줄어든다면 증거들은 아름답게 들어맞을 것임을 발견했다. “그들이 솔로몬에 대한 그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초기 철기 시대(Early Iron Age)를 찾아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틀린 곳입니다. 그러나 중기 청동기 시대(Middle Bronze period)에서는 솔로몬의 영광스러움을 보여주는 풍부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옥합(alabaster jar)을 발굴해서 들고 있는 데이비드의 이 사진은 특별히 흥미로운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그것을 벳산(Bethshan)에서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로부터 수입되어져온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가 향유를 가득 담아두었던 옥합과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것입니다. 그녀는 봉인된 마개를 뜯고서 그 내용물을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빠른 돌림판 위에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도기류(pottery)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평범한 구리 대신에 청동(bronze)을 가졌습니다. 그곳에는 아름답고 잘 건축된 도시들을 포함하여 아주 많은 발명들과 대단한 번영이 있었습니다. 어떠한 고고학 서적도 중기 청동기 제2기(Middle Bronze II)는 중동지역에서 알려졌던 어떠한 시기보다 가장 영향력 있고 강력했던 시기였다고 이야기해 줄 것입니다. 이 시기는 개정된 연대기에 의하면 솔로몬의 시기입니다.” 라고 데이비드는 말한다.
데이비드는 또한 세소스트리스 1세(Sesostris I) 때에 살았던 요셉에 대한 많은 증거들을 발견하였다. “그는 너그러운 바로 였습니다” 데이비드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당신은 카이로 박물관(Cairo Museum)에서 그의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말쑥하게 보이는 조각상 말입니다.”
“그리고 노예의 시기(period of slavery)라고 인정되고 있는 시기에 오게 되면, 추잡하게 보이는 성격의 세소스트리스 3세(Sesostris III)를 보게 되는데, 이 이집트의 새로운 왕은 요셉을 알지 못했습니다 (출 1:8). 이것은 제12 왕조(12th Dynasty) 였습니다.”
고고학 분야에서 표준적인 이집트 연대기에 과감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데이비드 혼자만이 아니다. 예를 들면, 그는 ‘시간의 시험(Test of Time, 미국에서의 제목은 ‘Pharaohs and Kings’)이라고 불리는 책을 쓴 데이비드 롤(David Rohl)을 언급하고 있다.
데이비드는 성경과 개정된 연대기에 대해서 친숙한 것이 다른 고고학자들이 가지지 못하는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발굴현장에서 뭔가를 발견할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즉시 알고 연대기적으로 그 물건을 정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성경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유대인들과 발굴을 할지라도, 그들은 나만큼 성경에 친근하지 못합니다.”
그는 새로운 구조틀 안에서 이집트의 역사를 재해석한 최근의 책을 쓰면서 느꼈던 우려를 회상하였다. “나는 표준적인 연대기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나 처음에는 바로들을 올바른 장소에 두려고 감히 노력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출애굽과 솔로몬으로부터 시작했고, 보기 좋게 들어맞는 많은 왕조들의 왕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데이비드는 그의 작업이 기독교 신앙과 성경을 방어하는 데에 매우 긴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당신이 성경이 역사적으로 틀렸다고 말하게 될 때, 어디에서 그것을 멈출 것입니까?”
“전투는 모두 연대기(chronology)에 관한 것입니다” 라고 데이비드는 열정적으로 말한다.
“표준 연대기에 의하면 BC 700년 이전의 성경적 기록에 대한 증거는 없게 됩니다. 그러나 개정된 연대기에 의하면 풍부한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모두 너무나도 아름답게 들어 맞습니다.”
References and notes
1. Contact Archaeological Diggings (Australia) for publishing details, editor@diggings.com.au
Phone: +61 2 9477 3595.
2. See also David’s article, Searching for Moses, TJ 15(1):53-57, 2001.
3. See also Mackey, D.F., Fall of the Sothic Theory: Egyptian chronology revisited, TJ 17(3):70-73, 2003; based on his M.A. thesis from the University of Sydney in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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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탄소(C-14) 연대측정법은 성경이 틀렸음을 입증하였는가?
'나는 방사성 탄소(C-14) 연대측정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라며 데이비드는 재미있어 한다. “솔직히 말해서,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은 하나의 큰 농담입니다. 그들은 실험실들에 연대가 측정되어질 시료들을 보냅니다. 만약 그 결과가 도기류의 형태로부터 이미 결정되어진 날짜들과 일치하면, ‘이 시료의 C-14 연대는 우리의 결론을 확증해준다’ 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그 연대가 일치하지 않으면, 그들은 단지 연구소에서 그것을 잘못 취급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것은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은 결코(나에게 이 점을 강조함) 결코 결코 그들이 발견한 것을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로 연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그들의 결론과 부합할 때에만 그것을 인용할 뿐입니다.”[1]
Reference
1. The same is true in geology. See Walker, T., The way it really is: little-known facts about radiometric dating, Creation 24(4):20-2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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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Hittites) : 성경에 기초한 개정된 연대기에 의해 풀려진 종래의 연대기적 문제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이집트 연대기가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히타이트와 같은 것입니다” 데이비드는 말한다.
이스라엘처럼, 히타이트도 그들만의 그 어떤 연대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히타이트와 이집트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동시에 발생했던 일들이 많이 있으며, 그래서 히타이트의 날짜들은 이집트의 연대기적 기초 위에서 부여되어진다. 그렇지만, 삼각형의 세번째 구성원인 앗수르가 있다.
데이비드는 그 문제를 요약하였다. “이집트 연대기에 따르면, 히타이트는 BC 1200년에 소멸되어졌지만, 앗수르인들은 BC 8세기와 9세기에 히타이트에 대항하여 싸운 전쟁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타이트인들이 소멸되고 난 후 500년이 지났는데 그들은 누구와 전쟁을 하였을까요? 고고학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든지 간에 '뒤에 남은 광채(afterglow)'라고 말합니다. 앗수르인들은 8세기와 9세기에 히타이트에 대항하여 전쟁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히타이트 기록에 의하면 500년 전에 살았던 왕들과 동일한 이름들을 가진 왕들과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점점 더 악화된다. “작년에 터어키에 있는 히타이트 유적들을 방문했을 때, 나는 공예품(artefacts)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왕국 시대에 만들어진 공예품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후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정확하게 꼭 같았습니다. 우리들은 왕조가 바뀌고 스타일이 바뀌면 공예품도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공예품들은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이집트와 관련해서 연대가 정해진 것이었고, 다른 것은 앗수르와의 관련해서 500년 후로 정해진 것이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묻어 두고자 한다. 그러나 데이비드 다운에게 있어서, 이러한 문제들은 성경적인 개정된 연대기에 의해서는 풀려지기 때문에 흥미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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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이집트 연대기
표준 이집트 연대기는 BC 3000년을 넘어서 확장되어 있다. 이것은 노아의 전 세계적인 홍수가 고왕국(Old Kingdom) 시대 동안 일어났다는 것이 되어진다. 또한, 요셉은 제2 중간기(Second Intermediate Period) 동안 애굽에 놓여지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에 그에 대한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모세는 신왕국(New Kingdom) 시대에 이집트에 놓여지게 되지만, 번성했던 왕국에서 애굽 전역을 황폐화시켰던 질병들, 홍해에서 바로와 그의 군대의 괴멸 등과 같은 사건들의 영향을 찾아볼 수 없다.
왕조들이 동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서, 개정된 연대기는 극적으로 시간 척도를 무너뜨리고, 성경적인 연대기와 조화되어진다.
제1 중간기(First Intermediate Period)는 제2 중간기와 같은 것이 되며, 여호수아와 사사기의 시기와 부합한다. 제3 중간기(Third Intermediate Period) 또한 사라지게 되고, 그 왕들은 신왕국(New Kingdom)과 후기 페르시아 시기(Late and Persian Periods)들의 왕들과 일치하게 된다.
따라서 이집트는 대홍수 이후, 그리고 바벨에서의 분산 이후 미스라임(Mizraim, 노아의 손자이며 함의 아들)의 후손들에 의해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창세기 10:6) (현재의 이집트(Egypt) 라는 이름은 미스르(Misr)에서 나왔다. 참조; 창50:11)
아브라함은 고왕국 시대 동안 이집트를 방문했으며, 요셉은 중왕국 시대 동안 이집트에 있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중왕국을 몰락시켰고, 한때 장엄했던 땅들에 황폐한 시기를 가져왔다.
References and notes
1. Contact Archaeological Diggings (Australia) for publishing details, editor@diggings.com.au
Phone: +61 2 9477 3595.
2. See also David’s article, Searching for Moses, TJ 15(1):53–57, 2001.
3. See also Mackey, D.F., Fall of the Sothic Theory: Egyptian chronology revisited, TJ 17(3):70–73, 2003; based on his M.A. thesis from the University of Sydney in Australia.